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안녕! 네가 레아구나. 혹시 안에 알버트도 있어?"


....................


"흠... 말이 없네? 혹시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런가. 나는..."


"한나 스토프."


"어, 맞아! 우리 아빠한테 들었나 보구나?"


....................


레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눈 앞에 있는 이 시끄러운 여자는, 분명히 반년은 지나야 돌아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나타나서 자신의 달콤한 신혼(?) 생활을 방해하다니?


"무슨 소리야 레아? 밖에 누가 왔어?"


공방 너머로 알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안 왔..."


"알버트! 나 왔어!! 네 친구 한나가 돌아왔다고~!!"


(이 년이...)


레아는 그녀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남자한테 치근덕거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집 안에서 꽥꽥 소리까지 지르다니...

참으로 경박한 년이 아닐 수 없었다.


"한나...?"


"알버트~!!!"


알버트가 나타나자, 한나는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


"컥-!!"


"너 못 본 사이에 키가 엄청 컸네? 그리고... 어깨며 팔이며... 엄청 늠름해졌고."


"그래? 한나 너도... 많이 바뀌었네..."


"정말?"


살짝 구릿빛한 피부를 가진 그녀는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녹안에, 적갈색 머리카락을 예쁘게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무엇보다 관능미 넘치는 그녀의 탄탄한 몸매는, 꽉 끼는 가죽 바지와 잘 조인 코르셋 덕분에 더욱 돋보였다.

어렸을 땐 거의 남자애와 다를 바 없었던 한나는, 어느새 뭇 사내라면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 요염한 미인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응.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네."


"후후...//"


....................


내 말에 살짝 홍조를 띄며 웃는 그녀. 나는 갑자기 옆에서 느껴지는 오싹한 한기에 고개를 돌렸다.


(깜짝이야...)


....................


옆에 서있던 레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공기조차 얼려버릴 기세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급하게 화재를 돌렸다.


"아, 소개가 늦었네. 한나, 얘는 내 새 가족인 레아야."


"응. 아빠한테 편지로 들었어. 근데 생각보다 어리진 않네?"


"그래?"


"우리 아빠는 레아가 어린애라고 했거든. 근데 애가 아니라... 거의 아가씨처럼 보이는데?"


"우리 레아가 성장 속도가 엄청나거든. 특이한 체질인가 봐."


"뭐, 잘 크는 건 좋지. 안으로 들어가 봐도 될까?"


"물론이지. 레아, 혹시 커피 좀 내와 줄 수 있어?"


....................


"부탁할게 응?"


"알았어..."


레아는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한나를 공방 쪽으로 안내했다.


끼익-


"편하게 앉아."


"고마워, 여기가 알버트의  작업 공간이야?"


"응. 아버지가 쓰던 걸 그대로 물려 받은 거지만."


"근데, 숙련공이 되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알버트는 견습 과정도 다 못 마쳤잖아."


"이번에 법이 좀 바뀌었어. 지금은 인력난 때문에 견습 과정을 2년만 수료해도 사업을 등록 할 수 있어."


"잘됐네. 벌써 자기 작업실도 갖고 있고, 멋진데 알버트?"


"하하... 이제 겨우 걸음마 정도 뗀 수준이지 뭐. 한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 친구 일을 도와준다고 들었는데."


"어, 걔가 자기 마을에 다리를 놓는다고 해서. 내가 벌목은 또 기가 막히게 잘 하잖아?"


"그치. 근데,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네? 아저씨가 한 반년은 걸릴 거라고 했는데..."


"내가 워낙 일을 잘해서 금방 끝났거든. 그리고...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도 들었고....//"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것보다, 알버트는 어떻게 지내? 꽤 바빠 보이는데."


"나야 하루 종일 자재만 깎고 있지. 다행히 레아가 집안일을 대부분 해결해줘서, 나름 편하게 지내고 있어."


"그래... 그 레아라는 애... 정말 대단하네."


