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무심한 표정으로 모모톡을 훑어보는 그.
그의 옆에서 아코가 힐끗힐끗 그의 눈치를 살핀다.



"...또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코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지만 선생은 핸드폰에 정신이 팔린 건지 반응이 없었다. 잠깐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아코의 표정이 순식간에 불안해진다.



"서...선생님?"
"...응? 아코? 뭐라 말했어?"
"아... 네. 또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해서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아코의 표정이 풀렸다.
"아니. 오늘 고생했잖아. 무리하지말고 조금 쉬고 있어."
"...근데 핸드폰으로 뭐 보시는 거에요?"
"...그냥 요즘 착하게 산거 같아서."
아코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어보인다.
"아...네...그렇죠. 그쵸."





'확실히 유우카 이후로 장난이 약했지.'
선생은 생각한다. 선생이 생각하기에도 처음 장난이 좀 심했다. 확실히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건 학생의 정서에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 슬슬 한계다. 아코와 사오리에겐 조절했지만 이제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 마침 좋은 아이디어도 있다.



'누군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 재밌지만 너무 고전적이고 식상하지.'
모모톡의 스크롤을 내리던 선생의 손이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꼿힌 곳엔 미카의 연락처였다. 이젠 입에서 피어오르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만 투명인간이 되는 건 어떨까.'







"으음~ 선생님 안에 있어? 나 들어간다? 들어갈게!"
덜커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미카. 이게 얼마 만의 당번이지? 선생님을 더 자주 보고 싶지만 선생님은 바쁘니까 어쩔 수 없는 걸. 당번도 자주 도는 것도 아니고... 나기사도 참☆. 당번 바꿔달라해도 선생님께 의지하면 안 된다느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말이야.



"어라... 안계시네."
텅빈 사무실. 잠깐 어디로 가신거네. 미카는 조용히 사무실을 둘러본다. 깔끔하고 고요하게 정리된 사무실. 여기저기에 선생님의 흔적... 미카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의 탁자로 쪼르르 달려가 의자에 풀썩 앉는다.



"오실때까지 누워 있어야지..."
행복한 미소로 푹신한 의자를 만끽하는 미카.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있었더니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으음...?"
깊은 잠에서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미카. 얼마나 잔거지. 선생님은 아직인가? 눈 떴을때 선생님이 위에 있으면 어떡하지? 꺄☆



미카는 조금은 기대를 하며 눈을 떴다. 하지만 눈 앞엔 공허한 사무실 천장.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응. 이건 역시 욕심이었네."
뒤로 젖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선생님은...?"
여전히 사무실에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벌써 밖은 어두운데... 어? 11시? 어라?



미카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불이 꺼진 텅빈 복도. 또각 또각. 인기척 하나 없는 샬레에 그녀의 발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샬레 전체를 돌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선생님을 보지 못했다.







연결음이 들리나 싶더니 끊어진다. 미카는 강박적으로 통화버튼을 다시 눌렀다. 이미 몇번이나 해본 전화지만 또 누른다. 이내 끊어지는 전화.



"으응..! 뭘까... 뭘까? 선생님이 왜 안오셨을까."
미카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사무실의 내선전화 리스트를 본다. 거기서 샬레에서 일하는 학생 하나의 연락처를 골라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지더니 졸린 목소리의 누군가가 받는다.



"여ㅂ..."
"미안해! 자는 데 연락해버렸네☆. 선생님 어디갔는지 알아? 오늘 샬레에 안오셨는데?"
"에..오늘 선생님 샬레에 계셨는데... 그보다 누구세요?"
"...무슨 소리야. 오늘 하루종일 본적이 없는데."
미카의 목소리가 험악해진다.
"...어라. 분명 선생님 사무실에 계셨는데요. 당번 기다리신다고 하시면서..."
"...아하하! 알았어! 늦은 밤에 전화해서 미안해☆."
미카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납치당했나? 범죄에 연루된건가? 마음 속에서 불안이 잔뜩 부풀어오른다. 그 풍선은 쉴새없이 커져 몸안에서부터 고통스럽게 밀어내고 있었다. 아니... 꼭 그러란 법은 없잖아. 오늘은 집에서 쉬고 계신게 아닐까. 선생님도 참. 문자 정돈 남겨주시지. 별 문제 없을거야. 응. 내일 아침이 되면 연락이 와있겠지. 그동안 선생님이 실망하지 않게 얌전히 있어야지. 응!






