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와 - 애디포시어(시랍)




그러게요.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요?


같잖은 영광을 위해 발걸음을 떼었을 때, 부터였을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전,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저흰 이미 엇갈릴 운명이였던걸까요?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아마 전 영원히 이해하긴 힘들거에요.

알잖아요? 사람은 원래 자기 자신도 이해를 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정도는 이해해주리라 믿어요.


계속해서 가자구요.


어라, 몸이 떨려오네요.

손바닥과 얼굴은 왜인지 모르게 가렵고요.

물집이 진건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건드리지 말고 참자구요, 피부는 소중하니까요.


이렇게 있으니까 문득 옛날 추억이 생각나네요.

저희가 어릴때 공유했던 비밀의 주문을 외워봐요.


"...서로가 행복을 위해, 다가갈 때 까지."


아마, 서로의 행복을 위해 만들었던 주문이였어요.

저희는 과연 행복에 가까이 왔을까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자구요.

그나저나 정말, 민폐투성이네요 당신은.

먼저 잠들어서는... 제가 계속 끌고 다녀주는것도 한계가 있다구요.


꽤 춥긴 하지만, 움직이다 보면 알아서 따뜻해지겠죠.

계속해서 가자구요, 아직 거리는 한참이에요.


사박사박, 뽀득뽀득.

걸어온 길에서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나네요.

바람소리밖에 없는 이 장소의 적막함을 채워주는 토핑같아요.


다시금 옛날 생각이 나네요.

기억해요? 제가 갑자기 여자가 되었잖아요.

그때 당황한 얼굴이 얼마나 웃겼는지.

물론 저도 당황했지만요.


그 이후로는 좀 힘들었긴 했죠.

주민등록증 재발급부터, 족보도 꼬이고, 참... 많은게 꼬였었죠!

왜 제가 여자가 되어야 했는지, 왜 당신은 그런 제 곁에 남아있어줬는지, 많은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아마 영원히 이해할순 없겠죠.

이해하나요?


그러고보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요?

뭐, 결국에는 당신이 제 인생을 꼬이게 만들었지만요!

왜 같잖은 제 곁에 남아줘서는,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었냐구요!!

꼬인 실을 한번 더 꼬은다고 실은 풀리지 않는걸요!

아니에요,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겠죠?

그래도 전 당신덕에 행복했는걸요.

그것만 생각하자구요.


으,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나봐요.

괜히 부끄러워지잖아요.

이 이야기는 넘겨두고, 계속해서 걷자구요.

아직도 목적지는 한참이에요.


...


기억 나요?

맨날 저보고 '야채좀 먹어라' 라던가 '공부좀 해라' 하면서 구박했었잖아요.

그때마다 '눈보고 대화하자' 했는데 저는 항상 피했구요.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당신을 무시하려던게 아니였어요.

뭐랄까, 당신의 눈에 비치는 제가 보고싶지 않았거든요.

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민폐만 끼쳤지만, 당신은 항상 길을 알려주고 걱정해줬잖아요.

그런데도 저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러워서, 도저히 당신에게 비친 저의 모습을 볼수가 없었어요.

그런 제 모습을 계속해서 긍정해주는건, 무슨 바보도 아니고!

근데 이제는... 푸흐, 정 반대의 입장이란게 웃기네요.


방금 제가 옛날 이야기는 그만두자고 했건만, 스스로 어기는건 도대체 뭘까요.

푸흐흐, 정말 모순덩어리죠? 저말이에요.


계속해 말하고 있는데, 몸은 전혀 따뜻해지지 않네요.

슬슬 당신을 옮겨주는것도 힘들구요.


그러고보니 저희 가방에 신호탄이 있던가요?

그걸 횃불삼아 계속 가자구요.

앞이 밝혀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프스스슈우우욱'

하는 신호탄의 소리가 적막한 이곳의 소리를 채워주네요.

다행이에요.

바람소리와 뽀득거리는 소리가 슬슬 지겨워질 참이였거든요.


발이 아파오네요.

발가락을 움직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부츠를 벗어서 확인해볼까 했지만... 갈길은 머니까요.

조금 더 가서 확인해도 괜찮겠죠.


다시금 상상이나 해보죠.

겨울에 처형당하는 사람은 과연 발이 얼어붙을까요?

왜 그, 있잖아요.

처형대가 철로 되어 있고,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씨에 처형당한다면요.

차갑게 얼어붙은 철 지지대에서 몇시간이나 처형을 기다리며 서있어야 할텐데, 역시 얼어 썩어가겠죠?


아, 미안해요.

조금 어두운 이야기를 해버렸네요.

정신이 슬슬 오락가락한가봐요.

아지랑이도 보이는걸 보니, 슬슬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이카로스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하늘을 꿈꾸어, 밀랍 날개를 달았지만.

녹아 떨어져버린 아이의 이야기 말이에요.

꽤 저희의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거든요.

그러고보니, 우리가 왜 여기로 왔던가요?


아, 추워요.

정말로 추워요.

추워요추워요추워요추워추워추워추워추워.


저희 꼬라지를 봐요.

어리석게도 분에 맞지 않는 영광을 꿈꿔서는.


저희는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되나봐요.

충분히 저희는 사랑했던 삶을 살았으니, 잠깐 쉬자고요.


신호탄은 이미 꺼졌어요.

아마, 아무도 저희를 찾지 못할거에요.

차디찬 설산에 파묻혀, 수많은 실종자 명단에 올라가겠죠.


이딴 싸구려 부츠는 벗자구요.

너무 더운걸요.


옷도 좀 벗구요.

계속 걷다보니까 열이 올라오네요.

너무 더워요, 한여름의 날씨보다 더, 더.


저희는 충분히 힘들었잖아요.

슬슬 행복해지자구요.


미안해요, 당신에게 할 참회는 아직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었네요.

나쁜 사람.

조금만 저랑 같이 있어달라 했잖아요.

눈 감지 말고, 계속해 제 목소리를 들으라구요.


저흰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죠.

이미 당신의 대답을 듣기에는 너무나 늦어버렸으니까요.

그럼에도, 계속해 걸어가야해요.

다시금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다시금 행복에 닿을 수 있도록.


"...잘, 자요."


늦었지만요.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의 사이에서,

또렷한 종소리가 들려요.






역시 틋력이 부족해요...

호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