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0






머나먼 대륙 어딘가, 브룬티어 제국과 오르카 성국의 전쟁으로 인해, 전쟁에 전절 머리가 난 일부 온건파들이 독립하여 미실리오스 왕국을 건립했다.




오르카 성국과 전쟁을 끝마친 부룬티어 제국은 전쟁 이후 국가를 복구하고 예전 수준만큼 재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미실리오스 왕국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이후, 브룬티어 제국이 미실리오스 왕국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으며, 현재 미실리오스 왕국이 세워진 땅은 본디 브룬티어 제국의 영토였기에. 반환 혹은 부룬티어 제국의 속령이 되길 원하였다.




하지만 왕국의 왕 카이살리스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브룬티어 제국의 황제 레예브 4세는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하여 브룬티어 제국과 미실리오스 왕국 간의 전쟁은 4년간 지속 되었으며, 수 많은 난민들과 사상자들을 낳게 되었고. 각 나라의 국왕과 황제에 대한 지지도와 충성도가 떨어져,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까지 되었다.




이에 미실리오스 왕국, 카이살리스 국왕은 자국 내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국민들 앞에 서서 세 달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연설을 했다.




브룬티어 제국을 제압하고 그 땅을 왕국의 영토로 수복할 자신이 있었던 왕이였기에, 자신감 넘치는 연설로 국민들을 감화 시켰고.




세 달 안에 이 전쟁을 끝내고 민생 안정에 다시 힘을 쏟으며, 전쟁 전의 활기가 띄던 왕국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 연설로 국왕은 국민들의 크나큰 지지를 얻게 되었고, 연설을 하며 내건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연설이 끝나고 약 사흘이 지난 오늘 밤.




왕은 일개 용병인 당신을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했다.





" 전하, 용병이 왔습니다. "



" 들라 하게. "





신하가 문을 열어 주어 들어간 식당에는 가운데 자리에 국왕이, 그 옆엔 왕녀가 앉아 있었다.




왕을 닮아서 잘 어울리는 검붉은색의 긴생머리와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붉은색의 삼백안, 또렷하고 예쁜 이목구비.




누가봐도 귀티가 흐르는 몸짓과 자태였기에 과연 왕가에 어울리는 자녀라고 생각이지만, 왜인지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였다.




조금 너무 빤히 봤을까, 왕녀는 얼굴을 붉히며 당신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왕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돌렸다.





" 국왕 폐하를 직접 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잿빛 까마귀 용병단의 단장, 셰인 윌로우라고 합니다. "




" 한 두번 보는 사이도 아닌데, 격식 차릴 필욘 없지 않는가?



자리에 어서 앉게.



아, 이쪽은 우리 딸 예카테리나라고 하네.



한 두번 스쳐가며 봤을텐데,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 하는 자린 처음이지, 예카테리나? "




" 아, 안녕하세요.. 윌로우씨.. "




"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주님.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으나, 이 자리에 공주님이 같이 있으셔도 되는지요? "




" 안될 건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네. 물론 우리가 이기고 내가 죽는 일은 없겠지만, 제국에서 보낸 암살자로 인하여 내가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예카테리나도 나 대신 몇 번 국정을 돌보기도 했으니, 이젠 넘겨줄 수 있는 건 넘겨주고, 가르쳐 줄 건 가르쳐 줘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인망이 더 두터운 것 같아. 하하하! "




왕의 칭찬과 호탕한 웃음에 예카테리나는 어쩔 줄 몰라했고, 당신은 그런 그녀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 아, 어서 들게. 식사를 두고 이렇게 있는 것도 실례이니, 먹으면서 내 이야기 해줌세. "





왕의 명에 당신은 수저를 들었고, 왕과 공주도 수저를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헌데, 어째서 이런 일개 용병단을 이용하여 전황을 뒤집으려 하시는지요.



왕국군의 사기와 국민들의 충성도를 높히려면 왕국군을 소수정예로 꾸려 요충지를 기습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 좋은 질문일세.



자네가 말한대로 나도 고려를 해보지 않은건 아닐세.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자네들은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이지 않나?



왕국군들은 군인이지만 또한 내 국민들이라네.



