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IF - 카루이자와 케이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였다면 (2학년편 4.5권 ‘각자의 성장’ 6)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6권 승리의 대가 2)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7권 문화제를 향하여 4)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7권 번외)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8권 말 그대로의 수학여행 5)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8권 어둠 끝에 켜진 빛)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9권 기운의 징조 2)

IF - 이치노세 호나미와 사귀었다면 (2학년편 9권 휴일을 보내는 방법 0)




(2학년편 9권 휴일을 보내는 방법 2)




(호나미와 함께 주말데이트로 헬스장 체험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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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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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사와와의 밀회를 마치고 헬스장 안으로 돌아오자 호나미는 이미 아미쿠라와 다시 합류해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보고 말을 멈추는 것을 보니,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

 


여자들끼리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겠거니 신경 쓰지 않고 1시간 정도 더 호나미, 아미쿠라와 함께 헬스장을 체험했다.

 


다 끝나갈 때쯤 아미쿠라가 눈치껏 좀 더 남아있겠다고 해서 나와 호나미는 먼저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서 정식 등록을 고민해 보고자 헬스장의 팸플릿을 받아 챙겼다.

 


매달 지출은 좀 늘어나겠지만, 나의 운동능력을 입학 때만큼은 못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끌어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한 시간 반가량 호나미와 함께 헬스장에서의 보낸 시간이 제법 마음에 들기도 했으니까. 

 


아마도 같은 여가활동을 공유한다는 데에서 오는 동질감이 아닐까? 나로선 뭐라 표현하긴 힘들지만, 그것이 최소한 긍정적인 감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옷을 다 갈아입은 호나미와 헬스장 밖으로 나왔다.

 


“키요타카, 팸플릿 받았어?”

 


“응. 진지하게 다닐지 고민해 보려고.”


 

“흐응...? 그렇구나! 그럼... 주말에도 키요타카하고 같이 있을 수 있겠네? 후후후.”


 

“그렇겠네.”


 

“그렇구나...!”


 

“이 다음은 뭐 해?”

 


작은 기쁨에 잠긴 호나미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헬스장만으로 호나미의 루틴이 끝은 아닐 테니 다음 일정을 물어보았다.

 


“보통은 서점 같은 데를 가곤 해. 그 김에 잡화점을 구경하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좀 힘들어서... 어디 벤치에 가서 앉아도 될까?” 

 


같은 운동이라도 환경이 다르면 체력 소모도 달라진다. 평상시 호나미의 운동 강도는 알 수 없지만, 오늘은 분명 나를 의식한 듯 평소보다 더 무리했다고 생각된다. 


 

그런 경우엔 무리해서 루틴대로 하기보다는 쉬는 선택도 중요하다.


 

“카페가 아니어도 되겠어?”


 

“응 거긴 좀 눈에 띄니까.”


 

아무래도 나를 생각해서 한 제안일까.


 

“마음은 기쁘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카페도 괜찮아.”

 


“그래? 키요타카만 괜찮다면 난 상관없어.”

 


오히려 지나치게 남들 눈을 피하는 게 더 수상해 보일 수 있다.

 


비록 내가 남들 눈에 띄는 걸 꺼려하는 편이라 한들,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차 한잔하는 모습까지 신경 써서 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마침 2층의 소규모 카페에 들어가자 조용한 자리가 비었기에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해 테이블 자리로 갔다.

 


자리에 착석하고 잠깐의 잡담 후 호나미가 새롭게 이야기를 꺼냈다.

 


“있잖아, 내가 키요타카에게 질문해도 될까?”

 


“질문? 얼마든지 해.”

 


“오늘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 역시 학생회장 선거 때문이야?”

 


주저하면서 물었지만 호나미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이야기를 꺼내려던 참에 호나미가 먼저 얘기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상관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쓴웃음을 지으며 호나미가 비로소 그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때는 키요타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놀랐어.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생회장 선거를 포기하려고 했거든.”

