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인식 대전차포 사양의 2파운더


2파운더, 뭐가 문제였던거냐

2파운더. 1930년대에 개발되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 운용된 화포다. 2차 대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40mm라는 구경은 대전 중반 정도만 되어도 주력 전차포로 사용하기에 심히 빈약한 구경이다(대공포 등으로는 많이 쓰였다.). 그러나 이 2파운더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도 4달이 지난 1945년 12월에야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고 한다.


이 2파운더는 당시로서는 나름 준수한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이었으나 이걸 개발한 영국의 뻘짓(...)으로 제 성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웠다. 이는 영국의 전차 교리와 영국을 둘러싼 주변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우선 당시 영국은 전차포의 용도를 '대전차전'에만 한정했다.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영국은 전차의 임무를 보병 지원, 방어 구조물 격파 등은 완전히 배제하고 적 전차와의 전투에 한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2파운더의 포탄으로 철갑탄만을 생산했는데 이게 관통 후 전차나 구조물 안에서 폭발해 2차 피해를 주는 형식이 아니라 그냥 쇳덩어리였다.


더 골때리는 건 원래 생산하던 포탄은 관통 후 내부에서 폭발하는 형식의 철갑유탄이었다는 것이다. 2파운더가 운용하는 포탄이 작다 보니 기존의 철갑유탄 형식을 유지하려면 관통력에 약간 문제가 생겼다고는 한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걸 잘 조정해야 하는데, 영국은 그냥 생산 중지를 때려버리고 2파운드짜리 쇠뭉치를 포탄으로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초기에 생산된 철갑유탄은 훗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나름 요긴하게 사용된다.


사실 영국도 2파운더가 영 하자가 있는 물건이라는 건 인지해서 6파운더 등 더 강력한 포를 개발하고 이를 양산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0년, 프랑스가 예상보다 허무하게 무너지고 영국이 장비와 중화기를 전부 유럽에 버리고 오면서 문제가 생긴다.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독일의 영국에 대한 공격이 머지 않았다고 판단, 아직 양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6파운더의 생산을 미루고 2파운더를 증산하도록 했는데... 뭐 알다시피 독일 전쟁해군은 그 전력이 매우 빈약해서 독일군이 영국 본토에 상륙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는...




2파운더보다도 빈약한 적군

여기까지만 보면 진작에 도태됐어야 할 것 같은 무기를 영국이 어거지로 계속 굴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파운더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럭저럭 전과를 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944년 영국군이 다시 유럽 본토에 진입하기 전까지 영국이 어떤 적들과 싸웠는지 생각해보자. 그렇다. 바로 이탈리아군과 일본군이다. 


북아프리카에서의 크루세이더. 2파운더를 주포로 채택했다.


처칠 I 전차. 포탑에 2파운더, 차체에 75mm 포를 달았다.


당시 2파운더가 탑재된 영국의 전차로는 크루세이더, 마틸다 II, 밸런타인, 초기형 처칠 전차가 있는데 이에 맞선 이탈리아의 전차는 3톤(???) 정도 나가는 L3, 중형전차인데 무게가 11톤, 13톤밖에 안 나가는 M11과 M13 같은 것들이었다.


M13/40 전차. M은 중형전차, 13은 중량 13톤, 40은 1940년을 뜻한다.


L3. 30년대에 생산되었고 몇 가지 형식이 있다. L은 경전차, 3은 중량 3톤을 뜻한다.


숫자를 잘못 쓴 게 아니라 진짜로 이탈리아군이 운용한 전차라는 물건들이 대부분 저 수준이었다. 참고로 크루세이더가 19~22톤이었고 마틸다 II는 27톤이 넘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전차들은 영국 전차들에게 말 그대로 영혼까지 탈곡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일부 정예 부대는 그런 개떡 같은 전차로도 선전하며 잘 싸웠지만 그렇다고 이탈리아의 전차 비슷한 무언가들이 좋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일본군의 치하 전차. 개량 이전의 모델이다.


일본 전차들도 전차 호소인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위의 치하의 경우 개량 이전 모델과 개량 이후 모델 모두 15톤을 넘기지 못했으며 전면 장갑은 무려 25mm라는 종잇장 같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얼마나 빈약했으면 미군의 M2 중기관총에 정면 장갑이 관통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참고로 크루세이더가 정면 장갑이 40~50mm, 마틸다 II는 후면 제외 전방위로 70mm 이상이었다. 당연히 일본군 전차도 아시아에서 영국군과 영연방군의 전차(+미국의 셔먼 전차)를 상대로 탈곡당했다.


물론 북아프리카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군이 강화된 3, 4호 전차와 끝판왕인 6호 전차 티거 등을 끌고 오면서 2파운더의 수명이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티거는 그 수가 매우 적었고, 이때쯤이면 영국군도 6파운더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미군이 제공한 셔먼 전차들이 배치되었기에 2파운더의 수명이 다 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와중에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그날까지 2파운더가 먹혔다고 한다.



정리

2파운더는 영국을 둘러싼 주변 상황, 그리고 영국 스스로 잘못 정립한 전차 운용 교리로 인해 제 성능을 온전히 낼 수 없었던 무기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독일을 제외한 영국의 적국들이 운용한 전차는 2파운더로도 상대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고 전쟁 초기 다수의 중화기/중장비를 상실했던 영국은 어쨌든 양산된 2파운더로 이들을 상대해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영국이 2파운더를 가지고 보여준 모습은 솔직히 뻘짓의 연속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2파운더는 무기는 등장/투입 상황 및 시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