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아











"오늘 부로 용사 직위를 박탈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재판대 위에 서있는 것만 같은 엄숙한 분위 속, 나에게 떨어지는 무거운 한 마디.


"사유는 지속적인 평가 부진으로 인한 결정 입니다."


사형 선고와도 같은 소식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듯 했다.


"........"

직위 박탈이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왕국을 위해 헌신 했것만

그 말로는 고작 불폼없는 처량함 인가...



지금까지 수 많은 전장을 누벼왔다.

수 많은 마족들의 목을 베고,

전부는 아니어도 마왕군의 최정예인 사천왕 까지 물리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만악의 근원인 마왕을 못 잡았다는 이유로 해고라니..

솔직히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마왕이 그렇게 쉽게 잡을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인간의 영역에서 가능한건지 조차 모르는 초월적인 존재인데..

심지어 건너건너 들은 소문이지만은 현재 마왕은 자신의 왕좌를 비우고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하는 이 마당에 위치 파악도 가늠이 안되고...

그런데 그런 마왕을 어디서 어떻게 잡냐고..

적어도 존재의 여부라도 알려주던가.


"윽..."

하지만... 이제와서 이렇개 신세 한탄을 해봐야 뭐하겠냐.

이미 권력측의 명령은 떨어졌고, 아마 번복은 없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뻔 했다.

그야 왕국에서 나를 내친 이유는 아무래도 이젠 쓸모가 없어 보여서... 였을 테니까.

내가 짤렸다는건 아마 곧 새로이 사명을 부여 받을 자를 찾았다는 뜻 이겠지.

전성기의 나 때 보다도 훨씬 재능이 뛰어나고, 이젠 뒷 방 늙은이가 되어가는 나와는 다르게 파릇파릇한 젋은 청년으로.

그러니 같은 하늘 아래에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다느니 같은 구시대적인 전통을 회의 때 논하며 나를 쫒아낸다는 결정을 내린 거겠지.

진실을 보진 않았지만 그 일련의 과정들이 물보듯 뻔 했다.




"하아..."

나는 즉위 해제 소식에 천천히 눈을 감으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토해내는데.




"..."

어째서일까...


왜인지 모르게 억울함보다는 후련함이 몰려왔다.

분명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 들어오는 안도의 기분.



"..."


어쩌면.... 드디어 평온을 얻어서.. 였을지도 몰랐다.

그야 이젠 난 용사도 뭣도 아닌 한 명의 인간이 되었으니까.

다르게 말하면 국가에 귀속된 자가 아닌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는 뜻 이다.



"......"

생각해보면 그 동안... 용사라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이용만 당했었지.


"그래.. 이정도면 그만 쉴 때가 됐어."

그러니 나는 씁쓸하고도 여운진 혼잣말을 내뱉으면서도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제 뭐하면서 살아볼까."

나는 고요한 성 내를 걸으며 그런 생각에 잠기세 된다.


"차라리 왕도를 떠나, 먼 곳으로 갈까?"

아, 이참에 그냥 시골로 아주해서 유유자적 살아볼까.

평생 칼만 잡아와서 그런지, 자신은 없었지만 농경일에는 관심이 좀 있었다.


"... 그러자. 그게 좋겠네."

그래, 그럼 가는 거야.

나만의 삶을 찾으로 ㅡ

























◇◇◇








"하암..."


그렇게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으음.."

나는 아직도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으으..."

오늘도 느긋한 아침을 만끽하며 방문을 나선다.

"일어나셨어요? 좋은 아침이야."

그러자 이젠 당연하다는듯이 거실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여인이 있었으니.


"응, 좋은 아침이야. 실리아."

그녀의 이름은 실리아.

일단은... 동거녀 라고 해두자.


"아침 준비해 뒀어요, 맛있게 드세요."


그녀는 이 곳에서 만난게 된 시골 토박이 소녀였다.

한 평생 소박한 시골에서 보냈던 지라 무언가에 물들지 않는 새하얀 아름다움이 매력이었다.


"또? 몸도 불편하면서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오늘도 아침 식사를 준비해준 그녀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온다.

