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스압주의!!!



"그 남자 상태는 어때?"

"자고 있어요. 깨어 있을 때는 입을 열 생각을 전혀 안 하고."

 

감옥 안에서 자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 도시에 잠입했다가 마물들에게 붙잡혔고, 그 자리에서 감옥으로 끌려내려갔다. 이후 그는 일주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교단의 상징인 십자가를 목에 걸친 채 그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가. 교단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함이라기엔, 그가 가진 위험물은 호신용으로 보이는 단도 한 자루 뿐이었다. 망명이라기엔 굳이 잠입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점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이 도시에 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 그가 교단 소속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공기 중에 존재하는 대량의 마력이 그가 죽지 않도록 생명력을 유지시켜주고 있었으나, 무슨 시체마냥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란 종 전체를 사랑하는 마물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흐음... 혹시 이번 한 달간 외부에서 여기로 들어온 것 있어? 배달 소포라던가, 외부인이라던가, 편지 같은 거 싸그리 포함해서."

 

"글쎄요... 일단 망명자만 일주일에 몇십 명씩 들어와서 말이죠. 게다가 교류가 잦아져서 타 지역 특산품이 들어오는 일도 잦고요. 그나마 교통이 발달한 덕에 편지 유통량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 크게 짚이는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알았어. 아직 뾰족한 수는 없는 거네."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캐낸 것이 없는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

 

"..."

 

그녀들의 말대로,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체마냥 바닥에 누워서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위해서인지조차 말하지 않고 그저 버틸 뿐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벨로!"

 

벨로라고 블린 그 남자는, 마치 바늘에라도 찔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 바로 몸을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악마와 인간의 형상이 섞여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홍옥처럼 붉은 눈동자, 윤기가 흐르지만 혈기는 없어 보이는 창백한 피부, 머리 양 옆에 난 한 쌍의 굽은 뿔, 허리춤에 나 있는 작은 날개와 스페이드 모양의 끝을 가진 꼬리까지.

 

그와 동시에, 그녀의 인간처럼 보이는 부분 또한 이목을 끌지 않을 수 없는 모양새였다. 부드럽게 굴곡진 골반, 그리고 그와 매끄럽게 이어진, 꽉 안으면 부러져버릴 것만 같은 얇은 허리, 저 얇은 허리로 어떻게 저 큰 걸 지탱하나 싶은 유방, 그럼에도 전신에 군살 하나 없는 말끔한 몸매는 마치 '아름다운 여성' 의 이상을 완벽하게 체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허나 벨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형상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도 아니었다.

 

"...마리아지!!"

 

마리아지, 자신의 어린 시절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그리고 가족 다음으로 다시 만나고 싶었던 인물.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만으로 그녀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정도로 마리아지를 좋아했던 벨로는, 안도감과 반가움에 순식간에 일어나 철창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나가 철창 앞에 섰다. 

 

"마리아지, 너 맞지? 너구나! 우리 부모님은 무사하셔? 너는? 별 일 없었어?"

"일단, 천천히 이야기할까? 잠깐 기다려 봐."

 

마리아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고는 그 중 하나의 열쇠로 감옥 문을 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반가움과 기대감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던 벨로는 이전보다 키가 더 커진 마리아지가 다가오는 모습에 살짝 위압감을 느꼈는지 조금 뒷걸음질쳤다. 

 

반면에 마리아지는 문 열기 전까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감옥의 문을 열고 벨로와 단 둘이 되자, 이내 상기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그에게 다가갔다. 마치 맛있는 음식 앞의 굶주린 사람처럼. 

 

"저... 그 이야기는 안 하는 거야?"

 

벨로의 입을 막아 버린 것은 마리아지의 입술이었다.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입술이 밀려들어왔고, 이내 혀가 그의 입 안을 침범했다. 벨로의 입 안에 들어온 달콤한 그녀의 혀와 침, 마리아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사람을 발정시키는 향기, 무엇보다도 쭉 좋아해왔던 마리아지가 자신에게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친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은 쾌락과 환희로 녹아 버려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그녀와 짐승 같은 교미를 하게 될 것이 뻔하였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그가 겪어보지 못했던 기억을 느끼지 못했다면 말이다.

 

"!!!"

"푸하~. 어때? 이게 내 대답이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면 알아. 네가 파견을 갔다 왔던 그 3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야..."

 

레벨 드레인. 본래는 타인의 힘을 뽑아내 힘과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마법이다. 허나 반대로 자신의 힘과 기억을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것도 가능한 기술. 그녀가 전해준 과거의 기억이, 벨로의 궁금증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리라.

 

----------

 

"하아... 보고 싶다, 벨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집으로 온 마리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벨로가 교단병으로서 타 국가로 파견 나간 지 일주일, 그가 마을에 있었을 때는 면회를 가서 만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니 벨로를 만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남자 하나 보겠다고 멀디 먼 타지를 여행하는 것 또한 이제 스물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이 하기에는 너무 험난했으며, 그 이전에 마리아지의 집은 그럴 형편도 못 되었다.

 

그녀는 수심을 잊기 위해, 자신이 물통에 떠 온 물을 그릇으로 한 사발 퍼서 마셨다. 차갑고 시원하지만, 무언가 미묘하게 달달하면서도 목에 들러붙는 느낌이 그녀의 입 안에 맴돌았다. 

 

언제부터인가 물 맛이 살짝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른 마을에서 물을 퍼와서 마셔보아도 이곳의 물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수질 자체가 나빠진 것 아닌가 싶어 물을 끓여서 마셔보아도 끓이기 전과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없었고, 마리아지 또한 크게 신경쓰진 않았었다.

 

----------

 

"으음... 살이 쪘나? 그렇다기엔 허리 부분은 좀 널럴한 것 같은데."

 

마리아지가 흉부의 코르셋 끈을 여미면서 하는 말이었다. 평소에는 대충 조여도 줄이 한참 남던 그녀의 코르셋이었지만, 지금의 그녀가 입은 코르셋의 끈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고, 옷이 그녀의 커다란 유방을 전부 담지 못해 윗가슴이 옷 위로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었다. 조금 우습기도 하고,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 흉하기도 한 모습 그대로 나갈 수 없었던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망토를 둘러 몸을 가리기로 했다.

 

그녀가 이렇게 급하게 밖에 나가보는 이유는, 오늘 외지에서 온 상인이 처음 보는 물건들을 잔뜩 싣고 장사를 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특히나 그 상인이 마법이 담긴 물건도 판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마법과는 그 어떤 연도 없을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역시나 소문대로, 장터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호객 행위를 하며 한 번도 본 적 없던 상품들을 가지고 진기한 구경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빛나는 반구형의 석판, 독특한 색의 연기를 내뿜는 향로, 순간을 찍어 그림의 형태로 남기는 거울, 예쁜 소리를 내는 방울 등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품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마리아지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매우 들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녀의 눈길을 끄는 행상이 있었다. 마리아지는 한달음에 그곳으로 달려가 그 매점을 지키는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우와! 정말 굉장하네요. 이게 뭐에요?"

