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V 위대한 자

 

 이 책의 서두부터 여러 차례 언급했듯 사람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에 의존한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기원행위이다. 기원행위란 신적인 존재에게 자신의 바람이나 안녕 따위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행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기원행위는 마음속으로 신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소망을 되뇌는 기도이다. 기도는 단순히 생각에 그치지 않고, 말이나 글 따위로 자신의 바람을 표출하거나 종교적 상징을 지니고, 또는 종교적으로 신성한 장소에서 행하거나 몇 가지 의식이 추가되는 등 다양한 변형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신비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기도가 신에게 전해지는 경우는 몹시 드물며, 이는 단순히 기도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원행위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신비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원행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 소원을 들어줄 능력을 갖춘 존재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바람을 전달하는, 보다 능동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후 신비학자들은 여러 신적 존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직접 접촉했으나, 실제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는 매우 드물었다. 그럼에도 신비학자들은 멈추지 않고 소원을 들어줄 다른 존재들을 물색했으며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신을 만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기존에 알려진 신들, 새롭게 찾아낸 신, 그 외의 존재들까지 총 22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신비학자들은 이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들을 경외의 의미를 담아 위대한 자들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위대한 자들이라는 명칭은 대중들 사이에서 보다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신비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소원을 들어주는 인격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위대한 자들이란 구분은 편의적인 분류로, 22명의 위대한 자들에게는 필멸자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단 한 가지 공통점 외에 이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높은 수준에 도달한 마법사, 초월자, 신, 자연물 등 다양한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족이나 능력, 격 등은 천차만별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 이유, 만나는 방법 역시 제각각이므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자들을 만나고자 할 때는 자신의 소원, 능력을 고려해 누구를 만날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이번 장에서는 알려진 정보가 많은 자부터 적은 자까지 순서대로 위대한 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략)

 

 3. 마법사의 꿈의 주인

 

 마법사의 꿈의 주인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위대한 자로, 생애부터 현재의 거취까지 상세히 알려져 있다. 마법사의 꿈의 주인은 켈리오 헨이라는 마법사로 오늘날은 본명보다 마법사의 꿈의 주인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켈리오 헨은 영원히 잠드는 것을 목표로 잠과 꿈에 대해 연구하는데 매진했던 인물로, 헨이 개발한 마법들은 오늘날까지도 수면 장애를 치료하는데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저서인『꿈의 72가지 마법적 상징』은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해몽서로 알려져 있다. 헨은 잠과 꿈의 전문가로만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대단히 강력한 마법사로, 불가능해 보이는 소원조차도 간단히 이뤄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켈리오 헨은 35세에 과업이었던 영원히 잠드는 법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헨은 본인의 소원대로 영원히 잠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겨났는데, 켈리오 헨이 너무나 강력한 마법사였던 나머지 헨이 꿈을 꾸며 생겨난 마법들이 주변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헨의 마법은 점차 많은 영향을 주기 시작해 결국 주변 지역을 헨의 꿈으로 바꾸어버렸다. 꿈으로 변해버린 이 지역을 오늘날에는 마법사의 꿈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법사의 꿈은 헨이 잠들었던 탑에서 반경 약 8km에 걸쳐 있으며, 꿈의 확장은 오래전에 멈춰 200년 전부터 지금과 같은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 마법사의 꿈은 온전한 정신으로 꿈에 들어갈 수 있는 극히 드문 경우로, 오늘날까지도 꿈을 연구하는 마법사와 신비학자들이 꾸준히 방문해 연구 중이다.

 이 마법사의 꿈을 방문하는 것만이 오늘날 헨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법사의 꿈에 들어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 평범하게 마법사의 꿈의 경계를 넘어가면 된다. 걷거나, 뛰거나, 기거나, 탈것을 타거나, 마법으로 날아가도 상관없다.

 그러나 꿈속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물리적인 법칙을 벗어나게 되므로 단순히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꿈 내부의 공간은 외부에서 관측된 경계보다 넓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정확한 면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마법사의 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마법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만약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꿈을 연구하고 있는 마법사를 찾아 도움을 구하라.

