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꿀벌 여왕 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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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죽고, 어쩌다보니 여왕벌이 되어서, 어쩌다보니 수많은 '아이들'의 옆에 앉게 되었다.

정말 뜬금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의 비약이지만, 애초에 나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난 3개월간의 일을 타인에게 알려줄 수 있을리가 없다.



어쩌다가 죽었나?

길을 가던 중 장수말벌에게 쏘인 뒤 발생한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인해 기도가 막혀 사망.


어쩌다가 환생해서 여왕벌이 되었나?

불명. 낸들 알까, 의식도 제대로 없는 채로 꼬물꼬물거리면서 왕대를 빠져나왔는데.


어쩌다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나?

옆에서 날 보좌하는 호넷 걸 몇 명의 도움으로 무사하게 산란을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의 흐름이지.

숫벌이랑 교미를 하지 않아도 산란이 가능했다는게 나에겐 천만다행이었다.



"아, 엄마!"


"히코?"



...근데 날 도와줬던 그 몇 명도 결국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꿀벌과 다르게 호넷 걸은 한 집에 모두 뭉쳐살진 않기에 지금 내 곁에 남은건 히코와 후코, 둘 뿐이다.

네이밍 센스 구린거, 나도 알아.


편의상으로 엄마라고 부르는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그녀들이 날 부모처럼 대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도 꿀이 가득 담긴 오크통을 들고 나한테 온 거겠지.



"오늘 꽃밭에서 따온 꿀인데, 어디에 둘까요?"


"그냥 문 옆에 두고, 일로 와서 좀 쉬어."


"으헤... 봄 꿀은 이걸로 끝이다아..."



들고있던 통을 통, 하고 내려놓은 뒤 포르르 나에게로 날아와서 푹 껴안아버리는 히코.

여왕벌이라서 일반적인 일벌들보다 덩치가 조금 큰 탓에 그녀의 얼굴이 내 가슴에 파묻혔다.



"자다가 방금 일어났는데, 냄새 안 나니?"


"봄에 피는 프리지아 꽃 냄새랑... 엄마 냄새애... 으헿..."


"에구."



흐응. 오늘따라 히코가 영 힘이 없어보인다.

아무래도 꿀벌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마수라서 웬만한 일감으로는 지치지도 않고 붕붕 날아다닐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히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그녀는 순순히 힘든 일들을 마구 불었다.



"있지이, 요즘 막 인간들이, 자꾸 꽃 덩어리째로 캐가고, 막, 아우, 슬퍼..."


"아, 그 이야기구나..."



확실히.

페로몬 네트워크에서 관련한 이야기가 도는걸 본적이 있다.

최근 인간들 사이에서 무슨 열풍이 분건지 자꾸 꽃을 가져가려 한다고.


뭐, 어쩌다가 아이들의 꽃밭에 들르게 되어서 꽃이 참 이쁘다며 한두송이 꺾어가는 정도면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하면서 이 꽃이 어떻고, 향기는 어떤지, 꿀 맛이 특이하네 마네 한참을 떠들 수 있을 정도로 사교적이다.

다만 히코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한두송이 꺾어가는 정도가 아닌 거고.



"아우... 진짜, 메이리스는 그렇게 가져가면 안된다고, 튤립도 천천히 가져가라고, 마구마구 설명을 해도 그냥 막무가내로 낫 같은걸로 줄기를... 으아아아..."



곧이어 눈가에 물이 방울방울 맺히기까지 하는 히코.

...어지간히도 억울했나보네.

히코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에 잠겼다.


물론 원래 세계에서도 갑자기 때아닌 튤립 열풍이 분다거나 해서 울고 웃는 사람이 한가득 튀어나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꽃을 서리하는 것도 분명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직도 재잘재잘 억울했던 일들을 노래하는 이 마이페이스 히코를 무시한다면.


뭔가, 좀 고깝긴 하네.

우리를 지성체 취급도 안 해주려는 것 같아서.



"히코."


"그래서, 삽으로 뿌리가 다치니까 하지말라고 해도... 네?"


"혹시 지금 인간들 세상이 대강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아?"


"어... 왜요?"


"인간쪽 대빵이랑 대화를 좀 해보려고."


"아마 그 주변에서 사는 아이들도 있을건데, 페로몬 네트워크로 물어볼까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조금은 우리의 땅이라는 걸 존중해달라고, 항의하러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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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런 느낌으로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