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나랑 이야기 좀 해"


평소와 같이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교주에게 에르핀이 말했다.


"잠깐, 에르핀 이 서류들만 좀 처리하고"


'쾅!'


"지금 당장"


에르핀이 책상을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하...씨"


에르핀이 책상을 친 탓에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교주는 인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이번엔 뭔데 어? 네르가 너 빵 못먹게 했냐? 어? 왜 또 난리인데."


"..."


에르핀은 말없이 입술을 오므리며 교주를 바라보았다.


"하아... 이야기하자고 해놓고 왜 또 말이 없는건데"


"...케이크"


에르핀이 오므렸던 입술을 힘겹게 떼며 말했다.


"응?"


"교주가 100일 기념으로 내가 선물로 준 케이크..."


"어...어 그래 케이크 줬었지 응, 근데 그게 왜?"


"지금 그거 어딨어?"


"어? 아 그... 그거? 먹었지! 어 케이크 이미 먹었...지?"


교주가 말을 얼버무렸다.


"거짓말"


"뭐?"


"거짓말이라고"


에르핀이 차가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요네 전당포에 있는거 다봤어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어..."


"...편지도 안뜯은 채로"


말을 마치고 에르핀은 고개를 떨궜다. 아마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그랬을 것이다.


"하아..."


교주는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교주..."


에르핀이 나지막이 읆조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어?"


"뭘"


교주가 짜증난다는 듯이 대답했다.


"왜... 왜 내가 준 선물을 뜯지도 않고..."


"쯧"


교주가 혀를 찼다.


"돈이 없어서 그랬어."


"뭐?"


에르핀이 고개를 들고 교주를 바라보았다.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돈...? 그깟 돈 때문에..."


"그깟 돈이라고?"


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르핀의 말을 끊으며 언성을 높였다.


"야 에르핀 너 때문에 돈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기나 해? 어?"


에르핀이 대답도 하기 전에 교주가 말을 이어나갔다.


"너 때문에 왕국이고 교단이고 만성 적자야! 어? 너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니깐 왕국이교 교단이고 잘 돌아가는 줄 알지? 너때문에 나랑 네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맨날 돼지마냥 왕창 쳐먹고 외상 달아놓고 그거 알아? 너가 외상 달아논거 다 우리가 메꿔주고 있어! 어? 근데도 지금 한계라고 한계! 어? 지금 엘리프 나오는 족족 시스트한테 팔아넘겨서 간신히 교단 유지하고 있는건데! 뭐? 그깟 돈???"


교주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 갔다.


"내가 아무리 교주라지만 니 왕국이고 니가 여왕이야! 좀!!! 철없는 애새끼 같은 짓은 그만하고 책임감을 보이라고!!!"


교주가 거의 울부짖듯이 외쳤다.


"교...교주..."


에르핀이 더듬거렸다. 에르핀의 표정에는 당혹감, 미안함, 무서움과 같은 여러 감정이 섞여있었다.


"앞으로... 고칠께 고칠꺼니까..."


"고친다 바꾼다 달라질거다 수도 없이 들어왔어!"


교주가 또 말을 끊었다.


"근데 안바꼈잖아! 하나도!!! 언제까지 내가 그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데!!!"


"교주..."


"뭐! 100일 선물이랍시고 케이크 같은거 주면 내가 기뻐할 줄 알았어?"


"나 대신 서류 봐주고 일 똑바로 하는게 그게 선물이야 어?"


"..."


에르핀이 아무 말 못한 채 가만히 손만 만지작 거렸다.


"하아... 쯧 내가 뭘 바라냐"


교주는 의자에 다시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뭐?"


"그래도 편지 정도는 읽어주지..."


에르핀이 울먹이며 말했다.


"씨발"


교주는 에르핀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교..교주?"


"뭐 편지에 고맙다 잘하겠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이런거 적혀있겠지"


교주가 손짓을 해가며 말했다.



"근데 그딴거 필요도 없고 감동도 안받어! 어?"


'쾅'


"그냥 너가 할 일만 똑바로 하라고!!!"


교주가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씨... 따지고 보면 난 여기랑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교주가 작은 목소리로 질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덧붙였다,


"미안해"


에르핀이 울면서 말했다.


"하아... 미안할게 뭐있냐? 어차피 내일 되면 또 다 까먹고 빵이나 쳐먹겠지"


교주는 비아냥거렸다.


"가봐. 늘 하던 것처럼 똥은 나랑 네르가 치울테니까"


말을 마치고 교주는 의자를 돌렸다.


에르핀은 잠시동안 교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힘없이 걸으며 교주의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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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아의 기록


100번 기록: 케이크 하나.


에르핀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세상


에르핀이 사라지고 교주가 모두에게 신뢰를 잃자 종족들끼리 끝없는 분쟁이 일어난 세상


결국 모든 것이 황폐화되고 세계수마저 불탔지만 어째서인지 케이크 하나만은 멀쩡하다.


케이크에는 100이라는 장식이 달려있다. 누군가의 100일을 기념하기 위한 케이크였나보다.


케이크에 붙어있는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교주 그동안 고마워


도망가지 안아서

일기 배끼게 해줘

갓이 노라줘서 고마어

에르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