 켈리오 헨을 만나고자 한다면 들어온 방향 그대로 전진해서 꿈의 중심에 위치한 탑을 찾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8km 정도 이동하면 되나 꿈 내부의 환경은 굉장히 변화무쌍하므로 이보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헨은 대부분의 시간을 탑 꼭대기의 방에서 잠을 잔다. 그러므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탑의 꼭대기에서 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헨은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당신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나 방문자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다(헨의 입장에서 방문자는 타인의 꿈에 들어와 자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따라서 헨이 관심을 가지거나 안타까움을 느낄만한 사연으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방문자 존재를 귀찮게 여기기는 하나, 헨은 도덕적인 성격이므로 축원자의 사연이 안타깝거나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이때도 헨은 곧바로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고, 소원을 함부로 비는 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설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견을 굽히지 않고 헨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헨은 소원을 들어주고 꿈 밖으로 내보내 줄 것이다.

 만약 헨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소원이 적절치 못하다면(너무 위험하거나 헨의 능력을 벗어나거나 또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축원자를 내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문자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판단하면, 방문자를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중략)

 

 6. 횃불을 든 여인

 

 횃불을 든 여인은 알서르 신계에 소속된 신으로 소원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이들이 소원을 이루고자 횃불을 든 여인의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며, 비밀리에 제물을 바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앞선 장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기원행위는 소원을 이루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횃불을 든 여인에게 바치는 공물과 기도 역시 소원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검증되었다.

 횃불을 든 여인과 능동적으로 접촉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으며, 오늘날 알려진 여인과 접촉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인이 직접 찾아오는 것뿐이다. 여인은 계시를 내리거나, 꿈에 직접 찾아오거나, 부하 신들을 보내 자신의 궁전으로 초대한다. 여인의 초대에 응한다면 곧바로 여신의 알현실로 이동하게 된다. 여인이 초대했다는 것은 이미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결정한 것이므로 여인을 설득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여인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가로 가져가는 것은 축원자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다. 이때, 대가로 지불하는 소원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여인이 소원을 이뤄줄 인간을 정하는 기준은 소원의 강함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2장에서 상세히 소개했던, 카트로프 척도와 연관이 있다. 현재까지 횃불을 든 여인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소원은 모두 카트로프 척도가 4.78 이상이었으며, 카트로프 척도가 높은 소원일수록 여인과 만나기 쉬움이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비학자 민타니가 밝혀냈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타니의 논문「횃불을 든 여인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준」을 참고하라).

 이와 같이 소원을 대가로 다른 소원을 이루어주는 이유는 대부분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채로 남기 때문에 이로 인한 정체를 해소하여 소원의 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횃불을 든 여인은 소원에 대한 곡해 없이 바라는 바를 완벽히 이루어주는 위대한 자이지만, 실제로 여인을 통해 소원을 이룬 사례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추정된다. 첫째, 여인의 관심을 끌만큼 강한 소원을 가진 경우가 드물다. 둘째, 자신의 가장 간절한 소원을 포기하고 다른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이 드물다. 셋째, 여인과의 만남은 꿈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 한 여인과의 접촉 여부를 알 수 없다.

 여인을 통해 소원을 이룬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자는 카마란 제국의 황제였던 탄크츠일 것이다. 탄크츠는 굉장한 애처가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황후가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황제는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제국의 유명한 의사들을 수소문했으나 어떤 의사도 황후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황후의 병세가 깊어가던 어느 날 제국 전역에 우박과 서리가 내려 사람들이 다치고 농작물이 얼어 죽기 시작했다. 

