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헤어질결심] 아마도 당신이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11(1)~15(5) 完




 제목은 "아마도 우리가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카사 커뮤니티 고전작 패러디.


 지금 이게 2편하고 3편인데 마치 저것하고 연계되는 인상으로 숫자 12 및 13 쓰자 생각했음.


사실 이거 두 개로 나눠야 했는데 임팩트가 적고 분량 조절도 잘 안 되서 그냥 두 편 합쳐서 올림..


감성에 메마른 카붕이라 이런 드라마는 못 쓰니까 너무 기대하진 말았으면 함 ㅋㅋ 그냥 대회 열어주니 즐거워서 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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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드디어 깨어났군요, 시영 양."



 친숙한 여성이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뻗어, 이마를 만진다.


 "아…."


 "의식이 회복되긴 했지만." 스완은 눈을 마주쳐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곧 죽을 것 같이 보이는군요."



 …….



 잠시간의 지속되는 침묵.


 스완은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다. 목도 움직이지 못하는 시영이 스완에게 매우 힘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나요?"


 "어제부터 하루 지났네요."


 "……."




 시영이 물었다. "그거… 꿈이 아닌 거죠?"


 "……네."




 스완이 물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째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스완 씨라면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읽을 수 있을 터인데…."


 "그야, 다른 사람의 허락도 없이 내면을 엿본다는 것은 실례니까요."



 생각해보면….


 그녀는, 회사에 같이 일하면서 자기 거울로 남의 능력과 생각을 함부로 읽거나 하진 않았다.



 "하아."


 "그렇지만…." 스완은 눈을 깜빡이며 시영을 쳐다보다, 손을 배에 올리면서 말하였다.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면 역사는, 대적자가 마왕과 싸우다가 명예롭게 전사했다고만 기억할테니."




 …….


 전부다 아는 눈치다.


 하긴, 모를리가 없다. 그 검격에 의한 상처에, 후배의 피가 묻은 자기 검을 보면….


 단지, 상냥하게 자기 잘못이 아닌 것이라고… 모두가 잊을 것이라고 그런 뜻으로 말하는 거 같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스완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당신의 부모님을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작별의 시간에 마지막 말씀을 나누시길…."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일어나며 벽에 기대뒀던 우산을 잡았다.


 "스완 씨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시영 양의 부상을 낫게 하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소원이라도 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요… 지아 양을 불러올 생각이랍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네?"




 그리고 문을 살며시 열고 나가는 순간에, 그녀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녀의 운명도 지금쯤이면 끝에 닿았을 테니."




 살짝 조용히 닫히는 문에, 그리고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스완의 말을 들었던 시영도 묘하게 납득할 수 있었다.


 아라한이 될 수 있던 그릇, 작은 뱀이었고, 모두의 운명과 숙명을 실타래처럼 어렴풋이 볼 수 있던 그녀였었기에….





https://www.youtube.com/watch?v=zh0sLrqeqI4



(반복X)





 바깥의 모습은 이미 지옥에 삼켜지는 현실이랑 다를 게 없다.


 하늘은 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고, 거대한 구멍이 여기저기 뚫리며 침식파가 쏟아졌다. 마치 지금까지 알던 현실이란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듯, 조각조각내듯, 부숴지고 무너지며, 철저하게 해체되고 있다.


 거리엔 단지 무장한 태스크포스와 함선만 보였고, 침식균열의 내부로 들어가 제압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 그럼에도 묘하게 거리에는 아무 침식체도 없다.


 아직까진….




 '아마도 적들도, 어제의 전투에서 심각한 병력손실을 입었기 때문이겠죠.'


 대적자와 기사단장을 잃었기에 패배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본대를 격퇴해 적을 물렸단 것 자체는 승전이었다. 타기리온도 다시 정면으로 재침공할 여력은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지역을 대상으로 침식균열들을 열고 병력과 시선을 분산시키며 싸우는 게릴라 비슷한 전술을 쓰고 있는 건지도.


 "……."