"어서 오세요, 아가씨. 이건 전부 서역에서 들여 온 진귀한 과일들이랍니다."

"과일이요? 굉장히 신기하게 생겼네요."

 

그녀가 사는 마을은 과일이 많이 유통되지도 않지만, 그 행상인이 전시해 놓은 과일들은 하나같이 기묘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트 형태의 과일, 큰 열매와 작은 열매가 한 줄기에 함께 맺힌 과일, 바나나처럼 길쭉한데 껍질은 검고 얇은 막에 덮인 열매, 소용돌이 무늬가 입체적으로 새겨진 과일까지. 과일이라는 걸 몰랐다면 분명 예술품 같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 마침 잘 오셨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예? 어... 얼마죠?"

"아,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시식이라고 해서, 우리 측에서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에요. 드셔 보시고 맛있으면 구매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상인은, 전시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트 모양의 과일을 집어 8조각으로 잘라내어 접시에 담았고, 얇고 짧게 깎은 길쭉한 형태의 나무막대기를 그 조각 중 하나에 꽂아 마리아지에게 건넸다. 마리아지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과육에 꽂힌 나무막대기를 집었고, 그대로 과일 조각을 입 안에 집어넣고 한 입 크게 씹었다.

 

'우와아아아!!'

 

과일을 씹고 있어서 감탄사를 입으로 뱉어내지는 못했지만,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맛에 대한 그녀의 환희를 표현해주기에는 충분했다. 우유처럼 새햐얗고 크림같은 식감의 과육, 보통은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임에도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운, 단단한 젤리와 같은 식감의 껍질, 그리고 그 껍질에서까지 배어나오는 새콤한 과즙까지. 평범한 과일도 별로 먹어보지 못한 그녀에게 있어 이런 식감은 그야말로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몇 번이나 달달한 과실을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상인은 접시에 남아 있던 다른 조각들을 그녀에게 들이밀며 시식을 권했다. 마리아지는 누가 뺏어간다고 협박이라도 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나무조각을 떨어뜨리고 접시째 받아 손으로 과육을 집고 허겁지겁 입안에 넣고 먹어치웠다. 견과류를 가득 넣은 햄스터나 다람쥐처럼 빵빵하게 볼살을 부풀린 모습이 귀여웠는지, 상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미소지었다.

 

"아가씨, 혹시 제 일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음?(네?)"

"드시면서 들어주세요. 아까 전에 제가 시식을 권했을 때, 순간 멈칫하면서 가격을 물어보셨잖아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들여온 과일을 구매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에 조금 부담이 되서 그런 거였죠?"

 

마리아지는 부정할 수 없다는 듯이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마리아지뿐만 아니라 마을의 서민들이 거의 다 경제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교단에서 마물과의 전쟁 준비금이다, 세금이다, 상여금이다 어쩐다 하면서 돈과 곡식을 싸그리 긁어갔고, 서민들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사는 데에서 그쳐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맛 좋고 귀한 음식에 쓸 돈이 있을까?

 

그런 사정을 아는 건지, 상인은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그래서, 아가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사실은 제가 해외에서 지인이랑 계약을 맺고 그 녀석이 키운 과일들을 구매해서 파는 거거든요. 그런데 얘가 무슨 바람이 분 건지 품종 개량을 도전해보겠다고 하는 거에요."

"(꿀꺽) 품종 개량이요?"

"네. 그러니까 같은 사과라도 어떤 식으로 교배하느냐, 어떤 토지에서 키우느냐, 어떤 기후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열매의 맛이나 크기, 형태가 조금씩 다르단 말이에요? 그걸 지속해서 하나의 정형화된 품종을 만들어내는 것을 품종 개량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시제품으로 몇 개 가지고 왔거든요."

 

그렇게 말한 상인은 나무 상자의 뚜껑을 열어 그 시제품들을 보여 주었다. 파란색, 보라색, 주황색의 과일들, 크기가 각자 다른 과일들, 하트 모양 대신 클로버나 네모의 모양을 한 과일들, 하트 형태는 유지하되 기묘한 무늬가 그려진 과일들 등 굉장히 많은 형태의 과일들이 각양각색으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아직 수량도 많지 않고, 맛도 아직 완벽히 검증되지가 않아서요. 게다가 사람 입맛이라는 것이 각양각색이다 보니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해요. 그래서 아가씨가 이걸 도와주셨으면 해요."

"제가요? 어떻게요?"

"장사가 끝나고 한 7시 즈음에, 저랑 같이 이 과일을 하나씩 나눠서 먹는 거에요. 그리고 그 맛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죠."

 

마리아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은 하루에 반 개씩 이 맛있는 과일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그녀의 눈이 번쩍였음에도, 상인의 경제적 부담이 걱정된 마리아지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는 정말로 좋기는 하지만... 괜찮은가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 정도의 호의를 베푸셔도."

"에이~.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테스트! 제대로 된 음식을 팔기 위한 품질 검사란 말이죠. 그리고 아가씨 같은 귀여운 미인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귀여운 미인이라. 마리아지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상인이 더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윤기 넘치는 길다란 흑발, 뚜렷한 이목구비와 작은 얼굴, 길쭉길쭉한 다리와 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매 등, 자신보다 그녀가 더 예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녀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설득이 마리아지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다.

 

"그러면은 내일부터 오면 될까요? 그 품질 검사 말이에요."

"네네. 내일부터 오시면 됩니다. 만약 남자친구분이 있다면, 같이 오시면 더 좋아요!"

 

남자친구, 라는 말에 순식간에 머리에 떠오른 한 사람. 벨로.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과일을 나눠 먹고, 그와 함께 달콤함을 나누고, 그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리아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남자친구' 라는 단어 단 하나에 머릿속에서 그 정도의 진행이 될 줄은 자기 자신마저 몰랐던 것이다. 설마 자신이 이렇게 음탕한 여자였다니, 너무나도 부끄러워진 나머지, 그 자리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그럼 내일 올게요!"

"안녕히 가세요~"

 

순식간에 뜀박질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마리아지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잃지 않던 상인은, 그녀가 더 이상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작게 읇조렸다.

 

"이거 재미있어지겠는걸."

 

----------

 

다음 날 저녁.

 

"아... 안녕하세요오오..."

"어머~! 어서 와요!"

 

그렇게 부끄러움으로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갔음에도, 어제 먹었던 과일의 맛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질 않아서, 결국 염치 불구하고 다시 그녀의 가게를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인은 그러한 작은 실례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그녀를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한 손에는 시제품들 중 하나로 보이는 오렌지색 과일을 들고 말이다.

 

"저... 어제의 일은, 그..."

"에이~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보다 이거! 요거는 사용하던 비료를 바꿔서 만든 품종이라네요. 반씩 나눠서 같이 먹어 보죠!"

 

그렇게 말한 상인은 칼로 과일을 반으로 잘라 그 한 쪽을 마리아지에게 건넸다. 마리아지는 그 과실을 냉큼 받아든 뒤 한 입 크게 베어물었고, 상인 또한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 또한 한 입 베어물었다. 많이 먹어 보아서인지 평온한 얼굴에 살짝 입가에 미소만을 띈 상인과 달리, 마리아지는 이내 표정이 싹 바뀌며 크게 소리쳤다.

