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 서두 - 힙합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2.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

└ㄱ. 옛날에는 좋았다

└ㄴ. 푸씨처럼 굴지 마라

└ㄷ. 쇼미더머니가 힙합을 망쳤다

└ㄹ. 그럼에도 힙합이 당당할 수 없는 이유


3. 디스전의 발단과 전개

└ㄱ. 맨스티어의 등장

└ㄴ. Ph-1의 곡과 아쉬운 점

└ㄷ. K$AP Rama의 곡과 실망스러운 점


4, 결론

 




1, 서두 - 힙합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Ph-1과 뷰티풀 너드의 디스전을 보고 뭔가를 생각하고 어떤 식이든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둘만 봐서는 안된다. 적어도 이찬혁이 가사로 썼던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가 나오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어쩌면 그보다 더 전인 영앤리치의 스웨깅 가사가 힙합씬의 메인스트림으로 대두될 때로 올라가야 할 수도 있고, 심하면 힙합의 정체성에서부터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어디까지 올라가야 할지 선을 따는 것만으로도 한 세월이 걸리겠지만,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Ph-1이 갑자기 디스를 날린 이유를 알 수 있다,


현재 힙합의 위치, 대중적인 인식은 정치인과 비슷하다. 좋은 놈이 있긴 하지만 이야기가 들려오는 래퍼들은 다 안 좋은 쪽으로 들려온다. 지들끼리 싸우는데 솔직히 관심은 딱히 없고, 쟤네들이 왜 화나있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데 남들이 보기엔 솔직히 똑같은 것들이 누구 궁뎅이 똥이 더 냄새나냐로 싸우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대중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몇 년째 들었던 거라 진정성 있어보이지도 않고 다 거짓말 같다. XX구 시민들의 민생을 신경쓰겠습니다. 나는 돈이 존나 많아. 민생을 위해서는 이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은 어릴적에 가난했었지. 등등등. 그나마 구성원 전원이 악인이다, 로 담론이 완결된 페미니스트 집단보다야 인식이 좋긴 하겠지만, 그녀들과 비교된다는 거 자체가 힙합이 얼마나 인식이 안좋은지를 반증하는 꼴이다.


힙합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그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를 말했다. 전부 다 맞는 말이다. 소문을 파고들면 진실이 아닌 경우는 많지만, 평판이나 인식에 관해서는 소문이나 개개인의 생각이 전부 진실의 한 퍼즐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힙합은 폭력적이고 찌질하다는 것이 주된 논지가 되지 않을까. 얄궂게도 이런 비판은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니다. 힙합이 어딘가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이라 일반인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인식은 최근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과거 타블로가 스탠포드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고 싶어했는가.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진실과 소문은 다른 점이 있으며, 이 진실은 이미 굳어진 인식을 바꾸기엔 너무나 미약하다. 나는 이 글에서 결코 힙합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힙합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고, 역효과만 날 뿐이다. 어디까지나 이 글은 Ph-1이 뷰티풀너드를 겨냥한 이유에 대해서 탐구하기 위해 하는 작업인 만큼, 힙합 팬과 일반 대중들 사이의 인식의 괴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말할 뿐이다.




2. 힙합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


ㄱ. 옛날에는 좋았다?


유튜브 등지의 댓글을 가 보면, 요즘 힙합을 보면서 '옛날 힙합이 좋았다' 라는 넋두리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주로 꼽는 래퍼는 다이나믹 듀오, 드렁큰 타이거, 그리고 특히 MC 스나이퍼가 많이 보인다. 그들이 말하는 골자는 가사의 퀄리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요즘 애들은 돈 이야기, 여자 끼고 다니는 이야기, 내가 어릴 적에 이렇게 불우하게 살았어, 혹은 다른 래퍼들 다 꺼져 내가 최고야. 같은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 인식은 대략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퍼지기 시작했다.이 때는 쇼미더머니 3에서 바비가 나오면서 힙합이 본격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해 (2014년) 스웩으로 똘똘 뭉친 영앤리치 레코즈가 꿈틀대기 시작하던 때 (2016년) 이다. 그러면 그 전에는 그런 가사들이 없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내가 만지면 곧바로 암캐로 둔갑할 수 있는 애들만 와' 너무나 저급한 가사다. 가사의 더러움만 보면 2020년대 초중반에 나온 기믹 래퍼들의 흔한 여자 자랑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2008년에 버벌진트가 쓴 믹스테잎의 가사다. '음악같지 않은 음악을 모두 다 집어치워버려야 해'. 정말 같잖은 소리지 않은가? 누가 음악같지 않은 음악을 판단한단 말인가? 만약 이 가사가 202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다면 모두의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아뿔사, 1999년에 드렁큰 타이거가 발매한 그 이름도 눈부신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의 훅이다. 가사로 가장 자주 추억되는  MC 스나이퍼가 이 분야의 끝판왕이다. '니 엄마의 질속으로 어서 다시 들어가' 로 대표되는 MC 스나이퍼의 분노 모드는 혐오감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다.특히 2009년에 나온 팻두의 여친토막살인은 비프리의 '니 엄마는 할카스' 따위는 귀엽게 만들어버리는 수위의 가사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런 행보가 지속되어 더 이상 국힙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위치가 되었다.


