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밑바닥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곱게 물결치는 모래의 바다와 맞닿은 하늘은 밤의 여왕이 늘어트린 치맛자락처럼 어둡다. 사막의 모래언덕은 시야로부터 멀어질수록 흐물흐물 형체를 잃고 붕괴하다가 암흑 속으로 잠겨들어갔다.


 시원한 바람이 살결을 간지럽히며 불어오고, 바람 소리가 하늘에 새겨지며 흔적을 남긴다.


 보석을 잘게 깨부숴 흩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아비도스의 밤하늘은 그 자체로 별천지였다. 밤하늘을 둥글게 베어먹은 보름달이 환했다.


 어딘가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이 비밀스러운 사막 가운데서 나와 카이저 이사와 검은 양복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유메 학생회장. 대출금은 9억 엔, 이자는 월 788만 엔이다. 담보는 아비도스의 토지와 건물로 하지. 다 읽었으면 도장을 찍도록.“


 기계음인데도 불구하고 소리에 깃드는 무게. 카이저 이사가 종이 한 장을 스윽 내밀었다.


 탁. 내가 망설임 없이 도장을 찍었다. 숨길 수 없는 열락이 깃든 목소리가 가냘프게 새어나왔다.


“찍었, 어요...❤️


 어마어마한 빚이 생겼다는 것을 체감한 다음 순간, 우윳빛 피부가 토마토처럼 화르르 달아올랐다. 


 파멸의 시작. 아비도스와 함께 몰락해가는 나는 몰락을 자초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지만, 그 자기혐오마저 너무나도 감미로웠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네요. 아아...”

 

 나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달뜬 한숨이 차갑게 가라앉은 사막의 공기를 덥히고, 카이저 이사가 미친년을 본다는 듯한 눈길로 투덜대었다.


“원, 참. 나야 좋지만서도... 아비도스의 소녀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군. 학생회장이라는 여자가 이 모양이라니.”


 내가 피식. 웃어주었다.


“이사님, 원래 사랑은 소녀를 미치게 만드는 거랍니다. 저는 호시노를 사랑하니까요. 이 모든 것은 호시노를 위해서에요.“


“무슨 뜻인가. 이것이 그녀를 위한 안배라고?”


이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안배라기보다는... 으음, 데이트 준비라고 해주세요.”


“호시노를 미치도록 좋아하니까, 그 아이가 절망하고 또 비탄에 잠겨서 울부짖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서... 오직 그 한순간만을 위하여, 이 아비도스 고등학교를, 저 쿠치나시 유메를, 전부 다 바쳐서...!“


한 마디 한 마디를 고백하듯 내뱉을 때마다 무지막한 행복감이 내 뇌수를 헤집었다. 정말, 연모하는 상대가 있는 소녀는 이렇게 되버리는 걸까.


 남자였던 내게는 없었지만, 유메인 내게는 있는 곳.


 소녀의 은밀한 비부가 쾌감에 시달려 누긋하게 젖어드는 감촉이 내 소심한 수치심을 간지럽혔다.


 찌릿한 쾌감의 전류를 즐기며 몸을 파르르 떨어댄 나는 이윽고 겨우겨우 문장을 끝맺었다.


“이렇게나 고급스러운 러브 코미디를 연출하는 거랍니다...❤️


“......“


  카이저 이사는 말문이 막힌 듯 했다. 이사 대신에 검은 양복이 키득대면서 농담을 던졌다.


”하하하, 그건 이미 러브 코미디라기보다는 비극이 아닙니까. 사랑을 모독하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이 품은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구요?“


 내가 싱긋 미소지으며 반박했다.


“틀려요, 검은 양복. 사랑이 확실해요. 그야 낮에도 밤에도 머리속이 온통 호시노의 생각으로 가득차니까. 호시노의 살결과 닿을 때면 저도 모르게 아래쪽이 젖어버리니까. 호시노가 절규하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는 기꺼이 바칠 수 있으니까!“


 검은 양복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검은 양복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넥타이를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일순 나와 검은 양복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니까 때가 되면, 당신이 저를 죽여줘요. 호시노의 앞에서.“


 검은 양복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 대가는 무엇으로 치르겠습니까.“


”당신의 실험에 제 시체를 가져다 쓰세요. 으응. 그러면 되지 않나요?“


“... 죽음을 그리도 쉽게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요. 만약 말을 바꾼다면 곤란합니다.”


 가쁜 숨을 흐읏 들이마쉰 내가 이내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아하하! 아하하하!”


“죽음이라니요! 죽음이 아니라구요? 나는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에요. 사랑을 향해서 달려가는 거라구요. 나의 사랑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검은 양복. 제 성자가 되어주세요. 사랑과 희망과 행복을 향해서 달려가는 제게 부디 응답해줘요. 저를 죽임으로서...!“


 문득 나와 검은 양복의 사이로 흐르는 것은 시간을 핥는 듯한 고요함.


 한참을 침묵하다가, 검은 양복이 한숨지으며 답했다.


“그리 하지요. 그날이 오면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내가 만면에 웃음을 띄고 행복감에 신음했다.


 그것은 유열로부터 비롯한 악의적인 쾌락이자 한없이 농밀한 사랑.


 이 순간, 나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호시노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


언젠가는 정식연재하고싶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