 황성 안팎으로 비극적인 소식에 황제와 백성들의 시름이 깊어가던 그때, 고통 속에 쪽잠에 든 탄크츠의 꿈속으로 횃불을 든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황제에게 가장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노라고 말했다. 잠시 후 황제는 다급한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소리의 주인은 황후의 시종이었다. 시종은 무척이나 서글픈 얼굴로 황후의 죽음을 알렸다. 황제는 비보를 듣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통한 분위기 속에 해가 뜨고 아침이 왔다. 며칠 동안 내리던 우박과 서리는 지난밤의 꿈처럼 아침 햇살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이 이야기는 역사학자들의 교차검증을 통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탄크츠의 제위 중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적인 혼란과 재난이 발생했음은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당대의 전 세계적 혼돈 속에서 카마란 제국만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음을 입증하는 근거들이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중략)

 

 14. 하얀 신사

 

 하얀 신사는 정체가 베일에 가려진 신이다. 인간 세계에 개입했던 흔적과 기록이 역사 곳곳에 남아있으나, 정체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하얀 신사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마른 체형의 남성으로 구체적인 생김새는 기억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하얀 남자를 목격한다면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전해진다.

 많은 신학자들과 신비학자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도 하얀 신사의 정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논쟁이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하얀 신사의 행보가 지나치게 변덕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에는 인간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한편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재앙을 내리는 등 그 의도를 종잡기 어렵다(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니틀리 벡의『하얀 신사의 발자취』를 참고하라). 때문에, 소원을 이루어주는 목적이나 기준 역시 추측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고 일부 학자들은 하얀 신사는 본인의 흥미와 재미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불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하얀 신사이나, 한 가지 의식을 통해 불러낼 수 있다. 의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거울 하나와 술이 필요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 달이 높게 떴을 때 잔잔한 수면 위에 거울을 세운다. 이때 거울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겨야하며 수면에 물결이 일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대야에 물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술을 잔에 따라 거울 앞에 놓고 하얀 신사의 이름을 세 번 속삭인다. 이후 거울에 하얀 신사가 비치게 되고, 하얀 신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얀 신사의 변덕적인 성격 때문에 소원을 이루어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하얀 신사의 이름은 신사를 섬기는 비밀 집단인 아트리시아 밀교의 회원들만이 알고 있다. 또한 아트리시아 밀교 역시 그 존재만이 알려져 있을 뿐 구성원이나 목적 등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으며, 때문에 이들과 접촉하거나, 밀교에 가입하는 방법 역시 알려져 있지 않다.

 

 (중략)

 

 16. 망국의 망령

 

 망국의 망령은 헤란 왕국 북동쪽 불모지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모지는 오래전 멸망한 이그란 제국의 영토였으며 헤란 왕국의 국경을 이루는 클레우 강의 북쪽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의 북쪽에도 드문드문 마을이 존재하기는 하나 불모지의 중심지인 폐허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점차 감소한다. 

 폐허는 헤란 왕국의 국경지에 위치한 도시인 헤컴의 북북동 방향으로 약 172km 떨어진 위치에 있다. 폐허는 대략 10㎢ 면적의 고대 도시의 파괴된 유적이다.  망국의 망령은 볼모지 모든 곳에서 출몰하나, 주로 불모지의 중심부 폐허에 머문다.

 볼모지에 들어간 사람들 대부분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까지 불모지에서 발견된 개체는 망국의 망령뿐이므로, 이는 망국의 망령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극히 드물게 불모지를 방문하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신비학자들의 면밀한 조사 결과, 방문자 중 일부가 소원을 이룬 것이 밝혀졌다. 따라서 오늘날 신비학자들은 이들이 망령과 모종의 계약을 맺고 돌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약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단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강한 적개심이나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불모지에 방문했을 때 망령과 만나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비학자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망령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했으나 불모지에서 돌아온 자들은 모두 이에 대해 함구했다. 

 망령이 강한 적개심과 분노에 반응한다는 점과 목적을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망령을 통해 소원을 이루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신비학자들이 많으나,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폐허를 찾고 있다.

