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태어날 때부터 듣던 말들이 있다.


전부 네 탓이다.


네가 흉년을 불렀다.

우리의 불행은 네 탓이다.

부모 잡아먹고 태어난 년.

불길함의 상징.


그 모든 말들이 모이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너는 마녀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마을은 계속 흉년이 들고, 흉년이 오니 굶주림에 다들 불행함을 느낀다.


부모 잡아먹고 태어난 년이라는 말은 나를 낳는 데에 모든 힘을 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붙은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되기엔 충분할 텐데 불길함의 상징인 하얀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타고 태어났으니 물어뜯기엔 정말 좋은 존재겠지.


그나마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그래도 하나 뿐인 가족인지라 나를 향하는 비난을 막아주셨지만, 그 아버지마저도 마을에 불어닥친 역병에 스러져 사라지셨다.


물론 역병 또한 내가 불어온 것처럼 여겨졌고 말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말들을 듣고 산다면 보통은 정말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여기지만 사실 나도 모르게 마녀 같은 행동을 한 게 아닌지 스스로도 의심할 법 했다.


“아, 거 못 들어 처먹어주겠네.”


나한테 전생의 기억 같은 게 없었다면 분명 그랬을 거다.


전생에 당당한 성년 남성으로서 꿋꿋이 살아온 세월이 남아 있는 나한텐 저들의 말이 전부 개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 토양은 농사에 못써먹게 된지 오래고, 하얀 머리와 붉은 눈은 내가 알비노라서 그런 거다.


병약하게 태어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걸로 사람을 묻으려고 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아버지가 역병으로 돌아가신 건 그 시기에 그저 역병이 퍼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았을 뿐이다.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행을 부르는 의식 같은 건 한 적도 없이 말이다.


애초에 내가 저주를 걸 수 있었다면 내 편 들어주는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한테 거슬리는 인간들 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다 뒈질때 까지도 아버지는 살아계셨겠지.


자아가 완전히 세워지지 않은 어린아이였다면 저들의 화풀이 인형이 되었겠지만, 나는 몸과 달리 자아만은 성숙한 어른이었다.


“그렇게 못잡아먹겠다고 하면 내가 나간다, 나가. 나중에 또 화풀이 하겠답시고 나 찾지 마쇼.”


그저 원망할 곳 없는 자신들의 불행을 쏟아낼 감정 쓰레기통 역할은 어울려 줄 생각도, 거기에 휩쓸려 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증오와 저주 섞인 폭언, 던져지는 돌무더기를 뒤로 하고 마을을 나섰다.


그렇게 떠나서 살만한 곳은 그다지 없었다. 다른 마을이라고 시대에 박힌 편견에서 자유로울 리 없으니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은 자연스레 갈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어디 한적한 산속이나 숲에서 나무 열매 같은 거라도 따먹으면서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흉년이 들어서 그런지 나무 열매도 얼마 없다보니 열매가 없을 때는 잡초를 모아서 풀죽이라도 끓여먹어야 했다.


그렇게 끓인 풀죽의 생김새가 녹즙 그 자체다 보니 산행을 하던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수상한 녹색 액체를 끓이는 마녀 이미지를 더욱 굳혔고 말이다.


“누군 끓이고 싶어서 끓이는 줄 아나.”


잡 풀들을 아무거나 때려넣어서 끓인 바람에 쓰고 풀냄새가 진했다.


“우웩, 아무리 먹어봐도 이 역한 맛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니까.”


그나마 먹고 죽진 않을 풀을 찾을 때까지 겪은 여러 시행착오를 이 몸이 버텨줘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풀 죽이라도 먹으면서 버티고, 천장이 없는 곳에서 계속 살 수는 없으니 비도 피할 겸 적당한 동굴을 찾아서 거점으로 삼은 채 살다 보니 산을 지나는 행인들이 이 곳에 마녀가 산다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것도 가끔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산에 처박혀 봐야 그런 소리를 들을 거란 것은 예상 했던 참이니 시큰둥하게 들었지만, 내 귀를 쫑긋거리게 한 건 다음 말이었다.


“전에도 이 산에 마녀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마녀랑은 다른 마녀라더군. 마녀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서 큰일이야.”


다른 마녀가 있다.


안 그래도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사는 것에도 한계를 느끼던 참이었다.


인간은 집단 생활을 하라고 만들어진 동물이지, 혼자 자연 대 인간을 찍으라고 만들어진 동물이 아니지 않은가?


분명 그 마녀도 사람들에게 누명이 씌워져서 반 쯤 쫓겨나다시피 한 존재일 테니 어려운 처지끼리 상부상조 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앞으로는 풀 캐면서 다른 마녀도 찾아 봐야겠어.’


이후, 작정하고 산을 뒤적거리며 몇날 며칠을 보냈을까.


역시나 마녀라기에는 꾀죄죄하고 독기도 없이 기가 약해보이는 소녀를 한 명 찾을 수 있었다.


소녀 역시 불행의 상징이라고 억지로 떠밀려서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것 같았다.


예상대로 비슷한 처지였던 우리는 오랜만에 사람에게 의지하며 마녀로 불리는 처지끼리 지내기로 했다.


마녀라 불리는 존재들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 모여서 지내는 것이 행인들에게 비춰진 후, 우리의 만남은 마녀의 집회라는 해괴한 명칭이 붙은 것 같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그리고 불행의 상징으로서 불행하게 죽기 보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죽는 날에는 반드시 행복하고 말 것이다.


그게 마녀라 불리는 내 삶의 목표였다.


ㅡㅡㅡ


아무리 불행의 상징이라고 배척 받아도 꺾이지 않는 마녀 튼녀가 점점 마녀들을 모아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떠올랐음


사실 세상에 마녀란 건 없고, 그저 원망의 대상이 필요해서 희생되어 가스라이팅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은 튼녀를 중심으로 가스라이팅을 점점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사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