 

"맛있다아~!"

"쉿! 지금 저녁이에요. 소리가 크게 울린다구요. 조금만 조용히. 네?"

"아아, 죄, 죄송합니다!"

 

너무 크게 소리를 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챈건지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린 마리아지. 하지만 그럼에도 입 안에 들어온 과육을 씹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제 먹었던 과일과는 다른, 그렇기에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 과일의 맛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과일은 어제 것보다 신맛이 강한 편이었다. 특히 껍질 부분은 어제 먹었던 과일 껍질을 레몬즙에 절여놓은 것처럼 단맛과 신맛이 공존하고 있었고, 식감도 젤리보다는 말린 과일을 씹는 것처럼 쫄깃쫄깃한 느낌이었다. 허나 신기하게도 크림 같은 과육의 맛과 식감은 그대로였으며, 껍질의 신맛 덕분인지 안쪽의 크림 맛이 더욱 달게 느껴졌다.

 

"오! 이거 괜찮네요. 껍질의 신맛이랑 과육의 단맛이 대비되서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사갈 것 같아요."

"그러네요. 저도 이건 처음 먹어봤는데,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포ㄹ... 하트복숭아랑은 또 다르네요. 이런 다양한 물건들을 들여와서 팔면 더 잘 팔리겠어요."

 

하트복숭아, 라고 불린 그 과실을 먹으며 서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 하지만 공통점은, 과일의 맛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고, 또 기존 상품과 차별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제 이름은 미차네에요."

"아, 미차네 씨라고 하는군요, 제 이름은 마리아지에요. 이렇게 좋은 과일을 공짜로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 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마리아지에게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그러면 혹시 부탁 하나만 할 수 있을까요?"

"네? 뭐, 뭔데요?"

"혹시 그 남자친구 말이에요,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연애 이야기에 엄청 관심이 많거든요!"

 

갑자기 미차네의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타인에게 연인에 대한 걸 물어보는 것은 상당한 실례일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지는 과일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인지, 아니면 그 달콤함에 취해버려서인지, 본래라면 가슴 속에만 묻어두었을 비밀들을 그녀에게 술술 말해버리고 만다.

 

"그... 아직 남자친구는 아니고, 저 혼자 짝사랑하는 건데..."

"어머어머! 풋풋해라~. 그러면은 그 남자친구 예정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예, 예정이라뇨! 아직 거기까지는... 그... 에... 벨로라고... 듬직하고 멋있어요..."

"우와! 첫 만남은 어땠어요? 혹시 소꿉친구?"

"네에에... 원래는 별 생각 없었는데... 같이 지내다 보니까 조금... 멋있어진 것 같더라고요... 히히..."

 

갑자기 그의 생각이 난 건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마리아지와, 그 얘기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는 미차네의 모습은 그야말로 연애 이야기에 푹 빠진 소녀들의 담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벨로에 대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속되었고, 저녁 9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나 서로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리아지는 분명 자신의 비밀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는데도, 부끄럽다거나 후회된다는 감정이 아니라 후련함과 기대감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기대감, 내보이고 싶었던 감정을, 비록 벨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쏟아내었다는 후련함이 그녀에게 남아있었다. 어느 정도는 자제했을 법하기도 했지만, 왜인지 그에 대한 얘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그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나타나고, 그에게 안겨 있는 듯한 행복감이 그녀를 지배했다. 

 

그 뿐만 아니라, 벨로에게 진짜로 안기고 싶다는 욕구 또한 강해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체 상태가 되어 부끄러워하는 그의 표정, 반대로 색욕에 집어삼켜져 짐승처럼 자신을 탐하는 그의 표정, 사랑을 나눈 후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여주는 모습아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마치 그 모습을 직접 맞이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몸 또한 그에 맞추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응... 또 몸이 뜨거워졌어..."

 

어제 하루 일과를 마친 뒤에도 몸이 달아올라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그 증세는 아무리 위로를 한 뒤라도, 벨로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만 한다면 다시 전신에 열이 올라 쾌락을 탐닉하게 되어 버린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기묘하게도 그녀의 신체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을 때부터 성욕이 이상할 정도로 오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자위를 하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으으으읏!!!"

 

그리고 지금은 매일 밤마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음욕을 탐하도록 만들었을까, 하지만 마리아지의 머릿속에는 이걸 생각할 겨를조차도 없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것을 무섭다거나, 불안하다거나 거부감이 든다거나 하는 낯선 느낌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이 애욕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의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시작된 그녀의 정욕은, 이제 막 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

 

"으으...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아..."

 

주황색 하트복숭아를 대접받은 다음 날, 그녀의 몸은 마치 몸 안에 화로를 집어넣은 것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아도, 자신들의 체온과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동네 의원도 똑같은 말을 했었고, 이러한 증상에는 무슨 약을 처방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마리아지의 몸 상태에 대해서 무지했다.

 

다행히도 생명이나 노동에는 지장이 없어서 하루 일과를 끝마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체 상태가 정상이 아닐 때는 휴식을 취할 법도 한데,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시간이 되자 미차네의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미차네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손에는 파란색의 하트복숭아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파란색이에요! 그러니까... 어디 안 좋으신가요?"

"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약간 얼굴도 붉고, 숨도 거친데요?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쉬시는 게 어떠신지..."

"아아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늘 일과도 무리없이 끝냈으니까요!"

 

어쩌면 하트복숭아를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녀의 정신을 바짝 차려주게 된 것일까, '돌아가서 쉬어라'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빠릿하게 대답하는 마리아지의 모습이 웃겼는지, 미차네는 하하 웃으며 푸른 하트복숭아를 반으로 갈라 그녀에게 주었다. 마리아지는 과실을 받아 한입 베어물었고, 그 모습을 본 미차네 또한 과육과 껍질을 베어먹었다.

 

'오오오...! 이건 또 다른 느낌이야!"

 

껍질은 기존에 젤리나 말린 과육 같은 탄성이 있던 품종과는 다르게, 마치 살짝 얼린 사과를 씹는 듯한 아삭함이 강했다. 특히 씹으면 씹을수록 민트처럼 입 안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과육과 껍질 모두에게 들어 있어서, 단순히 차가운 물을 마시는 것과는 또 다른 청량감이 그녀들을 덮쳤다.

 

"굉장한걸요! 그 친구분은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이런 맛있는 품종들을 여러 개 개발하시는 거죠?"

"저도 궁금하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이 정도로 확고한 개성을 가진 품종이라면 차별화하기가 정말 좋겠어요. 나중에 친구에게 돈을 더 줘야겠는걸요?"

 

호평 일색인 과일 시식회. 이 정도면 과일의 맛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목적은 달성하기가 매우 쉬워 보였다. 하지만 오늘의 품평회는 끝이 났고, 이제 새로운 주제가 그녀들의 대화로 나타나고 있었다.

 

"어제 벨로라는 남자에 대해 여러가지 말 했었죠? 혹시 지금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 지금은 안 돼요. 지금 다른 국가로 파견을 나가서, 한 6개월 뒤에나 돌아올 거에요."

