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시장에는 사람이 더욱 많았다.
그 인파를 억지로 비집고 바삐 뛰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무력을 따진다면 많은 사람이더라도 상관없었다. 권력을 생각한다면 한 마디 말로 모두를 물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은 제국을 위해 쓰도록 한 것이지, 사사로이 쓸 수 없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용사 파티의 리더이자, 제국 공인의 웨펀 마스터, 레오나는 직접 인파를 밀치고 헤집으면서, 단지 시선으로는 주변을 급히 훑었고 두 다리는 쉬지 않았다.
레오나가 괜히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피해가 커지자, 제국에서는 황제령으로 마족의 시민권을 정지했다.
몇몇 자치령을 제외하고선, 모든 마족은 더 이상 법률로 보호받지 못했다.
대체로 마족은 인간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가졌으니, 함부로 마족에게 맞서는 인간은 없었다.
바록 그 점이 레오나의 마음이 급한 이유였다.
사람들은 마족을 싫어한다. 마족은 대체로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이 나서더라도 사적 제재는 속으로만 억눌렀다.
하지만 마족이 강하지 않다면?
“후우, 후우, 후우…….”
벅차오르는 숨에 걸음을 멈췄다. 시장 중앙을 지나친 덕인지, 그나마 인파가 덜했다.
“대체, 이 년이, 어디를…….”
레오나는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뛰었다. 잠깐 멈춰서니 무시했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치안청에 문의를 해야할까. 주둔군을 움직여야할까.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러려면 위험 상황으로 해야하는데,
즉시 척살 허가가 내려질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하아…….”
부족한 산소를 급히 들이쉬던 레오나의 머리가 잠시 멎었다.
수많은 사람 냄새 속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향.
냄새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척지근하고 알싸한 냄새. 어떤 음식이나 꽃향기에 비견되지 못하는 냄새. 맡을수록 흥분되는 냄새.
이성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서큐버스 특유의 체향.
좁은 길, 담벼락 세워져 으슥한 골목길에 접어들수록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레오나는 숨을 골랐다. 서큐버스 앞에서 허둥거림이 있어서는 태가 살지 않으니까.
목을 가다듬었다. 서큐버스 시종의 잘못을 근엄하고 점잖게 꾸짖어야 하니까.
올라가는 입꼬리를 일부러 내렸다. 뛰어다닌다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고, 장식이 화려한 검집이 잘 보이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물론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건 예상치 못했지만, 말도 없이 함부로 싸돌아다닌 건 서큐버스였으니 언성 높이고 나무랄 이유는 충분했다.
으슥한 뒷골목 길을 접어들면서,
왜인지 모를 환희를 억누르고. 분노를 끄집어내어서.
“아일ㅡ”
외치는 소리가 중간이 끊겼다.
“……우, 부흐읍, 쯔읏……”
“이야, 이 씹년. 좆빠는 거 봐. 오호오? 호윽? 와, 이 씨…….”
“그만 즐기고 나도 줘. 야, 서큐버스! 여기도 있잖아!”
레오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품은 적 없었다.
할 수 있다 믿었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않았다.
“씨발, 이 빨통 좀 봐. 이거 짜내면 포도주 쏟아지는 거 아냐?”
“……부훕, 끅? 끄아하아……♡”
하지만 지금의 광경에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장 변두리에서 푼돈을 구걸하거나 소매치기와 좀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부랑배들.
넝마 같은 옷을 입고, 걸레 같은 천쪼가리를 두른 채 눈만큼은 욕정으로 희번뜩이는 거지들.
혹은 그조차도 할 수 없는 병자들이나 코흘리개들.
그들이 탐욕과 음심 가득한 손길을, 누리끼리하고 문드러지고 지저분한 좆대강을 내민다.
입에서는 걸쭉한 가래침과, 성적인 욕설을 끼얹는다.
그것이 모이는 곳에는, 보랏빛 마족.
서큐버스가, 기뻐하고 있었다.
“헤, 헥. 더, 더, 져어. 자지…… 더 줘……♡”
레오나는 확신했다.
이건 꿈이다. 현실 도피의 결론은 아니다.
논리적,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힘없는 마족이래도, 외형이 야하더래도, 제국민들이 마족을 향한 적개심과 경계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저들이 제정신이라면 모두 달아나버리거나, 마족을 보고서 치안청에 신고를 했지. 이렇게 더러운 성욕을 발산하진 않을 것이다.
“아일, 아일렛…….”
“아, 아저씨이히이…… 자지, 청소 해주께…… 이, 입보지로…… 헤, 헤♡”
이건 분명히 꿈이다.
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꿈이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저들이 성욕에 미쳐버린 자들이라면.