 스완은 코핀 회사의 정문에 그대로 선 채, 전화를 통해 시영의 부모에게 전화해 그녀의 상태를 알렸다.




 그리고 알파트릭스로 가려는 도중, 검은 차가 앞에 나타났다.


 "타세요." 유리창을 내리면서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알파트릭스 본사로 간 뒤, 저는 공항으로 가려고 합니다만…."


 "……."



 핸들을 꺾으면서 엘리자베스는 곁눈질로 스완을 쳐다봤다.



 시선을 느끼고 스완이 돌아봤다. "회의는 어떻게 되었나요?"


 "카린 양은 엄청나게 화난 것 같이 보여요. 당장 오래된 목소리… 아니, 관리자님을 여기 불러오라고…."


 "……."


 "하지만… 부사장과 전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머신갑은 붕 뜬 소리만을 반복하더군요."




 그녀도 마침내 눈치챈 것인가.


아니, 감이 좋은 그녀니까 분명… 여태까지 모른 척 했을 뿐이겠지.


 스완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누구보다도 오래된 목소리와 자주 대화했고 그것의 사고방식을 체스 기보처럼 훑던 당신입니다.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지 않을리 없죠."




 "……."




 엘리자베스가 물었다. "제가 묻고 싶었던 걸 당신이 알고 있다면…. 뭐를 말해줘야 할지 알고 있겠지요."




 "…떠났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스완은 이어서 말했다. "거기 남아있는 것은 단지 빈 깡통…. 최고관리자가 떠난 상황에 이어질 혼란을 우려, 코핀의 부사장과 전대장이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 흉내냈던 거지요."




 "……."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그녀들을 미워하진 말아주세요. 최대한 노력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아뇨, 누구도 미워하진 않습니다. 단지…."



 아무도 없는 도로에, 엘리자베스는 차를 멈추고는 고개를 파묻었다.




 "…그렇구나. 정말, 떠났구나. 여태까지… 너무나도 바빴기에, 아니겠지, 그럴리가, 아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는데."


 "……."


 "하아… 정말, 나. 여태까지 뭐 때문에 살은 것일까. 아직도 모르겠어요."


 "……."


 "아차, 이래선 안 되는데. 스완 양은 알파트릭스 건물로 바쁘게 간다고 하셨죠?"




 고상하고 사교적인 그녀답게 밝은 애교있는 목소리로 말하기는 했었지만, 스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방금, 이 여자의 뭔가가 내면에서 아예 무너졌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당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군요. 그래서 사실을 말했습니다."



 "아하…. 그럼 역시, 우린 극의 종장에 있단 얘기죠?"


 "……."


 "후후, 농담이예요, 농담. 너무 진지한 얼굴 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것은 엘리자베스 자신이 듣고 싶었던 소리였겠지.


 그녀는 억지로 운전하면서, 중얼거렸다. "이것이 악몽이라면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네…. 그래요. 바니걸 옷 입고서 초콜렛 먹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 모두 헤어질 때가 왔네요. 이럴 줄 알았다면 빨리 본심을 말할 걸 그랬나…."







 마치, 러닝 타임이 끝난 영화가 멋대로 끝 시간을 너머 그대로 재생되고 있듯이.


 모든 것이 엇나가서 망가지게 된, 그런 시간선에.




 불이 꺼진 회장실에서 지아는 어제 돌아온 순간부터 혼자 계속해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아무리 고민해도 어떠한 답조차 찾을 수 없다.




 천재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를 하기에, 더욱 미치기 쉽다고 하던가.


 어쩌면, 답이 없다는 걸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알 수 있기에, 더욱 쉽게 절망하는 건지도 모른다.




 …….


 그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아우구스투스 대제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곳에 남은 건 단지, 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처녀에 불과했다.







 어째서….


 우리를 버렸던 건가요?




 지아는 결국 사장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질 못했던 걸까요?




 아니야.


 분명… 힘들고 괴로운 일을 짊어지고 계신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잠시 떠날 수 밖에 없으신 거야.