내 국민들이자 군인들에게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적의 요충지에 잠입하여 파괴 공작 및 요인 암살을 하라고 명령을 하겠나?



물론 내 군대이기에 실력이 좋은 자들도 있는 걸 안다네. 하지만 그들을 그런식으로 써서 잃는다면? 그로 인하여 전쟁에서 지게 된다면?



그렇기에 분명 용병단을 꾸려, 거친 환경 속에서 온 갖 일을 해나가는 자네 같은 사람들이 실력이 좋지 않겠나 생각을 했다네. "




"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폐하께서 말씀하신 공작이나 암살이 특기인 용병단이 아닙니다.



그런걸 원하신다면 저희가 아니라 다른 용병단을 소개.. "




" 아니.



난 자네들이 꼭 해주길 원하네.



왜냐하면 우리 딸이 자네의 용병단으로 했음 좋겠다고 내게 말을 했거든.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데, 들어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 왕국의 정식 의뢰를 받고 움직인 것도 몇 번이나 되니, 다른 용병단 보단 자네들이 좀 더 신뢰가 가는 부분도 있다네. "




" .. 알겠습니다.



폐하의 신뢰를 위해서, 그리고 아름다우신 공주님의 선택을 받았으니, 좋은 결과로 보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당신은 당신의 용병단의 특기가 아닌 임무를 맡는다는 것을 내키지 않아했으나, 이대로 나간다면 입막음을 위해 용병단이 사라질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끝마치고 당신은 성을 떠나기 전,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는 달을 보며 어떻게 해야하는게 좋을지 생각에 빠졌다.



그러던 중 공주가 당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윌로우 씨.. 아니, 셰인. "




" 갑자기 그렇게 부르시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공주님. "




" 익숙해졌음 좋겠네요. 단 둘이 있을때 앞으로도 이렇게 부를거라서요. "




" .. 알겠습니다. 공주님.



그런데,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




" 셰인.



나랑 결혼 해줘요. "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 좋아해요, 셰인.



푸흐흐.. 이제서야 마음을 전하다니..



아, 이번일이 끝나면 아버님께 셰인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말 할거에요.



셰인도 좋죠? 나랑 결혼 할 생각에? "





갑작스레 자기와 결혼을 해달라는 둥, 줄곧 좋아하고 있었다는 둥, 당신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공주를 보고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죄송하지만..



공주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왕가의 자녀인 공주님과 일개 용병단의 대장인 저와의 혼인을 허락하실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공주님께서 절 좋아한다는 그 말씀은 도무지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서 뵙기 전까지 공주님과 따로 만나 뵈었다던가, 공주님이 절 좋아할만한 접점이 있었다던가, 그런 것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 속에 없습니다.



헌데, 공주님은 저의 무엇을 보고 절 좋아한다고 하시는 겁니까? "





당신의 말에 공주는 아무런 말 없이 당신에게 다가와서 당신을 올려다 보았다. 당신은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으나, 공주가 손을 뻗어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다시 그녀에게 돌려,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 붉은색의 눈동자가 생기 없이 흐릿한 상태로 당신을 쳐다보고 있었으며, 그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으니 저 아래 심연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끈적하고도 검은 심연이.





" 셰인.



제가 어릴 때 어마마마가 돌아가시고, 그 후부터 감정이 사라졌어요.



키우던 개가 죽었지만 슬프지도 않았고, 재밌었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도 공감하지 못했기에, 공주였음에도 아무도 제 곁에 없었어요.



성안의 시녀들을 빼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도, 이야길 나눠주지도 않았어요.



내가 이상한건지, 세상이 이상한건지..



그러다 어떤 남자아이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 남자아이는 감정을 못느끼는 날 이상하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와 매일 같이 놀아주었죠.



같이 놀면서 그 아이 덕분에 여러 감정들을 다시 알아갔고, 미래에는 서로의 반려가 되자는 약속도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어요.



매일 같이 놀던 친구가.



미래를 약속한 내 반려가.



아바마마의 말씀으론 아이의 아버님이 반역을 저질러 숙청을 당했고, 그의 일가는 유배 되었다고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증오를 느꼈답니다.