"괜찮아요, 지크 씨 덕에 마음 편히 잘 수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그녀는 정말 괜찮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자괴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는데.


"...."

왜냐하면 그녀 옆에 놓인 휠체어를 본다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었다.



"괜찮다니까요~ 자,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사실... 그녀는 불치병으로 다리가 마비된 상태 였다.

듣기로는 가장 오래된 기억 보다도 더 오래 전인 어린 시절부터, 쭉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었다는데.

"... 그럼 잘 먹을게."

"네, 입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이런 마음씨 고운 여인에게 이리도 처절한 운명을 내리다니..

불공평한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오늘도 맛있네."

"후후~ 실력 발휘 좀 했다고요?"

허나 그런 현실에도 실리아는 좌절하지 않고 밝게 살아간다.

"어서 먹어요! 식으면 맛 없다구요~?"

매사에 밝고 활기차며 암울한 처지에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그저 옆에서 지켜봐주는 내가 다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저희 아침 먹고 산책도 가요!"

이 시골에서의 우리의 하루는 실로 간단했다.

"응, 그러자."

풋풋하고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허기를 때우고,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 세삼스럽지만 정말 평화로워."

따숩게 떠오른 태양 아래를 거닐며 천천히 마을을 배회하거나.

"휠체어 미는데 힘들진 않나요?"

"이 정도는 가뿐하다고?"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가 마을의 경관을 함께 바라보는 등.

평온하고 느긋한 일상을 보내는게 전부였다.

"으음~ 오늘도 산들 바람이 기분 좋네요, 마을은 변함 없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이고."

그렇게 오늘도 실리아와 함께 언덕 위에서 평온함을 느끼던 와중이었다.


"그러고보니, 옛날 생각 나네요."

그녀는 마치 그리우면서도 여운이 담긴 눈빛으로 허공을 가늘게 쳐다보는데.

"뭐가?"

무언가 진중함이 섞인 모습에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기억나요? 저희 처음 만났을 때도 여기에 올라와서 같이 경치를 봤잖아요."



"음.. 그러고보니."

허나 실리아의 다음 말에, 나는 그제서야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네.."

그래, 생각래보면 우리의 처음도 여기에서 시작했었지.

"......"

낡은 서랍 속에서 먼지 쌓인 물건을 꺼내듯 기억 속에 묻힌 오래된 과거를 떠올린다.





















......

























"여기가 베이른 마을인가? 시골이라서 그런지 한적한 느낌이 드네."

때는 3년 전.

내가 이 곳에 처음 이주한 날 이었다.


"상가는 이쪽인가? 그닥 멀지는 않네."

첫 날에는 마을의 대략적인 모습만 파악하자는 마음으로 밖을 나섰었는데.


"으으....."



"응?"

길을 걷던 와중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으읏... 차...."

땀을 흘려가며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려는 젋은 소녀.



"......."

딱 봐도 자신의 체구로는 힘겨울 길일 텐데도 안간힘을 써가며 오르막을 오르려는 모습에 가련함을 느껴져왔다.



"저기,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그런 쓰디 쓴 표정으로 휠체어와 씨름을 하는 여자에게서 안쓰러움을 느낀 나는 그녀를 돕기 위해, 휠체어의 뒤쪽으로 다가갔는데.


"ㄴ... 넷..?"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자, 여자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화들짝 놀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본다.




"....?"


그리고 그 때... 난 그녀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어어.. 저기...."

사파이어 같이 맑고 퉁명한 푸른 눈과

무언가에 때 타지 않는 순수한 이목구비,

"누.. 누구시죠.....?"

비록 땀에 젖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고 비단 같은 머릿결.

누가 보더라도 미녀 라는 생각 들만큼 아름다운 외모 였다.


"엇.. 그게...."

뭔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어여쁜 얼굴에 숫총각이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샘솟는 부끄러움에 당황했었지만.


"휠체어로 언덕을 오르시려는게 불편해 보여서 도와드릴려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삐져나오려는 멍청한 표정을 고쳐 잡으며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네? 어엇.. 그러시면 너무 죄송한데..."