"아~ 너무 아깝다. 이런 귀여운 아가씨를 내버려두고 떠나버리다니. 그런 남자는 그냥 내다 버려요!"

"그런 게 아니에요! 교단에서 억지로 끌고 간 거라구요...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부모까지 처벌받는다는데 어쩌겠어요."

"여기도 교단이 문제인가? 하여튼간에..."

 

벨로에 대한 주제는 어느새 교단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었다. 강압적이고, 부패하고, 모순되고, 정작 외세의 공격에는 무력한 교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주류였다. 마리아지는 징병과 수탈에 관한 문제점을, 미차네는 검열과 외세 배척, 불공정함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전에 갔던 곳에서는 외부 물품은 못 믿겠다고 들여보내주지도 않더라니까요. 아니, 국가가 강성해지려면 여러 물품들을 들여오고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저렇게 막아댄다 해도 결국 들여오려고 용을 쓰면 못 들여올 것도 없을 텐데 말이죠."

"맞아요. 마물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저렇게 국가 운영을 폐쇄적으로 하면 어쩌자는 건지. 그런 주제에 주신님께서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선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 마물들은 왜 안 없애신대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 주신이란 존재가 진짜 전능했다면 군인들이 탈영하는 일도 없었겠죠."

"탈영이요? 어디서요?"

"옆 나라에서 장사할 때 들었던 일인데요, 한 6개월 전이었나? 그때 병사들이 60명 넘게 탈영을 했었대요."

"우와... 그 정도면 비상이었겠네요."

 

교단의 실책, 억압, 검열 등 그들의 과실을 소재로 2시간이 넘게 담소를 나누게 되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9시가 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늦어 미차네는 가게를 정리했고, 마리아지는 집으로 돌아가 수면을 취했다.

 

----------

 

"으윽... 흐으응! 으으으읏!!!"

 

수면을 취하고 싶었으나, 철마저 녹이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정욕과 육신은 그녀를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슴은 머리 하나 크기만큼 커져 기존에 입던 옷으로는 제대로 가릴 수 없게 되어버렸고, 반대로 허리는 잘록해져 치마가 흘러내릴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변화해버린 육체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사랑스러운 벨로를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그리움, 그리고 그와 함께 성교를 하는 망상만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벨로오오오오!! 거기, 거기이이잇!! 망가져 버려어어어엇!!"

 

자신의 가슴을 꽉 쥐어 주무르고, 사타구니에 손가락을 넣어 마구 쑤셔대는 그녀의 음탕한 몸짓은, 어떤 남자라도 흥분시켜 버릴 정도의 마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가 사모해 마지않는 벨로 또한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달려들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이 성욕을 받아들여줄 사람이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마리아지에게 있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있었다면 자신의 애달픈 곳을 찔러주어 황홀경에 이르게 해 주었을 것인데...

 

"가, 가, 가앗! 가버려어어어엇!!!"

 

성대하게 조수를 뿜으며 가 버리는 마리아지. 그와 동시에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완전히 뻗어 버린다. 이것으로 오늘만 5번째. 괴이할 정도로 강한 성욕, 그리고 그것을 몇 번이고 해소하는 본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음욕. 이 순환은 이전까지는 몇 번 하다 보면 지쳐서 잠들어 버리는 것으로 끊겼었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체력도 계속해서 넘쳐나고, 그 이상으로 성욕도 미친 듯이 넘쳐났다. 그야말로 무한동력처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으으으읏...!"

 

또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한 육체. 그리고 이젠 망설임조차 없이 다시 자기 위로를 준비하는 마리아지. 아마 이 밤이 끝날 때까지, 이 순환은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

 

'어제는 너무 지나쳤나...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은 못 들은 것 같지만, 오늘은 좀 자제해야겠어...'

 

그렇게 아예 밤이 새도록 자위행위를 해 버린 마리아지의 끝없는 성욕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켰다간 평생 얼굴 못 들고 다닐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오늘 밤부터는 이를 자제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밤을 샌 것 치고는 그녀의 상태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열이 온 몸에 끓어넘치던 어제와는 다르게 푹 쉬고 일어난 사람처럼 쌩쌩했고, 이전보다 몸이 더 가벼워진 느낌까지 들었다. 가슴이 그렇게나 커졌는데도 말이다.

 

'어제 상태는 그냥 지나가던 감기 비슷한 거였나보네. 그럼 별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마리아지는 그러한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녀의 부모 또한 어제 비실거리던 딸의 모습은 간데없이 펄펄 날아다니는 걸 보며 안도했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상인 또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과실을 준비했다.

 

----------

 

"미차네 씨! 저 왔어요!"

"어서오세요! 오늘은 좋아 보이시네요? 피부도 윤기나고."

"네? 아, 그런가요?"

 

사실 마리아지는 집에 거울이 없어 자신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타인에게 보일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고, 예쁘다는 얘기는 몇 번 들었지만 어디가 어떻게 보기 좋다는 구체적인 칭찬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 그녀 스스로도 살짝 쑥쓰러워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웠는지 미차네는 싱글벙글 웃으며 새로운 품종의 과일을 꺼내 잘랐다. 이번에는 첫날에 먹었던 하트복숭아의 표면에 기묘한 문양이 문신처럼 그려진 과실이었다. 이번에도 마리아지는 그 과일 조각을 받아 망설임 없이 입안에 넣고 한 입 베어물었다.

 

'음...?'

 

기이하게도, 그녀가 베어 문 과일에서는 이전과 다른 맛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까지 확연하게 느껴졌던 단맛의 정도, 당도가 너무나도 약하게 느껴졌다. 그 전까지의 과일들이 단맛을 두 배, 세 배씩 농축한 듯한 과즙이 과일 전체에 퍼져 있는 느낌이었다면, 이것은 과즙에 물을 타 놓은 듯한 밋밋함이 컸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입에 문 하트복숭아의 껍질을 이리저리 입 안에서 굴려 가며 껌처럼 씹어 보는 마리아지. 그런데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입 안에서 퍼져나았다. 맛은 아니었다. 향도 아니었다. 식감도, 이물감도 아니었다.

 

무언가 불안해진 마리아지는 이를 뱉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선의로 음식을 나누어준 미차네의 호의를 최악의 방식으로 보답하는 것 같아 그냥 빨리 삼켜버린 다음, 이 과일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맛없다고 생각한 과일이 그녀의 목구멍 아래로 집어삼켜졌다.

 

그 순간,

 

"으읏?! 흐으으으읏!?!!!"

"오오오... 이 정도로 빠르게 반응이 올 줄은 몰랐는데."

 

갑지가 그녀의 목구멍이 녹아내린 쇠가 끓어오르듯 뜨거워지더니, 이내 그 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고온의 체온은 마치 그녀의 육신을 녹여버린 듯 달아올랐고, 머리에까지 퍼진 열은 그녀의 이성적인 사고를 망가뜨린 채 본능에 몸을 맡기도록 만들었다. 신체의 급격한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리아지는 이내 바닥으로 쓰러져 경련하더니, 그 상태에서 자신의 옷을 풀어헤치고 자신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으윽... 하으으읏...!"