반역이 중요한게 아니였어요. 내 유일한 친구가 사라졌다는 게 더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이였기에, 아바마마가 미웠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 아이가 그리워졌고..



그리움이란 감정도 깨닫게 되었지만, 어째선지 단순히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아니였어요.



보고 싶은데, 가슴이 먹먹하고, 그 아이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헤실헤실 미소가 그려졌었죠.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이것이 사랑이란 것을..



아아.. 한 해, 두 해.. 해가 지나가면 갈 수록 그 아이가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웠어요. 그래서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날 좋아할 수 있도록, 외모도 가꾸기 시작했고, 마음도 올 곧은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언제 만날 수 있을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저는 제 시종에게 어떤 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어요.



그 이와 비슷한 남자를 보았다는 이야기를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성 외곽에 있는 소도시로 향했어요. 거기서 그 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있었어요.



내가 사랑하고 내게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이가.



내 진정한 벗이자, 내 진정한 반려가 될 사람인 그 이가.



하지만 그 이 곁에는 제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달라 붙어있더군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며 그리워 하는 그 이에게..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게 납득할 수가 없었죠.



분명 사랑하는 건 난데..



어릴때 서로의 반려가 되겠다고 약속까지 했고, 우리들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내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였어요. "





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신은 그녀에게 지금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갔다.





" 그 아이..



어릴 때 날 지켜주다 손등과 얼굴에 큰 흉이 남았었는데..



당신의 뺨과 손등에도.. 똑같은 흉이 있네요..?



우연일까요..? "




" 그런거야 단순한 우연.. "




" 그 아이는 내가 곤란하게 만들어버리면,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자꾸만 입술을 혀로 훑었는데..



지금 당신도 그러고 있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봐요.



날 밀어내지 못하고 있잖아요.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며 밀어내면 될텐데.



그렇지 않나요, 셰인?



아니지..



로이 크로프트? "





당신의 본명을 부르는 공주를 차마 볼 수 없어서 고개를 다시 돌리려 했으나, 공주가 당신의 얼굴을 붙잡고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 크읏, 무슨 힘이..! '




" 고개 돌리지마.. 



아아.. 정말 나만의 로이..



이렇게 머리색도 바꾸고, 말투도 바꾸면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어..?



나만의 왕자님이 되어주겠다면서..



아무말 없이 매정하게 사라져놓고선,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시시닥거리고 있다니..



두번 다시 날 두고 가게 하진 않을거야.. "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던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손길은 목덜미를 타고 넘어가, 가슴과 배로 이어지며 고간으로 향했다.





" 읏.. 그만 둬주시죠, 공주님..



전 공주님이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전 오늘 공주님을 처음 뵈었단 말입니,



크흑, 읏.. 아.. "




" 처음 본 여자에게 욕정을 품는 건가..?



그럴리가.



이상하잖아..?



아, 그래서 그렇게 다른 년이랑 웃으며 걸어 간걸까.."





그녀의 손길 때문에 바지 앞섬을 뚫을 기세로 커지는 고간을 어찌 할 수 없었기에. 그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을 탐하는 손길을 느끼는 방법 밖엔 없었다.





" 마음 같아선 바로 방으로 끌고가서



사흘 밤낮 쉼없이, 로이.. 당신을 강간하고 싶지만..



일이 끝나면 어차피 보고하러 와야하니까.



그 때까지 참겠어..



물론 예전처럼 놓아줄 생각은 없다는 거, 잊지 않았음 해. "





당신에게서 손을 땐 공주는 우아하게 한바퀴 돌아 당신에게 인사하며 유유히 발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불현듯 잊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고, 다리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채, 손을 덜덜 떨며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하.. 하하하..



분명 완벽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하하하하하하.. "







1








" 어이, 대장. 괜찮아? "




" .. 아, 케이든. "




" 성에 갔다온 이후로 안색이 영 별로라고. "





용병단 창설 멤버이자, 친구이며 용병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케이든은 맥주잔을 들고 약간 불안에 떠는 듯한 당신의 옆자리에 앉았다.




당신의 용병단, 잿빛 까마귀 용병단은 왕실로부터 착수금 30,000 골리를 받았기에 파티 분위기였다. 덕분에 다들 내일이 없는 것 마냥 마시고 있었지만, 당신은 그런 분위기에 어울릴 수 없었다.





