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공터. 저녁거리를 요리하는 모닥불.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싼 네 개의 커다란 천막. 바퀴 넷 달린 말 없는 마차.
용사 파티가 행군을 마치고 밤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이랬다. 누가 경계 근무를 서느냐에 따라 이런저런 소란이 있거나. 혹은 때에 따라서 야간행군을 강행하기도 했지만, 용사 파티가 주둔하는 모습을 보통 이랬다.
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모닥불을 쐬며 에이솔이 중얼거렸다.
그래. 원래 이랬어. 달라진 건 없다. 오히려 원래대로 돌아온 셈이야.
일렁이는 불길을 바라봤다.
원래 이랬다. 하지만 왜 이렇게 조용한 느낌일까.
“……에이솔…….”
조심스럽게 부르는 소리. 에이솔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쩐지 쿵쿵소리가 들리더라. 지진나는 줄.”
“……나, 그렇게 살 안쪘는…….”
“몇 킬로그램. 키 고려해줄테니까.”
잠깐 침묵. 에이솔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쭈. 이젠 대답도 안 해?”
“……마, 많이. 안, 안 나가…….”
다크엘프 레인저, 브레리가 쪼그려 앉은 채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벌건 불빛에 당황한 얼굴이 비쳤다. 서큐버스만큼은 아니지만, 그 크기만으론 압도적일 가슴이며 그 아래 뱃살을 구태여 얘기하진 않았다. 에이솔은 가만 입꼬리를 올렸다.
“어련하실까.”
“……지, 진짜야. 방금 저녁도 별로…….”
“그래. 살 빼고 건강하게 살아야지. 다크엘프니까 유병장수하면 되겠어.”
“……다크엘프…….”
브레리는 아련한 목소리로 자신의 종족을 중얼거렸다. 에이솔의 미소가 흐려졌다.
“……왜 왔어. 멀대?”
“……아, 아. 저, 그게…….”
에이솔은 한 손을 들어 검은 머리를 긁적였다. 고의성이 다분한 과장된 동작이었다.
“빨리 말해. 레인저라는 년이 이렇게 느려터져가지고.”
“……악몽, 꿔…….”
뭔가 시원스럽지 않은 말이었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는 동료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분야가 아닌데요. 성녀한테 가지 그래. 뭐, 수면제라도 만들어줘?”
“……아냐. 수면제는. 그냥, 저…….”
내용을 들어야겠다. 내용을 듣기 싫다. 양가감정 속에서 에이솔은 자기의 책무를 생각했다.
“내용이 뭔데.”
“……아일렛이, 나와…….”
에이솔은 아까부터 브레리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브레리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일렛이. 막, 아파해. 크게, 많이 다쳐. 인간들이, 아프게, 해서…….”
뜻밖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에이솔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무, 물론. 좋은. 좋은 인간도 있지만. 인간은 마족을 싫어하니까. 마족이 인간 많이 죽였으니까. 근데, 아일렛은. 그러지 않았는데. 근데. 마족이라서. 다쳐…….”
억측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원래 마족은 제후국 중 하나로 제국의 일원이었다. 마왕의 주축으로 일어난 유례없는 반란과 그 피해에, 황제령으로 마족의 시민권을 정지했다.
마족은 더 이상 제국법의 보호를 받지 않았다. 막말로 지나가는 마족을 처죽여도 무죄였다. 그리고 인간은 그럴 동기가 충분했다.
“……아파하는데. 나랑, 눈이 마주쳐. 근데. 나는, 나는. 아무 것도……. 그냥 바라 봐. 아무것도 못해…….”
태울 걸 모두 태운 모닥불이 활기를 잃어갔다.
황금빛 눈동자에 비치던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인간들이 가면, 그제서야 가. 가는데. 닿지 않아서. 뛰어도. 못 가서. 그러다가, 깨…….”
마법사는 동료의 고민에 즉답을 내렸다.
