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ALERT!

결론부터 말하면, 페나코니는 컨셉 자체가 여러 세력이 모인 군상극이라 어쩔 수 없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복잡하긴 했음.


냉정하게 말해서 스토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알아둬야하는 정보가 너무나 많고, 오로지 인게임만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소화하기 힘든 양이었음. 물론 인게임 아카이브에 주절주절 써있긴 하지만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찾아 읽어야 이해가 가능한 스토리텔링은, 엄밀히 말하면 서사가 완벽했다 하더라도 만점을 주기는 힘들다고 봄.

페나코니 자체의 스토리와 체급은 분명히 완성도가 높음. 위에 말한 저런 장벽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도로 나왔다고 생각함. 하지만 그런 사전정보가 없는 사람은 씨발 이게 다 뭔소리야? 하는 생각 들었을 확률이 높다고 봄.


아케론이 공허의 사도인 게 왜 놀라운 사실인지, 텍스트 범벅으로 전개되는 시뮬레이션 우주를 정독 안했다면 공허의 익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려니 하게 됨.

갤러거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래서 뭔데 그냥 이새끼가 나쁜 새끼라는 거임? > 허구역사학자에 대해 모르면 이런 반응이 나와도 이상할 거 없음.

선데이의 힘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사전 설정을 모르는 사람 기준으로는 밝혀지기 전이나 후나 그냥 뭔 기묘한 힘을 쓰는구나 라는 생각 밖에 안 들게 됨.

페나코니 자체적인 스토리텔링만으로 와 이거였구나 소름 ㄷㄷ 할 수 있는 장면은 시계공 관련 스토리 정도밖에 없음. 나머지 흥미로운 전개는 전부 다 스타레일 전체의 배경설정에 의존하고, 페나코니 자체 스토리에서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풀어내주지 않음. 결국 이 스토리를 하나하나 다 이해하면서 와 씹 존내 재밌다 라고 느낄려면 설정을 한무더기 챙겨보고 와야 됨.

근데 페나코니는 겨우 4번째 에피소드(헤르타 프롤로그까지 포함해줬을 때)로, 아직 이 설정들이 자연스레 스며들 정도로 앞쪽 서사가 탄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좍 펼쳐놨음. 좆박은 나부, 페나코니 출범까지 꽤 긴 대기 시간이 있어서 세계관 파먹는 사람이 좀 있었다는 제반사항, 그리고 저걸 다 쳐먹고 왔을 때 아깝지 않았다고 느낄 만큼의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페나코니는 성공할 수 있었음.(거기에 마침 세계관에 흥미 가질만한 여러 교보재가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것도 있음.) 근데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고점을 노린다면 매번 민심이 좋을지는... 솔직히 부정적임.




야릴로 VI는 진짜 기초적인 은하열차와 무명객에 대한 정보 하나만 익힌 채로 진행이 가능했음.

스토리는 '과거 비옥했으나 지금은 낙후된 혹한의 땅. 부유층과 빈곤층으로 나뉘어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고, 폐쇄된 왕국의 위정자는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 이곳을 찾은 이방인인 당신. 이 땅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라.'

한 번에 정리되는 스토리에 뭔놈의 지니어스클럽이고 나발이고 개입한 거 없고 온갖 잡동사니 세계관 다 내던지고 오롯이 야릴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플롯이었음. 다른 행성과 단절된 곳이어서 그런지 특유의 다른 설정들 쓰까면서 뭐있는 거마냥 말 어렵게 하는 NPC도 극소수였고 이들이 보존의 의지를 따르는 폐쇄적인 국가라는 것만 알면 모든 내용이 이해 가능했음.

 엄청난 뽕차는 반전이나 기가막힌 전개는 없었지만 담백하니 먹을만하고 대부분의 인물이 제대로 활용되는 느낌.



나부가 개씹좆인 건 인정하지만 딱 한 가지 페나코니보다 나았던 점은, 나부 스토리는 딱 그 챕터에서 곁들인 설명 이상의 외부지식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임. (물론 그만큼 스토리가 존나게 얕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임.)

나부도 스타레일 특유의 설정놀음 있는 건 맞지만 주로 나부 자체의 설정 위주로 진행이 되었고 (선주란 무엇인가, 장생종과 선주의 시스템, 풍요와 수렵의 대립, 구름 위 5전사, 절멸대군 등)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그 안에서 납득하면서 진행 가능한 영역이었음. 다만 전개는 씹노잼에 캐릭터들의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대사는 유치하며 전체 플롯은 납작하고 결말까지 구렸을 뿐임.


페나코니 자체만으로는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게 나왔지만, 적어도 다음 스토리는 야릴로와 나부처럼 그 스토리 하나만 따라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범위를 잘 잡았으면 좋겠음. 모든 올드 유저와 유입 유저가 스토리 이해하기 위해 매 시즌마다 세계관 새로 암기해야하는 일은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