 


다시 한 번 시선은 내 눈을 피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호나미의 고백이 멈추지는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야. 나는 사실 학생회마저도 그만두려고 했으니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꽤나 충격적인 발언이다.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그때 그 순간 내가 끼어들어 호나미를 선거에 밀어 넣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호나미는 진짜로 학생회를 그만뒀겠지.

 


“그만둔다라... 역시 키류인 선배의 발언이 신경 쓰였던 거야?”

 


직접적으로 호나미의 과거에 대한 언급은 피했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응. 맞아.”

 


허무할 정도로 쉽사리 인정하는 호나미.

 


“키요타카가 학생회실에서 말했었지? 나에게도 내가 만들고 싶은 학교가 있을 거라고. 솔직히 말해, 학생회장에 대한 뜻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야.”

 


컵을 만지작거리는 호나미의 얼굴에 쓰디쓴 자조적인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냉정히 봤을 때, 나는 어디까지나 죄인... 나쁜 사람인걸. 그런 내가... 학생회장의 자리에, 아니 학생회장의 후보로 거론되는 것조차 미안했으니까.”

 


“호나미...”


 

나는 테이블 위로 조용히 손을 뻗어 호나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마치 정전기가 통하듯 움찔하는 것도 한 순간. 이내 호나미 또한 내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알고 있겠지만, 학생회장의 자리는 성인군자를 뽑는 자리가 아니야. 호나미가 뭘 두려워하는지 알겠지만, 결점이나 과오가 없는 사람은 없어. 그건 호리키타 전 학생회장이나 나구모 학생회장도 마찬가지고.”


 

“키요타카도...?”


 

“응?”


 

“키요타카도... 과거에 결점을 남기거나 나쁜 짓을 한 적이 있어?”


 

“나의 이야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대답을 위안으로 삼으려는 걸까? 


 

그렇다면 솔직히 대답하되, 그 이상의 정보는 함구하도록 해야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니까.


 

“있어. 그야 당장에 나는 호나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학생회장 선거에 강제로 밀어 넣었는걸.”


 

“아...”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나오자 호나미의 고개가 바닥을 향한다.


 

맞잡았던 나의 손을 살며시 빼내려는 듯 했지만,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호나미를 도망치게 둘 수는 없으니까.


 

속내를 감추는 것도 여기까지. 지금은 복잡하기 그지없을 그녀의 마음을 열어볼 순간이다.


 

설령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 나를 향한 원망이라 할지라도 말이지.


 

그런 나의 의도를 알아챈 듯 호나미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차분한 눈동자로 내게 물어왔다.


 

“그 이야기도 해야만 하겠지... 있잖아 키요타카, 나를 학생회장 선거에 밀어 넣은 이유... 물어봐도 될까?”


 

주저 없이 내가 준비해 온 답을 그녀에게 전했다. 


 

“호나미를 위해서였기 때문이야.”


 

“나를 위해서였다고?”


 

“그래. 호나미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그런 호나미가 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 그렇기에, 이대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내 의사와 반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공기 중에 긴장감이 맴돈다.


 

“어쩌면 말이야 키요타카, 학생회를 그만두고 A반을 향한 경쟁에 전념하는 게 옳은 길 아니었을까?”


 

호나미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진심인가, 아니면 거짓된 격려인가?


 

어쩌면 여기가 호나미와의 차후 관계에 대한 분기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우선, 호나미도 사실은 알고 있을 거야. 지금의 D반은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는 걸.”


 

“그건...!”


 

아니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한 반의 리더로서 자신의 반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나아가 외면한다면, 그것은 리더로서 실격사유니까. 


 

“최소한 나는...”

 


호나미의 말문이 막힌 사이 나의 의견을 마저 피력한다.

 


“최소한 나는 호나미와 D반이 이대로 A반 경쟁에서 탈락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 호나미에게는 재도약의 기회가 있을 테고, 그것이 이번 학생회장 선거라고 생각해.” 


