시리즈 [TS근친3] 대충 형이었던 것을 깔아뭉개는 소설
개념글 모음

“...윽.”


이예지는 재차 눈을 떴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시리고도 묵직한 감각이 목에서 느껴져서였다.


촤르륵, 철컹.


“윽!”


 목을 당기는 강한 압력.


이예지는 캑캑거리며 뒤로 엎어졌다가 그제야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렸다.


그녀는 맹견이 그러듯 목줄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쇠사슬을 밟았다는 것도 모른 채 몸을 일으켰다가 저 스스로 목을 조른 거였다.


“이예준 이 씹새가...!”


감정에 북받쳐 욕설을 내뱉은 것도 잠시.

이내 이 집의 규칙을 떠올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일까.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지.’


그녀가 눈을 굴렸다. 일단 이 집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건 명확했다.


그런데 어떻게? 목줄이 매인 상태로 어떻게?


그녀는 말없이 목줄을 잡아당겼다.

어지간히 억센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지금의 몸으로는, 아니.

설령 원래의 몸이었다고 한들 이걸 뜯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입마개는 없다는 점에서 안심해야 하나.’


그녀가 속으로 자조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살아났더니 이렇게 몸이 바뀐 것도 모자라.

기껏 동생을 찾아냈더니 오히려 역으로 업보를 잔뜩 받게 될 판국이었다.


하지만 아직 살길은 남아 있었다.


‘친구들, 친구들이랑 연락만 닿았어도...’


그녀는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

학창 시절 이것저것 같이 쏘다니며 함께 청춘을 만끽했던 옛 친구들이라면.

분명히 이 소식을 알게 되는 순간 동생을 때려눕히고 그녀를 풀어줄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감히 현대에서 이렇게 감금이나 한다니, 간도 크지.


경찰에게 신고하는 순간 일단 여기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좋아.’


그러니 최대한 기회를 노리다가 친구들이나 경찰에 신고라도 하자.

막 그녀가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끝마쳤을 무렵, 문이 열리며 이예준이 나타났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반면 이예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잔뜩 불룩한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가슴에서 넥타이를 풀어서 의자에 걸어놓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정장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자리에 주저앉으며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숨을 참았다. 분명 무슨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달갑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민형, 알지?”


“이민형... 민형이가, 왜?”


“죽었다네.”


“걔, 걔가 죽어...?”


“응.”


짤막하게 대답한 그가 냉장고로 향해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가 멈칫, 하고 맥주 캔을 내려놓은 그가 사이다 캔을 대신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오토바이 타고 쏘다니다가 여자랑 같이 죽었다고 하더라.”


“세상에...”


“호상이지, 뭐.”


“뭐라고? 너, 이 새끼가...!”


“닥치고 있어. 원래라면 장례식장에서 깽판 치려고 했던 것도 형 얼굴을 봐서 참았던 거니까.”


“아. 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민형도 그 못지않게 이예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

원래라면 이민형이 이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반면 이예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오늘 장례식장에 온 사람, 몇 없더라.”


“...뭐?”


“형이 패밀리라고 불렀던 그 작자들도 안 왔어. 다들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거나...”


거기까지 말한 그가 빈 캔을 밟았다.


와작, 하고 캔이 구겨졌다.


“그 전에 골로 갔거나. 둘 중 하나더라고. 나쁘진 않았어. 받으리라 생각 못했던... 사과도 받았으니까.”


그녀는 멍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미소라기보다는 실성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믿고 있던 동아줄 하나가 끊어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동아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에 희망을 걸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너, 지금 판단 잘해.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응, 알지.”


“그래, 지금까지 한 건 봐줄 테니까... 지금이라도 엎드려 싹싹 빌어.”


그는 그러는 대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그녀는 무언가 명함과 여권 같은 걸 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천천히 그 표정을 감상했다. 여전히 기억 속과 유사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얼굴.