하지만 그녀는 처음엔 미안한 모습을 보이며 부담스러워 했으나.

"괜찮아요, 어디로 가시려고 하셨나요?"

"네, 그럼.. 저기 언덕 위로 올라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내 곤혼스러우면서도 감사함이 베인 표정으로 내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나저나 못 보던 분이시던데..."

언덕길을 올라가며 우리는 여러 말을 주고 받았다.


"아, 오늘부로 이 곳에 이주하게 된 지크 라고 합니다."

"아~ 그래서였군요?"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 있었지만.


"어쩐지, 원래 이 마을에 사시는 분 이시라면 제가 모를리가 없는데~"

"하하, 그런가요?"


"네! 워낙 시골 동네다 보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알죠."


대화를 이어갈 수록 우리들 사이엔 점점 자연스러움이 녹아들어 갔다.

"아..! 그러고보니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 실리아 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만날 일이 자주 있을테니 잘 부탁 드려요!"

"네, 저야 말로."


서로의 통성명도 확인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가며 길을 올랐는데.


"그나저나 어쩐 일로 이런 곳으로 이주를 결심하셨나요?"

서로가 초면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였다.


"네.. 뭐, 왕도 생활이 조금 지겨워져서.. ㅡ"

"네?! 왕도에서 사셨던 분이세요?!"


특히 실리아는 내가 왕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반가워했었다.

"네..? 네, 하지만 개인 사정이 생기기도 했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가 답답하기도 해서 이 마을에 오게 되었습니다."


"헤~ 저희와는 반대네요, 이 곳 사람들은 오히려 왕도에서 살아보는게 평생 꿈일 정도인데."


서로가 상반 되는 입장에 흥미로워하거나.


"왕도는 어떤 곳이나요? 말 그대로 나라의 중심이다보니 역시 사람들이 많고 인적이 넘쳐나겠죠?!"

"그리고 왕도에서는 새벽 늦게까지도 열리는 주점이 있다는데!"


도시의 삶이나 시설에 대해 물어보며 학구열에 불타는 학자 처럼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등.



"그렇죠? 그리고 ㅡ"


나는 그녀의 의문을 전부 풀어 줄 때 까지 입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청순하고 조곤스러울 것 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꽤나 열정적이시네...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아, 지크 씨는 저에게 궁금한거 없나요?"

그러다가 모든 궁금증이 풀리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에 대해 물어볼게 없냐고 하는데.



"음...."

나는 잠시 침묵에 잠기며 곰곰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어떤가요? 이 마을은."

그건 바로 아 마을에 대한 질문.

"대게 모호한 질문이네요."

질문을 받아든 실리아는 흥미롭다는듯 턱 끝을 어루만진다.

"일단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공기도 좋고, 한가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매일매일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하죠."

처음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지만.

"하지만 전망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아요... 사람들은 다 떠나려하지, 반대로 오는 사람은 없지.. 고요하다는건 달리 말해 사람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니까."

이내 그 웃음기에는 애잔함이 스며들어간다.

"실리아 씨는 떠나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나는 그런 울적한 모습에 괜히 언잖은 기분이 들어, 말을 돌릴려고 했으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런 모습으론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게 문제지만요."

꼼짝도 하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보며 말하는 실리아 씨의 말에 내가 말 실수를 했다는걸 깨닫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사죄의 말을 전했지만.

"네? 아.., 아니에요! 전 전혀 기분 안나빴으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녀는 내가 고개를 숙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건지 당황한 기색까지 내보이며 양손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네..."

"...."


그 후로는 한 동안은 분위기가 끊겨,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었는데.

"... 저기 실리아 씨.. 결례가 안된다면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잠시 후, 먼저 침묵을 깬 나는 그녀에게 문뜩 질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어쩌다 휠체어에 타게 되신 건가요...?"

그건 바로 그녀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

".....네?"

그런데 당시로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

"아.. 곤란하시면 그냥 무시해주세요."

충분히 그녀가 기분 나빠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개인적인 사연을 들춰내려고 했었다.