 

(중략)

 

 18. 모든 섭리의 아버지

 

 모든 섭리의 아버지는 대단히 강력한 신으로 흔히 규칙 위에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섭리의 아버지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극히 드문데, 이는 섭리의 아버지가 지나치게 불가해한 존재로 인간이 이해하기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섭리의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서는 한가지 의식을 치루어야 한다. 의식은 99명의 배우가 반경 100m의 공터에서 7일간 행하는 연극으로, 연극에는 먹는 장면, 자는 장면, 볼일을 보는 장면이 포함되며 배우들은 인간의 삶을 충실히 묘사해야 한다. 또한, 의식을 치루는 도중 다른 이가 목격할 경우 의식은 실패한다. 의식이 끝나면 생존자들은 공터의 중앙에 원을 그리고 모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든 섭리의 아버지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이는 섭리의 아버지가 부름에 응할 때까지 반복한다. 섭리의 아버지가 부름에 응했을 때, 의식이 성공했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질 것이고, 실패했다면 남은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모든 섭리의 아버지의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몸짓과 도형, 마법적 행위가 포함되어 있어 너무나 방대하기에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의식 역시 7일 동안 진행되어야 하는바, 너무나 길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의식과 섭리의 아버지의 이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신비학자 크샤람이 집필한 『모든 섭리의 아버지』를 참고하라.

 다른 위대한 자들이 만나기까지 매우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원을 이뤄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과는 달리 모든 섭리의 아버지는 의식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그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 모든 섭리의 아버지에게 필멸자가 비는 소원이란 몹시 하찮은 것이며 소원의 여파 역시 몹시 하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섭리의 아버지에게 소원을 빌 때는 몹시 신중해야 한다. 섭리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규칙의 예외를 만드는 것이나 규칙을 아예 바꿔버리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한 가지 예로, 성장이 멈춘 성인이 키가 크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면 섭리의 아버지는 모든 인간의 성장이 멈추지 않게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가 개변된 이력이 최소 3회에서 79회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학자에 따라 다르게 추산된다). 따라서 모든 수칙의 아버지에게 소원을 빌 때는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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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는 헤란 왕국 북동쪽 폐허의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다. 공간의 특성상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체적인 위치와 크기 등의 정보는 알려져있지 않다.

 해당 지역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실종되는 것으로 알려져,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테츠라는 탐험가의 소원이 이루어지며 신비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테츠에게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가 있었는데, 테츠는 전 세계를 탐험하며 아내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테츠는 이그란 제국의 폐허 동쪽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대로 실종되고 말았다. 그리고 테츠의 실종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병이 완치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내의 완치에만 관심을 가졌으나, 신비학자였던 멜리나이는 테츠의 실종과 아내의 완치 사이의 연관성에 흥미를 느꼈다. 이후 멜리나이는 기존에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 위치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해 조사했고 실종자 3명의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알아냈다. 이후 탐험가 4명을 도시로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탐험가들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며 탐험가들은 복귀하지 못했다. 멜리나이는 해당 내용을 정리하여 같은 해 동계 소원학술회에서 발표했고, 신비학자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가 알려지게 되었다. 

 해당 지역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초기에 대두되었던 가설은 접근하는 존재의 소멸을 대가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위대한 자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으나, 사람들이 실종되는 지역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 때문에 기각되었다. 이후로도 여러가지 가설이 난립했으나, 오늘날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가설은 해당 지역에 카단라스 정보 필터가 존재하여 위대한 자를 가두고 있으며, 필터 안에 들어간 인물들은 위대한 자를 목격하여 필터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측이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며 해당 지역에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었다.

 위은 추측이 많은 신비학자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위대한 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이 오가고 있다. 어떤 이는 갇혀있는 위대한 자가 몹시 자애로우며 자신 때문에 갇혀버린 인간들에게 연민을 느껴 인간들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위대한 자가 누군가에게 봉인 당했다는 점, 갇힌 인간들의 기억을 지워 내보내주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선한 존재가 아닐 것이라 주장한다. 한편, 또 다른 이들은 갇혀있는 존재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들과 계약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이렇듯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나, 현재로서는 잃어버린 신들의 도시의 정체와 해당 지역의 위대한 자에 대해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아르캄 율즈, 『소원을 이루는 방법』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