서큐버스가 먼저 저들을 홀린 거라면?
레오나는 입안에 맴도는 발음을 크게 외쳤다.
“아일렛!!”
검집에서 세이버를 빼어들었다. 힘줘 딛는 걸음에 바닥에 깔린 포석이 깨졌다. 걸음소리는 쾅에 가까웠다.
“모두 비키거라!!”
용사의 호령 앞에, 불빛 비춰진 벌레 때처럼 거지들이 사라졌다.
부릅 뜬 용사의 눈에 남은 건, 거지들의 성욕 배설의 흔적.
그걸 만끽하는 서큐버스.
“쯔읍. 음, 냠, 냐암…….”
무얼 머금고 있냐고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서큐버스는 나신이었다. 보라색 피부는 찐득한 백탁액과 가래침이 한가득이었다.
칼을 빼든 레오나는 남은 손으로 서큐버스의 목덜미를 붙잡아 올렸다.
“케, 크, 켁.”
레오나는 이를 악물었다. 붙잡은 손에 힘이 더 실렸다.
“네 이년!!”
“큭, 케흑. 컥.”
대꾸는 없었다. 대답을 들으려면 목을 풀어줘야 했다. 서큐버스는 기침과 함께 입을 뻐끔거렸다.
레오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기침과 함께 벌어진 입 속에서 뭔가가 비쳤다.
입 안을 가득 채운 무엇인가.
타액과 섞인, 싯누렇고 허연 뭔가가.
쿵.
손에 힘이 풀려버렸다. 서큐버스는 돌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들렸다가 떨어진 것답지 않게. 방금 전만해도 호흡이 곤란했을 텐데도. 서큐버스는 황홀한 얼굴로.
“쯥, 쩝. 짭.”
꿀꺽.
“……마싯다.”
입속을 비우고 혀를 반쯤 빼 문 채 멍청하게 흘리는 웃음.
그 혀는 미처 삼키지 못한 허연 게 붙어있었다.
레오나는 검을 집어던졌다. 짱그랑 소리와 함께 세이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두 손으로 서큐버스의 어깨를 붙잡아 벽에 밀어붙였다. 쿵 소리가 났지만 레오나는 개의치 않았다.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용사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 년이 아무리 음탕하고 천박한 음마라고 하여도, 어떻게. 네 년이 감히 어떻게!!”
“……뭘요?”
어깨가 꽉 잡혀있는데도. 두 다리가 땅에서 멀어진 채 벽에 붙들려있는데도. 서큐버스 아일렛의 대꾸는 태연했다.
“네, 네 년이 자지만 보면 눈이 돌아가고 미쳐버린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는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처음 보는, 생판 남의 것을. 더러운 자지를. 입에, 그렇게…….”
용사와 달리, 서큐버스는 쉽게 말했다.
“그게 왜요?”
“……뭐라?”
“용사님이 알려줬잖아요.”
할말을 잃은 용사를 두고 말을 이었다.
“서큐버스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붙잡고 있는 두 손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서큐버스는, 언제나 자지님에게 봉사해야한다고.”
“……아니.”
“서큐버스는, 자지님을 목도하면 늘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니야.”
“서큐버스는 존재만으로 자지님을 화나게 만드니까, 몸과 정신으로 사과드려야한다고.”
“아니다!!”
레오나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담벼락에 붙들렸던 서큐버스는 어느새 두 발로 서있었다.
“용사님에 제게 그러라고 하셨던 것들인데.”
레오나는 쥐어짜듯 외쳤다.
“아냐!”
서큐버스가 가슴께에 묻은 정액을 톡톡 털었다. 허벅지에 떨어진 가래침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일렛. 너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어떤 훈련도 이렇게 무겁고 고되지 않았다.
레오나가 힘겹게,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는. 나의. 내가.”
“좆집.”
서큐버스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오나홀. 성처리 노예. 자지닦개. 정액변소. 걸어다니는 의빈대.”
레오나는 그대로 굳었다. 차갑게 내뱉는 천박한 단어들.
서큐버스의 표정은 변함 없었다.
“그런 거잖아요. 나는.”
“아냐. 너는. 그런, 그런 게.”
보랏빛 눈이 조금 휘어졌다.
“아하.”
작은 입술의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용사님이 그래서 화났구나.”
서큐버스가 맨발을 움직여 한 걸음 다가왔다.
“용사님도 자지 쓰려고 오셨구나.”
“아니야.”
레오나가 한 걸음 물러섰다.
서큐버스는 짧은 보폭으로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거리를 좁혔다.
“정액 싸고 싶은데, 서큐버스가 없어서 화났구나.”