즉, 옛날에는 좋았다, 라는 명제는 틀렸다. 그럼 반대로 요즘에는 좋은 노래는 있을까? 없을 리가 없다. '짧았던 하루가 연기를 따라 뽀얗게 잦아들어가, 잠깐 졸다 보면 한사코 아침은 밝아온다' 라는 가사가 있다. 타이틀곡도 아니고 뮤직비디오 제작도 되지 않았다. 바이브만 보면 2000년대 중반에 나왔을 법한 노래지만, 2021년에 발매된 '광흥창에서' 라는 곡의 소절이다. '다들 꿈이란 건 이루지 못한 채 꾸고만 사는데, It's Ok 괜찮아 난 맛이라도 봤잖아' 라는 가사는 또 어떤가? 이건 심지어 '힙합은 안 멋져' 라고 이찬혁이 가시를 박기 전 주에 같은 프로그램에서 나온 곡이다.다만, 이런 순한 맛은 금세 잊혀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자극적인 맛이 남기 쉽다. 




ㄴ. 푸씨처럼 굴지 마라


긁? 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이 말은 상대방이 화를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지 않든 일단 화가 났으면 고작 그런 것으로 화내냐고 핀잔을 주는 의도로 쓰인다. 이 말은 화가 나거나 신경이 거슬려도 티를 내지 않을 것 내지는 화를 아예 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실제 용법에서는 화를 부추긴 다음에 그 화를 더욱 돋구는 용도로 쓰이기는 하지만). 뷰티풀 너드와 PH-1의 싸움에서 긁, 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힙합에 가해지는 모든 비난은 웃는 얼굴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분위기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하지만 이렇게 '쿨' 하게 넘기는 건 힙합 본연의 멋이 아니다. 오히려 힙합은 옛날부터 '핫' 한 게 멋있는 것으로 취급받았다.힙합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문화인 디스부터가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에미넴은 자신의 대표곡 'The real Slim Shady' 에서 윌 스미스를 디스했다. 랩에다 욕을 넣지 않는다고 방송에서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디스전은 수없이 있어왔다. 또한 힙합은 반항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반항 역시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는 인종 차별 문제가 현대에도 아직 남아있다고 역설했고, 일리닛의 '학교에서 뭘 배워'는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대학 입시 문제를 뮤직비디오까지 찍어가며 신랄하게 비판했다.지코가 있기 전 은지원도 '아이돌은 힙합의 금지선입니까' 라면서 기존 큰형님들에게 고개 뻣뻣이 들고 반항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에서는 동부 래퍼가 서부 래퍼를 디스한다고 해서 둘이 나중에 마주칠 일이 그다지 없다. 실제로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래퍼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데프콘의 말마따나 수많은 아티스트가 범위를 가리지 않고 엮이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까내리기가 애매하다.정치적 문제도 한국에서는 연예이이 정치문제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것에 힐난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이센스가 개코를 저격했던 'You can't control me' 나 산이가 페미니스트인 제리케이를 저격한 '6.9cm' 같은 곡들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힙합은 자신을 공격하는 행위들에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거칠게 반응한다. 2000년이 되기 전부터 그랬다. 바뀐 게 있다면 멋짐의 기준이다. 어느샌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욕에 대해 대응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것이 멋짐의 기준이 되었다. 연예인이 악플에 대항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되던 옛날로 회귀한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언뜻 보면 당연해보이지만, 힙합의 입장에서는 이제 힙합의 멋짐을 대중에게 전달할 때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ㄷ. 쇼미더머니가 이 씬을 망쳤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주로 힙합의 올드팬이다. 무브먼트, 붓다베이비, 소울컴퍼니, 오버클래스, 아메바 컬쳐, 빅딜레코즈 등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넘치는 한국 힙합의 근본은 낭만이 넘치는 가사들로 점철되어 있었다.이들에게 쇼미 이후 대두된 일리네어, 비스메이져, 아옴그, 저스트 뮤직은 어딘가 아쉽고, 영앤리치, 앰비션 뮤직, 인디고 뮤직, 위더플럭은 누가 있는지 관심도 없다. 더콰이엇이 '우리는 언젠가 홍대로 돌아갈 거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쇼미더머니는 언뜻 보면 그 때의 순수한 음악을(ㄱ 항을 보면 그렇게 순수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지금 돈 자랑, 여자 자랑, 가난 타령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한탄할 때 가장 적절한 비판거리로 보인다.