 

살짝 힘을 주어 호나미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호나미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진행한 건 미안해. 하지만 나는 호나미의 의견에 반하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학생회장의 자리는 A반을 향한 경쟁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호나미라면 분명 학생회장과 A반 경쟁 모두 잘 해낼 거야.” 


 

잡고 있던 호나미의 손이 살짝이지만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 겠지...? 그래, 키요타카의 행동은 나를 위한 것... 맞는 거겠지?” 


 

조용히 내 말을 되뇌는 호나미.


 

하지만 말과는 달리 반대편 손에 든 종이컵이 으직 구겨질 정도로 힘이 실려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말만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나에 대한 서운함을 다 떨쳐내기 어렵겠지.


 

그런 그녀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내 진심에 대한 증거일 터. 


 

그리고 그 확인은 하나의 질문이면 충분했다.

 


“한 가지 질문할게... 대답해주기 곤란하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돼. 키요타카는 나와 호리키타 양 중에 누구를 응원하기로 했어? 랄까나... 미안. 아무래도 나구모 학생회장과의 일이니 말해줄 수 없겠지...”


 

나구모와의 내기나, 지지여부 이전에 호리키타는 나와 같은 반.


 

자신이 속한 반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같은 반에서 학생회장이 나오는 게 이익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호나미 역시 내 입에서 내가 선택한 후보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만약 내 입에서 호리키타의 이름이 나온다면 더 이상은 태연한 척도 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길어야 며칠. 어차피 얼마 뒤 밝혀질 이야기임을 알기에 여기서는 순순히 호나미의 물음에 답하기로 한다.


 

어차피 내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니까.


 

“호나미.”


 

“... 어? 뭐...라고?”


 

“나는 이치노세 호나미를 학생회장으로 지지한다고 나구모 회장에게 말했어.”


 

순간적으로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호나미의 표정이 벙찌는 것도 잠시뿐,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대답이 나왔을 때 사람의 표정은 이렇게나 밝아지는 것인가?


 

스르륵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호나미의 손이 곧바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럼에도 차마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그녀의 얼굴에 피어오르고 또 피어오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소의 잔향이 남아있는, 조금은 착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호나미가 말했다.

 


“그럼 안 돼, 키요타카. 마음은 정말 기쁘지만... 키요타카는 호리키타 양을 응원해 줘야지.”

 


“내가 지지하는 건 너라 하더라도?” 

 


“...!!”

 


“반의 이익을 떠나서 나는 호나미라면 분명 좋은 학생회장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슬프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기뻐 보이는, 그런 모순된 미소가 떠오른다. 

 


만약 이곳이 카페 같은 공개된 장소가 아니었다면 나를 끌어안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아침에도 말한 것처럼 호나미는 사람들을 잘 사귀니까 말이야. 분명 학생회장 선거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런 응원의 말 너머에 나구모와 약속한 나의 내기 조건을 밝히지는 않았다. 


 

설마하니 자신의 학생회장 당선여부에 나의 퇴학이 걸려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겠지. 


 

학생회실에서의 그날, 나구모와 내기를 성립시킨 이상 화살은 내 손을 떠났다.


 

단 하나. 호나미가 그럼에도 결국 학생회장 후보의 사퇴를 마음먹는다면 내기 또한 무효가 되겠지만...


 

좋으나 싫으나 내가 며칠 뒤 이 학교에서 퇴학당하느냐 아니냐는 호나미에게 달렸다.

 


“있잖아 키요타카. 키요타카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런 사정을 알 길 없는 호나미가 이 순간만큼은 나에 대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은 듯 차분히 물어왔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서...? 아니면... 나구모 선배와의 내기 때문에...? 단순히 그 뿐이야?” 

 


“글쎄, 갑자기 물어오니 뭐라고 대답해야 하려나. 정말로 좋은 학생회장이 될 거라 생각해서인데. 그보다 이유 같은 게 꼭 필요한 거야?”