 그런데도….




 죄송해요… 사장님.


 사장님께서 돌아오실 곳을 지켜야만 했는데….


 그래야,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셔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어째서 실패한 걸까요?


 저에게는 모든 것이 쉽게 보였는데….




 이건, 누군가의 벌일까요?




 영원히 사장님의 곁에서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자만해왔던 저에 대한….




 …그런 벌일까요?




 …….


 다시 한 번….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세요.







 "다른 사람의 말은 결국 자네가 살면서 참고할 이정표지, 목적지가 아니야."



 '…….'



 "목적지를 정하는 건 자네 자신의 마음에 달렸지."



 '…사장님?'



 "아무렴! 물론이고 말고!"



 '사장님…!'



 "걱정 말게, 지아 양. 나는 자네가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



 "사장님!!!"



 그리고, 그녀는.



 꿈에서 깨었다.



 역설적이게도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어 악몽에 다시 떨어진 요정에겐….



 마지막으로, 이기적으로 변할 기회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거기… 있었군요."


 "어째서, 몰랐던 걸까요.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녀의 등으로부터 힘없이, 푸른 날개가 크게 퍼져나왔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불꽃이 제일 화려하듯이.




 "사장님…."


 "보고 싶었어요."




 저편의 그가 웃는다.


 항상 그때와 같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금, 계속 꿈을 꿀 수 있게, 소원을 빌었으니까.




 "그래요…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렇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저에게 마음이 있다고 가르쳐준 당신이… 사랑을 깨달은 저에게… 그렇게 혼자서 떠나버리다니…."




 "후후…."




 그녀는 계속 소원을 빌었다.


 날개는 점점 시들어가는 잎사귀와도 같이 떨어져, 그리고 그녀의 눈빛은 점점 탁하게 변했다.


 앞을 볼 수 없게 변해갔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던 것은 이 공허한 현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지아는 착하니까… 용서해 드릴께요."




 "이제… 영원히 함께…."







 요정은 마지막에 최후의 소원을 빌고서, 무기물로 퇴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희미한, 만족된 미소를 품고 있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끝내 원하는 걸 보았듯.







 …….


 잠시 뒤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숙녀가 그곳에 들어오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겠죠."



 스완은 그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그녀는 듣는 사람이 없단 걸 전혀 신경쓰지 않고, 혼자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유감스럽군요. 당신이 이 세계에서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요정? 관리자가 우리에게 했던 조언의 성질은 매우 달랐었지요."


 "그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억하게, 스완.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질 못했네요."




 스완은 침묵하며 지아를 내려보았다.




 "당신은 처음 듣는 말이죠.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요. 왜냐면…."


 "그것은 조언이 아니었어요. 그는 단지 고백했던 거랍니다. 처음부터 저는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으니까요. 아티팩트 파노라마를 통해 스스로의 영혼의 깊이를 보았었던 제겐, 그 말은 의미를 알 수 없었던 그냥 문자였답니다.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 본다면… 알 수 있었겠죠."


 "자기가 두려우니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던 것이었네요. 그렇게 간단한 말이었는데, 저도 알아채는 것이 늦어버렸었죠. 그래요…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끝끝내 결국 전하지를 못했네요. 그가 당신을 찾지 않았었던 이유. 상담하질 않았었던 이유."


 "더이상, 이 세계에서 뭘 구해야만 할지, 몰랐으니까…."



 스완은 땅바닥에 짚었던 우산을 돌리며 다시 잡고는, 등을 돌리며 나갔다.



 "그러면 안녕히… 인간 신지아."


 "이 세계의 진혼곡을 거기서 지켜보시길. …이때껏 헌신했던 다른 이들과 같이."







 결국 돌아왔을 때에, 시영은 죽어 있었다.


 스완은 복도에서 류드밀라를 만나고는 그대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홀로그램 스크린 너머의 카린에게 신지아와 주시영의 사망을 보고하곤, 붉은 눈을 가진 세 명의 여자는 카린이 울음을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보았다.