"나도 우리 레아가 그렇게 똑 부러지는 면이 있는 줄 몰랐어. 가끔은 딸이 아니라, 엄마처럼 느껴진다니까?"


"푸하하-!! 그게 뭐야... 숙녀한테 실례잖아..."


"숙녀라... 그래, 이젠 그렇게 보이는구나."


"솔직히 아까 처음 걔를 보고 많이 놀랐어. 좀 비현실적으로 외모가 예뻐서..."


"자주 듣는 소리지. 예전엔 폴스가르에 살던 귀족이었나 봐."

 

"폴스가르?! 그런 귀한 몸이 이런 깡촌까지 내려왔다고?"


"깡촌이라니! 우리 자랑스러운 고향인데. 아무튼, 더 자세한 건 나중에 레아가 알려주겠지."


"저기 알버트."


"응?"


"그러면 너는, 걔를 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네?"


"뭐 그렇지. 레아는 아직 나를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 거 같지만."


"후후..."


갑자기 한나가 요염하게 웃으며 나한테 천천히 다가왔다.


"흠... 그나저나, 여기 너무 덥지 않아?"


"그래? 내가 창문 좀 열어줄까?"


"그래주면 고맙지~ 휴... 덥다 더워..."


한나가 자신의 가슴 쪽 단추를 몇 개 풀자,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골이 드러났다.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해져서 얼른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크흠..."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얘는 언제 이렇게 야하게 변한 거야...)


"알버트."


"헉?!"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레아가 쟁반 위에 컵 두 개를 받치고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상당히 화가 많이 난 그녀의 표정. 이번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피부에서부터 한기가 서렸다.


"커피 타왔어."


"고마워..."


"당신도."


"잘 마실게 레아. 어라? 방이 좀 시원해진 거 같은데...?"


....................


한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맛있게 잘 탔네. 근데, 알버트는..."


....................??


"우유 들어간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


빠지직-


더 노골적으로 시원해진 방 온도에, 나는 레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냐, 난 라떼도 좋아해! 이제는 입맛이 좀 바뀌어서..."


"흠~ 그래? 뭐, 아무튼."


....................


한나는 잔을 내려놓고, 작업대 쪽으로 걸어갔다.


"알버트, 이거 어떻게 쓰는 건지 알려줄 수 있어?"


"아 그거. 잠깐 있어봐."


나는 내 일에 흥미를 가져준 그녀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화가 난 레아가 문을 열고 나가버린 것도 모른 채.


"어때, 이제 한나도 사용 할 수 있겠지?"


"응~ 네가 설명해주니까 귀에 쏙쏙 잘 들어오네."


"뭐 별 거라고... 혹시 점심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같이 먹자. 우리 레아가 또 요리도 엄청 잘하거든."


"그래? 그 앤 진짜 다재다능하네."


우리 둘은 공방 문을 열고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레아가 푸짐한 요리들을 하나 둘 씩 놔두고 있었다.


"냄새 좋네~ 이걸 레아가 혼자서 만든 거야?"


"맞아,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었지."


자리에 앉은 우리는, 각자 접시 위에 음식들을 담았다.


"이것도 같이 먹어봐."


"고마워."


나는 고기 한 조각을 한나의 접시 위에 덜어주었다.


....................


그때, 옆에서 한기를 내뿜는 레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방금 내가 또 실수를 한 거 같은데...)


....................


"레아도 이리 줘 봐. 내가 썰어줄게."


....................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점심 식사. 

테이블 위에선 유일하게 한나 혼자만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


(오늘 따라 레아가 많이 예민해 보이네. 아침에는 텐션이 꽤 높았는데...)


....................


(아저씨 말대로 나중에라도 꼭 삐진 이유를 알아봐야겠어)


점심을 다 먹고, 나는 빈 그릇들을 전부 싱크대 쪽으로 옮겼다.


"레아, 설거지는 내가 할게. 가서 좀 쉬고 있어."


"아냐... 알버트는 오늘 작업 할 게 많이 남았잖아. 어서 가 봐."