"아~ 이거요?  궁금하시면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당행스럽게도 그 당시에 그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버린 이유를 내게 말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반신 마비에요, 의사 말로는 아마 평생 이런 신세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죠."

"원인은.....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 아마... 어렸을 때 부터 쭉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실리아는 말하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덤덤하게 읊어나간다.

"허나 확실한건 이것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거죠... 장애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 받고, 오랜 시간을 마을 고아원에서 지냈으니까요."


"... 그렇군요, 너무 안타깝네요."

아픈 과거일 텐데도... 그녀는 꿋꿋해 보였다.

"뭐, 다 지나고 나서야 말하는거지만... 전 괜찮다고 생각해요. 비록 다리는 안움직이지만.. 행복은 주관적이고 저는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절망보단 긍정을 택하기로 했어요."

아니, 오히려 씩씩했다.


"뭔가.. 대단하시네요."

"그런가요?"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언듯 나와 비슷한듯 하면서도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는데.

"네, 자신의 신세에 한탄 할 만도 하는데 이렇게나 긍정적인 모습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에요."



하반신 불구에 부모에게 까지 버림을 받았으나 조건 없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녀와.

평생을 헌신한 국가에게 배신 당했지만 한적한 시골로 내로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나.

일생일대의 좋지 못한 일을 겪었으나 유우자적 살아가려는 모습은 비슷했지만.


"헤에~ 그런가요? 감사해요!"

순전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지금을 기뻐하는 그녀와는 다르게.. 

"아뇨. 별 말씀을...."

나의 본심은 사실상은 허탈함으론 가득 찬, 단념적인 선택이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시골로 내려와 살기로 한 것도 어디까지나 직위 해제로 인해 갈 곳을 잃어서였지.

사실은 아직도 용사 라는 명예에 아쉬워하고 미련이 남아 있었다.


"....."


그러다보니 나 보다 더한 일을 겪었지만, 순수하고 밝아보이는 실리아가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자, 도착했네요!"

그러던와중이었다.


"어.."

어느센가 도착한 언덕 위.

"어떤가요? 저희 마을의 풍경은."

나는 실리아와 함께 이 마을의 경관을 처음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 너무 아름답네요...."

푸르른 하늘과 그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농경지.

북적거리는 도시와는 사뭇 다른 매력이었다.


"가끔 될 수 있으면 여기서 마을을 내려다 보곤해요. 그야, 이런 평화로운 장소를 보고 있자면 제 마음 역시 편안해 지니까요."


마치 가문의 자랑인 것 처럼 자신있게 말하는 실리아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마을을 가르켰고,


"정말 그렇네요."

내 입가에는 자연스레 진심어린 미소가 묻어 나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저희 자주 만날래요?"

실리아는 내게 앞으로의 친분을 나누고 싶다는 제안을 건내왔고.


"물론이죠, 앞으론 아마 한가로울 테니까요."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여, 지크 씨!"

"네. 저야 말로..!"

정다운 말을 주고 받으며 마무리 되었던 하루.












......












"......."

그래, 우린 그렇게 만났었지.




"무슨 생각해요?"

"잠깐 옛날 생각하느라, 나도 우리 둘의 첫 만남이 떠오르더라고."

"후훗, 그래요?"


그 후로는 당연하게도 실리아와 난 정말 한 쌍이 된 것 마냥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응. 가만보면 예나 지금이나 이 마을은 바뀐게 없네."

지금 처럼 같이 언덕을 올라 마을 풍경을 봐라보며 감상 젖어들고,

같이 식사 자리를 함께 하기도하다가... ㅡ


"아! 그러고보니 기억나요? 당신이 동거하자고 했을 때도 여기였잖아요!"

"윽.. 그건...."




.... 그래.




결국에는 한 몸 처럼 붙어다니다 보니 한 지붕 아래에 사는게 어떻게냐고도 말해버려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 어디까지나 몸도 약하고 가녀린 여자다 보니까, 순순히 내가 지켜줘야겠다는 의미로.."