다음 날 해가 밝아오자마자 미카는 나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ㅇ..."
"나기짱. 선생님 연락돼? 어제부터 선생님이 안보이시는데. 샬레 사무실에도 안계시고 어디로 가신걸까. 혹시...혹..."
"잠깐. 미카씨. 진정하세요. 선생님이 사라지셨다고요?"
"응. 말 그대로 사라졌어."
"이상하네요. 저에겐 문자도 와있는걸요."
"...에?"
"연락 드려볼게요. 잠시만요."
끊어지는 나기사의 전화. 미카는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본다. 곧 다시 걸려온 나기사의 전화.



"선생님이랑은 통화했습니다. 안전히 계신거 확인했구요. 그나저나 어제 샬레에 계속 계셨다는데 미카씨 지금 어디 계신가요?"
"...응? 샬...레인데... 그럴리가 없는 걸? 지금도 안계시고..."
"...일단 선생님은 안전하시니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미카씨 진정하시고요."
"으..응. 고마워. 나기짱."
미카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본다.



어제 계셨다고? 그럴리가... 내가 전부 뒤졌는데? 계셨다면 내가 못 볼리가 없잖아.



미카는 즉시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분명 나기사는 전화를 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미카의 전화는 그에게 닿지 않는 듯 했다.



"..."
싸늘한 표정의 미카. 한동안 그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아하하! 뭔가 엇갈렸나? 으음... 이상하네. 음... 피곤하신가. 나도 밤을 세웠더니 피곤하네. 선생님도 그러신거겠지. 일단 돌아가 잘까. 그래. 그러자☆"
미카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며 샬레를 나선다. 모든 게 잘된거 같은데 불안한 마음은 왜 일까.


















"저기... 말이야... 나 조금 화날려고 하거든. 그니까 똑바로 말해."
몇일 후 샬레의 사무실. 미카는 누군가의 멱살을 쥐어잡고 공포스러운 눈동자로 쳐다본다. 미카의 손에 쥐여진 학생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선생님. 어딨어?"
"방금...전까지 계셨..."
"어디? 지금 어디? 없는데? 니 눈엔 보여?"
"...자...잠깐 자리를 비우신게 아닐까요."
"이상하네. 몇일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 걸? 그때도 내가 당번이었고. 오늘도 내가 당번인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도 안계시네."
'마녀'의 표정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미카. 그 앞에 선 불쌍한 희생양은 숨도 쉴 수 없었다.



"이상하잖아? 내가 선생님을 찾아가면 왜 없는 거야? 삼일전에도 찾아갔어. 선생님이 트리니티에 방문 하셨다지 뭐야. 아하하☆! 그래서 달려갔는데 나만 못 봤어. 다른 학생들 다 봤다는 데 나만 보지 못했다고."
"그...그걸 저에게 물으셔도..."
"이틀전에도 찾아갔어. 어디에 있는 라멘집이였던가? 거기에 계신다고 해서 갔는데 없었어. 다른 사람 다 봤다는 데 이번에도 나만."
"어제는 선생님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어. 불도 꺼져있고 아무리 두드려도 나오시질 않아. 어제 하루 종일 앞에서 기다렸는데. 그런데 내가 뭘 들었는지 알아? 경비원은 선생님을 봤다네? ....아하하하하!!!!"
미카가 폭소를 터트렸다. 한참을 낄낄거리던 그녀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 학생을 노려본다.



"어디 있어. 말해."



그때 사무실로 급히 들어오는 누군가.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소녀는 다름 아닌 나기사였다.



"미카씨? 여기서 대체 뭐하는 거에요! 당장 그만두세요!"
나기사가 미카의 손아귀에서 학생을 끄집어낸다. 울먹이던 학생은 미카에게서 벗어나자마자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나기짱...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데? 정말 싫다☆. 역시 날 감시하고 있구나?"
"미카씨. 진정하시고 저를 보세요. 말씀 드렸잖아요. 선생님에겐 아무런 문제도..."
"으음....나기짱? 미안...미안한데...음...그래. 좀 닥쳐. 닥쳐보라고 좀. 응. 미안☆ 닥쳐."
미카가 불안정하게 웃으며 말한다. 불쾌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인지 한쪽 손을 강박적으로 꿈틀거린다.