“아니, 아니야.”
“헤에.”
둘 사이의 거리는 끝내 좁혀졌다.
“이렇게 세워놓고서……, 아니라구요……?”
거지의 까만 자지를 붙잡았던 손으로 바지춤을 살살 문질렀다.
문드러진 자지를 머금어 털이 붙은 입으로 조잘거렸다.
“나 그래도. 용사님한테 드리려고 보지는 안썼어요.”
“아일렛. 그만, 그만.”
“서큐버스가 보지 안썼단 말이야. 보지는 가장 맛있는 자지를 먹어야하니까.”
밸트가 끌렸다.
바지가 스르륵 내려갔다.
답답했던 자지가 덜렁 튀어나왔다.
“다른 자지한테 몸대줘서 화났죠? 그치만…… 나, 서큐버스라 어쩔 수 없어. 서큐버스는 이러는 거잖아……♡”
“아냐. 그러니 그만 둬.”
“화내지 마요. 서큐버스가 달래줄게. 서큐버스의 방식으로 달래줄게. 특급 보지로 달래줄게……♡”
“그만 둬, 아일렛! 그만!”
“헤헤. 용사님 얼굴처럼 빨개진 귀두……. 맛봐도 되죠? 맛없는 자지 먹었더니 맛있는 거 먹고 싶어♡”
“그만! 멈춰! 아일렛! 그만!”
레오나는 눈을 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랫도리가 축축했다.
이불을 걷었다.
“쓰읍…….”
이불, 허벅지, 침대 시트까지 백탁액으로 흠뻑 적신 몽정.
거듭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꿈.
당황스러웠고. 짜증이 났고. 불쾌했고.
분노가 치밀었다.
“시종!”
큰 소리로 서큐버스를 불렀다.
어째서 이 따위 꿈을 꾸게 만든 건지.
그동안 ‘음마’로서의 면모는 익숙해졌지만. ‘몽마’의 능력은 단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서큐버스가 무슨 이유로, 무슨 배짱으로 이런 쓰레기 같은 꿈을 꾸게 했는지.
분노. 불안. 짜증. 흥분. 여러 감정이 뒤섞인 고함으로 시종을 불렀다.
“시종!! 밖에 없느냐!”
대꾸가 없었다.
남성기 때문에 침소에 들 때 하의를 입지 않았다.
발기가 풀리다 만 자지가 껄떡거렸다.
몽정으로 흘린 정액 때문에 차갑고 축축했다.
어기적거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 년이, 이 사특하고 음탕한 년이, 감히…….”
어지간해선 동료들의 잠을 깨우진 않으려는 레오나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누구와 자고 있는지 상관 없었다. 자기를 희롱하고자 이 따위 꿈을 부린 건지. 아니면 용사 파티 전원에게 이 따위 꿈을 끼얹은 건지. 대면하여 낱낱이 밝혀낼 생각이었다.
그 때, 용사의 침소 천막이 걷혔다.
“……요, 용사님? 무…… 슨 일 있어요……?”
레인저였다. 레오나는 용사 파티의 리더였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그것도 동료에게라면 더더욱 덮어씌우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으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브레리, 오늘 아일렛이 누구와 함께 있는가?”
“……네……?”
“그 음마년이 내게…….”
말끝을 흐렸다. 꿈 내용을 구태여 말할 건 없겠지.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서로의 살을 보는데 부끄럼 없는 사이지만, 이 꼴을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수치스러운 레오나였다.
“아니네. 혹시 그 음마는 에이솔과 함께 있는가? 아니면 수리엘라와?”
“……요, 용사님…….”
좀체 말하지 않는 레인저에게 레오나가 슬슬 짜증을 느낄 즈음이었다.
“……저. 아일렛은, 떠났잖아요…….”
“……어?”
“……그, 그저께. 떠났잖아요…….”
분노가 가라앉으니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레인저의 말대로, 서큐버스는 그저께 떠났다.
“……호, 혹시. 제가 차, 찾아 볼까요? 멀리는 안갔…….”
“……아니네.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하군.”
레오나는 고개를 떨궜다. 그 바람에 레인저의 아쉬운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를 챙기기에 여력이 없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벅지에 들러붙은 정액의 감각이 짜증났다. 꿈속 일이 비쳐보였다.
레오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적당한 크기의 유방이 들썩였다. 단련된 몸이 공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심호흡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봤다.
이렇게 감정이 격한 적이 없었다.
단지 꿈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서큐버스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아일렛이 남에게 아양 떨고 성처리하는게, 왜 그리 역겨웠을까.
“후우우…….”
서큐버스인데.
한낱 음마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레오나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납득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