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노래방...?"


  "왜? 노래 부르는 거 싫어?"


딱히 그런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깊은 음악 취향도 있고, 어디 가서 노래를 부른다면 못 부른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근데 상황이 좀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과제하다가 갑자기 쏟아진 비. 이것저것 챙기고 다니는 성격 때문에 같이 과제하던 선배에게 우산을 빌려주고


답례 같은 느낌으로 '비도 오는데, 전에 술 한 잔 할래?' 라는 그녀의 요청에 거스르지 못했다.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 졸업 후엔 어떻게 할 지, 요즘 업계 동향이 어떤지...


그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술 마실 땐 최대한 다양하게 먹는 것이 좋다.' 라는 의견이 합치하여 3차까지 끝낸 상황이다.


  "안녕하세요-"


  "또 보네? 어느 방으로 줄까?"


선배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노래방. 평소에 자주 오던 곳인지, 주인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끝 방으로 주세요, 그나저나 오늘 손님이 없나봐요?"


  "일찍 닫고 가려고 했는데... 서비스 많이 넣어줄게 원하는대로 부르고 가."


  "맥주도 두 병 넣어주세요."


  "뭘로 줄까?"


  "뭐 마실래?"


상냥한 물음이지만, 어차피 선택지는 두 개 정도 밖에 없다. 카스냐 테라냐.


  "어... 테라로..."


  "테라로 두 병 주세요!"


  "10번 방으로 가면 돼, 맥주 바로 갖다 줄게."


...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간사한 점이, 평소엔 방구석에서 혼자 가창력을 뽐내다가


무대가 마련되고, 호응을 해주는 관객이 있으니 나도 모르게 들떠 올랐다.


  "노래 엄청 잘 부르네? 축제 때 왜 안 나왔어?"


  "그런가요...?"


선배는 초록색 맥주병을 진작 비운 채, 종이컵에 담긴 물을 술 삼아 땅콩을 집어먹고 있다.


  "근데... 여친 있어?"


  "그... 고등학교 때 한 번..."


  "흠... 지금은 없다는 거네?"


  "그렇죠?"


마지막 열쇠가 풀린 것처럼,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는 말 한마디에 선배의 고삐는 풀려버렸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 때문에 선배와 나의 입술 사이의 거리는, 별 다른 움직임 없이 좁혀질 수 있었다.


  "으읍! 츕..."


  "파하아... 어때?"


  "서... 선배...?"


  "누나라고 불러줄래?"


유전자의 각인 된 공포.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 등으로 인해 생긴 공포. 머리는 선배의 요청을 거부하라고 울부짖고 있지만


나의 본능은 선배의 요청을 거스를 수 없었다.


  "누... 나아... 그..."


  "왜에?"


  "cctv가..."


  "여기 오래되서 그런 거 없어... 만약에 있다고 해도, 사장님은 드라마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걸?"


논리적인 대답이다. 논리적인 대답에 말대꾸를 하기 위해 멈칫거리던 사이, 선배의 혀가 다시금 나의 구강을 유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