 


“그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우리는... 우리는... 서로 다른 반인걸. 좋든 싫든 결국 마지막엔 A반을 놓고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상대이고...”

 


“응, 그렇지.”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의 마지막 날 그런 말도 했었지. 호나미가 언젠간 나와 자신의 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란 암시를 했었다.

 


호나미가 살짝 자신의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떠볼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호나미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줄 수는 없다. 호나미가 그 답을 알게 되는 건 내 계획의 종착지에서 일 테니까. 

 


“역시 잘 모르겠어. 분명 호나미와는 언젠가 경쟁해야 할 사이지만... 그래도 그냥 ‘호나미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다.’ 그런 이유만으론 안 될까?”

 


그저 이유 없는 선의였다는 그런 대답. 

 


하지만 ‘세상에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라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말이라는 걸 눈치챌 것이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다. 호나미에게 마냥 믿어달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잠시 나의 대답에 무언가를 생각하던 호나미가 물어보았다.

 


“있잖아 키요타카.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호나미가 한 말?” 

 


“응, 내가 키요타카에게 말했지? 키요타카는... 아야노코지 군은 나의 적 같은 게 아니라고.”

 


몇 달 전 무인도에서의 그날을 말하는 걸까? 

 


“응, 기억하고말고. 바로 그 다음에 호나미가 나한테 좋아한다 라고 고백했잖아.”

 


“우... 우앗?!”

 


순식간에 호나미의 침울했던 표정이 날아가고 왜인지 부끄러운 기색만이 남는다. 

 


“왜 그래, 호나미?” 

 


“그... 그때 말고!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건, 2학년이 되기 전 봄방학 때 말이야!” 

 


“아... 그때?” 

 


아무래도 내 방에서 호나미와 1년 후의 약속을 나눈 그날을 말하는 것 같다. 

 


서로 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호나미가 나를 적이 아니라고 단정한 것은 한 번이 아니군. 

 


“흠흠... 아, 아무튼...”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호나미가 다시금 말을 잇는다. 

 


나의 오해로 인해 한 번 분위기가 풀렸기 때문인지 좀 전보다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키요타카는 나에게... 같은 편은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인걸.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이번에는 호나미쪽에서 내 손을 잡아오며 온기와 함께 그만큼이나 따뜻한 말을 전해온다. 

 

 


“그 이상으로 나에게 키요타카는 둘도 없는... 하나뿐인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니까.”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호나미는 사실상 나를 자신의 동료들 그 이상의 가치로 대하고 있다. 

 


태어나 과거의 걸어온 길도, 현재 학교에서의 반도, 미래에 나아갈 길도 모두가 다른 우리지만 그저 서로 간의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만으로 그녀가 날 믿는다는 것은... 

 


착잡하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그것은 어리석은 믿음이라고 느꼈을 이 순간에 오히려 착잡함을 느낀다.

 


하지만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호나미를 통한 연애학은 파도, 파도 끊임없이 학습 의욕을 샘솟게 하는 교과서와도 같다. 그러니 이 감정에 대해서도 분명 복습할 날이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호나미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에 관심을 쏟을 때다.

 


잠시 내 손을 잡고 있던 호나미가 자신의 생각을 굳힌 듯 이번에야말로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결의를 전한다.

 


“나 결정했어. 키요타카의 바람대로 학생회장이 될 거야. 학생회장이 되어서 A반을 향해 다시 나아갈 거야. 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있으니까. 키요타카가 수학여행 때 해준 말... 이제는 알았으니까.”

 


여기서 시선을 맞춘 호나미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니까 키요타카도 하나만 약속해 줘.”

 


오늘 하루 보았던 호나미의 눈동자 가운데 가장 결의에 찬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중에 우리 반과 대결할 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것은 어쩌면 호나미가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이미 서로 승부하기로 예정 되어있는 학년말 시험 때가 해당하겠지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혹시나 그 전에 다른 시험에서 서로 간에 맞붙게 된다 할지라도 결코 봐주거나 하지 않겠다는 호나미다운 약속이다.