"후후훗. 마음껏 즐겨 주세요. 인간의 모습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기위로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을 딱 튕기는 미차네. 그 즉시 그녀와 마리아지가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의, 반투명하고 커다란 돔이 생성되었다. 허나 외부에서는 불투명한 돔으로 보이고, 소리 또한 새어나가지 않는 마법의 힘이 담긴 구조물이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지금 돔의 안 쪽은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미차네는 바닥에 누워 자위에 여념이 없는 마리아지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저기 있잖아요, 지금까지 제가 마리아지 씨에게 먹인 과일, 하트복숭아라고 했었죠?"

"크흐으으읏... 으으읏!! 하으으으읏!!!"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과일의 진짜 이름은 [포로의 열매]. 먹은 사람을 과일의 포로로 만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손쉽게 포로로 만들 수 있는 몸으로 만드는, 우리 마물들의 자랑과도 같은 과실이랍니다."

 

마리아지는 육신의 열을 가라앉히느라 그녀의 말 자체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였지만, 미차네는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는 듯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이외의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었어요. 친구에게서 품종 개량된 물건을 받았다는 것도, 이걸 같이 시식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도. 그리고, 그 대상이 당신이 되어 주었으면 했다는 것도요. 왜냐하면 당신은..."

 

마리아지의 무방비한 배 위로 손을 올려놓은 미차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답해 주었다.

 

"나와 같은 데몬으로써의 소질이 있으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기존의 인간의 외형에서 탈피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핏기 하나 없어 보이는 푸른 피부, 머리에 난 한 쌍의 거대한 뿔, 길게 자란 붉은색의 손톱, 허리에 난 박쥐 날개와 얇고 긴 꼬리. 그리고 그 안에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표하고 있는, 하복부의 하트 문신까지. 그야말로 음탕한 악마녀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을 나와 같은 데몬으로 만들고 싶어. 귀엽고, 사랑스럽고, 솔직하고, 순진한 당신을 나의 색깔로 물들이고 싶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 벨로라고 했었지? 그 남자가 당신을 보고 이성을 잃고 달려들어 천박한 모습으로 교미해 당신이 끝없는 쾌락과 백탁액에 더럽혀져, 사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는, 마리아지의 배에 올려져 있던 손의 손톱을 세웠다. 그것만으로도 마리아지는 쾌락으로 느껴졌는지 몸을 움찔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환골탈태와도 같은 변화의 서막일 뿐이었다.

 

"으으으으으으읏?!?!??!!"

 

그녀의 배 위에, 손톱으로 문신을 새겨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녀의 복부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었다. 맨살에 무언가를 새기는 행위는 고통스러울만도 한데, 마리아지는 그러한 격통이 전부 쾌락으로 치환된 듯이 달콤한 교성을 지르며 전신을 더욱 크게 떨어댔다. 

 

"으음~. 좋은 반응이야. 고통이 아닌 쾌락을 느끼는 거. 이제 이 문신이, 당신을 더욱 음란한 데몬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조금만 버텨 줘."

"아... 아그으으윽..."

 

이젠 교성조차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쾌락에 압도당한 건지, 숨 넘어가는 듯한 소리만을 내고 있는 마리아지. 하지만 그건 별 문제되지 않는다는 듯이 미차네는 싱글벙글한 웃음을 만면에 띄우며 손가락을 멈출 기미도 없이 그녀의 복부에 문신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문신의 마지막 획을 그려내는 것이 끝나자, 미차네는 즐거운 듯한 비음을 내며 손톱을 그녀의 배에서 떼었다.

 

"자아, 완성! 예쁘게 잘 됐네. 이제 효과가 나타날 거야."

"으윽... 후우우... 아으으으윽.... 흐윽..."

 

아직 문신을 새길 때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신음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마리아지. 그마저도 조금씩 안정되는 것처럼, 호흡이 안정되어 일정해지고, 몸에 흐르던 녹아내릴 것만 같던 고열도 조금씩 가시고 있었다. 허나 그 정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으으으으윽?! 흐으으아아앗! 아아아아아앗!!!!"

 

어떻게든 소리를 참아 보려고 했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버렸다. 심장은 수백 미터를 쉬지 않고 뛴 것처럼 마구 두근거렸고, 전신의 근육이 멋대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문신을 새겨넣은 아랫배에서 시작된 애달픈 열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 구석구석에 퍼진 혈관을 타고 흐르듯 온 몸으로 퍼져나갔고, 그 몸의 끝부분 -손가락, 발가락과 같은 신체의 말단- 부터 시작해, 마치 몸 전체에 붙어 있던 접착제를 뜯어내버리는 듯 했다. 

 

고통은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은 답답하게 자신을 감싸고 있던 고치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해방감 뿐이었다. 그러한 쾌감 속에 몸을 맡기고 있자, 두근거리던 심장은 제 박자를 되찾고 몸에 퍼진 열락은 천천히 식어갔으며, 몸에서 무언가를 뜯어내는 듯한 해방감은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아까의 광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몸이 완전하게 진정된 마리아지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멍한 머리를 흔들어서 제정신을 차려 보려 했다. 그런데, 머리를 흔들어 보자 양쪽에 무언가 묵직한 무언가가 있는 것을 느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만져보자, 딱딱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뿔이었다. 호기심에 그 뿔을 붙잡고 당겨보자, 머리가 당기는 힘에 끌려갔다. 자신의 머리에 달린 뿔이 확실했다. 

 

잡은 뿔을 놓고, 그 손을 바라보았다. 푸른 색이었다. 핏기가 없는 듯한, 허나 윤기 넘치고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리고, 몸을 비틀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상의는 흉곽 부분이 찢어진 채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고, 반대로 하의는 비대해진 허벅지와 골반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하복부 위에 그려진, 너무나도 선명하게 생겨진 하트 모양의 음문. 천박하고 음란해 보이는 음문. 단순히 그렇게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음문의 소유자를 그러한 인물로 만드는, 마법적인 문신이었다.

 

허나 마리아지는 그러한 것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그녀가 아는 선에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인물은 단 한 명, 자신을 이렇게 만든 미차네 뿐. 마리아지는 그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 보았고, 한 인물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마리아지가 알던 미차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푸른 피부와 하복부의 음문, 여성의 특징을 극대화시킨 듯한 외형,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기대감과 음란함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나 마리아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미차네라는 것을. 

 

"미차네 씨... 대체 제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저와 같은 존재가 된 거죠. 마물. 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데몬이 된 거에요."

 

마물,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섬찟해졌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존재. 자신이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모님과 벨로를 볼 낯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마리아지의 기분은 표정과 몸짓으로 전부 다 나타났다. 미차네는 이 모습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지만, 그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내 표정을 펴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기로 했다.

 

----------

 

"그... 그렇군요. 모든 건 공포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그 통제된 상황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교단의 계략이다... 이런 말씀이죠? 반대로 마물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고요."

"정확해요."

