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검이란, 그저 죽이기 위한 도구이다.

저어기 유명한 기사단이나 소드마스터 나으리들이 들으면 발작할 만한 소리이지만, 검은 그저 날붙이일 뿐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 속에서 개인이, 의지가, 고결이 모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검에 무슨 고상한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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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내가 소년병으로 팔려가 첫 전투를 치뤘을 때부터, 내 손에서는 검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

그 당시엔 흔한 일이였다. 급격하게 늘어난 마수들의 습격으로 제국은 많은 병사들을 필요로 했고, 마침 오랜 피난으로 피폐해진 하층민들은 돈 약간에 자식을 팔아넘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크게 원망은 하지 않.... 기는 개뿔,

세상에, 그 새끼들은 자식을 팔아서 얻은 밥을 쳐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떨쳐지지 않는 과거의 개같은 기억이다.


에휴, 다시 이어가자.

어쨌든, 소년병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사실 당연하긴 하다. 마나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좀 강한 마수 앞에서 썰려나가는데, 겨우 14살 꼬맹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잡일이 더럽게 많긴 했고, 밥도 개같이 나왔긴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내가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팔려온지 두 달 후, 내가 있는 곳을 포함한 3개 부대가 전멸했다. 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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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늑대는 수많은 하운드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건... 절망적이었다. 우리 부대에서 꽤나 힘좀 쓴다고 하는 고참들이 전부 나가 상대했지만, 그 늑대는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검은 상관도 쓰지 않고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한번 번쩍일 때마다 한명의 사지가 뜯겨나갔다.

그 두꺼운 앞발이 휘둘러질 때마다 한명의 허리가 끊어졌다. 

나는 도망쳤다.

죽고싶지 않았다.

아직 너무도 해보고 싶은 게 많았고, 이런 전장에서 허무하고 잔인하게 개죽음당하고 싶지 않았다.

뒤를 돌아 필사적으로 뛰었다. 주변에서는 그 늑대의 섬뜩한 울음소리와 도망치다 하운드에게 붙집힌 소년병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곧 내게도 하운드들이 다가왔다. 어느새 하운드는 내가 달리는 방향 앞을 선점하고 있었고,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한껏 낮추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하운드가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 즉시 나는 옆으로 몸을 던졌고, 그곳에는 목에 선명한 이빨자국이 새겨진 병사의 시신이 있었다.

팔을 짓밟았다.

시체의 손가락을 뒤틀어 꼭 쥐고 있던 검을 빼앗았다.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떠올렸다.

오며가며 지켜보았던 병사들의 훈련 모습.

마수를 날려버리던 우리 부대 최고참.

숨을 깊게 내쉬었다.

검손잡이를 손아귀가 하얘질 정도로 꽉 붙잡았다.

자세를 낮췄다.

하운드는 다시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뛰어 들었다.

방향은?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노리는 것은?

가슴.

타이밍은?

지금.


피가 튀었다.


하운드가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검을 처음 쥐어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만큼 완벽하게 이루어진 올려베기는 하운드의 가슴팍에 깊은 상흔을 만들었다.

머리가 약이라도 한 것마냥 몽롱했다.

온 몸이 뜨거웠고, 심장은 미친듯이 고동쳤다.

하운드가 다시 움찔거렸다.

일단 저걸 다시 어떻게든 해야했다.

몸이 다시 저절로 움직였다.

다시 검을 꽉 쥐고, 쓰러진 하운드를 향해 돌진했다.

검은 정면으로.

그리는 것은 직선.

직선이 하운드의 심장을 꿰뚫었다.

검 끝이 가죽을 가르고 단단한 근육을 파고드는 촉감.

검손잡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핏물.

내가 처음으로 행한 살생은.

끔찍했다.


손이 떨렸다.

마수의 핏물로 젖은 두 손에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찌르는 그 역겨운 촉감이 남아 있는 듯 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당장이라도 검을 놓고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벌써 하운드 세 마리가 죽은 동족과 나를 발견하여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손에 느껴지는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검을 천천히 뽑아내었다.

다시 들어올린 검에서 핏물이 내 팔꿈치까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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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솔직히, 하운드 한 마리를 죽인 뒤로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계속 싸우다가 지원군의 기척을 느낀건지, 아니면 그냥 배가 불렀던 건지 갑자기 늑대가 돌아갔고, 나는 때마침 도착한 지원군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후에 듣기를, 나는 하운드 9마리의 시체 가운데서 시체보다 더 시체같은 몰골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온몸에 가득한 핏물과 수많은 상처.

왼팔의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물린 상처는 아직도 내게 흉터로 남아있다.

지원군으로 온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보고 경악했다.

곧 죽을 것 같은 꼬맹이가 하운드 9마리를, 심지어 한마리는 엘리트 개체인 것으로 보이는 무리를 혼자서 해치운 것이다.

그 팔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은 혼탁했지만, 그 검, 그럼에도 굳게 들어올린 그 검에는 흐릿한 붉은색 빛이 서려 있었다.

마나 발현의 증거였다.


일주일 후, 막사에서 깨어난 나는 정규군으로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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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는, 뭐 딱히 다를게 없었다.

계속 죽을 위기에 놓였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내 재능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이였다.

작은 소년이 10년만에 핵심 전력으로 등극할 만큼.

그 늑대.

10년 전, 부대 3개를 전멸시키고 사라진 후, 8대 재앙으로 지정된, 펜리르라는 이름이 붙은 그 늑대는, 내 손에 죽었다.

동부 전선의 악몽, 마수 학살자, 붉은 돌풍.

그리고 '검귀'.

솔직히 전부다 별로 마음에 드는 칭호는 아니다.

다 학살이나 검에 미친 새끼처럼 보이잖아.

피칠갑을 한 채로 몸을 꺽어가며 싸우는 게 좀 무서워 보여도, 그게 내가 체득한 방식인데 뭐 어쩌겠나.

나는 한번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 살기위해 휘둘렀고, 하루하루 죽을 위기 속에서 휘둘렀다.

그걸 좋아서 한다면 미친놈이겠지. 나는 미친놈이 아니였다. 아마도.


......


사실 가끔씩, 아니 자주 악몽을 꾼다.

그 늑대, 그 늑대가 자꾸 꿈에 나온다.

꿈 속에서 나는 시체에 검을 꽂고 서 있다.

주변에는 온통 시체뿐이다. 온 사방에 피가 흥건하다. 검은 무겁고 끈적하다. 당장이라도 검을 내던지고 이곳에서 벗어나려 할 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도망치게? 그럼 너는 죽을거야. 어서 검을 들어. 들어서, 저걸 베어. 그럼 너는 죽지 않을거야. 검을 놓으면, 너는 죽어.

식은땀이 흐른다.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끊임없이 소리가 들려온다.

늑대가 달려든다.

나는 검을 휘두르려 하지만, 검이 너무나도 무겁다.


아.

늑대가 발톱을 휘두른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땀에 축축하게 젖어서, 손에는 어디서 난지 모를, 분명 자기전에 멀리 던져버렸던 검을 꽉 쥐고, 그러고 깨어나는 것이였다.






검을 싫어하는 검귀가 ts되서 마탑들어가는 이야기.

(물론 들어가서도 구를 예정, 참?격 마?법은 검술이 아니잖아!)

어떰? 글 평가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