 


물론, 막상 그때가 되면 호나미의 결의가 흔들릴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호나미에게 묻고 싶었던 한 가지 시련에 대한 절반짜리 답은 되지 않을까.

 


“그래, 물론이지.” 

 


당연히 나로선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약속할게, 언젠가 서로가 경쟁의 장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하기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으로선 A반을 향한 도전의 불씨도 살아있다. 동시에 나에 대해선 신뢰와 애정이 섞인 선의의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

 


비록 언젠간 그녀의 신뢰를 배반하게 되겠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닐 테니까.

 


오늘의 과제이기도 했던 호나미의 마음 속을 열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도록 해야겠지. 

 


그렇게 이야기가 종료되나 할 무렵이었다. 

 


“아, 그리고 키요타카. 이거는 예전부터 생각을 해 본 건데 말이야...”

 


“응? 무슨 생각?”

 


“그러니까, 이건 또 별개의 이야기랄까... 아니,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은데...” 

 


호나미 답지 않게 뜸을 들이는 게 예사롭지는 않아 보인다. 나라고 해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있잖아 키요타카.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무언가를 결심한 듯 깊게 심호흡을 한 뒤 호나미가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이내 다시 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중요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뭔데 그래, 호나미?” 

 


“으응... 아니야. 아무래도 지금 할 말은 아닌 거 같아. 미안, 잊어줘 키요타카.” 

 


“난 상관없는데? 괜찮으니까 말해줘.”

 


“아니, 그러니까...”

 


“중요한 이야기였던 거 같아서 그래. 뭔지는 몰라도 그 말을 위해 용기를 냈던 거 아냐?”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며 잠시 정적이 감돈다.

 


난감한 표정의 호나미. 차라리 운을 떼지 않았다면 모를까, 입 밖에 낸 이상 나 역시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설마하니 하지만... 혹시나 호나미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일 지도 모르니까.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다시금 결의를 다진 듯한 호나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그럼... 대신 약속할게. 만약에 내가 학생회장이 된다면... 그때 꼭 키요타카에게 다시 말해주기로.”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나의 약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 호나미에게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겠지. 나 또한 호나미에게 1년에 걸친 약속을 제시한 후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니까.

 


어차피 며칠 뒤면 선거가 치러질 테니 그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조금 늦춰질 뿐이다. 

 


물론, 호나미가 패하게 된다면 그녀가 하려던 게 무슨 말이었든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알겠어. 갑작스럽지만 호나미가 학생회장이 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은 것 같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응원하고 있을게.” 

 


“후후후, 고마워 키요타카. 나 힘낼게.”

 


미소와 함께 남은 잔을 들이키는 호나미에게서 겨우 평소와 비슷한 분위기가 돌아왔다.

 


위태롭던 상태에서 일시적이나마 벗어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쨌건 칸자키에게도 희소식을 전할 수 있겠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좀 다른 이야기인데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도 돼?”

 


“응, 뭔데?”

 


오늘의 남은 과제 중 2가지는 끝냈으니 이제는 와타나베를 위해 분발하고자 또 하나의 질문을 호나미에게 건넸다. 

 


“아미쿠라가 어떤 남자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혹시 알아?” 

 


“... 뭐... 라고?” 

 


기분 탓이었을까? 

 


찰나의 순간, 주변의 온도가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은 오한이 엄습했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지금 극한의 영구동토를 떠올리게 하는 호나미의 차디찬 눈동자엔 충분히 그럴 힘이 있었다. 

 


컵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동작이 멈추며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는 호나미의 눈동자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면 오히려 내가 피하고 싶어질 정도로.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의외로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화난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렇기에 분명 같아야 할 호나미의 분위기가 몇 초 전과 완전히 달랐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인데.”

 


“그냥?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마코 짱이 좋아하는 타입을 물어보고 싶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키요타카답지 않아.”