“개꿈이야. 발 닦고 잠이나 자.”
진단의 간명함은 전달력이 있을지 몰라도 설득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브레리는 적어도 당장 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호, 혹시. 아일렛이. 서큐버스니까…… 우리한테, 꿈에서. 도와달라고. 그러는 거 아닐까……?”
“그럴 리 없어. 걔 멍청해서 못해.”
“……저. 우리한테 떠나서. 도시에도 못가고. 막. 짐승들한테 물어뜨…… 공격당한 거면…….”
“걔네도 먹을 거 못 먹을 거 분간해. 마족이잖아. 걔 냄새 생각하면 못달려들걸.”
에이솔이 얼굴을 찌푸렸다. 에이솔은 학자였다.
그래서 뻔한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헌 속 몇 없는 기록에 따르면 서큐버스의 특징으로는 매료와 꿈을 응용하는 것이 언급됐다.
아일렛은 어느 것도 못했다.
꿈을 다루긴커녕 매료의 기초인 의태도 못했다. 마족 주제에 최소한의 마법도 몰랐다.
마족 중에서 서큐버스가 신체 능력이 약한 축이래도 너무한 정도였다.
멍청하다고 말했지만. 지능과 무관했다. 그냥 아일렛은 그런 서큐버스였다.
오직 발정하는 것. 그것도 평소엔 점잖은 척 싫은 척 하더니 사람이 바뀌어버리는 것처럼 성격이 변하는 것. 야한 몸뚱이와 더불어 그게 서큐버스 아일렛의 특징이었다.
그러니 브레리의 말은 가능성이 있었다. 서큐버스의 페로몬이 들짐승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정말 싫어하는 냄새일까.
확인 해보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가능성이 높은 건.
“……도시에 가도. 마족이라서. 막. 다른, 인간들이. 아일렛을…….”
그래. 그거.
브레리는 말이 느릴지언정 둔하지 않았다.
에이솔은 가장 어렸지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건 진즉 깨달았다.
“신경 꺼.”
“만약에, 그러면…….”
“그럴 일 없어.”
하지만 에이솔은 파티의 마법사였고, 지금은 고민을 들어주는 내담자였다.
“레오나가 임시증 줬잖아. 용사 파티 일원이었다는 종이쪼가리. 서큐버스가 팔랑팔랑 돌아다니면서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마족이라고 린치 당할 일 없을 거야. 걔도 눈치는 나쁘지 않잖아.”
그리고 내담자는 때에 따라선 긍정적으로 곡해할 필요도 있었다.
“네가 도시에 안가봐서 모르나본데. 우리 꽤 유명해. 알아? 용사 성녀는 말할 것도 없고. 너도, 막. 어? 장총 다루는 저격수라고 유명하다고.”
모닥불이 꺼져 깜깜했다. 에이솔은 조급했다.
다행히, 브레리의 얼굴에서 희미한 웃음을 발견했다.
“……그래……?”
“그렇다니까. 다음에 가면 맨날 방안에 쳐박혀 있지 말고 밖에도 좀 다녀.”
“……사람들이, 나. 보고. 싫어하고, 실망하고. 그러면…….”
“지랄. 그러면 살을 빼던가! 싫어하기는. 네가 뭘 잘못했다고…….”
에이솔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지상은 깜깜한데, 숲 속에서 올려다 보는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많았다.
선선한 바람 속에 모닥불에서의 탄내가 섞였다. 에이솔은 잔기침과 함께 일어섰다.
“나 간다. 불 제대로 끄고 자.”
“……볼 수 있을까……?”
목적어 없는 말에 에이솔은 떠나기를 유예했다.
“……용사님이, 다음, 도시에 들린다고. 거기서…….”
브레리는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보고 있었다.
시야 바깥이었지만, 에이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으면 자치구에 있겠지. 거기서는 마족이 자유로우니까.”
“……그럼, 거기서…….”