물론 방송용 카메라가 들어왔을 때, 모든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쇼미더머니 1에서 특히 그 미흡한 면이 드러났고, 악독한 편집은 11시즌 내내 바뀌지 않았다.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머리를 박고 누가 죽냐, 누구의 커리어를 끝내냐로 격돌하던 디스 배틀은 서로 웃고 떠드는 장난거리로 격하되었고, 모두가 경연을 하고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획일화된 가사의 주제를 고르고, 인맥으로 얻은 유명한 피쳐링으로 승부를 보려고 해 매번 보던 피쳐링진만 호화롭고 정작 주인이 될 참가자는 들러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비판의 허용점이 되어야 한다. '힙합은 바뀌어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쇼미더머니가 일궈낸 것들은 딱히 부정적이라고 밖에 볼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쇼미더머니는 이제 한국 힙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며, 11년이나 함께한 장수 프로그램이니만큼 쇼미더머니가 일방적으로 힙합 씬에게 영향을 주거나 변질시켰다, 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쇼미더머니와는 상관 없는 힙합씬이 쇼미더머니에 영향을 주기도 한 상호작용 관계인 것이다.


8 이후에 대두되었던 싱잉랩에 염증을 느끼는 힙합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10 시즌의 조광일이 주목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싱잉랩이 과연 안 좋은 것일까? 스윙스가 2014년에 쓴 가사를 보자. '힙합은 시대정신과 유행을 늘 곁에 두지, 예시 하나를 줄게, 지금 대세 중 하나 하면 일렉, 힙합과 퓨전하잖아' 불도저로 한국 힙합을 거칠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1년도 안되서 한 말이다.


쇼미더머니가 시즌의 마지막회를 여름이 아닌 겨울로 가져가면서 연말 분위기를 살리고 부드러운 가사를 쓰려는 것도, 쇼미더머니 10에서 쿤타, 11에서 던말릭이 소위 힙합팬의 기대를 저버리면서까지 말랑한 곡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일차적인 이유는 방송국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방송국 사람들은 왜 그런 분위기를 좋아할까.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표현하면 방송국이 완전히 악마처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방송국이 악마라면 모든 래퍼가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국의 입장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엠넷은 최대한 모두를 배려해주었다. 9, 10, 11 세 시즌 모두 세 번의 경연에서, 첫 번째는 래퍼들의 음원을 신경쓰고, 두 번째는 힙합 팬들을 위한 음악을 냈고,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을 위한 음악을 내주는 경향이 있다. 리스너, 대중, 아티스트 모두를 한 발짝씩 위한 포맷을 취하고 있었다. 대중이 제일 큰 파이이기 때문에, 또한 음원은 대중에게 역설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먹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먹히는 음악이 왜 싱잉랩이나 말랑할 랩일까? 대답은 단순하다. 대중이 거친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국 사람들도 더 이상 대중에게 돈 이야기, 여자 이야기는 안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 5~7까지는 그게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렇기에 말랑하게 가는 것이다. 어쨋든 힙합이긴 하지만 얼굴에 욕을 직접적으로 먹는 것은 프로그램이며, 방송국 사람들은 이에 더 민감하다.




