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내 마녀는 안꼴려...
개념글 모음


정말로 너일까.


혹여나 다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소나무의 뿌리에 잡혀있는 너를 눈 앞으로 옮겨왔다.


충분히 가까워진 얼굴에 손을 뻗어서 양 뺨을 붙잡고 이리저리 만지며 살펴본다.


"저, 저기요...?"


전체적인 선이 짙어지고 좀 더 어른스러워지긴 했지만 특유의 순진해보이는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얼굴.


최근에 군대라도 다녀온 것일까, 아직 덜 자라 짧은 티가 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나오는 익숙한 자리의 작은 흉터 하나.


"아... 흉터 남아버렸네."


대한민국의 남자 고등학생이었던 한재현의 마지막 등교일.


그 날따라 기분이 안좋았던 나는 정훈의 장난에 괜히 승질을 부렸고, 작은 사고가 겹쳐 그를 강하게 밀어버리고 말았다.


그 탓에 사물함 걸쇠에 이마를 찍혀 큰 상처가 생겨버렸다.


피가 흐르는 이마를 부여잡고 선생님에게 부축받으며 병원으로 가던 그는 내게.


'미안해. 내일보자.'


사과를 했다.


나 때문에 다쳤다고 화를 내지도, 아프다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사과를 남긴 채 인사를 남겼다.


그가 차를 타고 멀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내일 사과하자고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대로 우리 둘의 내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날 밤, 나는 스승님에게 이끌려 영국으로 가버렸으니까.


흔한 문자 한 번, 전화 한 통 했다면 이렇게 후회로 남지 않았을 텐데.


괜시리 흉터를 엄지로 쓰다듬었다.


"...괜찮으세요?"

“뭐…?”

“그으… 표정이 안좋아 보여서…”


정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정훈.


방금전까지 광견병 걸린 개마냥 쫓아오던 흡혈귀에게 죽을 뻔 했으면서 남의 표정이나 신경쓰다니.


나무의 뿌리를 마음대로 움직여서 자신을 붙잡아 둔 것이 나라는 것을 알 텐데.


어두운 숲길을 달리다가 다친 상처나 걱정할 것이지…


“하아… 본인 걱정이나 해.”

“하하하…”


한쪽 슬리퍼가 벗겨진 것인지 상처투성이인 맨발이면서도 얼빵하게 웃기나 하고.


안심하면서도 걱정될 정도로 물령한 사람이다.


정말… 넌 여전하구나. 


다친 발을 조심하며 뿌리를 거두어 땅에 내려주었다.


“그 꼴로 어두운 숲길을 걷는건 힘들테니까.”


집 방향으로 손을 뻗어 가볍게 손짓한다. 주문을 외울 필요도, 술식을 짜올릴 필요도 없다.


숲을 다루는 것은 어떤 것을 배우더라도 꼭 부족한 부분이 나오던 내가.


스승님에게 이것만큼은 자신을 능가한다고 평가받은 유일한 것이니까.


내 손짓에 나무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길을 열어주고, 거친 흙바닥엔 모여든 크고 작은 돌들이 보도블럭이 되어 바닥을 채워 길을 만든다.


정훈의 다친 발에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신경써서 숲을 다듬었다.


“따라와. 응급처치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아뇨. 괜찮아요. 이미 도와주셨는데…”


저 상태로 어디를 간다고 고집을 부리는 걸까. 미련한 녀석.


아무리 말해도 괜찮다고 내 제안을 거부한다.


“쓰읍. 잔말 말고 따라와서 치료받아. 괜히 또 저런 것들이랑 마주치지 말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참을 실랑이 하고나서야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받아 들일 걸 괜히 힘이나 빼고 말이야.


정훈의 느린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 옆을 걸었다. 


이 놈은 아픈 발로 내 속도에 맞춰 걷겠다고 무리할 녀석이니까.


“뭘 어쩌면 마늘 냄새 풀풀날 놈이 저런놈들에게 쫓기니.”

“아마 안 날 거예요.”

“안 나다니?”


한국인이면 안 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최근에 마늘 알레르기가 생겨서 못 먹고 있어서…”

“그런걸로 지워질게 아닌데?”


한국인의 마늘 냄새는 비유란 말이야. 대중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인식을 기반으로 한 마술이다.


그래서 흡혈귀들이 대한민국을 질색하는 것이고. 마늘을 좀 안먹었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닌데.


“킁킁.”

“에,엑?!”


확인을 위해서 직접 정훈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 밀어서 냄새를 확인하려고 했다.


“킁킁… 멀어지지마. 확인하기 힘들잖아.”