"괜찮은데, 그냥 내가..."


째릿-


"그럼... 나는 일 하러 가볼게."


나는 한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어떻게... 더 있다가 갈래?"


"음... 오늘은 더 이상 일정이 없기도 하고... 좀만 더 앉아있다 가지 뭐."


"그래,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응~"


나는 그녀들을 부엌에 남겨두고,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공방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나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레아가 역시 낯을 많이 가리네. 이대로 둘이 놔두고 가도 괜찮을까...)


....................


(서로 친해졌으면 좋겠네)


....................


달그락- 달그락-


....................


달그락-


접시 닦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부엌. 먼저 침묵을 깬 건 한나였다.


"레아, 언니랑 같이 얘기나 하지 않을래?"


....................


"어서 앉아 봐. 앞으로도 쭉 같이 보면서 지낼 건데."


....................


"됐어."


싸늘한 말투로 딱 선을 긋는 레아.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즉시 입을 다물었겠지만, 한나는 결이 조금 달랐다.


"에이... 그러지말고~ 내가 레아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


....................


"우리 아빠가 말한 대로 진짜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


"내가 어렸을 때, 알버트랑 있었던 재밌는 일도 알려줄게 응?"


(재밌는 일...?)


무시하고 설거지를 하던 레아는 손을 멈췄다.


(아무래도...)


"이야기 할 마음이 생긴 거야?"


(저 여자에 대해서 미리 파악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레아는 팔짱을 낀 채, 한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마치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보라는 것처럼.


"흠~ 어떤 얘기가 좋으려나... 아, 그래!"


....................


"예전에, 알버트가 나한테 고백했다는 사실 알고 있어?"


!!!!!!!!!!!


시작부터 초강수를 두는 한나. 가벼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그땐 우리 둘 다 징병 되기 직전이었고, 서로 앞날을 약속하기엔 꽤 곤란한 상황이라..."


....................


"그래서 내가 알버트를 차버렸지."


(이 건방진 년이... 감히 누가 누구를 차...?)


그녀의 도발에 레아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래도... 이 여자가 여전히 알버트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물론, 지금은 또 다르겠지만."


(시발년...)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한나. 그녀는 손등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며 말했다.


"그 바보가 이렇게 늠름해졌을 줄 누가 알았겠어."

....................


레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나를 노려봤다.


(이제 의심할 필요도 없어...)


"레아? 언니 얼굴에 뭐 묻었니?"


(이 여자는 내 적이야)


마음 속 깊이 끓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레아는 입을 열었다.


"당신... 알버트랑 많이 친했어?"


"당연하지. 나랑 알버트는 가장 친한 고향 친구 사이니까."


"그래, 당신은 친구로서 알버트를 좋아하는 거네."


"그치~ 레아가 알버트를 아빠로서 좋아하는 거처럼 말이지."


....................


(싱긋)


레아의 공격에 바로 카운터로 맞받아치는 한나. 데미지가 더 큰 쪽은 레아였다.


"아빠 아닌데."


"흠~ 그래? 혹시 알버트도 너랑 생각이 똑같대?"


....................


"아니면, 레아 혼자서 착각하는 건 아니고?"


(이 씹년이...!!)


"근데, 레아는..."


...........??


"알버트를 정말 많이 좋아하나 보네."


"읏...//"


한나의 돌직구에, 레아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당연한 거 아냐? 가족인데, 좋아하는 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란 걸 알잖니~"


....................


"그 팔찌 예쁘네."


....................


한나는 시선을 레아의 왼손으로 옮기며 말했다.


"알버트가 준거야?"


"그래."


레아는 자신의 왼손을 은근히 앞으로 내밀었다.


"좋겠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거 몇 개 받았었는데."


....................


"후후... 우리 레아가 계속 착하게 굴면, 알버트가 그것보다 더 예쁜 걸 사줄지도?"


....................


