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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는 작은 쇼파에 몸을 파묻으며 살며시 구두를 벗었다. 카지노 딜러의 일이란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다 보니 구두를 벗는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깊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검은 스타킹이 감싸인 그녀의 발에서는 뜨거운 증기가 피어 오르는 착각이 들 만큼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은지는 번갈아 다리를 꼬며 종아리를 주물렀다.

 

“후우”

 

그녀에게 오늘은 유독 피곤한 하루였다. 하루 종일 딜러일에 집중하며 서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유독 판돈이 큰 날은 더욱 그랬다.

 

은지는 살며시 쇼파아래 바닥을 내려 다 보았다. 놀랍게도 그 바닥에는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방에서 그 남자의 모습은 오직 바닥에 드러난 얼굴 뿐이었다. 그 마저도 입과 눈은 복면으로 가려져 있었고 오직 코만이 그가 드러낸 전부인 것이다.

 

이토록 이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오직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고용된 남자였다. 그는 도박으로 큰 빚을 지게 되었고 빠르게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소리에 이곳을 찾은 것이다.

 

은지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빚을 안겨주는 이가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끔 이곳을 찾아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었고 자신이 타락시킨 손님들을 만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오늘은 누군지 볼까?”

 

은지는 특수하게 제작된 남자의 복면을 열어 그의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뭐야? 노란 머리, 너야?”

 

마침 며칠간 자신을 귀찮게 하던 남자를 마주하였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이런 경우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카지노를 처음 찾을 때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그의 모습은 현재 인간이하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전락해 있었다.

 

“저… 절 아세요?”

 

승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사실 딜러를 기억하는 도박꾼은 잘 없었다. 오직 도박에만 집중하고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내가 널 어떻게 알아?”

 

은지는 발을 들어올려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오늘 따라 땀에 젖은 스타킹이 발바닥에 착 달라 붙는 느낌은 결코 유쾌할 수 없었지만 이 기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가 바닥에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쾌락을 안겨주었다.

 

“자… 잠시만요! 여…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제게 뭘 하실 건가요?”

“아마도 이런 거?”

 

은지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분명 자신의 발에서 나는 냄새를 코로 맡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냄새를 피해보려 고개를 돌려보지만 바닥에 고정된 그의 얼굴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햇다.

 

은지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그에게 자신이 원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녀는 물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는 벌레를 짓 밟듯 그의 얼굴에 발을 올려버렸다. 승훈은 어디로도 피하지 못한 채 그녀의 발바닥에 얼굴이 맞닿아 버리자 오물을 뒤집어 쓴 듯한 소름이 온몸에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우웁”

 

그나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얼굴을 발로 가려버리자 승훈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도 않았다.

은지는 피식 웃어 보이며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런 모습을 유지한 채 딴짓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녀의 발아래에서는 온갖 비명소리와 거센 저항이 느껴졌지만 다른 세상의 일 처럼 은지의 표정은 평온하기 까지 했다.

 

“우우우으으으읍!! 읍읍!!! 우으으읍!!”

 

승훈은 숨쉴 때 마다 느껴지는 그녀의 짙은 체취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고통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그녀의 행동에 놀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여자의 발냄새가 이토록 지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새 옷을 사거나 하면 특유의 옷재질의 냄새가 나듯 스타킹도 특유의 나일론 냄새가 나는데 승훈이 맡고 있는 이 냄새는 분명 자신이 기억하는 그 특유의 나일론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겨드랑이 냄새? 식초 냄새? 아무튼 땀에 쩔은 나일론의 냄새는 지금껏 자신이 생각해 왔던 그 어떤 냄새보다 지독했다.

 

은지는 여전히 스마트폰에만 신경을 쓸 뿐 승훈의 얼굴에서 발을 떼려 하지 않았다. 강제로 그녀의 발냄새를 맡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승훈에게 크나큰 치욕스러움을 안겨주었다.

 

‘X발… X발…’

 

승훈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치욕스러움에 온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일을 때려치고 나가고 싶었지만 은지는 그가 입을 여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X발 내인생…’

 

승훈은 학창시절부터 일진무리등에 어울리며 보여주기식 인생을 살아왔고 최근 무리하게 고급스러운 차를 사는 바람에 빚에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가지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한방을 노리려 하였고 그 탓에 카지노를 찾았지만 더 큰 빚을 지고 말았다.

그는 사채빚까지지며 결국 사채꾼들의 추천으로 이곳에 팔려오다 시피 한 것이다. 그의 인생은 26세의 젊은 나이에 막장에 막장을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