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저는 지난번 글(https://arca.live/b/liteuis/102802163)에서 밝혔듯이 ‘돝’이 고대 한국어 *tɔtɛkɛ로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무시하더라도 ‘돝’이 그것의 격음 ‘ㅌ’ 때문에 *tVtVk(V) 또는 *tVkVt(V)로 올라갈 것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글에서는 중세 한국어 ‘돝’의 고대 한국어를 *tɔtɛkɛ로 보고 형태론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합니다.

   

(위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린 분이 있겠습니다. 음? 갑자기 *tɔtɛkɛ를 형태론적으로 파악한다니? 그도 그럴 것이 ‘돝’은 너무나도 당연히 단일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tɔtɛkɛ는 동물 이름 주제에 3음절이나 되기에 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충분했습니다. 지금 와서는 ‘토끼’의 고대 한국어가 *tɔsɛkɛ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음운 구조에 같은 음절 수를 가진 동물 이름이 존재하기에 별로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지만, 별것 아닌 의심의 싹은 거기서 텄습니다.)

   

*tɔtɛkɛ를 보면 직관적으로 뒤에 명사형 어미 또는 명사화 접미사 *-kɛ가 결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kɛ는 삼국사기 지리지를 통해 *kɛr-pɛ-kɛ(皆伯~王逢 “왕 만나기”), *sɛrɛ-na-kɛ(東仍音~神光 “동트기”)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tɔtɛ-를 용언의 어간으로 보겠습니다.

   

전부 요소 *tɔtɛ-는 후대의 어간 ‘돋-’과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https://marifu.hypotheses.org/206에 따르면 “흙”을 의미하는 고대 일본어 tuti는 고대 한국어로부터의 차용어입니다. 고대 한국어 *tɔtɛr “언덕”을 재구하고, 이를 *tɔt(ɛ)- “솟다”가 명사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나오는 바위 都帝嵓, 朝天石, 그리고 고려사에 나오는 바위 道知巖, 道哲巖의 앞 두 자씩 모두 *tɔtɛr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 중세 한국어에서 “땅이 솟아오른 것”을 의미하는 ‘두듥’, “땅을 파는 쥐”를 의미하는 ‘두디쥐’의 전부 요소 ‘두디-’ 등은 ‘돋-’의 모음 교체형 ‘*둗-’에서 파생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현정(2011)에서는 ‘두디다’에 대해서, ‘돋다’가 자동사뿐만 아니라 타동사로도 쓰인 용례를 근거로 타동사 ‘*둗-’에 의미나 통사 범주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접사 ‘-이-’가 결합했다고 봤습니다.

   

이상 언급한 ‘두듥, 두디쥐, 두디다’는 현대 한국어 ‘두둑, 두더지, 뒤지다’로 이어집니다. ‘두더지’와 ‘뒤지다’ 모두 땅을 파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고대 한국어 화자가 돼지의 어떤 속성에 주목했을지 짐작이 가게 합니다. 따라서 “돼지”를 의미하는 고대 한국어 *tɔtɛkɛ를 *tɔtɛ-kɛ로 분석함으로써, 이것이 돼지의 땅을 파는 행위를 보고 붙여진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돼지는 후각을 이용해 긴 주둥이로 땅을 파헤쳐서 먹이를 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한편 어떤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의 명사형이 동물의 이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매치기, 양치기’ 등이 특정 행위를 나타내면서도, 행위자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다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가령 “{소매치기}를 당하다.”에서는 행위, “{소매치기}가 형사에게 붙잡혔다.”에서는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tɔtɛ-kɛ는 “땅을 파는 행위”와 “땅을 파는 행위자”를 의미하는 것이 가능하고, 후자의 의미로 동물명이 붙여졌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