(싱긋)


레아는 살면서 이렇게 말로 휘둘려 본 적은 처음이었다. 끊임없이 혓바닥으로 두들겨 맞은 그녀의 인내심은,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더는 한계야... 저 더러운 주둥아리를 당장...!)


"어때, 둘이 좀 친해졌어?"


(알버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알버트가 서 있었다.


"알버트..."


"한나, 우리 레아 어때? 너무 착하지?"


"응. 이런 효녀를 두고 있는 알버트가 너무 부럽네~"


(한마디만 더 해봐 이 시발년...)


"레아,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어디 아파?"


나는 안색이 어두운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난 괜찮아."


"그럼 다행인데..."


사실 일하던 도중, 나는 불안한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어서 돌아온 것이었다.

전에도 그녀가 화내는 모습은 여러 번 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분노에 차 있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나가 입을 열었다.


"저기, 알버트?"


"응?"


"아까 더운 음식들을 먹어서 그런가. 땀이 나서 그런데, 목욕 좀 하고 가도 될까?"


"어? 여기서?//"


"왜~ 우리 어렸을 때는 같이 씻기도 했잖아?"


....................


한나가 교태로운 미소를 지었다.


"크흠, 그래... 목욕탕은 저쪽이야."


"고마워~"


(뭐야 알버트...)


그 때 옆에서 레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한테는 한번도, 그런 모습 안 보여줬으면서...)


....................


한나가 목욕탕으로 들어가자마자, 레아가 고개를 돌렸다.


"알버트."


"어?"


"저 여자 맘에 안 들어."


"그, 그래?"


"당장 내쫓아버려."


"뭐?"


레아는 내 한쪽 팔을 붙들어 안은 채,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답이야 뻔했지만...


"그건 안돼. 오랜만에 보는 친한 친구라고."


....................


"네가 낯을 많이 가리는 건 알지만, 그래도 한나랑은 친하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내가 저 여자랑?"


"그래."


"하아..."


레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봤다.


"알버트."


"응."


"내가 더 중요해? 저 여자가 더 중요해?"


"뭐라고?"


"말해. 나한텐 중요한 거니까."


"그야..."


나는 레아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고양이처럼 글썽이는 푸른색 눈동자.

그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쪽-


"당연히 우리 레아가 더 중요하지."


"읏...! 진짜...?//"


"그래. 친구도 중요하지만, 나는 항상 가족이 우선이니까."


"헤헤... 그렇구나...///"


오랜만에 보는 레아의 웃는 얼굴. 이렇게 예쁜 모습을 평소에도 자주 보여줬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레아를 뒤에서 껴안으며 흔들었다.


"으이구... 우리 레아 이제 기분 좀 풀렸어요?"


"흥... 또 애 취급하기는..."


살짝 토라졌지만, 배시시 웃으며 풀어지는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알버트."


"응?"


"그럼, 이제 저 여자 내쫓아버려."


"아니... 왜 또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건데."


"내가 더 중요하다며?"


"그렇다고, 집에 찾아온 손님을 어떻게 막 내쫓을 수 있겠어..."


"흥, 어쨌든 저 여자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둘이 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한나는 레아를 꽤 마음에 들어하던데?"


....................


"알버트는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내가?"


"그래."


레아는 방금 전까지 나눴던 대화 내용들을 전부 알버트에게 밝히고 싶었지만, 그건 왠지 여자로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한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내가 왜 아무것도 모르겠어?"


....................


"알버트는 바보니까."


"하하... 거 참..."


가끔씩 여자와 대화하는 건 너무 어렵다. 그게 아무리 같이 사는 가족일지라도...


"레아."


"왜."


"오늘 왜 그렇게 화가 많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해둬."


"뭐를...?"


"나한테 항상 1순위는 레아야. 부모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진짜...?"


"그래, 그러니까 아까 같은 질문은 할 필요도 없어. 알겠지?"


"으, 응..."


레아는 갑자기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기... 알버트..."


"응."


"나는..."


벌컥-


레아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목욕탕 문이 열리며 한나가 나왔다.