 "관리자님은 도대체 이런 때에 어디에 계신 거죠?"



 회의를 진행하는 과중에.


 카린은 그의 존재감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껴, 수연에게 애원하듯 물어봤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타기리온을 어떻게 수색하거나 처치할 것인지 생산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닌, 미지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광신적인 질문만 오가게 되었다.


 카린은 이미 없는 관리자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관리국의 레거시 디바이스 혹은 아티팩트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봤다. 마치 이 모든 사태를 한 번에 해결할 힘을 가지는 무언가…. 그런 게 있지 않겠냐고 막연히 기대하는 거다.



 …….



 그녀의 탓도 아니다.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던 이수연의 책임이었으니까.



 그리고, 심지어 그 지아도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날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끝났다. 몰락하는 세계의 카운트다운이 얼마 남지도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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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당신이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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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을 보면, 어제보다 살짝 많은 침식균열이 있다.



 이수연은 혼자 코핀 컴퍼니의 라운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몇 일 전의 방어전에서 적을 격퇴했다는 선전영상과 침식체들이 양산형 타이탄과 전차의 포격에 맞아 죽는 전투영상이 시끄럽게 틀어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농성하는 세계의 몰락을 지탱하는 장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녀도 또한 한계다.



 심한 말을 하자면….


 그녀의 전투적인 전술적인 소질과 달리, 조직의 관리는 잘 쳐줘도 평범한 수준이다.


 오히려 관리자의 빈자리를 혼자서 메꾸겠다고 여기까지 했던 것도 재능에 비해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분명히, 그녀는 관리자의 이름을 이을 가능성이 있긴 했다.


 설령 미나와 시영을 통한 찌르기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환했다면 적어도 지금 이 사태 자체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병력을 재정비해 맞서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사위는 최악으로 던져졌다.




 마치 운명의 여신은 마왕의 편을 들어줬던 것처럼.




 이 세계에 있어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할 두 사람 중에,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병력의 다수를 잃은 타기리온은 절대 자신이 나서질 않을 것이다. 단지 균열만을 사방에서 열며 관리국과 미국을 지치게 만들면서 생산기반과 군수시설을 부수는 지구전으로 감행하겠지.


 …만일, 늑대와 백조가 동시에 패에 있었다면….


 둘 중 하나가 세계를 지키는 방패의 역할을 수행해, 다른 하나가 마왕을 쫓는 창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지아도 카린도 대적자가 살아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았었다.


 승산은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백조의 날개 뒤에 숨어서, 단지 버티는 것일 뿐이었다.


 그녀마저 없었다면, 이 세계에 자길 죽일 무기도 없는 걸 아는 타기리온이 굳이 나서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리고, 수연과 카린은, 스완을 창으로 쓸 수 없었다. 타기리온은 백조를 볼 때마다, 대적자와 달리 계속해서 싸움을 피했다. 아마 그녀의 정체도 능력도 뭔지 이해하지를 못하니 부담스럽게 느껴 일기토에 굳이 응해줄 필요가 없는 거겠지.


 또한 그녀가 자길 추적하는 것을 확신하면, 자긴 도망치는 동시, 휘하 병력들만 현실세계로 움직여서 양동작전으로 완전히 무너트릴 것이다.


 …체크메이트.




 아무거나 내키는 대로 마구 뒤섞은 칵테일에 얼음이 짤랑 흔들려, 수연은 그대로 삼킨다.


 "독하군…."


 맛으로 마시는 게 아니다.



 기분으로 마시는 것이었다. 이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현실을 믿지 못해….


 마치 스스로를 때리는 느낌으로.




 "……."


 "하아…."




 이럴 수록, 그를 보고 싶다.







 자신이 펜릴 전대장이던 아주 옛날에, 마치 친오빠처럼 계속 칭찬하고 격려해준 그는.


 자신에게 있어….



 동경과, 존경과, 그리고….


 연모의 대상이었다.