ㄹ. 그럼에도 힙합이 당당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이 모든 글이 하등 쓸모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대중들은 힙합을 이해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우매한 대중이라고 대중을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자신이 관심없는 분야-예를 들어 입자물리학, 동물병리학, 메이저리그 이적시장에서 일어나는 새롭고 놀라운 소식들-에 대해서 누가 귀에 대고 알려주지 않는 한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한다. 대중들이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거나 계도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스스로를 오만하게 보며 대중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는 행위이다.


책임은 무조건 힙합에게 있다. 오해할 여지도 없이, 정확히 말하면 힙합 그 자체가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음악 장르이다. 힙합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외국인이라서 군대도 가지 않거나, 잘 살아오면서 마약을 하거나,음주운전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은 것도 한 몫을 한다. 또한 힙합은 제작자로 입문하기 쉬운 장르에 속한다. 음정의 조절이 거의 필요 없어 음치도 할 수 있으며(나도 음치인데 아마추어로 벌스를 몇 개 짜곤 한다), 가사를 직접 쓴다는 점 때문에 수준 미달의 사람들이 수준 미달의 가사를 들고 래퍼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닌 사람도 많다.하지만 힙합의 이미지를 거론할 때에 있어서 그 정도는 생략 가능한 작은 변수일 뿐이다. 이 기조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김하온, 우원재, 릴보이 등의 래퍼가 가끔씩 대중들에게 듣기 정겨운 힙합을 들려주곤 했지만 그들에게는 계원예술대학교를 나온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마약하다 걸린 나플라와 이센스, 테이저건에 맞은 정상수가 더 오래 회자될 것이다. 



3. 디스전에 관해서



ㄱ. 맨스티어의 등장


을 이야기하기 전에, 힙합이 많이 퍼지면서 힙합을 즐겨듣던 사람이 힙합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찌갱 거리는 애들은 몰라 shugarhill gang' 이라는 가사를 볼 때, 많은 사람이 슈가힐갱이라는 이름을 듣고 환호했다. 1979년의 유명 미국 래퍼를 리스펙했기 때문이다. 이 가사는 래퍼가 아닌 인터넷 방송인 꽈뚜룹이 유튜브 싸이퍼에서 쓴 가사다.힙합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결코 싫어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조기축구, 사회야구의 저변이 넓어지는 걸 싫어하는 축구선수, 야구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지는 그와 반대로 날이 갈수록 떨어져 가고 있었다. 상술했듯이 마약이나 군대 문제들, 갈수록 깊이가 없어지고 단조로워지며 천박해지는 가사들,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 때문이다. 힙합, 특히 한국 힙합은 인기가 없어졌고, 어느 순간 대중들의 힐난을 받는 게 당연한 장르가 되어 있었다. 장난식으로 잉글랜드의 8부 리그가 K리그보다 수준이 높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도미니카 사람 아무나 9명 모아서 야구팀을 짜도 KBO보다 잘 할거라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비슷하게 스눕독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Island boy' 의 초기 버전이 모든 국힙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진지하게 말한다는 점이 K리그와 KBO와 다른 점이다.


 맨스티어는 그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맨스티어가 인기를 끈 이유는 그들이 랩을 잘해서라기 보다는 풍자를 잘 해서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대중들이 고까워하던 힙합 아티스트의 모습에 제대로 부합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래퍼들이 안 좋은 단면들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군데 뭉쳐서 만들어놓은 것이 맨스티어인 것이다.


이렇게 얻은 수많은 인기는 점점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놓는 데까지 발전했다. 처음에는 그러한 래퍼들, 힙합씬의 풍자로 시작된 맨스티어는 점점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추종자들이 생긴다는, 다른 문제점이 보였다. 맨스티어의 잘못은 아니다. 모든 유명한 사람들이 공통 분모로 가지고 있는 고민사항이다. '그런 래퍼들이 많다' 라는 인식이 '그런 래퍼들밖에 없다' 라는 인식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ㄴ.  Ph-1의 곡과 아쉬운 점