"아 개운해~ 저긴 아직 예전 그대로더라?"


"다 씻었어?"


"응! 비누 향 엄청 좋네~"


....................


한나는 젖은 머리를 뒤로 묶으며 기지개를 폈다.


"으으... 밥도 먹었고 샤워도 했겠다... 이제 슬슬 집에 가봐야겠어."


"내가 바래다 줄까?"


"후후... 괜찮아. 것보다 너희들한테 보여줄게 있어."


............??


"짜잔-!"


한나의 손엔 종이 포스터 한 장이 들려있었다. 


[에버츠 봄 꽃 축제]


"봄 꽃 축제라... 이것도 오랜만이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아래 글씨도 읽어봐."


"음... 동맹국 상인들 대거 방문 예정...?"


"그래, 이번 기회에 우리가 평소에 갖지 못한 진귀한 물건들을 잔뜩 구매할 수 있다고!"


"그건 좀 흥미가 생기네."


"그치? 우리 레아한테 선물도 사 줄 수 있고. 화장품이라던가..."


(누가 우리 레아야. 불여우 같은 년...)


나는 레아의 표정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고, 포스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알버트가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그 물건 있잖아. 어쩌면 이번 기회에 얻을 수 있을지도?"


"그거라면..."


"그래, 결정 생성기."


....!!!!!


순간, 내 옆에 서 있던 레아가 크게 몸을 움찔했다. 나와 한나는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쳐다봤다.


"레아, 괜찮아?"


....................


"안색이 창백한데..."


"별 거 아냐."


한나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다시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쨌든... 둘 다 이번 축제에 참가했으면 좋겠어. 좀처럼 흔한 기회는 아니잖아?"


"그래, 내가 레아 데리고 꼭 놀러 갈게."


"좋아! 그럼 이건 여기에 놔둔다? 다음에 또 보자. 레아도 안녕~♪"


....................


"후후..."


한나는 나한테 윙크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가 집에서 나가자, 나는 레아를 소파 위에 앉혔다.


"레아... 무슨 일 있어?"


....................


"괜찮아. 나한텐 전부 털어놔도 돼."


....................


레아는 힘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알버트."


"어."


"아까 한 말... 진짜로 지켜야 돼...?"


"나한테 레아가 1순위라는 거?"


"응."


"당연하지, 이리 와."


나는 레아를 품에 안고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녀의 호흡이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갔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응, 고마워."


"레아는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해역 너머에서 건너온 물건들은 평소에 구하기 힘드니까."


"나는... 알버트만 있으면 돼..."


"화장품이라도 사줄까?"


"난 지금도 예쁘니까 괜찮아. 그런 건 한나 같이 못생긴 여자들이나 쓰는 거지..."


"뭐? 푸하하하!!"


"왜 웃어..."


나는 레아 특유의 뻔뻔하고 귀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우리 레아는 그런 거 안 써도 충분히 예쁘니까."


"당연하지."


"근데 솔직히 말하면, 한나도 괜찮지 않아? 오히려 꽤 예쁘장한 편이라고 생각..."


....................


"물론, 우리 귀여운 레아만큼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지."


"흥, 아부쟁이..."


"큭큭... 이리 와."


나는 레아를 꼬옥 껴안은 채, 소파에 드러누웠다. 신기하게도, 가슴 쪽에서 간지러운 박동 같은 게 느껴졌다.


-----------------------------(스토프 벌목소)


"나 왔어~"


"그래, 알버트는 잘 만났고?"


"응, 피곤하니까 먼저 방에 들어갈게."


"알았다. 이따가 저녁 먹을 때 나오렴."


한나는 자기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친숙한 이불 냄새를 맡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 레아라는 여자애..."


............................................


....................................


...........................


....................


.............


"너한테 알버트는 절대 못 넘겨."






스토리는 다 짰는데 내 역량이 부족해서 5편 안에는 못 끝낼 거 같다

3, 4 편은 더 써야 엔딩까지 쓸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