" 근데, 대장. 이 의뢰 할 수 있겠어?



왕실이 원하는 건 제국의 몰락일건데..



마지막엔 황제의 목까지 내놓으라고 할 거라고. "




" ..



.. 내키진 않지만,



도움을 받아야겠어.. "




" 도움? 어디? 누구? "




" 케이든. 내가 없는 동안 용병단을 부탁한다.



친구가 아닌 단장으로서 명령이야.



전장의 상황과 적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정리 해둬.



중간에 할 수 있는 의뢰는 받아서 할 수 있도록 하고. "




" 아니, 셰인?! 적어도 어디로 가는지 말은 해달라고~! "





당신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케이든에게 부탁한다는 한마디만 하고 길드를 떠나, 항구가 위치한 대륙 끝에 위치한 대도시로 향했다.







사흘이 걸려 도착한 항구 도시에서 곧바로 저녁에 출발하는 배를 잡았고,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 당신이였으나..





' 설마 아직까지도 토라져 있는 건 아니겠지.. '


" 끄응.. 이젠 나도 물러진건가.. 그런거나 걱정하고. "





웬지 모를 또 다른 불안감에 당신은 항구도시의 특산물과 만날 사람이 좋아할 이것저것을 사들고 배에 몸을 실었다.




배는 저녁이 되어 출발하였고, 당신이 향하는 곳은 동쪽 대륙의 어느 한 국가로. 예전에 휴가차 들렸지만 어째선지 그쪽 나라의 어느 용병단의 수장을 도와주게 되었다.




그렇게 그 용병단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나름 휴가를 보내는 동안 잘 지냈으나, 헤어짐이 좋지 않게 끝났기에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수장의 화도 풀어줄 겸 부탁도 할 겸 찾아가는 것이다.





" 그나저나 피곤하구만..



이봐, 얼마나 걸리지? "




" 아마 닷새는 걸릴겁니다.



더 빠를 수도 있구요.



그러니, 우선은 들어가서 쉬고 계시지요. 셰인 단장님. "





선원의 말에 고갤 끄덕이곤 선내로 들어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벽에 머릴 기대고 잠에 빠졌다.






*





" 단장님~ "




" 아, 라일라.



무슨 일이야? 의뢰도 없는데 불러내고.. "




" 오늘은 약재 시장이 열리는 날이라 혼자 가면 짐이 많아서 다 못들고 올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단장님, 같이 가주실 거죠? "




" 아니, 싫어. "





그러자 양볼이 한가득 빵빵해진 라일라가 당신을 째려보았고, 당신은 농담 한마디 했는데 두 번 했다간 큰일 나겠다며 너스래 웃으며 말했다.





" 농담이야, 농담.



아무튼, 그래. 같이 가자.



달리 할 일도 없었으니까. "





당신은 라일라와 함께 길드를 나서 약재 시장이 열리는 도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중심으로 가며 꼭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 없는 연인 사이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길에 있는 여러 가게의 호객꾼들도 커플은 좀 더 싸게 해주겠다는 말을 하며 호객을 했다.






' 후흐..



단장님과 제가 커플 같아 보이나봐요.



잘생긴 단장님이 내 남자친구.. '



" 흐헤헤헤.. "




" 어이, 라일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




" 쓰읍,  아, 아니에요!



아무런 생각도.. 헤에.. "





침을 흘리며 뭔가 음습한 생각을 하는 듯한 그녀에게 당신은 태클은 걸었고, 그녀는 아니라고 말을 얼버무리며 당신의 팔을 붙잡고 앞장섰다.




당신과 라일라는 그녀가 말한 약초 시장에 도착하였고, 여러가지 약재들과 붕대와 같은 구급품들도 구매를 했다.



호위와 경비와 같은 의뢰를 주로 맡는 당신의 용병단 특성상, 다치는 인원이 항상 많았기에, 그들의 치료는 성녀 후보였었던 성직자인 라일라의 몫이였다.





" 고마워요, 단장님.



오늘 같이 나와주지 않으셨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




" 고맙긴. 내가 억지 부려서 우리 용병단에 데려온건데.



