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내 마녀는 안꼴려...
개념글 모음



"그런데… 제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다는 흥분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그렇지.


넌 여전하지만, 나는 여전하지 못한데. 나 혼자 신이났구나.


정훈이의 입장에서는 처음보는 여자가 자신에게 친밀감을 가진 이상한 상황이었겠지.



"아… 그렇지. 응… 매그놀리아. 너무 길면 줄여서 불러도 돼.”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서 웃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스승님을 따라간 영국에서 자주하던 표정이니 어렵지 않아.


정훈에게 한재현이 아닌, 마녀 매그놀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괜히 나와 엮여서 이쪽에 깊게 연관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


정훈에게 걸린 마술을 해제하고 인식을 비틀어서 신기한 추억정도로만 남기면 될 것이다.


그 뒤로는 내가 조금 주시하는 정도로도 정훈과 그의 부모님들은 별 탈 없이 지내실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들고 있던 구급상자를 정훈에게 넘겨주었다. 본인이 저렇게 부담스러워하니 오기를 부리지 말자.


적당히 거리를 두자.



"정 그러면 직접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원래는 붕대를 감아주며 간단한 마술 몇가지를 걸어둘 생각이었지만, 냉정해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마술적 흔적이 남는건 좋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끝나시면 저쪽이 욕실겸 화장실이에요. 방은 그 옆에 있는 큰방을 쓰시면 됩니다."

"제가 신세를 지는 건데, 쇼파로 괜찮아요."

"어차피 꾸며만 둔 손님용 방이니 사용하세요."



그냥 기억에 따라서 꾸며두기만 한 큰 방.


더블 사이즈 침대와 옷장 두개. 조금은 오래된 디자인이지만 새것인 화장대와 조금 구식인 TV.


꾸며두었지만 직접 들어가지는 않는 두 사람용의 방. 그 방을 정훈에게 내주었다.


가끔 스승님이 찾아 오실 때에도 내어드리는 방이니, 조금 특이한 손님방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전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올테니, 쉬고 있으세요."



그럼 이제 모기들과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해가 떠버리면 그대로 함줌의 재가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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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들은 곤란했다.


귀족급의 흡혈귀에게 명령을 받아서 억지로 마늘 냄새가 지독한 이 나라로 온 것도 모잘라서, 명령을 수행하는 도중에 마녀의 심기를 건드린 듯 했다.


자신들은 진조의 피가 거의 없는 옅은 밑바닥이기에 평상시에는 마술사들의 세계에 무지했기에, 이 나라에 자리를 잡은 마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나라. 아무것도 없다.


작은 땅덩어리이 비해서 이상할정도로 교회가 많아 교단 소속의 마술사나 집행자들이 넘어와 있긴하나, 그들에게도 이곳은 일종의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엉망으로 망가진 전승들과 자기들끼리 전쟁을 하다가 망가트린 영맥과 그마저도 반으로 갈라진 상황.


그래서 마술적 기반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자원이 필요해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남들 주기엔 아까울 정도로 신비를 품은 계륵같은 땅.


그저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개발되기를 바라며 물밑에서 알력다툼이나 하고 있은 것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대한민국이다.


그런 곳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할 수 있는 마녀라니... 



"그럼 우리 잡종들. 이야기 좀 할까요?"



심지어 우릴 잡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정통파 마녀인듯 했다. 그러니 평소에도 저렇게 '나 마녀에요.' 하고 홍보하는 복장을 하고 있겠지.


요즘은 필요할 때만 예장을 꺼내 입는 것이 유행한다고 디자이너인 흡혈귀에게서 들었다.


어디 동굴에서 수백년간 묵다가 마실이라도 나온 노괴인걸까. 그러니 당당하게 이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걸지도.


하지만 그러기에 다행이다.


정통파 마녀들은 분쟁을 피하는 경향이 크니까. 우리들이 귀족과 연관되었음을 알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


콰직.



"아침해가 뜨면 알아서 정리되겠지만, 내가 조금 기분이 안좋아서."



젠장 그냥 미친 마녀였나? 나무뿌리에 마틴이 마틴(이었던 것)이 되어버렸다.



"말 할 입은 두개면 충분하겠지? 그럼 누구로 남길..."

"저희는 위대한 백작 각하의 명을 받았습니다!"



앗. 옆에있던 제임스가 선수를 쳤다. 비겁한 녀석. 우리는 배신하지 말자고 어제 비행기에서 약속...


콰직.



"누가 멋대로 입을 열래."



... 제임스 우릴 위해서 자신의 한몸을 바칠 줄 아는 진정한 남자였구나. 널 기억하마.



"그럼 잡종 두마리. 전부 말해 줄거지?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으면 그것도 괜찮고."



진짜 이 나라는 흡혈귀가 올 곳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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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에엑이이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