맨스티어를 향해 디스곡을 내기는 했지만, 나는 이 노래가 디스곡이라는 생각이 왠지 들지 않았다.분노보다는 아쉬운 마음, 호소하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컨트롤 디스전에 나온 아펠리아의 'Zicontrol'이 지코가 아닌 지코에 빠져 힙합 씬을 존중하지 않는 팬들을 꼬집는 말이랑 비교를 해야 하려나. 내가ph-1의 마음을 아는 건 아니지만 심정을 대변한다 치고 글을 써보자면 아마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맨스티어야, 너가 하는 힙합과 노래들을 보면, 너가 정말 힙합에 대해서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알겠어. 솔직히 내가 봐도 이 씬에 있는 몇몇 래퍼들보다 너희가 더 진지하고, 랩도 더 잘하고, 가사도 생각해서 쓴 것 같아. 하지만 너가 쓰는 가사들의 의도는 풍자였을지 몰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너의 리스너들은 더 이상 힙합의 좋은 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 걸 넘어서 좋은 면을 봐도 낄낄대며 이 장르를 바보취급하기에 이르렀어. 대중들의 카메라 앞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아직도 좋은 가사와 앨범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너의 행동이 그런 새싹들과 긍정적인 면마저 덮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돼."


ph-1 스스로도 비판점을 의식하고 있다 '국힙 먹은 거는 맞아. 조회수만 따지면 말야, 그리고 몇몇 래퍼들보다 너희가 랩 잘 하는거 맞아. 아마 그게 우리의 고충이네' 라는 가사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ph-1은 동시에 호도하고 싶은 것이다.맨스티어가 풍자하는 것이 힙합의 전부는 아니며, 단지 일부일 뿐이라고 '숫자로 대변 안되는 So many quality albums. 우린 계속 다해 최선 하지만 매번 상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해' 한다고 말이다.


다만 Ph-1의 전달 방식은 랩이라는 한계점 때문인지 다소 날카로웠다. 특히 머리에 조준, 이라는 말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ph-1의 입장에서 그대로 반격 당하기 좋은 라인이었다.단순히 국힙히 폄하받는 이유는 랩을 못해서가 아니라 상술한 수많은 논란 때문인데,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디스곡을 낸 것은 맨스티어가 왜 떴는지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밖에 없다.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미 질 싸움인 걸 알고 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더 부드러워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ㄷ. K$AP Rama의 곡과 실망스러운 점


대응곡은 상당히 빨리 나왔다. 사실 K$AP Rama가 미리 준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둘이 짜고 쳤다는 뜻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언젠가 진짜 래퍼들에게 이런 식의 디스를 받지 않을까 예상했던 사람 같았다.물론 ph-1에 대한 대응곡이니 만큼 가사를 미리 준비해놓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실제로는 


반격 자체는 랩 게임만으로 보자면 훌륭했다. 필자가 전술했던, ph-1이 놓친 점들. 과연 한국 힙합이 실력이 없어서 이 지경이 된 것 같느냐고 꼬집는 말들로 이루어진 가사는 ph-1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만든 K$AP Rama의 완봉승이다. 랩 배틀의 측면으로만 보자면 그렿지만, 제목에서 ph-1 의 곡은 아쉽다, 라고 표현한 반면  K$AP Rama의 곡은 실망스럽다고 꼬집은 이유는 그의 태도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ph-1의 호소에 관해서는  K$AP Rama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비꼬면서 조롱했다. '어때 ph-1 니 살결 좀 봐봐 인정하기 싫어도 피가 철철 존나 긁혔잖아' 는 이미 ph-1 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돌려주는 식밖에 되지 않는다. 대응곡을 빠르게 내느라 안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역으로 ph-1이 했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물론   K$AP Rama가 ph-1의 말이나 호소를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딱히 없다.다만 이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는 K$AP Rama가 스스로 한국 힙합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스탠스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만약  K$AP Rama가 한국 힙합의 파멸을 정말로 원한다면 이 디스는 100% 성공이다. ph-1 뿐만 아니라 모든 힙합하는 사람들을 사회부적응자, 범죄자에 버금가는 종자들로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힙합이라는 형태를 이용해서 그 곳에서 종사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전부 바보취급함으로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K$AP Rama에게 그런 소원이 없었다면 이 대응곡은 실패한 대응곡이 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어떻게 됐건 간에 이 대응곡으로 한국 힙합 전체를 매도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4. 결론


사실 의미가 없는 글이다. 이 디스전에서 Ph-1 의 편을 들었던 사람은 다 알던 내용을 복기시키는 것에서 끝날 것이고,  K$AP Rama의 편을 들었던 사람은 '병신 또 긁혀가지고 만글자 써가면서 풀발기하네' 라고 비웃으며 다시 한 번 승리를 선언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자기 만족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다 힙합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에 대해,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정리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