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나의 끝은 불행한 사고였다.


평범하게 신호를 지켜 횡단보도를 지나는 시민과 빨간 불에 멈춰서는 트럭. 단지 그 뿐이었을 일상.


하지만, 그 일상은 원래 건강했을 트럭기사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져 원래 눌려야했을 브레이크가 눌리지 않았다는, 그 한 줄의 서술로 운전자와 보행자 둘다 크게 다치는 탓할 곳도 없는 불행한 이야기가 되었다.


기적이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 트럭기사는 최대한 핸들을 돌렸고, 다행히도 트럭에 치인 보행자가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끔찍한 중상을 입은 청년은 몇달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았고, 트럭기사가 퇴원을 하고 나서도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런 청년이, 내가 눈을 뜬 것은 한겨울의 중간. 내가 쓰러졌을 때로부터 반년이 지났을 어느때였다.


눈을 떴을 때, 달라진 것은 모든 것이었다.


맞벌이를 하고 있던 부모님은 몇달째 눈을 뜨지 않는 나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셨다.


다만 그 뿐이었다면, 어떻게든 일상으로 불완전하게나마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재활을 끝내고 일을 시작하고, 부모님 또한 어떻게든 일할 곳을 찾아서 일할 것이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소소한 행복 정도는 느낄 여유가 있는, 그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는 남아있지 않았다.


[ 김지현 ] 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6인실의 객실에는 앞날이 창창했던 청년이 아닌 작디작은 소녀가 잔뜩 다친 몸을 이끌고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기에.


달라진 모습에도 나임을 알아봐주신 부모님은 나를 담당했던 의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며 따졌지만, 돌아온 답은 없었다.


의사가 보여준 차트에 있는 것은 김지현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아닌, 같은 이름의 소녀였고, 의사 본인도 나를 소녀로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뜯어내 이름과 기억만이 같은 소녀를 대신 넣어둔 것처럼 세상에 나라는 이의 기록은 전부 '나'로 대체되어있었다.


이 세상에 있어서의 불순물은, 나 자신과 우리 가족. 그리고 나와 친했던 지인들의 기억 뿐.


"...미안."


한 명이 떠나갔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ㅡ"


두 명이 떠나갔다.


하나둘,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나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달라졌더라도, 다른 사람이 되었더라도 과거로부터 이어진 기억은, 관계는 내게 있어서 동앗줄이 되어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외견이 달라졌고, 성격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남자였던 나의 성격은 점점 희미해져갔고, 점차 외견에 맞는 소심하고, 움츠린 아이가 되어만 갔다.


그로 인해 나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 내가 바뀌었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낙관적이게 생각하고 있던 태도도 천천히 변해만 갔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함을 느끼는, 현실이라는 지옥은 우리의 관계의 끝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일임에도 나를 '나'라고 알아봐주신 부모님이 있었기에.


아버지가 다시 구한 직장을 잃으셨다.


나는 알바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부쩍 화내는 일이 늘었다.


나는 알바를 늘렸다.


상처가 늘었다.


나는...


약간의 차이로 인해 점차 벌어져가던 틈은 점차점차 그 크기를 늘렸다.


그리고 어느날,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는데 급한 연락이 왔다.


부모님이 함께 음주운전 차량에 치였다는, 그런 끔찍한 소식이.


다음 알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나는 그곳에 연락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부모님의 상태는 심각했다.


수술비는 그에 비례해 커졌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곁을 지켜야했지만, 난 부모님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상반되는 상황에서 난, 돈을 버는 것을 택했다.


또다시 걸려온 연락에, 하던 일을 내팽겨치고 달러간 끝에 내가 본 것은 이미 숨이 멎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며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내가 곁에 없었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아닐까하는 헛된 생각에.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내 눈 앞에서 숨을 거두셨다.


"미안하다..."라는 혼잣말을 유언으로 남기신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조촐한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간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어머니의 휴대폰이었다.


어째서 밤 늦게까지 일하시는 부모님이 하필이면 그곳에 같이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있을 것만 같아, 내 생일을 입력하자 열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어머니의 문자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사고 당일날에 아버지와 했던 문자가.


-지현이, 어떻게 생각해요?


-지현이는 지현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에 대한 몇개의 대화가 오가고, 내려진 결론은 둘이서 의견을 정리하자는 이야기.


부모님은 나를 나로써 봐주고 계시다고 믿었건만, 사실 아니었다.


내가 예전의 나. 김지현이 맞다고, 그저 믿고 싶으실 뿐이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김지현'이라는 같은 기억을 가진 아이에게, 그리고 자신들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그걸 보고서 내가 느낀 것은, 끝없는 자책과 절망이었다.


결국은 그 날 있었던 사고는, 나의 탓이 아닌가.


내가, 사고를 당한 탓에.


내가, 혼수에 빠져있던 탓에.


내가, 이 모습이 된 탓에.


나를 죽이고 싶었다.


모든 절망의 단초인, 불행을 일으키는 역병신일뿐인 나를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옥상에 올라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그리고, 바닥은 내게 너무나도 멀었다. 옥상은 내게 너무나도 높았다.


결국은, 죽을 각오조차도, 용기조차도 없는 무책임할 놈일 뿐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손목을 그었다.


커터칼도 없었기에,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와서 그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뭉툭해진 날 탓에 몇번이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팠다.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사람의 몸은 손목을 긋는다고 죽을 나약할 몸이 아니었고, 나라는 한 사람의 각오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사람은 스스로를 죽일 수 없다.


옥상에서 떨어지든, 목을 매든, 연탄을 피우든.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은 중력이고, 일산화탄소였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죽이지 못했다.


그 후로도 의미가 없는 행위임을 알지만 이어진 수차례의 자해는 결국 자기만족일 뿐이었다.


내가 나로써. 이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이 세상이 그저 끔찍한 악몽이 아님을 증명하는 고통이라는 증거이자.


이렇게 수차례 긋다보면, 언젠가는 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희망의 발현이었다.


자책에서 시작된 끔찍한 파멸욕구는 점점 나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파멸욕구는 내 몸을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끝내 그 마수를 내 정신으로 뻗었다.


몸을 망가뜨릴 수 없다면, 정신을 무너뜨려버리자고.


***


[ ㅇㅇ님이 49개 후원. ]


"아... 49개 감사합니다..."


가만히 나를 비추는 카메라의 앞에 앉아있다 보면, 익명의 시청자로부터 후원이 날아들어온다.


이따금 올라오는 채팅창의 윗편에는 내가 방송하고 있는 플랫폼의 마크가 그려져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몇개의 기업이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는 이른바 양지의 것들과 다르게.


드르륵.


"그, 그럼... 자해... 하, 하겠습니다..."


밝은 곳에서는 차마 충족시키지 못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것을 원하늣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발을 뻗는 플랫폼은ㅡ


"으읏..."


뚝. 뚝.


매번 수없이 많은 양의 플랫폼들이 사라지고, 신생 플랫폼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방식이 계속되어왔었기에.


지금 내가 어딨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딨든, 철저히 나를 파괴할 뿐이었으니까.


[ ㅇㅇ님이 540개 후원 ]


"아... 후원... 가, 감사드립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그 끔찍한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전신에 자해의 상처가 가득한 작디작은 소녀의 나신을 비추고 있었다.


ㅡㅡㅡ


이런거 어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