“하지만… 다...ㅎ…”


어깨를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꽤나 높은 목덜미의 위치탓에 최대한 밀착해서 고개를 밀어 올렸다.


누구는 그러고도 높이가 모자라서 까치발까지 들고 있는데, 이놈은 왜 자꾸 뒤로 물러나서 확인하기 힘들게 하는거야.


“정말이네.”

“이제 된거죠!”


왜 저렇게 질색을 하면서 떨어지려고 하는거지?


아무튼, 정말로 정훈에게서 마늘 향기라는 마술적 흔적이 아에 사라졌다… 아니, 무언가 지워내고 있었다.


이 탓에 마늘 알레르기라는 부작용까지 생긴 것이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정훈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상처를 치료하고 돌려 보내도 또 다시 흡혈귀들에게 습격당하겠지.


그건 내가 용납하지 못하지. 반푼이지만 일단은 마녀.


자신의 비호아래에 있을 것을 건드리게 둘 수는 없는 법. 그러니 해결법을 찾기 전까지는 가장 안전한 곳에 두는 것이 좋겠지.


“너. 한동안 내 집에서 같이 살아야겠다.”

“네에에엑?!”


어우 귀청 아파. 뭘 저리 놀라는 거야. 그냥 옛 친구집에서 지내는 거잖아.



.

.

.



전역한 기념으로 고향의 부모님 댁으로 내려와서 지내고 있었는데.


“저기야. 이제 다 왔어.”


그 좋아하던 마늘에 알레르기가 생긴 걸로 모자라서 밤 산책중에 괴한들에게 습격당하기까지.


어두운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괴한들과 나를 단숨에 제압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성.


긴 챙모자를 쓰고 흰색에 가까운 금발과 구름 한점 없는 하늘같은 푸른색 눈동자와 숄로는 가릴 수 없는 풍만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마치 동화속의 마녀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손짓 한 번에 숲의 모습을 뒤바꾸는 신비한 힘은 그 분위기를 더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 미녀가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살라니…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질 않아.


갑자기 처음보는 사람의 냄새를 맡겠다고 몸을 밀착해서 닿게 만들고, 목덜미에 얼굴을 가져가는 거리감이 과하게 가까운 여성과 한 집에서 지낸다니.


지금이 오늘 겪은 일중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까.


“신경쓰지말고 편하게 들어와.”


어떻게 신경을 안쓸까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나는 이미 근사한 오두막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날이 밝으면 돌아가겠다고 다시 말해보자. 부모님도 걱정하실테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지금은 저 신비로운 마녀의 집을 구경한다는 것에 집중하자.


신기한 힘이 있는 진짜 마녀잖아. 동화나 영화처럼 신기한 재료나 가구들이 많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스럽던 마녀의 집 방문이 조금 기대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여는 문을 따라 오두막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오두막 내부로 들어오니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이지색의 쇼파였다.


신기하네. 우리집도 들어가면 바로 쇼파가 보이는… 쇼파?


“저,저기요.”

“왜 그래?”

“저희 지금 오두막에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째서 부모님이 계실 본가와 쏙 빼닮은 아파트가 내 눈앞에 펼쳐진 걸까.


“왜? 현대식 좋잖아.”


숲에서 신비로움을 내뿜던 마녀는 아파트같은 인테리어를 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구석에 컴퓨터, 냉장고, TV까지, 가구배치에 묘한 친숙함까지 느껴지는 마녀의 집이었다.


조금… 실망해버렸다.


“아, 여기있다. 앉아. 약 발라줄게.”


약을 발라준다며 들고 온 구급상자이서 꺼낸 현대의 상처연고를 보고 조금 더 많이 실망했다.


나는 사실 마녀가 아니라 아랫집 외국인을 따라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방금전까지 느껴지던 신비로움은 어디가고 친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 발 내밀어.”

“지,직접 할게요.”


도대체 오늘 처음 본 그녀가 내게 이리도 친밀함을 보이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까 숲에서 이마의 흉터를 서글픈 표정으로 만지작거린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이 흉터는 고등학생 시절에 친했던 친구와 놀다가 생긴 것이라 전혀 관련이 없을텐데.


그녀가 상처를 신경쓰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저 날 닮은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더 오해하기 전이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


왜지?


왜 저리 놀란 표정을 짓는 걸까. 어딘가 상처받은 사람처럼.


“아… 그렇지. 응… 매그놀리아. 너무 길면 줄여서 불러도 돼.”


매그놀리아라고 소개한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활기가 눈이 띄게 줄었다고 느껴졌다.


“그럼. 매그놀리아씨라고 부를게요.”

“...응.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