“야, 우리가 서큐버스 잡으러 가는 파티냐? 마왕 목 따러 가는 용사 파티지.”
아일렛과의 동행도 겸사겸사, 정확히는 ‘신’의 계시라곤 하지만, 본연의 목적은 그랬다. 마왕군을 대파했다고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별일 없을 거야. 마법사의 예측인데 못 믿냐?”
“……에이솔…….”
브레리는 그제서야 마법사를 올려다봤다.
“……근데 너, 저번에, 그. 야바위? 그거 하나도 못맞추지…….”
“아 씹. 닥쳐. 나 갈 거야.”
“……너, 그 때 얼마. 용사님이, 혼냈잖아…….”
“좆 작고 불알만 큰 년. 아일렛이 불알 걷어차는 꿈이나 꿔라, 씨.”
“……흐흐, 잘 자…….”
아련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일부러 땅을 찧듯 걸었다. 가벼운 몸 탓에 콩콩 소리만 났다.
천막에 들어왔지만, 에이솔도 잠 생각은 없었다.
책상 위 램프를 켰다. 집히는 아무 책이나 잡았다. 용사고 성녀고 일찍 자라고 하지만.
에이솔은 작은 키에 대해서 불만은 없었다. 체형은 조금, 아주 조금 아쉬웠지만. 뭐.
외형 좋아봤자 빛 좋은 개살구지. 어차피 시집도 못갈텐데.
책의 아무 군데나 펼쳤다. 활자체가 아니라 정갈한 필체. 본인의 글씨였다.
공책의 겉면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정갈한 필체, ‘개인실험일지’
“아.”
자기 전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이솔은 귀찮음이란 핑계로 쪽수를 뒤적였다.
맨처음. ‘실험체’에 대한 설명. 통제권 제어 실험. 약물에 대한 이런저런 반응. 아공간 응용 절단 및 봉합 실험. 일시적 미각개조…….
서큐버스가 있어 실험일지는 적잖은 분량을 갱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의미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내용을 떠나서, 검증과 결과가 대부분 공란이었다.
“미친년.”
욕설이 가리키는 대상이 따로 있더래도 듣는 귀는 자기였다. 그리고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험을 하면, 그 끝은 착정이었다. 결과 정리할 기력도 없는 착정.
서큐버스.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가슴이 크니까 무게만 더럽게 나가지.
이젠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쪽수를 넘기던 손이 점차 느려졌다.
실험일지는 두꺼운 공책의 절반 지점에서 끝났다. 그 때의 실험들.
생각하기 싫었다. 몸도, 마음도 너덜해졌다.
결과란에도 유독 거칠고 크게 써진 글씨. “절대, 다신 하지마.”
“미친 짓이지.”
그 다음, 마지막 실험. 용사의 허가와 지시로 해야했던,
두 번 하기 다시 싫었던, ‘진심을 이야기하는 마법’
“하아아.”
그 때도 그랬지만. 회상할 때마다 힘든 마법이었다.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이미지들.
마탑. 그 좁은 방에서. 빗자루. 엄마. 아빠.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씨발. 아빠, 엄마? 씨발. 씨발.
“씨발.”
왜 얘한테 이런 마법까지 써야했는데. 왜 스스로 그걸 건드렸는데. 왜 얘한테 이렇게까지 했을까.
결과란에 적힌 한 줄. 서큐버스는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에이솔은 공책을 덮었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채 한 달 못되는 기간이었는데도. 오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서큐버스가 오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신성의 상징이랍시고 자라난 이 좆을 가장 잘 놀릴 수 있었다는 걸. 앞으로 절대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용사 파티가, 일생에 할 만한 섹스는 다 해봤다고.
문득 브레리의 말이 떠올랐다. 볼 수 있을까?
몇 마디 덧붙이고 변형해보았다.
보고 싶어할까?
볼 수나 있을까?
봐도 괜찮을까?
에이솔은 어떤 질문에도 긍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