 
단언컨대.. 어디까지나 약자인 실리아를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헤에~ 정말요~?"

"그.. 그렇다니까!"


진짜로....


"네~ 뭐~ 그렇다고 해도죠."

하지만 실리아는 믿지 않는건지 아니면 장난기가 발동한건진 몰라도 얄미운 눈빛으로 나를 찔러보듯 쳐다 본다



"크흠... 어쨋든 실리아, 오후에는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어?"

"음~ 글쎄요. 마음 같아선 저도 농사일에 기담하고 싶은데."

"그건 안되니까 패스."

아무튼 대화 주제를 바꿔서, 오늘 오후에는 그녀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흥~ 당신만 일하는게 마음에 걸리는데."

"괜찮대도? 딱히 힘단 일도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평화로운 일상에 마음이 절로 누그러뜨러진다.


"우우, 그럼 천천히 생각해볼게요 어차피 시간은 많을 테니까."

"그래. 느긋하게 생각하자."

그저 오늘 같은 날만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어라? 지크 씨..."


하지만 ㅡ



"응? 왜."

마음 한 켠으로 그런 소원을 빌기 무섭게..


"저기.. 저쪽에...."

실리아는 심각해진 얼굴로 마을 한 구석을 가르킨다.


"어..? 저기가 왜..."

그녀가 가르킨 곳으로 시야를 돌리자, 나는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는데.

"저건 설마.. 불길..?!"


물감 처럼 크게 버진 붉은 화염과,

"지금 마을에 불이 난건가요?!"


하늘을 가릴 기세로 높게 솟아오른 검은 연기.

"실리아.. 일단 마을로 내려가자..!"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재난 상황이었다.


"네...! 얼른 근원지로 가봐요!"

"꽉 잡아!"

나는 실리아의 말을 따라, 황급히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윽...!"

대체 평온했던 이 마을에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 느닷 없이 불길한 기운이 다가왔다.


"저쪽이에요!"

"응, 알았어!"

그리고 정신 없이 길을 달리는 사이, 여러 좋지 못한 상상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


멀리서 보았을 때도 심각해보였던 불길이, 가까이서 보게 된 다면 얼마나 더 거대 할까.


"갑자기 무슨 일이.. ㅡ"

"저도 몰라요...!"


애초에 지상으로 내려왔는데도.. 기둥 처럼 솟은 거대한 연기 탓에 대략적인 위치가 가늠 될 정도였다.


그렇다는건 실제로는 내가 상상하는 것 보다도 더 크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실리아, 괜찮겠어?!"

"전 상관 없으니, 빨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해요!"




쿵 ㅡㅡㅡ!!




허나..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르릉....!!"


너무나도 사악하고, 거대한 몸체가 우리 앞에 등장한다.



"크아아앙 ㅡ!"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큰 울음 소리와 그에 걸맞는 덩치.


"지.. 지크 씨?! 저건 뭔가요..?!!"

"마족...!!"

건물 보다도 거대한 상급 마족이 화염의 중심에서 날뛰고 있었다.


"네?! 저게 마족이라고요?!!"

"그래..!"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저런 거대란 마족이 갑자기 왜 이 마을에...!"

"나도 몰라!"

아니, 벌써 부터 피부를 갉아 먹는 것 같은 불씨를 보면 이건 명백한 현실이었다.


"... 크아아앙!"


그런데 왜 저런 강력한 마족이 이런 시골 한복판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인가.


"크흑.. 물러서, 실리아!"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크 씨!"

허나 확실한건, 내가 실리아를 지켜야 된다는 것.

"걱정하지마! 말했었지?! 난 전직 용사였다고!"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


지금의 내게는 성검도 뭣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큭.. 괜찮아... 내가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더군다나 한 동안은 전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보니, 몸이 많이 녹슬었다는 점.


전성기 시절에도 애 좀 먹었던 상대를 이제와서 이기기에는 솔직히 불가능에 기까웠다.


"내가 상대 할 테니 어떻게든 도망쳐!"

그래도 내가 누구 였는가.

한 땐 역전의 용사라며 칭송 받던 자가 아니었던가?