 연애 따위는 생각치도 않았다. 자신은 오직 한 명의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고, 알려주고, 진심으로 격려했다.



 그렇기에….


 그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다른 여자가 필요하지 않도록, 오직 자신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왕은 강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여왕만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가 만들 평화의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모두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




 구관리국이 무너진 직후에, 마치 아빠가 떠난 집에 혼자 남겨진 소녀처럼.


 자신은 무엇을 해야만 할지 모르는 채,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혼자 그렇게 견뎠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다시 돌아올 때.


 실연을 주었던 첫사랑이 갑자기 다시 만나자고 했을 때처럼.



 그날 이후, 수녀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고독히 헌신하며 살자는 자신에게….


 묘한 기대를 줬다.




 …….




 하지만, 그는 다시금 떠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그에게 뭐였을까?




 "…수연…."


 "이수연! 빨리 일어나라!"







 눈을 뜨면, 오랜 친구가 자기 어깨를 흔들면서 깨웠다.



 "…류드밀라. 지쳤을 테니 쉬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서유럽 지역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다란 침식균열이 발생하였다. 델타세븐의 카린과는 연결조차 되질 않아. 지금 상황에 술이나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가… 카린도."



 수연은 의자에 걸어둔 외투를 어깨에 걸치면서 일어났다.


 류드밀라가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오는 가운데, 수연은 조용히 혼잣말을 하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


 "혼자 뭔 소리를 하는 거람. 어차피, 도망칠 준비나 하고 있겠지."




 나약한 소리를 하고 있을 순 없다.


 그리고… 어차피 다시 돌아와도 이젠 필요도 없다며, 그립게 느껴지는 대상을, 스스로 부정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세계에서 도망쳐서, 다른 여자들과 행복하게 놀아라.



 처음부터 내게 진심도 아니지 않았나. 이제와서 늙어빠진 내가 필요할까?



 그냥….


 이러면 좋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



 당신에게 받은 선물들은 너무 과분하게 비싸고 귀중했다.


 그런데도… 그런 추잡한 더러운 기억만 갖고, 여태까지 버텨왔던 관계이니.



 당신이 내 무엇을 알겠나?


 내가 뭐를 하려고 했는지, 사실은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았으니.


 나도, 당신 같은 남자는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질렸겠지.


 나도, 당신 같은 남자에겐 진작부터 질렸었어.



 미워.


 그러니까….


 미워하고 싶다.







 설령 관리국과 미국이 연계하여 방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어도 마왕은 침식균열을 차례로 열면서 교란시켰었다.


 마치 체스를 두듯, 별 손실이 없이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관리국은, 이후에 각 부대를 개개의 침식균열에 충분치 못하게 보낸다는 판단미스를 저질렀고….


 타기리온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서, 대륙에서 떨어져 방어선이 약한 영국으로 병력을 집중시킨 것이다.




 스완과 작별한 직후에 다수의 침식균열을 혼자서 닫았던 엘리자베스는 잿더미로 변한 고향으로 귀환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부숴진 저택으로 돌아왔다.



 일단 첫번째 공세는 간신히 막고, 생존자들을 관리국 함선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최근에 겪었던 동료들의 죽음에 더불어, 도저히 수습이 가능하지 않게 보이는 이 상황에 그녀는 너무도 정신적으로 몰렸다.



 지금 이 섬에 남은 건 오직 자신 뿐. 같이 떠나자는 모두의 말을 거부해, 그녀는 펜드래건 영지에 남아 가주로서 최후를 맞이할 각오를 품었다.




 따뜻한 홍차를 홀짝이며, 그녀가 사방에 열린 공간균열을 멍하니 감상하며 말했다.


 "지금 보니… 저주스럽고 공포스럽다 생각한 침식균열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예쁜 색깔인 것 같네요."


 마치 꽃을 보듯, 모든 것을 포기한 그녀는 마치 달관한 자세로 그런 감상을 내렸다.




 그녀의 옆으로, 아라한이 공간을 자르듯 갑자기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스완. 당신의 몫도 준비되있어요."


