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들어가겠다."
또각이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 소녀. 대충 걸친 하얀 코트를 펄럭이며 들어오는 남색 머리의 눈매가 사나운 학생, 사오리였다.



마지막으로 선생을 봤던게 언제였지. 그녀는 공식적으로 범죄자의 몸. 선생이 샬레의 권한으로 보호해주긴 했지만 아직은 남들의 앞에 당당히 나설 순 없다. 그나마 정말 드물게 돌아오는 당번 차례가 선생을 볼 수 있는 기회 중 하나. 그녀가 유일하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사무실에 들어서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선생의 모습. 무언가 허둥지둥 거리는 그의 모습에 약간의 의문을 가진다.



"선생? 괜찮나?"
"어...어 괜찮아."
그때 선생의 등 뒤에 있는 긴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은빛 광택을 내는 목발. 목발이 왜 여기에?
사오리는 천천히 선생님께 다가간다.



"사오리. 잠깐만 오지말아줄래."
선생이 급히 말하지만 그녀는 점점 다가온다.
그러고 그녀의 눈에 새겨지는 끔찍한 모습.




선생님의 오른 다리가... 없다.








"이야... 이거 신기하네. 이런게 마술의 원리구나."
선생은 사무실에 새로 들인 의자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심심한 찰나에 중고장터에서 발견한 재미난 물건. 평범한 의자같지만 마술트릭에 사용되는 물건이다.



"이렇게 다리를 한쪽 넣으면. 오..."
의자에는 다리 한쪽을 안쪽으로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선생이 의자에 앉자 마치 한쪽 다리가 허벅지 아래로는 사라진 것 같아보였다.



"이제 여기에 붕대를 묶으면."
선생은 무릎에 대고 검붉은 물감으로 얼룩진 붕대를 감았다. 완벽해. 누가봐도 한쪽 다리를 절단한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와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꿈에도 모르겠지. 선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정도면 과하진 않겠네. 오늘 당번이 사오리였지."
선생은 이 의자를 발견하자마자 사오리를 떠올렸었다. 워낙에 멘탈도 강하고 냉철한 학생이라 어중간한 장난으론 역효과가 날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사오리에겐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고 충격이 큰 장난이 반응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선생. 들어가겠다."
'? 벌써??'
선생은 시계를 바라본다. 아직 당번 투입 하기엔 이른 시간인데? 너무 일찍 찾아온 선생은 당황하며 급히 자리로 돌아간다. 어라. 아직 자세한 스토리까진 준비 못했는데. 어쩌지.







"...선생..? 이게 어찌된..."
선생의 다리를 본 사오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분장은 완벽. 천하의 사오리도 놀랄 수 밖에 없는 퀄리티. 아무래도 다리가 없으니까 가짜라는 건 예상 못하겠지.



"누구에게 습격 받은건가? 누가... 선생. 나에게 말해주면 내가 당장..!"
사오리가 희번뜩한 눈으로 총을 집어들었다.
여기서 어중간하게 둘러대면 사오리의 분노에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선생은 머리를 팽팽 굴리며 지혜를 짜낸다. 어느 순간 머리 속에서 정말 완벽한 시나리오가 하나 떠올랐다.



"아니야. 사오리. 이건 누군가에게 공격받은 건 아니고...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맞나."
"대체 누가..!"
"이건 수술로 절단한거야."
"뭐..."
사오리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녀의 머리 속엔 온갖 망상이 떠도는 것 같았다. 사오리가 혼란스러울때 쐐기를 박아야한다.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 실은... 나 신장이 망가졌거든."
"신장이...? 왜..."
"...그건 그때 총이..."
선생은 힐끗 자신의 복부를 쳐다본다.



순식간에 사오리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사오리의 손에 들린 총이 바닥에 떨어진다. 새하얀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오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잘린 다리만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투석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이젠 한계인걸까... 결국 다리가 썩어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
선생이 별일 아니라는 듯 쾌활하게 말한다.
그럴수록 사오리의 얼굴은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괴롭게 일그러진다.



"...사오리. 내가 투석한다는 사실은 남들에게 비밀ㄹ..."
"미안. 선생. 잠깐. 돌아가보겠다. 정말 미안."
사오리는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총을 가지고 가는 것도 까먹고 미친듯이 복도를 뛰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하아."
샬레를 뛰쳐나온 그녀는 어두운 골목에 몸을 숨긴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심연에서 폐를 쥐어짜며 숨을 토해냈다.



어째서 나에게 아무 말도 안했던 걸까. 그때 그 총알이 신장을...? 그런 위치였었나?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그녀는 머리를 쥐어잡고 켁켁거린다.