무조건 잘해줘야지. "




" 에헤헤.. 단장니임.. "





라일라는 자연스레 당신의 팔에 팔짱을 꼈고, 그런 라일라가 싫지는 않은지 당신은 라일라를 내치지 않은채 그대로 발걸음을 길드로 옮겼다.






*





' 음.. 라일라.. 으으음.. '




" 리.. 나리! 셰인 나리! "




" 흠..! 흠, 흠! 아, 알프레드..



자네였나..



무슨 일인가? "




" 일단 하루 빨리 도착했습니다요, 나으리..



그런데 어떻게 나흘을 잠만 주무시는 겁니까요? 



물론 용병단 일이 고된건 알지만.. 전 나리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요. "




' 나흘을 잤다고?



이런.. 정신적 피로가 꽤 큰 것 같군.. '


" 내가 요즘 잠 잘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하하! "




" 어휴.. 알겠습니다, 나리.



그럼 일이 끝난 후 본국에서 뵙도록 하지요. "





선장은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으며, 한동안 멍하니 벽을 바라보던 당신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배에서 내렸다.





" 동방의 국가.. 고라..



5년만인가. "





도심으로 향하려고 항구에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웬 정체모를 여자의 손에 이끌려 골목 깊숙히 들어오게 되었고, 반격을 하려했으나 여자의 말에 당신은 주먹을 거두었다.




"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잿빛 까마귀 단장이시여. "





" 갑자기 끌고 들어가면 주먹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내 정체를 아는 것을 보아하니.. 홍화단 쪽이겠군? "





" 홍화단의 단장 보좌, '율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흠.. 서열 2위를 내게 보낼 정도면, 여기. 고라의 치안이 말도 못할 정도로 나빠졌단 얘기겠지? "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선, 그럼 그렇지 어째 잘되는게 없냐며 한탄하는 당신이였지만 그래도 나아가야했기에 그녀에게 앞장서라고 했다.



그녀는 품 속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며 당신과 함께 홍화단의 수장을 만나러 거리로 향했다.





" 가시죠.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율화의 뒤를 따라 도시 안쪽으로 깊숙히 향했고, 1시간 정도 걸어가자 익숙한 건물과 익숙한 풍경이 눈에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홍화단의 건물은 예전보다 더 의리의리해진 것 같았기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고개를 돌리는 족족 아름다운 벚꽃들이 당신을 반겨주었다.





" 돈 좀 들었겠군. "




" 아가씨께서 돌아올 한 사람을 위해 3년 전 싹 다 갈아엎으셨습니다. "




" 설마 그 한 사람이 나를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 "




" 자세한건 아가씨께 들으시는게 좋으실 듯 합니다. 호위는 여기까지 입니다. 들어가십시오. "






최상층에 위치한 큼지막한 여닫이 문을 율화가 열어주었고, 당신은 발걸음을 방 안으로 옮겼다. 방 안은 값이 좀 나갈 법한 물건들로 장식 되어있었고, 창으론 따스한 햇살과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잿빛 까마귀 용병단장이시여. "






깔끔하게 정돈된 고라의 전통복식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도톰한 입술에 발린 분홍색의 립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흑색으로 짙게 그린 아이라인이 자안의 눈동자와 꽤 잘 어울리며, 흑색의 긴 생머리가 날개뼈까지 내려오는 그녀는 차를 홀짝이며 당신을 반겼다.





" .. 그래, 오랜만이네..



근데 우리 서먹한 사이도 아니잖아, 휘인?



그 단장이란 호칭은 너무 딱딱하지 않나..? "





당신의 말에 홍화단의 단장 '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당신을 올려다 보자, 서쪽 대륙의 사람들과 다른 동쪽 대륙의 사람의 특징을 갖고 있는 휘인의 크면서도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 ..



어째서 절 그렇게 무심하게 두고 가버리신건지요, 낭군. "




" 잠깐만..



그렇게 올려다 보면서 말하는 건 반칙이라고..