 엘리자베스는 돌아보지도 않고 누구인지를 맞췄다.



 "실례지만, 저는 설탕은 먹질 않아서."


 "후우… 세계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그런 습관에 고집하는 걸까요? 마지막이니 이제까지 먹지 못하던 것도 원할만큼 맛봐도 좋지 않나요?"


 "……."



 테이블엔 여러가지 케이크와 과자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스완은 공기 중에서 물병을 꺼내고는 그대로 찻잔에 따라서 마셨다.


 엘리자베스는 그 모습을 보고 킥킥 웃었다. "당신… 수도사 같아요. 옛날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죠."


 "……."


 "그래… 쓸쓸하게 있는 것보다도, 당신이 와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요. 마지막 티파티의 게스트가 당신이면 그것도 영광이겠지요."



 둘은 침묵했다. 나이프로 이런저런 케이크를 잘라서 하나씩 맛보고, 쿠키를 손으로 집어서 먹던 그녀에게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스완이 물어봤다. "저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게 있었죠?"


 "…어머?"


 "왠지 그런 눈치였어요."



 그녀가 와줘서 고맙다고 하긴 했었지만,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먹을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이 그녀의 마지막 티파티라고 했었다. 여기에서 죽을 생각이지.


 그런데도 스완 자신의 존재가 여기 왔었기에 고맙다고 하는 것은….



 "그 편지에 관한 걸까요?" 스완은 커피 컵에 담겨진 차가운 물을 마시며 눈짓했다. 테이블, 리사가 놔둔 컵의 옆에는 책과 고급스러운 씰으로 봉한 편지가 놓여져 있다.



 "관찰력이 좋지만 틀렸어요."


 "……."


 "제가 죽는다면 누가 장례식을 해줄까나… 그걸 걱정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와서 걱정을 덜었네요."



 언제 침식체가 올지 모르는데, 경호원을 여기 세워두고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라고 할 수도 없던 노릇.

 그들도 사람이니까. 죽는 건 자기 혼자면 됬다.


 그렇다고 침식체들이 자신의 시체를 파먹고 희롱하게 놔두긴 역시 내키질 않았었다.




 스완은 눈을 감으며 말하였다. "…그런 부탁을 받는 다른 사람의 입장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어머, 여태 득도한 사람처럼 굴더니, 제가 죽으면 역시 슬플 것 같긴 한가봐요?"


 "……."


 그녀가 아무런 말도 없자, 리사는 혼자 깔깔 웃으며 나초칩을 깨작거려 씹었다.




 "아하하하… 스완 양이란 이런 농담 자주 하고 싶었는데요. 이런 싸구려 과자랑 불량 식품도 잔뜩 먹고 싶었고…. 수영복 입고 모두랑 바다에 간다거나…."


 "……."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 오래 살아서, 그때가면 젊었을 때에 못했던 여러가지 해봐야지… 늘어지게 잠도 자고, 먹고 싶은 것은 전부 먹고,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


 "그래요, 그렇게 우리가 평화를 얻었다면…. 그때가서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분에게…. 그리고 설령 제가 선택을 받지 못해도… 다른 여성 분을 짝으로 골라도, 진심으로 축복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녀는 왠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었다. "근데,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선택받지 못했네요. 공평하다면 공평하달까, 그래도 이런 걸 원하진 않았는데…."


 "외부에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약점이죠. 그것이 있어야 자신이 완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니." 눈을 감고 말하던 그녀가 눈을 뜨고 맞추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존재는 스스로서 완성된 거니까. 만약에 그 남자가 떠났다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로서는 그런 생각만이 드는군요."


 스완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으로 끝을 낸다하면… 그걸로 만족하시는 걸까요?"


 엘리자베스는 침묵하다가, 그대로 깔깔 웃었다.


 "그런 스완 양의 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우주의 시작을 본 저이기에, 누가 곁에 없더라도 끝을 보려고 할 것 같군요."


