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말끝을 흐렸다. 용인 경호원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무슨 의미인지 상당히 궁금한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호원들은 엄청 멋있단 말이에요! 막 몸 날려서 총알 막아주고! 괴한 나타나면 멋있게 발차기 하고!”
물론 용인이니만큼, 경호원의 외모가 아쉽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용인 경호원은 미인이었고, 소녀의 눈에는 미의 이상적인 표준이었다. 본인이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진 않았지만.
하지만 매체 속에 나오는 경호원의 이미지 - 쫙 빼입은 정장. 검은색 선글라스. 한 쪽 귀에 꽂혀있는 이어마이크. 각 잡힌 행동과 거리가 멀었다. 그 미모가 퇴색되고도 남을 정도로 후줄근한 차림. 검정 후드티에 차려 입어야 청바지. 태평한 태도.
용인도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진 알아 들었다.
그리고 이해와 실천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용인은 고개를 돌려, 머리 하나 작은 아가씨를 내려봤다.
“그런 걸 원하는 거냐?”
배부른 소리 말라고, 네가 치안과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사는 걸 감사히 여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소녀가 이런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네!”
소녀가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네가 하라고 했다.”
“네에!”
“……지금부터 아가씨에 대한 밀착 경호를 실시합니다.”
전문적인 어투, 가라앉고 차분해진 눈빛. 확 달라진 분위기. 소녀는 드디어 경호원의 진면모를 보게 되었다며 헤에 벌렸다.
언니 너무 멋있어요. 앞으로도 그러면 안 돼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아가씨의 신변을 위험하는 물질 발견했습니다. 즉각 처리하곘습니다.”
소녀의 감탄은 순식간에 깨졌다.
“어, 네? 언니?”
“주시죠, 아가씨. 제 경험으로서 판단하건데, 그것은 아가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물질입니다. 아가씨를 신변을 책임지고 보호해야하는 경호원으로서 눈 앞의 위험물질을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용인 경호원은 힘을 쓰지 않았다. 대신 소녀가 바라는 대로 멋있게, 전문가스럽게. 한 손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질’이 진동하더니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어, 어. 아, 안 돼요! 안 돼!”
“경호원의 재량에 따라 즉각 소거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물질이 아가씨에게 미칠 영향은, 단기간 내 비정상적인 체중의 증가. 호흡곤란 및 혼수상태의 가능성, 혈류 내 비정상적인 당분의 상승 및 차후 당뇨병의 위험성. 그리고…….”
“그만! 언니! 취소! 취소! 그으만! 진지 모드 그만!”
소녀의 부르짖음에 용인은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마법도 해제했다.
그래서 소녀는 다행히 버블티를 지킬 수 있었다. 마법으로 들어올리려던 탓에 타피오카 펄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소녀는 두 손으로 소중하게 버블티 컵을 감싸쥐었다.
“……못 됐어요, 언니.”
용인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해달라며.”
“버블티가 왜 적이에요……. 맛있는데…….”
소녀는 볼멘소리를 감췄다. 굵은 빨대로 한 모금 빨아마셨다.
“그런 거 좋아하니까 살찌고 그러는 거야. 건강에도 해로운 걸 왜 먹냐.”
“집에서는 맨날 채소과일주스 먹는데, 이건 괜찮잖아요! 그리고 저 살 안쪘거든요! 체술 과목에서도 좋은 점수 받았다구요!”
“좋게 봐줘서 A까지.”
“……아깝게 B에요.”
소녀는 서서히 잃어가던 자신감을 되찾고자 한 번 더 빨대를 빨았다. 쪼옥. 오물오물.
당분이 도움이 된 건지, 입 안에서 씹히는 타피오카 펄이 무슨 힘을 준 건지. 소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언니도 이거 맛보면 푹 빠질 걸요!”
하지만 용인은 시큰둥했다. 용인이 되기 전 남자였을 때도, 여성 용인이 되고 나서, 귀환하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저 음료였다.
“그래, 너 많이 먹어라.”
“에에? 아녜요! 언니도 꼭 버블티의 맛을 알아야해요! 지금 사줄게요! 저 돈 많거든요?”
“네 돈이냐. 네 아빠 돈이지.”
“아무튼! 언니도 꼭 버블티를 먹어야해요! 그래야 다시는 버블티를 해치울 생각을 안하겠죠! 당장 카페에 가요, 언니!”
빨리 소녀를 따라 집 대문을 나서면 곧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용인이었다. 경호 업무에 태만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았으니, 소녀의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뻗대었다간 이 도시 전체의 버블티를 맛보게 될 거라는 것도 어렵잖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쪼옥-
“어, 어? 언니?”
용인은 소녀가 들고 있는 버블티를 빨아마셨다. 달큰한 밀크티에 타피오카 펄이 함께 빨렸다. 입안에 돌아다니는 알갱이를 질겅질겅 씹었다.
용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뭐가 맛있다고.”
“어…….”
“차라리 커피를 사마시지. 안 그래?”
“네에…….”
“가자. 너 백화점 가야한다며. 빨리 안가면 늦겠는데.”
“가요…….”
용인이 툭툭 던지는 말에 소녀는 넋이 나간 듯 대답했다.
과장된 비유는 아니었다. 실제로도 넋이 반쯤 나가기도 했다.
소녀의 시선은 빨대에 꽂혀있었다.
“어, 어, 언니가……. 닿았던 빨대…….”
용인이 물었던 빨대. 용인의 입술이 닿았던 빨대. 용인이 입에 넣었던 빨대.
“이, 이, 이, 이거……. 가, 가, 간접…….”
소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일전에 결혼이라는 말을 꺼낸 것 치고는 소녀는 대범하지 않았다.
용인에게 빼앗길 뻔했던 버블티가, 소녀의 삶의 활력 중 하나를 구성하는 음료가. 지금은 더욱 의미가 각별해졌다.
누가 볼세라 은근하게, 천천히, 소녀의 앙증맞은 입술로 굵은 빨대를 덮었다.
달콤하다. 입 안에서 은은한 단맛이 천천히 퍼져간다. 조금 따듯한 느낌도 있다.
눈을 감고 만끽했다. 이게, 언니의……
“안 오고 뭐하냐?”
“윽? 쿡, 커헉? 켁.”
“야, 야? 왜 그래?”
“케흑. 큭, 콜록.”
“어어? 잠깐만!”
“켁. 크헥. 커, 컬럭. 콜록, 콜록!”
다행히 용인은 기초적인 응급처치를 할 줄 알았고. 소녀는 첫 번째 간접 키스의 끝을 하임리히 법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용인의 바람대로인지 소녀는 당분간 버블티를 멀리하게 됐다.
그 대신, 카페를 들려 음료를 사먹는 일이 많아졌다.
“언니, 제 라떼 드시지 않을래요?”
“내 커피 있는데.”
“……힝.”
물론 용인 경호원은 왜 소녀가 시무룩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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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유쾌한 거 쓸 겸 간만에 써본 시-리즈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