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티셔츠에 돌핀팬츠 차림을 하고, 내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친구가 말했다.

 

 

“ 아~ 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어? ”

 

“ 없어, 그런 거. ”

 

 

얘는 항상 이런 식이다. 

그냥 자기가 심심하다고 느끼면 우리 집에 찾아오고, 출출한데 같이 야식이나 먹자고 새벽에 라면 들고 우리 집에 찾아오고, 자기 혼자 운동하면 심심하다면서 강제로 나 끌고 가서 달리기시키고,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런 지긋지긋한 악연이 1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 우리 집에 와본다고 딱히 할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또 온 거야? ”

 

“ 여기 오면 뭔가 할 일이 생길 줄 알았지. ”

 

 

자세가 불편했던 건지, 친구는 엎드리고 있던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똑바로 눕기 시작했다. 

딱 들어맞는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가, 입고 있던 옷에서 여성의 선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특히 가슴 부분의 선이 많이 부각되었는데, 부풀어 오른 곡선 중간에 2개의 돌출된 부분이...

 

 

“ 야! 내가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내가 우리 집에 올 때는 브래지어 차고 오랬잖아! ”

 

“ 차지 않는 게 편해서 그래. 왜? 신경 쓰여? 그런 거야? ”

 

 

친구는 창피함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지, 오히려 자기 가슴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 아니, 보기 흉해서 그래. 그것 좀 저리 치워! ”

 

“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 얼굴 되게 빨개진 거 알아? ”

 

 

또 시작이다. 또 뭘 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절대 말려들면 안 된다. 

저번에는 이런 식으로 빌드업을 시작해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단단히 흥이 들었는지 내 앞에서 15분 동안 춤을 춘 적이 있는데. 

내가 잠깐이라도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면, 자기의 모습을 제대로 봐달라며 서운해하길래, 그걸 끝까지 봐주느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또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어서 빨리 화제를 돌려야 한다.

 

 

“ 너 심심하다고 그랬지? 너 혹시 릴레이 소설이라고 알아? ”

 

“ 릴레이 소설? 아니 처음 들어봐. 그게 뭐야? ”

 

“ 서로 돌아가면서 소설을 쓰는 거야.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쓰다 보면 재밌는 결과물이 나올걸? 재밌을 거 같지 않아? ”

 

“ 재밌을 거 같은데? 한번 해보자! 난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싫으니까, 배경은 현대로 할게. 나 먼저 시작한다. ”

 

 

- 《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큰 고민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10년 동안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 남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 여자에게 아무런 이성적인 관심을 주지 않았다. 》 -

 

 

“ 로맨스 소설이야? 난 추리 소설이 좋은데... 일단 해보지 뭐. 그럼 그 남자의 관심을 끌어보는 게 맞겠지? ”

 

 

- 《 그 여자는 10년 동안 관계의 진전을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다. 

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 남자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도와달라며 같이 운동하자고 꼬셔 활동적인 것도 해보고, 새벽에 같이 야식을 먹으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 -

 

 

“ 그렇지, 잘 알고 있네. 그게 이성의 관심을 끌어보는 방법들이지. 다시 내 차례야. ”

 

 

- 《 하지만, 여자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여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여자는 혹시나 그 남자가 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새벽에 몰래, 남자의 집에 찾아가 자고있는 남자의 생식기를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혹시 작동이 안 되는 건가 확인도 해봤는데, 오히려 위력적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 -

 

 

“ 위력적으로 작동했다고...? 아니 그것보다도 어떻게 작동시킨 건데? 아무튼 고자는 아니라는 거니까, 이제는 여자 쪽에서 좀 더 강하게 나와야겠네. ”

 

 

- 《 여자는 어떻게든 남자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더 파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남자를 만나러 갈 때면, 옷을 야하게 차려입거나 아예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나가기도 했다. 

아예 쐐기를 박으려고, 인스타에서 유행한다는 섹시 댄스를 연습해서 그 남자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 -

 

 

“ 음~ 이제 성적으로 접근하는구나? 파격적인데? 평소에 그런 거 많이 보나 봐? ”

 

“ 시끄럽고 빨리 진행이나 해. 너 차례야. ”

 

 

- 《 하지만 여자가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전보다 사이가 더 멀어진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결국 참다못한 여자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다. 깜짝 이벤트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그 남자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 게, 자신이 10년 동안 꿈꿔왔던 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거 같았기에. 자신이 무릎을 숙이고 먼저 고백을 한 것이었다. 》 - 

 

 

“ 결국은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구나? 근데 여기서 남자가 고백을 받아주면 재미없지. ”

 

 

- 《 여자의 고백을 받은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고는 여자의 고백을 거절했다. 

자신은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말했다. 이번 일로 서로 어색해지지 말고, 지금처럼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자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같이 밥 먹고 놀고 웃는 친한 관계로 지내자고. 》 -

 

 

“ 고백... 거절하는구나...? ”

 

 

- 《 허나 여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자는 고백을 거부당하자마자 몸 뒤에 숨기고 있던 몽둥이로 남자의 머리를 내려쳤다. 》 -

 

 

“ 뭐? 머리를 내려친다고? 이거 로맨스 소설 아니었어? ”

 

 

-  《 여자는 남자를 단번에 기절시켰고, 그 남자를 어디론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그 두 사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 -

 

 

“ 아니, 내 차례인데 왜 니가 해? ”

 

 

- 《 남자의 부모님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여자만 아는 숨겨진 장소로 들어간 둘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사로잡힌 채, 사랑한다는 말만 말하도록 강요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잠자리에서도 밤일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남자는 탈출을 꿈꿨지만, 철저하게 감금당하여 그것은 불가능하였고. 결국은 자신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던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행복하게 남은 여생을 즐겼다고 한다. 》 -

 

 

“ 아니, 왜 너 혼자 끝내. 근데 왜 로맨스 소설에서 갑자기 왜 범죄 소설이 된 거야? 아까 내가 추리소설이 좋다고 해서 그래? 갑자기 이렇게 장르를 바꿀 필요는 없는데. ”

 

“ 이거 소설 아닌데? ”

 

“ 소설이 아니면 뭔데? ”

 

“ 예언서야. ”

 

“ 예언서라고? ”

 

“ 어쩌면, 수필이 될 수도 있겠네. ”

 

“ 수필이 된다니? ”

 

“ 모든 예언이 그렇듯, 예언서는 보통 틀리기 마련이야. 하지만 너의 선택에 그저 그런 틀린 예언서가 될 수도, 수필이 될 수도 있겠네. ”

 

 

이때 나는 이게 무슨 뜻인지 빠르게 알아차려야 했다.

 

 

“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의 선택은? ”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

 

 

내 답변을 들은 친구는 속이 아주 답답하다는 듯이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고, 큰 한숨 소리와 함께 다시 숨을 크게 내쉬더니, 어디서 꺼낸 건지 모르겠는 나무로 된 몽둥이를 꺼내 들고 내게 말했다.

 

 

“ 야 이 시발, 이 답답한 새끼야. 내가 너 좋아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