 

교단에 대한 진실, 마물에 대한 진실, 덤으로 이 마을에 들어온 외지 보부상들 중 8할이 인간으로 위장한 마물이었다는 사실까지 그녀에게 모두 들은 마리아지의 표정은 착찹하기 그지없었고, 그걸 바라보는 미차네의 표정 또한 어두웠다. 

 

하지만 축 늘어져 있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어쩌죠? 저희가 마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이 쫓아낼 게 뻔한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이 마을 사람들도 마물화 진행이 막바지에 다다랐으니까."

"네? 다른 사람들에게도 과일을 나눠 주신 건가요?"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이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마물의 마력이 서려 있었다는 걸 알아챘거든요."

 

마리아지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고, 미차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혹시 뭔가 바뀐 것 같다거나, 위화감이 들었던 적 없었나요? 체형이 변했다던가, 부모님 금술이 갑자기 좋아졌다던가, 먹던 음식에서 단 맛이 난다던가. 그게 아니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었나요?"

"아, 그러고 보니..."

 

마리아지는 그녀가 주었던 과일을 먹기 이전에도 가슴이 급격하게 커져서 옷이 안 맞던 것이나, 물의 맛이 묘하게 달고 목 안에 들러붙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이 마물화의 전조 증상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도 머지않아 마물로 변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죠? 마물에 대한 배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미차네는 기쁜 듯이 말했지만, 여전히 표정이 편치 않아보이는 마리아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무엇이 문제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던 미차네는 돌연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벨로였다.

 

"벨로 씨가 걱정되는 거죠? 표정만 봐도 알겠네요."

"네? 그 정도로 티가 많이 났나요?"

"물론이죠.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은 미혼의 마물들에게서 엄청나게 많이 보이거든요. 특히 지금처럼 신변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죠."

 

맞는 말이었다. 교단에게 징집당해 6개월간 멀고 먼 타지로 끌려간 벨로의 안위가 걱정된 것이었다.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인 마물이 된 그녀였지만, 그가 파견을 간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여러모로 악수가 될 수 있었다. 길이 엇갈려서 자신이 나가 있는 사이에 벨로가 돌아오게 되면, 그만큼 벨로와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벨로가 파견 간 곳이 위험천만한 장소라 그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그건 마리아지로써는 도저히 버티지 못할 처사였다. 인간일 시절에도 그리할 것인데, 마물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더더욱.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척 봐도 안전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차네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곰곰이 생각하다, 묘수가 하나 생각났는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을 꺼냈다.

 

"아, 마리아지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어떻게요?"

"제가 장사꾼이잖아요? 발이 엄청 넓어요, 인맥이 빵빵하다는 거죠. 제 지인들에게 그 벨로라는 분에 대한 물색을 도와달라고 하면 돼요. 물색이라고는 해도 거창할 건 없고, 장사를 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연락을 줘서 우리가 직접 가 보는 거죠. 그러면 아무래도 사람 찾기가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악마의 모습을 한 성녀라면 그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미차네의 모습을 본 마리아지는 진심으로 감동하여, 그녀의 양 손을 붙잡고 눈을 빛내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요?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무엇이든지 해 드릴게요!"

 

미차네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그럼 말이죠...“

 

----------

 

그로부터 3개월,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마을에 일어났었다.

 

미차네의 말마따나, 마리아지가 데몬이 되고 이틀도 지나지 않아 마을의 모든 이들이 마물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그날을 기점으로 마을에서 광란의 교미회가 열렸다. 

 

그 날로부터 일주일 후에 교단의 병사들이 마을 주민인 마물들을 죽이기 위해서 쳐들어왔으나, 평범한 인간 따위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닌 마물들이 그들을 역으로 제압했고, 그 중에서 미혼의 남성들은 미혼의 마물들이 좋아라 하고 채가서 자신들의 남편으로 만들었다.

 

그 동안 마리아지는 미차네의 가게 일을 도와주었다. 기존에 했었던 포로의 열매 품종에 대한 시식 평가는 물론, 가게에 대한 홍보나 포스터 작성 및 배부 등을 도맡아 하고 있었으며, 그 덕에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 그녀의 가게는 제법 호황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벨로의 소식은 들려오지를 않았다. 그가 파견 나갔다는 국가는 물론이고 그 주변국과 그 주변 지역에서도 그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마리아지는 처음 한 달간은 나름대로 밝은 모습을 보이며 견뎌내었지만, 두 달이 넘고, 세 달이 지나자 척 봐도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처음 데몬이 되었을 때의 그 생기 넘치던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 죄송합니다. 이 정도로 수색이 힘들 줄은 몰랐어요. 제 인맥이라면 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 힘써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걸요. 그런데도 안 되는 거면 그냥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거죠."

 

크게 미안해하는 미차네를 위로하는 말을 꺼냈지만, 마리아지 또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허나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와주는 미차네를 탓할 수도 없는 일. 결국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가, 라고 생각하며 다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어머? 비둘기가 왔네?"

 

비둘기.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에 종이를 묶어놓은 전서구였다. 꽉 막힌 교단에 비해 개방적인 마물들은 기술의 발전도 인간에 비해 엄청나게 빨라서, 움직임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재생시킬 수 있는 거울, 마물의 종을 말하면 그 종족의 위치를 보여주는 석판, 기억을 재현해 눈 앞에서 보여주는 향로 등 각종 신묘한 제품들을 개발하고 창조해내었지만, 아쉽게도 원거리의 상대와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한 수단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에 전서구를 통신 수단으로 사용했다.

 

묶여 있던 종이를 풀어 펼쳐서 내용을 읽어보는 미차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밝아져, 마지막 즈음에는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아아아!!! 찾았다! 마리아지 씨, 찾았어요! 벨로 씨가 지금 있는 위치를 찾았대요!"

"네?! 어디요?"

 

"발샤리우스 감옥이래요. 국경을 넘다가 붙잡혔다나 봐요."

"......감옥이요?"

 

살면서 한 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 벨로가, 심지어 어렸을 때조차 짖궂은 장난 한 번 친 적 없던 그가 감옥이라니, 좀 우습긴 했지만 그건 이미 마리아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두 데몬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전부 상자에 넣었고, 그 와중에 미차네는 상자에서 입간판을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둘은, 허리춤에 달린 날개를 거대화시킨 뒤 벨로가 감금되어 있다는 감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미차네가 진열대 위에 치우지도 않은 수많은 과일들 앞에 세워둔 입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식용]

 

----------

 

그 뒤의 내용은 일사천리였다. 이 감옥까지 날아온 마리아지가 면회 신청을 하고, 간수가 기억을 읽어 보더니 열쇠를 쥐어주면서 통과시켰고, 그녀가 벨로가 갇힌 감방 앞까지 온 것. 마리아지가 벨로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주입해 준 기억은 끊어졌다.

 

"어때? 잘 봤어?"

"우와... 여러모로 힘들었겠구나."

 

기억의 재생이 끝나자마자 내뱉은 벨로의 위로. 아무래도 그런 기억들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으니, 벨로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게. 내가 파견..."