"크아아앙 ㅡ!"

하는 거야.. 할 수 있어 지크...!


"인간! 죽인다아아!"

실리아를 지키는 거야!



"크아아아~!!"


"지크 씨?!!"


그야 난.. 실리아를 ㅡㅡㅡ












콰직 ㅡ!






"커헉....?!"

정신을 차렸을 땐, 시야가 많이 제한 되어 있었다.


"쿨.. 쿨럭!"

또 몸에 상처는 얼마나 심했는지 뼈가 돌출됨 상태였고.


"크.. 크허....!"

출혈 역시 막대했다.


"제.. 젠장...."

역시 안되는건 안되는 걸까.


"시.. 실리.... 아.."

아니? 어쩌면 조건이 어떠하든 결과는 똑같았을 거다.


그야 나에겐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지크 씨!!"


설령 몸을 내던져서라도....



"크아아악! 인간, 죽인다! 인간, 잡아 먹는다!"

지금의 난... 솔직히 말하면 만신창이다.

"꺄앗 ㅡ 이거놔! 이 괴물! 지크 씨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인간! 먹는다!"

"히익..?! 아.. 안돼...!!"

지금 실리아가 마족의 손에 잡혀 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물론이고 그녀 또한 죽게 된다.


"ㅇ.. 으윽..."

그렇다면 뭘 해야 하지...


"칫... 이봐....!!"

떠오르는게 있긴 하지만.. 과연 저 녀석에게 통할지...

".. 크릉...?"

아니,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 너..! 마족! 말을 할 수 있는걸 보니, 지능이 있는 거지?!"


실리아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짚으라기 라도 집는 심정이었다.


"부탁한다! 제발... 그 여자만은 살려줘!"

나는 끊길려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겨우겨우 무릎을 꿇는다.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제발......! 그 여자만은 살려줘..."

이어서 있는 힘껏 머리를 땅에 지어 박으며 마족에게 조아리는데.


"크하하하! 인간! 안심하다!"


거대한 마족은 나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

하지만 괜찮아..

실리아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난 어떤 처지라도 견딜 테니까.


"하지만 싫다! 인간은 모두 죽인다!"


허나... 마족은 그런 내 간절함을 걷어 찼다.


"뭐라고?!"

"인간! 다 죽인다! 우리 마족이.. 세상 지배한다!"


당장이라도 저 가녀린 몸을 으깰 것 처럼 손의 힘줄이 굵어지는 마족.


"안돼 제발! 실리아는 살려줘! 난 얼마든지 짓밝고 걷어차도 좋으니까 ㅡ!"


"으으.. 시끄럽다! 남자! 너 부터 죽인다!"

계속 되는 하소연에도 되리어 싫증을 느꼈는지, 실리아를 죽이기 직전, 내 앞에 서서 거대한 앞 발을 들어올린다.


"... 지크 씨..!!"

그리고 그 거대한 발 그림자가 나를 뒤덮었을 때, 그녀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렸는데.



"...... 실리아.."

아아.. 이대로 끝 인건가...


".. 크흑!"

즉위에서 해제되고, 시골로 내려와 겨우겨우 평화를 얻으며 행복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미안.. 실리아... 지켜주지 못해서..."


드디어..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싶었는데 ㅡ


"지크 씨!!!"




실리아... 미안해....


끝 까지... 널 보호하지 못해서 ㅡ






쿵...!!






나는 눈이 감기기 직전, 묵직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기고 말았다.




















◇◇◇






"에? 마왕님!"



아아...



"인간! 기절했다?!"



꼴린다.



진짜 진심으로 꼴린다.



"아아~ 그렇네. 연기 좋았어, 데빌 오우가."

"칭찬! 감사하다!"


전직 용사 지크.

너무나 매력적인 남자야.



정말이지.. 설마 했는데 나를 위해서 이리도 비참해 질 수 있다니.

벌써부터 속옷이 촉촉해지고 아랫 배가 쑤셔와서 참을 수가 없다.


오늘 밤.. 그냥 개같이 따먹을까?