 "…호오…."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는 스완에게 리사가 답했다. "정말로… 당신은 특이해요. 그게 재밌는데."




 "……."


 "그런 것보다, 당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죠? 아니, 다른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부정하기 힘들군요."




 엘리자베스는 버터 쿠키를 살짝 씹으며 말했다. "그래… 지금 생각하면, 당신은 그 파노라마란 거울이 있었죠. 자기 자신을 계속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런 성격으로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일지 모르겠네요."


 "……."


 "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러지를 못하니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주길 원하는 거예요."




 스완이 차가운 물을 마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해하기 살짝 어렵네요."


 오히려 스완의 그 말을 듣고서 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대로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깔깔 웃었다.


 "……?"


 "아하하하, 역시… 제 마지막 티파티에 있어서 최고의 손님이네요."




 몇십 분 뒤.


 아직도, 두번째 공세는 시작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엘리자베스에 있어서, 지금의 시간은 너무나도 한적하게 느껴졌다.




 "으음…!" 기지개를 피며 한숨을 쉬던 엘리자베스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지 스완에게 물어봤다. "아, 그러고 보니 묻고 싶었던 게 있는데…."


 "네?"


 "우리가 지긴 졌는데… 도대체 대적자는 어떻게 죽은 건가요?"


 "……."




 스완은 이때까지 시영의 기억을 읽지 않았다.


 …그렇기에,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사실 그녀도 모른다. 단지 사실에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추측만 할 뿐.


 다만….



 "저도 모르겠네요. 단지 저희가 갔을 때, 모든 게 이미 끝났었기에…."


 "아하…."



 타기리온에 의해 대적자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주시영도 그곳에서 중상을 입어 결국 죽었다.


 …역사는 그렇게 남으면 좋은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다 마신 홍차를 다시 따르면서 말했다. "…사실은, 아직도 조디악 나이츠의 기사단장이 죽었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


 "저랑 달리, 아니… 그때 이후의 다른 모두와는 달리…. 그녀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끝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말과 달리.


 그녀의 죽음은 비참할 정도였었다.



 하지만….



 일절,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리사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후퇴했다고 해도, 동료를 거기서 버리고 도망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도 기사의 명예나 영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가슴이 옥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나 흉측하고 고통스런… 그러면서도, 끝까지 비명조차 지르지 않던 에스테로사.


 …그게 진짜 기사였었다면….




 그런 그녀가 만든 희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낭비한 자신들은 무엇일까?


 겁쟁이처럼 도망친 자신은 도대체 뭐가 되는가?



 "……."




 엘리자베스는, 마지막으로 품에서 독이 든 병을 꺼냈다.


 스완도 그것을 봤지만 단지 눈을 감으며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스완 양, 저는… 한편으로 그녀가 부러워요."


 "……."


 "마지막에 기사답게 그녀는 스스로를 잃지 않고 맞섰었죠. 고통어린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뚜껑을 열곤 그대로 홍차에다 부어….


 티스푼을 살며시 저었다.



 "…적에게 등을 보이질 않고 깨끗이, 동료와 아군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


 "이 엘리자베스 펜드래건이 주연인 연극의 끝을 보는 관객에게 여쭈어보고 싶네요. 저는… 어떤 귀족으로서 기억될까요?"



 스완은 더는 말리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모두를 구출하고 혼자서 남아 최후를 맞이하는… 그런 자존심 높고 고결한 공주라고 평가될 수 있겠죠."


 "……."


 엘리자베스도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적어도 당신에게는 그렇게 기억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녀는 차를 삼켰다.




 …….


 마지막까지 마시곤, 그대로 의자에 등을 편안히 기대고….




 최후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oNYPryOqyGo


(반복 X)




 아직까지 바람만이 불고, 벌레만이 우는 영국 펜드래건 영지.


 최후에 그 혈족은, 입가에 선혈을 흘리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여기, 최후까지 자신의 긍지와 명예를 잃지 않고서 잠들은 여자가 있었으니.