 


분위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말문이 막혔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와타나베의 존재를 암시할 수는 없었다.

 


“수학여행 때도 같은 그룹으로 지내면서 느꼈는데, 아미쿠라는 귀여우니까 인기가 많을 것 같더라고.”

 


그런 변명 같은 말을 꺼내고서야 스스로가 최악의 자충수를 두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호나미의 표정이 눈에 띨 정도로 더 어두워졌으니까.

 


시행착오와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것이 나의 장기이지만... 역시나 처음 겪는 상황에서는 나라고 해도 이럴 수밖에 없다.

 


“응, 마코 짱이 귀엽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런데? 그게 왜 이상형이랑 이어지는데?”

 


“이어지...기 어렵지.”

 


“그래. 키요타카답지 않지?”

 


반복해서 나답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시선을 계속 피하지 않았다.

 


“아니 뭐... 그럴지도 모르겠네.”

 


조금 전까지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호나미의 미래를 향한 희망을 기원하던 그 밝은 분위기는 대체...

 


호나미는 입에 컵을 댄 체 여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왜 마코 짱의 이상형을 알고 싶어 했어?”

 


“특별한 이유는 없...”

 


“없다고?”

 


“없... 는 건 아니고, 이런 걸 물어봤으니까.”

 


나는 시선을 맞추는 것을 포기하고 카페 직원 쪽으로 돌렸다.

 


“아, 주문이 들어왔나 봐. 저기 초콜릿으로 신기한 음료를 만드는 것 같은데”

 


“나랑 만나기 전에 마코 짱이랑 어디서 만났어?”

 


눈을 피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나미의 추궁이 이어졌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헬스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두 삶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하던데, 눈으로 얘기했지?”

 


이 정도까지 확신한다면 부인해 봐야 쓸데없이 사태만 악화시키겠지.

 


“눈치 챘구나.”

 


“그럼 알지. 말했잖아, 키요타카는 나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고. 난 계속해서 그런 키요타카를 보며,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제야 나를 향한 호나미의 시선이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어버린 꽤나 과감한 대사에 ‘헙!’ 하고 입을 살짝 틀어막은 덕분이었다.

 


초점을 잃은 채 부끄러워하는 호나미의 모습은... 솔직히 꽤나 귀여웠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더욱 그랬겠지만.

 


“아... 아무튼!”

 


자세를 가다듬으며 호나미가 이어서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었다.

 


“이건 내 추측인데, 내가 학생회장 선거를 망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코 짱과 반 애들이 고민에 빠진 거야. 그래서 내 남자친구인 키요타카와 상의한 거 아니야? 나와 가장 가까운 키요타카라면 내 상태를 봐달라고 하기에 안성맞춤일 테니까.”

 


‘과연...’

 


간만에 호나미의 통찰력에 탄복했다. 정신적으로 극복한 증거라는 듯 호나미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봐야겠지. 

 


“훌륭하네. 정답이야.”

 


“하지만 이건 이해가 안 돼. 마코 짱이 좋아하는 타입은 왜 알고 싶었던 거야?”

 


아미쿠라와 사전에 만나 의논했다는 것까지는 추리했지만,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질문한 것과는 연결되지 않아도 무리가 아니다.

 


되도록 와타나베의 존재는 언급되지 않게 하려 했지만, 여자친구의 앞에서 다른 여학생의 이상형을 물은 이유를 질질 끄는 것은 좋지 않겠지. 이 정도는 와타나베도 이해해 줄 것이다.

 


오히려 사실을 밝히고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면 더 의미 있는 대답도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아미쿠라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어서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받았어. 호나미라면 마침 잘 알거라 생각했던 건데... 좀 일방적이었던 것 같네.”

 


이성이 좋아하는 상대를 간접적으로 알아내는 행동이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미쿠라의 입장에서 환영할 일인지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겠지.

 


그런 나의 행동을 호나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면...



“화 낼 거야, 키요타카.” 