"우웁...우윽..."
이내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린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구역질. 입에서 토사물이 철퍽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선생에게 뻔뻔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어리광을 부리고... 그런 1분 1초마다 선생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는데. 신장이 망가진 사람은 얼마나 살 수 있지? 1년? 2년? 다리가 썩기 시작한 사람은? 1년은 버틸 수 있나? 나머지 다리는 괜찮나? 팔은? 장기는? 귀는? 심장은?



사지가 썩어 문드러져 병원 침실에 누워있는 선생의 환각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호흡기만 달고선 의식도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억지로 연명하는 선생이 눈에 선명해진다.



"아윽...우으욱! 우웩..."
몇번이고 더 속을 뒤집어내는 그녀. 이제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선생을 만남으로서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내가 모든 걸 망쳤다. 미래를 나 스스로 부숴버렸어. 다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추악한 인간. 모두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지른 괴물.



"으그극...으으으...으아으..!"
그녀의 손톱이 바닥을 마구 긁어댄다. 까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새어나오는 손톱. 사오리는 그 자리에서 땅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고통스럽게 숨죽여 울부짖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가 조용해진다.



"....아니. 아니지. 한심하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선생을 살릴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 걸."









[괜찮아. 선생. 모든게 괜찮아 질거야.]
선생은 물끄러미 문자를 바라보았다.
샬레를 뛰쳐나가고 얼마 안지나 날아온 문자 한통.
불길한 그 문자에 선생은 몇번이고 연락을 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몇일째 연락이 되지 않으니 아무리 악질적인 장난을 즐기는 선생이라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이상한 일 하는 건 아니겠지..."
사오리를 찾아야하나. 하지만 어떻게?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그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특히나 이렇게 일부러 연락을 피하고 있다면 더 힘들겠지. 발키리나 C&C에게 부탁하면 안될 것도 없겠지만 그랬다간 자신이 한 질 나쁜 장난을 알려야만한다.



그러던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사오리였다.



"선생.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오리.
당황한 선생은 일단 사오리를 진정시킨다.



"사오리 잠깐...! 가까이 오지말고 멈춰서봐. 무슨 일인데."
더 가까이 다가오면 다리가 멀쩡한 걸 들킨다. 오면 안돼.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춘 그녀. 몇일 사이에 그녀는 굉장히 야위었다. 탁하고 공허한 그녀의 눈동자가 선생을 바라본다.



"신장이식자를 찾았다. 모든 준비는 다 끝났고 혈액형도 문제없다. 이제 적합성 검사만 끝나면 바로 이식받을 수 있어. 선생. 시간이 없다. 어서..."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선생은 여기서 죽어선 안돼. 선생은 모두의 희망이다. 그러니까..."
"너 무슨 짓을 한거야. 신장이식자가 누군데. 똑바로 말해. 사오리."
공포. 공포라는 감정이 선생을 집어삼킨다. 신장이식자? 설마 사오리가 다른 학생을 해친건...



"...걱정마라. 선생. 어짜피 곧 죽을 사람이고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인물이니. 살아남는 것만 신경써라. 선생."
"...너구나. 이식자라는 게."
"..."
사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침묵을 고수하던 그녀의 눈에서 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상한 소리만 하는 군. 선생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냥... 제발 그냥... 한번만 이기적으로 굴어주면 안되나. 내 삶따윈 헛되고 헛되니... 살아남는 다는 것만 생각하고 딱 한번만... 이기적으로... 따라와주면..."
사오리가 털썩 주저 앉고 흐느낀다.



"그냥 따라와주세요... 제발...용서해주세요..."



"사오리..."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오리에게 다가간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던 그녀의 두눈이 이내 커진다.



"..선..생? 다리가...? 이식한건가?"





















"악! 사오리! 미안해! 잠시만!"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선생.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선생이 비명질렀다. 개머리판으로 선생을 구타하는 사오리.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를뿐.



"나... 이러다가 진짜 죽어!"
움찔. 죽는다는 말에 몸을 파르르 떠는 사오리. 개머리판을 높이 쳐들고 내리치려던 그녀는 괴로운 표정을 짓더니 총을 바닥에 내던진다. 그러곤 바닥에 쓰러진 선생의 멱살을 잡고 힘껏 끌어올린다.



"선생이란 자는 정말!... 정도를 모르나?"
사오리의 눈에 다시 물이 송글송글 맺힌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 아는가? 하루 하루 무슨 기분으로! 몇번이고 자살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울부짖으면서! 어떤 지옥을 보냈는지 아냔 말이다!"
"미안해... 사오리. 안그럴게."
사오리가 천천히 손아귀의 힘을 푼다. 눈을 손으로 훑으며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바닥에 쭈그려앉아 흐느꼈다.



"정말...다행이야...정말...장난이었어서...다행이야..."
나는 그런 사오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