 백조는 침묵하며 그녀에 예를 표하더니,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태양을 가리며 알비온이 떠있는 가운데.


 관으로, 스완은 엘리자베스의 시체를 눕혀,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



 편지.


 그것을 읽을 권리는 자신에게 없다.


 스완은 그 편지를, 그대로 그녀의 가슴과 손바닥 사이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출항하는 알비온.




 마치, 사자를 배에 뉘여서… 강가에 떠내보내는 그러한, 중세의 예와 같았다.




 우산을 땅에 꽂고는, 스완은 마치 시를 짓듯이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를 하였다.



 "안녕히 가시길, 어린 펜드래건의 영주."


 "마치 피지 못했던 한 송이의 장미, 그것이 그대였으니."


 "가녀리고 고운 귀부인의 소원이 언젠가 이 우주를 넘어서…"


 "…그대가 끝내 전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을 누군가가 볼 수 있다하면."


 "그것으로 그대의 넋도 만족할 것이지요."


 "아아, 부디. 내 친구여. 그대가 비극을 피하지 못할 운명에 있다 했어도."


 "엘리시움의 영웅들처럼 누군가는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리고… 영원을 넘어서. 설령 이뤄지지 않다 하여도…."


 "그대가 사모하는 이에게, 당신의 사랑이 닿을 수 있는 기적이 있기를."



 그렇게, 창공의 구름을 타고 흐르는 알비온이 떠올랐다.


 은하의 강물을 표류하며…. 그것은 영원히 떠돌겠지.




 스완은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서, 그대로 알비온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때에, 다시 침식체들이 공간 균열을 타고 나타났었다.




 "……."


 그녀는, 곧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소환, 스스로의 우산을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방해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어떠한 절망도 비탄도 그녀의 마음에는 없었다.


 단지 차가울 정도의 이성, 그리고 순수한 격노만이 그녀의 가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자동항해로 맞춰둔 알비온이 공중에, 랜덤좌표로 워프하려는 가운데.



 지상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 맡겨 쓸어버리며, 스완 자신은 공중에 떠서 비행체들에게 그때 타기리온이 난사했었던 스펠을 마구잡이로 쐈다.


 알비온에겐 흠집 하나 내지도 않게 하겠다… 그런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걸지도 모른다.


 침식체들의 공격을 몸으로 맞아도, 아예 철갑옷을 입은 기사가 모기들과 벌레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듯, 어떤 데미지도 없이 백조는 날개를 펼치며 품에서 쪽배를 지켜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보답하듯, 알비온은 무사하게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그걸 보곤, 스완은 에너지를 자신에 응축시키며 차지하더니, 그대로 방출시키며 일대를 완전하게 쓸어버렸다.



 몇 겹이나 뭉치더니 그대로 폭발하듯이 날아가… 충격파는 그대로 침식체들을 갈갈이 찢어냈다.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백조는 날개를 접듯이 조용히 땅에 사뿐히 섰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


 침묵하며 카린을 바라보는 스완에게, 그녀가 권총을 향하며 말했다.




 "이제 그만 인정해주시죠…."


 "……."


 "관리자님은 진작에 사라지셨죠? 저만 그렇게 따돌리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던 거죠?"


 "……."




 스완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재밌었나요?"



 "……."



 "당신이 말한 대로 했어야 했었는데…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미사일을 지구권에 터트리고, 마왕이 죽는 꼴을 보고서 혼자 자살하면 됬을 것을…."



 스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았다.




 "아무것도 봐주는 게 없었던 괴물들과 싸우면서 알량하게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려고 했었던 게 잘못이죠. 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세요."


 "…무엇을 듣고 싶은 건가요?"


 "이제, 세계의 침식률 같은 건 어떤 상관도 없어요. 당신이라면…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관리자가 여태까지 어디 있었는지, 그가 숨겨뒀던 장비들은 어디 있었는지. 빨리 데려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죽을 겁니다."




 …….


 최후엔, 그녀도 알 권리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스완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의 문을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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