 


정말로 화를 낸다기 보다는 어딘가 슬픈 듯, 동시에 공허한 듯. 호나미가 어스름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키요타카도 부탁받은 거니 이해야 하겠지만, 다른 여학생들과 키요타카가 이런 식으로 얽히는 건... 솔직히 불편해.” 

 


호나미치고는 꽤나 직설적인 발언이 아닌가? 

 


설령 같은 반이자 자신의 친구라 할지라도, 나와 이성적으로 얽히게 되는 것은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이나 심란함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겠지. 

 


“우선 마코 짱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직접 들어본 적은 없어. 그저 중학교 때 좋아했던 동급생이 있었다 정도일까나? 하지만, 키요타카의 부탁이니까... 조만간 마코 짱에게 기회를 봐서 살짝 물어봐줄게.”

 


“알겠어. 그 정도면 충분해. 고마워 호나미. 그리고, 그... 되도록 주의할게.” 

 


여기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비해 미리 면책 조항을 넣어놓기로 했다.

 


“하지만 나의 입장상 부득이하게 얽히는 학생들은 있을지도 몰라. 가령...”

 


“가령, 호리키타 양... 말이야?”

 


호나미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 올리며, 흥미로운 감정이 동시에 솟구쳤다.

 


이런 쪽으로 호나미의 속내를 엿보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것이 어쩌면 연인 간의 질투라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리키타와는 그저 입학 초 옆자리에 앉았던 인연으로 같이 다닐 뿐이야. 호나미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호나미가 오늘 헬스장에서 말한, 내가 단련된 몸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1년 넘게 입학 초부터 붙어 다니는 같은 반 여학생이 있다면 신경 쓰이기 마련일 것이다. 실제로 돌이켜보면 나와 호나미, 그리고 호리키타 3명이서 만난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내색은 안 했지만... 어쩌면 학생회장 선거의 경쟁자가 호리키타였던 것도 호나미의 결심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군.

 


“... 키요타카가 그렇게 말한다면, 난 믿을게. 하지만...”

 


어딘가 마뜩잖은 감정이 남아있는 듯 호나미가 복잡한 표정을 보여준다.

 


분명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외에도 나와의 관계가 궁금한 여학생들이 있는 거겠지.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야기를 꺼낸 후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더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나와 관련해 궁금한 학생이 있다면 더 물어봐도 좋아, 호나미.”

 


그 말에 조금은 미안한 듯, 동시에 잘 됐다는 듯 호나미가 또 다른 학생의 이름을 꺼냈다.

 


“키요타카의 반에서 카루이자와 씨도 종종 같이 있지? 일전에 나구모 학생회장의 앞에서 반의 정보원이라곤 했지만... 요즘도 그런 거야?” 

 


호나미와 사귀기 시작할 때 나구모 앞에서 했던 이야기로군. 아직까지 기억할 줄은 몰랐다.

 


“그야 그렇지만, 케이하고는 요즘 거의 이야기를 안 해서... 역시 호나미가 걱정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데.”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왜인지 조금 전 호리키타에 대한 대답보다도 오히려 호나미의 표정이 굳어간다.

 


“그래? 그렇구나...” 

 


납득한 건가 싶은 것도 한순간.

 


“그럼 사카야나기 씨와는 어떤 관계야?”

 


곧바로 이어지는 다음 타자. 

 


'그나저나 사카야나기 인가?'

 


호나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그녀와의 인연에 대해서 까지는 알지 못할 터. 체육대회 날 그녀와 단 둘이 방 안에 있었던 것도 신경 쓰이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경쟁관계일 뿐이야. 그 밖에 뭐가 있겠어?”

 


“그렇지... 만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러면?”

 


어떤 과거를 회상하는 듯 시선을 살짝 낮춘 채 자신의 의문을 말한다.

 


“이건 무인도 시험이 끝난 후의 일이었는데, 실은 사카야나기 씨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당시 사카야나기 본인에게 들은 이야기니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아무튼 사카야나기 씨의 말은 키요타카에게 다가서선 안 된다는 그런 말이었어.