하긴, 눈치가 빨랐다면 애초에 조금 전 협박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몇 줌 안 남은 아량을 발휘해 설명을 시작했다.


“형의 여권이야.”


“내, 내 여권은 이게 아닌데...?”


“그러시겠지. 이건 형이 아니라 형이랑 비슷한 얼굴을 한 중국인의 여권이니까.”


“...아?”


“놀랐어? 형은 이제 불법체류자야. 들키는 순간, 중국으로 내쫓길걸.”


“주, 중국으로? 나, 중국어 할 줄도 모르는데...?”


“학교에서 안 가르쳤나? 아, 그렇겠지. 중국인 선생님을 짱깨라고 그렇게 놀려댔으니까.”


덕분에 매번 그 선생님을 볼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는 딱히 기억하고 싶지 않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죽거렸다.


“선택 잘하는 게 좋아. 중국인 리리지로 살던가... 아니면 내 집에서 한국인 이예지로 살던가.”


“너, 좆게이새끼 주제에... 감히 날 협박하는 거야?”


“미안한데 협박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야. 내 수입으로 대형견을 더 키우자면 빠듯하거든.”


그녀는 입을 벌렸다. 지금, 대형견이라니. 그거 나 지칭하는 것 맞지?


하지만 얼마나 생각하든 간에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화가 난다기보다는 놀라웠다. 고작해야 그까짓 일들을 이렇게나 길게.

또 이런 식으로 치졸하게 가슴에 담아두고 복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만큼 더더욱 그랬다.


“너...”


“어땠어? 오늘 하루. 목줄에 묶여 사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을 텐데.”


“당연히 불편하지.”


“그래? 그러면 어렸을 때 나한테는 왜 그랬어?”


그녀는 숨을 삼켰다. 멋모르고 내뱉으려던, 내가 그랬나? 라는 문장도 함께 삼켰다.


그리고 멍청하게 아무 말이나 내뱉는 대신 천천히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그러나 기억나는 건 없었다. 아무것도.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도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비닐봉지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생긴 입마개를 꺼냈다.


그녀는 말없이 그걸 응시했다.

이젠 그의 동생에게 인간이 아니라 개 취급을 받게 되리라는 건 분명했다.

지금껏,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존엄성도 사라질 게 분명했다.


원래라면 그 폭거에 분노하여 한 번이라도 들이받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윽...”


그녀는 기억했다.

묵직하게 몸을 강타하던 폭력을.

이제 그녀로서는 전혀 이길 수 없게 커버린 동생의 힘과 그 응어리 진 분노를.


인제 와서 대항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 하나는 달라질 것 같았다.


동생이 그녀를 대하는 그 태도는 점점 차가워질 테니까.


“이건 성인용품점에서 파는 사람용 입마개야. 인사해. 앞으로 말 안 들으면 이걸 쓰게 될 테니까.”


“...너.”


“오늘은 얌전히 있었으니까 봐줄게. 아, 그리고 앞으로도 가만히 있는 게 좋아.”


“...어째서?”


“그 중국인. 이 근방 사람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거든. 보이스피싱 중개책이었나.”


“그, 그거야 중국으로 가면 안 볼...”


“마음대로 생각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장을 봐온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 한 명이 더 머물게 된 만큼 장을 볼 게 많았다.


심지어 그녀는 이제 여자였다. 

여성용품을 비롯해 위생용품을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분명했다.


아니, 그래야만 할 테고.


그는 담담히 화장실에 휴지와 새 치약 같은 걸 채워 넣으며 생각을 이었다.


아직, 그러니까 지금의 이예지는 그에게 있어서 반쯤 짐승에 가까웠다.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처럼 말할 뿐인 후안무치 그 자체.

하지만 언젠가 그녀가 개심하는 날이 온다면 그는 그녀를 개가 아니라 인간처럼 대할 생각이었다.


뭐, 그럴 날이 오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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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를 좀 바꿔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