"나기짱이 되는 선생님의 전화. 왜 나는 안되는 거야? 왜 나에게 거짓말해? 뭘 숨기는 거야?"
"제가 뭘 숨기다뇨! 전 아무것도..."
"그럼 선생님이 날 일부러 피한다는 소리야? 말 똑바로 해. 아무리 나기짱이라도 용서해줄 수 없을 지도 몰라."
미카의 광기 어린 눈이 살기를 뿜어낸다.



"있잖아. 갑자기 선생님이 증발해버렸다? 어디에서도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은 다 선생님을 봤다는 데 난 선생님의 발자국 조차 볼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 말처럼 내가 미쳐버린거야?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걸까? 애초에 선생님이란 사람은 없던 걸지도? 내가 만들어낸 백마 탄 왕자님이라거나...! 아하핫!"
"아니. 아니. 그럴리 없어. 이젠 알아. 모두 다 나를 속이고 있는 거 잖아. 선생님이 없는데 있는 척하면서 말이지. 나기짱도, 트리니티도, 샬레의 망할 계집년도. 선생님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죽였어? 그래서 연락이 안되는 거야? 그러면서 나에겐 연락했다면서 거짓말한거지? 말해. 나기사."
미카의 주먹에 가득 힘이 담긴다. 우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기사의 코앞까지 걸어왔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당장 전화걸어."
미카의 광기에 나기사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든다. 나기사가 천천히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 거리는 수신음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 같았다.



뚜. 뚜. 뚜.



"ㅈ..잠시만요. 미카씨..! 미카씨가 생각하는 그런게 정말 아니에요! 다..다시..."
나기사가 황급히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려하자 미카가 핸드폰을 낚아챈다. 우자작. 미카의 손에서 비스킷마냥 바스라진 핸드폰 가루가 우수수 떨어진다. 그와 같이 미카의 눈물이 바닥에 하나 둘 떨어졌다.



"...죽어."
미카의 주먹이 나기사를 향하던 그때.



"그만 두렴! 미카!"
"...선..생님."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온 선생님. 선생님이다. 가짜..? 어라. 진짜인가? 진짜잖아. 선생님이네.



멍하니 선생님을 향해 걸어가는 미카. 천천히 다가온 미카는 선생님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러곤 조용히 그를 껴안았다.



"...선생님이네. 진짜 선생님이잖아."
"응. 선생님이야. 미카."
"...어쩌지. 선생님. 나 미쳐버렸나봐. 나...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거 있지? 나... 진짜 망가져버렸네. 어떡하지?"
선생의 품에 안겨 횡설수설하는 미카. 선생은 그런 미카를 감싸 안으면서 나기사에게 나가라는 눈빛을 보낸다. 나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아니야. 미카. 실은... 선생님이 장난친건데. 이렇게까지 될줄은 몰랐어."
"...장난?"
"어. 그니까 미카는 미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어. 오히려 선생님을 찾아다녀줘서 고마운 걸."
"선생님이 안보였던 것도... 전화가 안되던 것도... 다 일부러 피한거였던거야?"
"..으..응. 미안. 미카. 다신 안그럴게."
멍한 표정으로 안겨있던 미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그럴리가 없잖아. 선생님 거짓말 완전 못해. "
어라. 미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달래줬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해. 선생님. 나..나...치료받고 올테니까... 정신병 같은거 금방...고칠 수 있을거야... 그니까 나..버리면 안돼? 미안해...미안...미안해...미..."
"잠깐... 정말 장난이었다니까? 미카야?"
"...선생님은 너무 착해서 문제야. 그런 거짓말까지 할 필요 없는걸... 아.하..아하하!"
















"선생님. 오늘 자기전 마지막 연락이야☆.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그렇게 부서져버린 미카를 되돌리는데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자신이 미쳤다고 믿어버린 학생을 달래는 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이 일을 어렴풋이 알게 된 나기사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혐오가 느껴지지만 정작 미카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단지 전보다 전화 오는 빈도수가 늘어난 것 뿐.



"그래. 미카도 잘자고. 낼 아침에 보자."
"응. 선생님! 낼 아침에 또 연락할게. 꼭 받아야해? 알았지?"
"...응. 미카. 잘자렴."
그렇게 끊어진 전화를 탁자에 두고 불을 끈다.
나는 침대에 몸을 눕히곤 조용히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