 


그럼에도 그 직후 나와 사귀게 되면서 잊어버렸어도 될 그런 말.

 


하지만 그럼에도 호나미는 잊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그 의미를 생각해 왔다.

 


“이건 내 생각인데... 사카야나기 씨는 키요타카에게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설마...”

 


사카야나기가 나에게 우호적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에게 다가가지 말라는 것은 호나미에 대한 배려가 아닌 오히려 호나미를 자신이 조종하기 쉽게끔 나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일 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사카야나기는 방심할 수 없는 경쟁상대에 가깝다.

 


“사카야나기하고는 당장 다음 특별시험 때 경쟁해야 하는 상대니까. 뭐, 그나마도 우리 반 리더인 호리키타가 생각할 문제겠지만, 호나미가 말하는 그런 쪽으론 생각할 여지조차 없네. 그 뿐이야.”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순간.

 


“그럼 시이나 양은?”

 


“... 어?”



나의 인간관계 폭이 그리 넓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주변에 여성 지인이 더 적었으면 하는 게 사실이었다.

 


길게 끌어 좋을 게 없겠지.

 


“히요리는 그냥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독서 친구일 뿐이고.”

 


그저 그런 한 마디만을 했을 뿐이었다.

 


탁!

 


호나미가 무겁게 컵을 내려놓는다.

 


“왜... 왜 그래?”

 


“흐응... 키요타카? 이름으로 부르는 여학생이 둘이나 있구나. 카루이자와 씨, 시이나 양. 4명 중에 2명이나...”

 


‘그런 문제였나?’

 


어떻게 대답해야 호나미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그런 고민하는 모습을 보더니 호나미가 ‘훗’ 하고 못 참겠다는 듯 웃어버렸다.


 

“후후 장난이야 키요타카. 미안, 너무 몰아붙였던 걸까나?”


 

“아니, 괜찮아. 그래도 제법 실감 나던걸?”

 


어느 정도는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하지만, 정말 농담이기만 할까?


 

“나도 모르게 분위기를 타버렸네. 괜찮아, 나는 키요타카를 믿으니까.”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믿는다는 완곡한 표현을 했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은 한 눈 파는 일 없이 자신만을 바라볼 거라 믿는다는 뜻이겠지.


 

물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 역시 입장을 바꿔 호나미가 다른 남학생들에게서 대쉬를 받는다든가, 작업이 걸리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스스로도 알 수 없으니까.

 


그저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도 얼마간 카페에서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어느덧 슬슬 일어날 때임을 느꼈다.


 

앞으로 케야키 몰이나 조금 더 둘러보면 오늘의 데이트도 마무리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제안을 할 새도 없이 호나미로부터 쇼핑과 극장, 노래방까지 이어지는 알찬 오후 계획을 통보받아 버렸다.


 

“그...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닐까, 호나미?”


 

“응. 난 괜찮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특별 시험 준비에 학생회장 선거도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주말인 걸. 지금 고민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물며 회장선거는 아직 공지조차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생긋 웃는 호나미의 미소가 오늘따라 섬찟하다고 느껴진다.


 

“키요타카가 아까 말했지? 오늘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고?”


 

‘... 당했군.’ 


 

자승자박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호나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교란용으로 던졌던 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마치 내가 도망갈세라 손을 잡아오는 호나미를 따라 카페에서 일어섰다.


 

“오늘까지는 즐기고. 내일부터는 시험과 선거 모두 집중할까 해. 어울려 줄 거지, 키요타카?”


 

모든 고민을 떨친 듯 티 없이 맑은 미소.


 

칸자키에게 호나미에 대한 보고는 늦어지겠지만 이상하게 지금은 그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턴 나 또한 바빠지겠군.’


 

그런 짧은 평을 마음 속으로 남기며 나는 사양 않고 호나미를 따라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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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재밌게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