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이든 양딸이든 자신의 젊음을 바쳐 금지옥엽처럼 기른 사랑스러운 딸이 어느새 몸만 자라서는 희고 반투명한 네글리제에 감싸인 젖가슴을 늘어트리고 다니는데.

 

그런 음란한 몸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없고 여전히 하는 짓은 어린 시절 그대로의 철부지 어린아이인 데다가, 자꾸만 몸을 맞대오는 스킨십까지 하니 엄마로선 미칠 것 같은 거지.

 

딸을 키우느라 자신의 젊음을 바치고 늦은 20대 후반을 맞이한 탓일까. 애가 다 큰 이후로 찾아오는 육아의 여유 사이에서 성욕이 빈틈을 찌르듯이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점점 삶의 여유가 생기니 틈만 나면 찾아오는 달뜬 성욕 탓에 매일 밤 몸에 불이 붙듯이 뜨거워져 미칠 지경인데, 딸은 눈치도 없이 젖가슴만 들이밀고 있고.

 

머릿속으로는 차마 이것이 딸에게 품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속에서 붙어버린 불같은 감정 탓에 드러내지 못해서 속으로 앓기만 하며. 

 

엄마는 딸에게 품어서 안 되는 진득한 상상을 하며 달뜬 몸을 달래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어쩌자고 저런 아이가 제 앞에 굴러들어 온 것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아이 같던 모습은 점점 지워지고, 어른으로 성장하며 성숙해지는 딸의 몸에서 음란한 모습만이 눈에 들어오게 되니 저게 유혹이라는 착각마저 느끼게 되는데.

 

엄마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딸에게 제발 집에서도 단정하게 옷 좀 입으라고 항상 잔소리하고 지적하지만, 평소에 하던 잔소리라 생각하고 귓등으로도 안 듣는 딸.

 

매번 브라는 답답하다며 풀어헤치고 다니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잠옷만을 입으니, 그 탓인지 몸에 달라붙은 잠옷 너머로 분홍빛 유륜이 비쳐 보이기도 하고.

 

가끔 등 뒤로 몸을 찰싹 달라붙으며 껴안는 애교를 받으면 등에서 느껴지는 짓눌려지는 가슴과 그사이에 봉긋하게 솟은 젖꼭지가 피부를 스치는 감각에 소스라치는 기분까지 들어서.

 

게다가 가까이 다가온 머리카락과 얼굴 사이로 은은한 비누 향과 함께 어엿한 한 명의 “여자”의 냄새를 풍기고 있으니.

 

엄마는 이런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 다짐하면서도. 

 

그 다짐을 넘으면 달콤할 것이 뻔히 아는 그 커다란 죄악감을 반찬 삼아 딸 몰래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죄악감은 자연스레 옅어지고 희미해져서.

 

처음에는 그저 피부를 쓰다듬으며 반찬 삼던 엄마도, 점점 딸의 가슴 같은 곳을 만지기도 하고, 엉덩이를 쓰다듬기도 하고, 어릴 때 의외엔 하지 않던 애교 섞인 입맞춤도 해보고.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녀 관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듯 말 듯 한 스킨십을 하며 커져만 가는 죄책감 속에 젖어가는 자신의 가랑이를 느끼기도 하던 나날 속에.

 

어느 날 딸에게 할 말을 전하기 위해 딸의 방 앞에 다가선 순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딸은 빠르게 어른이 되었는지, 그 음란해져 가는 몸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신음을 참기 위해 네글리제를 입에 물고, 드러난 음부를 마치 처음 만지는 생물을 만지듯이 겁을 먹은 듯한 손으로 자신의 갈라진 틈을 조심스레 만지는 딸.

 

그 모습을 문틈사이로 바라보던 엄마는 딸의 자위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감정보다는, 딸이 도대체 누구를 상상하며 저렇게 음란한 짓을 하는지에 대한 ‘질투’를 느끼게 되는데.

 

그 질투 탓인지, 정신을 차리고보니 딸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간 엄마는 자위를 하고 있던 딸의 모습에 화를 내듯이 닦달하려 했지만. 

 

도대체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 몰라 말문이 막히고 마는 엄마.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으로는 엄마로서, 보호자로서 딸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가르쳐준다거나, 자위가 나쁜 것은 아니라며 다독여준다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부모로서 옳은 일일 테지만.

 

짧은 속옷으로 자신의 젖은 가랑이를 가리고 있는 딸의 모습이, 

자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들켜 수치심에 젖은 딸의 얼굴이. 

 

결국 지금까지 참아왔던 죄책감과 섞여 이성을 녹여버리고 마는데. 엄마는 음험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천천히 딸의 침대 위로 올라와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말하자는거지.


이건 올바른 성교육이라고.

 

성교육이라는 바보도 믿지 못할 변명을 삼으며 딸의 몸을 만졌지만, 어째서인지 딸은 이 말도 안 되는 말에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알겠다는 듯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이는데.

 

정말로 제대로 된 성적인 지식이 없어서 허락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딸도 자신을 좋아해서 몸을 허락하는 것인지. 전자라면 심히 걱정스럽고 후자라면 심장이 뛰는 착각 속에.

 

엄마는 딸에게 성교육이라는 얄팍한 핑계를 삼으며 딸을 그대로 품에 안게 되는데. 

 

딸의 생기있는 피부를 쓰다듬을 때마다 엄마는 아까 느꼈던 질투를 점점 실감하게 되고. 생각해보니 곧 있으면 결혼할 나이가 찾아오는 딸에게 독점욕까지 느껴버리는 엄마.

 

젖어가는 딸의 갈라진 틈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 때마다 들려오는 간드러진 신음 속에서, 엄마는 딸을 절대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지독한 독점욕을 딸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기는 거지.

 

아예 엄마와 선을 넘었다든지, 이런 건 모녀가 할 짓이 아니라든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이 행위가 행복하고 기쁜 행위라는 것을 딸이 당연시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하룻밤 진득하게 딸의 몸에 쾌락을 아로새기며, 자신이 정성을 담아 키운 열매를 수확하듯 엄마는 딸의 도톰하게 피어오른 음핵과 유두를 정성스레 맛보는 거야.

 

남은 맛볼 수 없고, 오로지 자신만이 맛볼 수 있도록.

 

이 아이는 내가 키운 아이니까. 

 

당연히 내 것이어야 하는 게 옳은 일이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딸 좀 따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