"후.. 이젠 변장도 능숙해지다니..."

아 그러보니, 한 동안 본 모습을 감춰와서 그런지 까먹고 있었네.



... ㅡㅡㅡ !




푸르렀던 눈동자는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오오.. 군주...!"

청순하게 보이기 위해, 새하얗게 물들였던 머릿결을 원래 색으로 되돌린다.


"머리.. 숙인다!"

나의 진정한 모습에 오우가는 즉시 머리를 숙이고 예의를 갖춘다.


"후, 수고했다."


그래... 이게 내 진정한 모습 ㅡ

세상의 모든 이가 나를 우르러 보고 또 경멸하는 마족들의 왕.


"우선 상처부터 치료해 주고~ 아 맞다. 이거 불, 끌 수 있는 거지?"

"물론!"

"마을 사람들 최면 풀리기 전에 빨리 끄고 떠나, 뒤 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다! 마왕님! 충성한다!"


허나 지금은 이러한 사실을 감추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크의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저... 순진하고 소박한 시골 처녀, 

물폼 없고 나약해서, 약자를 보면 일단 선의 부터 내밀고 보는 지크만이 오로지 나를 볼 수 있게.


"정말이지, 귀여워 죽겠어!"



아아, 지크.. 사랑스러운 나의 왕자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당신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그대의 모험을 쭉 지켜봐왔다네.

나와 같은 검은색이지만 맑고 퉁명하게 비추어지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서만 엿 볼 수 있는 아름답고 때 타지 않는 순수함.


그저 정의만 무턱대고 외치며 실속만 챙기려는 이 전의 놈들과는 달라.

비록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용만 당해서, 하마터면 그 순진함을 잃을 뻔 했지만.

타이밍 좋게 공작원을 보내기 잘 했어.


이제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이 시골에서,

"잘자요♡ 하나 뿐인 동거인 씨?"

나만이 사랑해 줄 테니까...♡












◇◇◇







"으아악...?!"

간신히 눈을 떴을 땐 익숙한 천장이었다.


"허어! 허어?! 이게 대체...."

나는 왜 여기있는가.

그리고 몸은 왜 멀쩡한거지?

"어째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내 방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지크 씨..? 무슨 일 있어요?!"



그리고.. 내 비명에 놀라, 방으로 들어온 실리아.


"실리아?!"

"넷..? 네.."

그녀도 마치 아무 일 없던 것 처럼 한결 같아 보였다.


"괜찮아?! 다친데는 없고? 마족은 어떻게 된 거야?"

그래도 나는 혹시 몰라 그녀를 끌어안으며 걱정했지만.

"읏.. 지크 씨?! 갑자기 이러시면... 그 보다도 마족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실리아는 오히려 나를 별 난 사람 취급했다.



"뭐라고..?"

이게 무슨 상황인 걸까..


"악몽이라도 꾸신 거에요?!"



악몽..?

"....."


아... 그렇구나..

나는 방금 꿈을 꾸고 있던 거구나.

어쩐지.... 생각보다 현실감이 있긴 했으나, 이런 시골에 갑자기 고위 마족이 나올리가 없지...


"으응.. 아, 아마 그런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마."

"휴~ 그럼 다행이네요."


나 역시 그녀 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야.

이 모든게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이라서.

"준비되면 나와요, 저녁 준비했으니까."

그녀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어서 ㅡ



"응, 그러도록 할게. 고마워."

"괜찮아요! 평소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아! 그리고 오늘 저녁은 '아주 아주 특별한걸' 준비했답니다?"

"그래? 그걸 기대대는 걸?"

왠일로 자신감을 내보이는 그녀의 식사를 만끽하며 괜한 불안함을 쓸어내리자.


"네네! 꼭 마음에 드실거에요!"










"분명히..♡"







요즘 쇼츠에 중독되서 소설 쓰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 연재하던거 다음 편 써야하는데 큰일 났네..



아 그리고 이건 원래 어제 올릴려 했는데 하스스톤 흑마 500승이 얼마 안남아서 찍고 오느라 늦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