그리고 낭군이라니? 단장보단 낫지만 낭군이라는 호칭은.. "




" 저의 낭군이시니까 낭군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혹시 저 말고 다른 아녀자가 생겼다거나 그런건 아니시겠지요. "





차가워진 시선에 고갤 슬며시 돌리려고 했지만, 더욱 더 차갑게 느껴지는 시선에 당신은 휘인을 품안으로 꼭 끌어안았고, 휘인은 어쩔 줄 몰라했다.





" 아아, 낭군..



낭군께선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




" .. 버린 적도, 너의 낭군이 되겠다고 한 적도 없어. "




" 허나, 낭군께서는 그 날 제게 지아비가 되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설마 저와 한 약속을 잊어버리셨다던가..



혹여 정말 제가 아닌 다른 아녀자가 생기셨다던가.. "




" 끄응.. 그런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일단 내가 여기 온 건 휘인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온거야. "




" ..



일단 말씀 해주시지요. "





휘인은 품에서 벗어나 손을 잡고 이끌어 탁자에 앉혔으며, 그녀도 건너편에 앉아 차를 당신에게 따라주었다. 당신은 차를 홀짝이며 이때까지 일어난 일들과 원하는 것을 말했고, 휘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예카테리나 왕녀의 이야기 나왔을 땐 눈빛이 섬뜩했지만, 그것도 잠시.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로 말을 하며 손을 잡았다.





"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낭군.



허나 제가 사랑하는 낭군이시지만, 맨입으로 낭군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




" 그래? 음.. 내가 선물도 가져왔는데 말이지.. "





당신은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



동대륙과 서대륙의 문화가 다르기에 접하기 힘든 고급 찻잎들과 휘인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바리바리 꺼내는 당신의 모습을 본 휘인은



' 아, 시간이 그리도 흘렀건만.. 낭군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계시구나.. 어쩜이리 사랑스러우실까.. '



라는 생각을 하며, 5년간 소식조차 없다 부탁이 있어 왔다는 말에 들었던 괘씸한 마음은 사라졌지만, 조금은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 큼큼!



낭군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5년 동안 아무소식 없으시다 찾아오셔선 부탁을 들어달라니요. "




" 아, 음..



뭘 해야 휘인의 화가 풀릴려나.. "


' 예상은 했지만.. 이걸로 풀릴 생각이 없다니.. '




" 낭군께서 제가 원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 응?!



아, 그게.. 그러니까.. 아하하.. "





어버버거리는 당신이 조금 답답한건지 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자릴 옮겨 딱 붙어 앉고서 당신의 팔 한쪽을 팔짱을 낀채 기대었다.





" 낭군.



낭군과 너무나 하고픈 이야기와 하고픈 것들이 많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만났는데, 금방가시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일정이 촉박하지 않으시다면 저와 시간을 보내주시지요. "





' 결국 이런 거였나.. 그때 이후로 데이트 같은 것과 거리가 멀어졌단 말이지.. '



" ..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휘인이랑 데이트 해야지.



음음, 그렇고 말고. "





데이트란 말에 얼굴이 새빨게진 휘인은 자세를 고쳐 당신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갑작스레 달려들어 키스를 하는 휘인이 싫지는 않았는지, 자연스레 혀마저 섞는 휘인을 내버려두었다.



오랜만에 하는 키스라서 그런건지 이 야릇하면서도 달다고 느껴지는 분위기와 맛은 휘인을 좀 더 품 안으로 껴안았고, 휘인도 당신을 더욱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 츄파하.. 낭구운.. "




" 휘인.. "





자세가 자세인지라 어정쩡하게 올라탄 휘인이였지만, 키스를 하며 엉덩이를 움직이며 당신의 고간에 자극을 주기엔 충분했고, 그로 인해 엄청나게 큰 텐트를 만들어버린 채 자기 주장을 완강히 하고 있었다.



휘인은 그걸 아는지 계속 움직이며 자극을 줬고, 약간 달뜬 숨을 내뱉는 당신의 귓가에,





' 낭군과 헤어지고 이 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낭군의 흉악한 물건에 기대해 물이 넘치는 제 그곳에 얼른.. '





안그래도 쌓여있었는데 당신은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뒷문을 열어 뒷쪽의 별채로 향하며, 오늘 하루 쉴틈 없이 따먹어주겠노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