 

그 이상 벨로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마리아지가 그를 밀쳐 넘어뜨려 벨로의 말을 끊었다. 당황한 벨로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잔뜩 굶주린 야수가 싱싱한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잔뜩 신나 있었고, 동시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누가 보아도 흥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리아지가 더 이상 참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챈 벨로는 마리아지의 탐욕에 가득 찬 눈을 직접 바라보며 말했다.

 

"마리아지, 원하는 대로 해도 좋아. 외로웠던 만큼 내게 쏟아내 줘."

"꺄아아아앗!!"

 

그에게서 내려진 OK사인에 마리아지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고,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벨로의 입에 겹쳤다. 그러다가 자신의 혀를 그의 입 안에 집어넣었고, 벨로 또한 저항하지 않고 그녀의 침입을 받아들였다.

 

마음대로 그의 입안을 유린하고, 흡입하고, 맛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마리아지의 뇌는 행복감과 쾌감으로 흐물흐물해져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벨로도 다르지 않았다. 남몰래 좋아해왔던 사람이 몇 배는 아름답고 음란하게 변해서, 자신에게 끝없이 애정 공세를 퍼붓는 상황. 거기에 더해 남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그녀에게서 진하게 뿜어져나오니, 그 또한 이성을 잃고 성욕에 집어삼켜진 짐승이 되어버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오랜 시간의 키스가 끝난 뒤, 둘 사이의 입에는 타액의 줄이 죽 늘어져 있었다. 서로의 눈을 응시하다가, 마리아지는 이내 벨로의 하반신 쪽으로 내려갔다. 그의 겉옷을 들추고 바지를 내려, 그의 남성기를 끄집어내었다. 극도의 흥분으로 크고 딱딱하게 부풀어오른 그의 성기를 보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걸 본인의 입 안에 쑤셔박고 말았다. 겉에 꿀이라도 발려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안에 꿀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마구 핥고 빨아댔다.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이며 그의 기둥을 마구 훑어대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으윽... 으으으... 으윽... 으읏!!!"

 

벨로는 쾌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마리아지의 뒷머리를 붙잡고 자신의 하반신에 강하게 밀착시켰다. 순간 그녀는 놀란 듯 눈이 커졌으나, 상황이 파악된 후에는 황홀한 표정으로 벨로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끅끅거리는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가 나는데도 둘 다 개의치 않아했고, 끝내 벨로는 마리아지의 머리를 남근 뿌리 끝까지 밀어넣고 자신의 욕망을 분출했다.

 

"으읍... 으읍...! 꿀꺽...쭈웁..."

 

마리아지는 벨로의 허리를 양 팔로 꼬옥 끌어안은 채 목을 울컥이며 벨로가 내버린 정액을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전부 마셨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요도 안에 남아있는 것까지 빨아먹으려는 작정으로 그의 성기를 입에 문 채로 흡입했다. 그 압력이 주는 쾌락에 저항할 수 없었던 벨로는 몸을 크게 떨었고,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운지 마리아지는 기쁜 표정으로 그의 고간에서 입을 떼었다.

 

그 모습을 본 벨로는 아까와는 반대로 그녀를 침대로 밀쳐 넘어뜨렸고, 마리아지의 옷을 억지로 집어뜯어 그녀를 반 나체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러고는 양 손으로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꽉 쥐었다. 한 손은 고사하고 양 손으로 하나를 쥐어도 다 안 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유방을 억지로 붙잡고 마구 주물렀다. 

 

"으으으으읏!! 벨로, 좋아앗!! 더, 더 날 괴롭혀 줘!"

 

마리아지는 황홀한 쾌락에 빠져 그가 애무의 강도를 높이길 원했고, 벨로는 이에 응하듯 그녀를 마음껏 유린했다. 그녀의 유방에 솟은 유두는 물론이고 가슴 전체를 깨물고, 꼬집고, 핥아대는 등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그녀를 거칠게 가지고 놀았다. 이러한 행위 하나하나에 마리아지는 쾌감에 신음하며 만족해 주니, 벨로는 더더욱 흥분하며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하반신을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비비며 발정하였음을 그녀에게 몸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그것 또한 눈치챈 마리아지는, 자신의 가랑이를 벌리며 벨로에게 요청했다.

 

"벨로... 벗겨 줘..."

 

이 말을 듣자마자, 벨로는 그녀의 하반신 쪽으로 내려가, 손도 아니고 치아로 마리아지의 속옷을 물고 뒤로 잡아끌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끌려나갔지만, 벌린 다리에 걸려서 더 이상 빼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녀는 속옷을 잡아빼기 쉽게 도와주려 다리를 오므렸으나, 벨로는 그 잠깐마저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속옷을 이로 문 채, 속옷 옆 부분을 잡고 서로 반대쪽으로 잡아당겨 찢어버렸다. 속옷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지만, 두 명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목적, 남성과 여성의 교합이 바로 눈 앞에 있었으니까.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있던 여성기가 눈 앞에 보였다.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았던 정갈한 그녀의 성기. 그러한 순결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음부는 흠뻑 젖어 있었다. 남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윤활제가 잔뜩 묻어 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교미를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절어 있었다는 증거이니까.

 

벨로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까 분명 한 발 내었음에도, 마리아지의 커다란 가슴을 유린하며 흥분한 덕인지 아까처럼 거대하게 부풀어올랐다. 더 이상의 전희는 필요 없다고 판단한 벨로의 본능은, 그 거대한 남성기를 마리아지의 여성기에 사정없이 쑤셔박았다.

 

"하앗?! 흐아아아아아------!!!"

"크윽... 으읏!!!"

 

처음 느껴보는 삽입. 처음 느껴보는 이물감.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마리아지는 속절없이 절정에 달해 버렸으며, 벨로 또한 간신히 버텼을 뿐 그녀와의 결합에 사정감이 극도로 끓어올라 하마터면 그녀의 안에 쏟아부을 뻔하였다. 허나 마리아지의 내부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남성기를 자극하였으며, 결국 이 쾌락에 굴복해버린 벨로는 그녀의 안에 자신의 정기를 퍼부어버리고 말았다.

 

둘의 접합부 사이로, 정욕의 흰 액체와 순결의 붉은 액체가 섞여 흘러나왔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꼬옥 끌어안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 입을 떼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교미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그를, 그녀를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렇게 이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둘의 마음은 크게 충족되었다.

 

다만,

 

"우읏?! 잠깐만, 마리아지?!"

"네가 말했지? '외로웠던 만큼 내게 쏟아내 달라' 라고. 3개월의 외로움이 한 번으로 끝날 리가 없잖아? 이제 더 이상 안 놓을 거야. 내 외로움이 완전이 풀릴 때까지 할 거야! 이 감옥 전체가 우리의 마력으로 가득 차서 바깥으로 흘러나갈 때까지!"

 

마리아지가 자신의 내부에서 벨로의 성기를 자극했고, 방심하던 그는 순간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남성기를 다시 단단하게 부풀렸다. 예상치 못한 쾌락에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던 그녀는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성교를 해 보기로 마음먹고는, 마법을 이용해 서로를 공중에 띄웠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다만 아까와는 달리 벨로가 누워 있고, 마리아지가 그의 위에 올라탄 모습이었다. 

