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오늘의 첫 손님

택시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 중늙은이. 삶의 피로에 찌든 얼굴.

메뉴는 국밥, 소주 한 병



두 번째 손님

체고 2m짜리 갈색 말에서 내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은 은빛으로 번쩍번쩍한 갑옷. 4피트짜리 철검

메뉴는 만년 스튜, 담금주.

말은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


특히 음주 후에는 소지품을 잘 확인할 것.



세 번째 손님

청년. 접이식 전기킥보드. 운전면허 있음.

메뉴는 돈까스 정식, 콜라 한 병, 70kg짜리 성인 남성과 그 양반 주머니에서 나온 택시 키



네 번째 손님

중년. 활동하기 편한 옷차림. 고급 승용차에서 내림.

"혹시 자격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안주머니에서 두 개의 자격증을 꺼냈다: 식물보호기사, 종자기술사

"실례했습니다.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다섯 번째 손님

젊은이. 도보로 이동.

"혹시 자격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가방에서 하나의 자격증을 꺼냈다: 웹디자인기능사



*


다섯 번째 손님

대학생. 자전거. 이외 특이사항 없음.

"혹시 자격을..."

"아, 저는 정보처리기사입니다."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는 불고기 백반

자전거는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다.


"아, 그리고 주방과 내실(內室) 가까이에는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주방은 해체가 막 끝났고, 내실에는 기술사님이 계시오. 당신 신분으로는 자칫하면 꽃꽂이를 당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오."

"아, 감사합니다."



주인은 그럭저럭 깔끔해진 120cm짜리 분실물을 우산꽂이에 도로 꽂아놓으며 생각했다. '안 가지러 오면 고철상에 팔아버리면 되겠지 뭐.'

마침 식사를 끝내고 나오던 기술사가 주인을 불렀다.

"아, 종자기술사님. 오늘 식사는 어떠셨습니까."

"주인장 실력이야 뭐 듣던 대로 일품이더군, 헌데 그... 뭐랄까. 맛은 좋은데 풍미가 깊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 요새 양질의 재료를 구하기가 영 어렵더군요. 부족한만큼 나름 정성을 더하긴 했는데 역시 티가 났나 봅니다."

"원자재 문제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맛은 꽤 좋았어. 내 다음번엔 기대해보겠네."

"예, 안녕히 가십시오."


식당 앞에 매달린, 효수당한 기능사의 머리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머리는 기술사를 배웅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기는 기사식당, 메뉴는 오마카세.

채식주의자는 찾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