 

주도권을 잡은 듯한 마리아지는 자신의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려찍었다. 

 

"우와아아앗....!"

"흐으으으응...!"

 

그 한 번의 행동은, 둘에게 새로운 쾌락을 선사해 주었다. 이 기분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었던 마리아지는, 또다시 허리를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렸다.

 

"우오오오오옷?!?!"

"하으아아아앗!!!!

 

마리아지는 자신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를 노려서 찔러 자극하는 쾌락이, 벨로는 자신의 성기 전체를 마사지하는 쾌락이 휘몰아쳤다. 벨로도 결국 참지 못하고 누운 채로 자신의 허리를 올려찌르고 말았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기습과도 같은 움직임에 저항하지 못한 마리아지는 그대로 표정과 함께 자세가 무너져내렸고, 그대로 벨로의 가슴팍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놓칠세라, 벨로는 그녀를 꼭 껴안고 자신의 하반신을 그녀에게 힘차게 올려쳤다. 

 

"으응, 흐응, 흐읏! 으으으읏!!!"

 

이제 다시 주도권은 벨로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저항할 수도, 저항할 생각도 없는 마리아지는 사랑하는 그이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 채 열락에 빠져들었고, 벨로도 기분 좋은 것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그녀를 탐했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 서로는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신음 소리도, 쾌락의 교성도 내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쏟아부은 마리아지와 벨로. 그럼에도 텅 비어버린 잔이 다시 한 번 차오르듯이 그 둘의 색욕은 다시 한 번 끓어올랐고, 끓어오른 색욕은 욕정의 불꽃으로 바뀌어 그 둘의 몸을 다시 한 번 휘감았다. 

 

----------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죄수 신분이었던 벨로는 마리아지가 신분을 보장해준 덕에 손쉽게 풀려났고, 비행 능력이 있는 마리아지와 미차네 덕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벨로의 고향마을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그가 기억하고 있었던, 늘 교단의 수탈에 시달려왔던 생기 없는 마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직 수확 시기도 되지 않았는데 빽빽하게 자란 밀들이 넘쳐 흐르는 밭, 이전과 달리 훨씬 활발하고 소란스러워진 마을 광장, 그 주변에서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말의 하반신, 늑대의 귀와 꼬리, 새의 날개와 다리 등을 가졌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형의 여성들.

 

그리고 외형은 꽤 많이 변해버렸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이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벨로는 혼란스러워 했지만, 그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만은 도저히 감추지 못했다.

 

가족들과 재회의 시간을 가진 이후, 양가의 허락 아래 마리아지와 벨로는 동거하며 미차네의 가게 일손을 도우며 살게 되었다. 낮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했고, 밤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정을 나누는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보낸 지 이주일 째 되는 날.

 

"저... 벨로, 이건 좀 민감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해도 괜찮을까?"

"...혹시 내가 질렸어?"

"그, 그런 거 아냐! 절대 그럴 일은 없으니까!!!"

 

혹시 불안해진 벨로의 지레짐작에 마리아지는 매우 강하게 부정의 의사를 표했다. 마물은 인간들과 달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평생을 바치는 특성상 불륜이나 애인 강탈, 이별 같은 일들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름이 아니고, 사실 네가 돌아오기 전에 사장님이랑 얘기한 게 있었거든. 네 수색을 도와주는 대가로, 한 가지 요구를 하셨어."

"혹시 나를 너랑 공동소유로 하고 싶으시다던가?"

"어....어떻게 앓았어?"

"사장님이 나랑 너를 보실 때의 눈빛이 확연히 달랐거든, 널 보실 때는 귀여운 강아지나 어린 아이 보듯 하셨다면, 날 보실 때는... 척 봐도 음욕을 품고 있다는 걸 알수 있었거든. 그 뿐만 아니라 가끔 짐 들어 준다면서 내 몸을 더듬는다던가, '벨로 씨, 인큐버스 되니까 체력이랑 정력이 날뛰시죠? 나중에 마리아지가 지쳐서 못 할 정도가 되면 불러 주세요.' 라는 식으로 추파를 던진 게 한두 번이여야지."

 

정곡을 찔린 마리아지는, 마음 속으로 너무 대놓고 벨로를 꼬신 거 아니냐면서 그녀를 원망했다. 벨로가 그녀를 싫어하게 되면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그녀가 제법 연배가 있는 마물이라는 걸, 그리고 아직까지도 순결을 지키고 있는 걸 생각하면, 남자가 고픈 여성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뭘 해도 좋아. 그런데 너는 괜찮아? 다른 여성이랑 날 공유하는 거 말이야."

"다른 사람이었다면 싫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장님은 이 마을에 오셨던 그 날부터 내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어주셨어. 그러니까, 나는 사장님께 보답하고 싶어. 그걸 위해서 벨로 네가 희생하는 게 불안했어서..."

 

말끝을 살짝 흐리는 마리아지의 모습을 보고, 벨로는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듯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볼에 쪽, 하고 살짝 키스를 해 주었다. 마리아지는 얼굴을 붉혔지만, 그와 동시에 허락을 받았다는 기쁨에 얼굴 표정이 풀어지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면! 저도 그 자리에 끼어도 되겠죠?!"

"사장님! 얘기 끝날 때까지는 들어오시면 안 되죠!"

"괜찮잖아요~. 방금 얘기 들어보니까 벨로 씨도 승낙한 것 같은데, 오늘 하루 정도는 독점해도 괜찮겠죠? 나중에 셋이서 같이 하자구요!"

 

순식간에 쳐들어와서 이야기를 끝내버린 미차네의 모습에 둘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벨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고, 마리아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벨로! 오늘은 사장님과의 계약 때문에 건너뛸 거지만, 내일부터는 우리 둘 다 상대해야 할 테니까 몸관리 잘 해 둬! 알았지?"

"물론이지."

 

벨로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며 웃음을 짓자, 마리아지는 귀까지 빨개지면서 황급하게 방문 밖을 나갔다. 이 모습을 전부 지켜본 미차네는 '신혼 같네~' 라며 작게 읇조렸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혹시 시도해보고 싶었던 플레이 있어요?"

 

그 질문에 미차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날개에 마력을 집어넣어 크기를 키웠다. 헌데, 그 크기가 끝을 모를 정도로 커지기 시작해, 방 전체를 전부 뒤덮을 정도로 커다랗게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날개를 공의 형태로 감싸 둘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녀의 날개로 만든 공 안에, 벨로와 미차네 단 둘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완성된 것이었다.

 

"이러면 바깥으로 새어나갈 일도 없고, 단 둘밖에 없다는 점 덕에 방해받을 일 없다고 생각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 널 독점하는 기분도 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이죠."

 

그 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생물의 본능과도 같은 성행위에 빠져들었다. 거사가 치루어지는 집 밖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마리아지는, 이 광경을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고, 본인의 손에 들린 분홍색의 포로의 열매를 한 입 베어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미차네 씨. 고마워, 벨로."

 

그들의 밤은, 그렇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지나갔다. 


----------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