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몽무스 세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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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이 좋습니다. 깊은 밤하늘 같은 눈동자도, 그 찬란한 백금발도. 하지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그녀의 올곧음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합니다. 나약한 저는 그녀와는 다르게 이곳저곳에서 자주 타협하고는 하지만, 사랑만큼은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엘이 앞으로도 인간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합니다. 아니면 나처럼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나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알프는 보통 마물화되기 전의 인격을 어느 정도는 유지한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아예 변화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마물 특유의 충동도 느끼지 않았고요. 이러한 나의 변화가 어쩌면 엘을 도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날 도와줄 마물을 한명 불렀습니다.
“탐구심이 솟아올라. 여기까지 온 가치가 있는 걸?”
아니마 씨는 수정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집의 2층. 현재는 손님 방으로 쓰고 있는 그곳은 지금 이상한 기계들과 마법진이 가득 놓여있었습니다. 나는 방바닥 한가운데에 가장 크게 그려져있는 마법진 중앙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계측하려면 옷이 방해가 된다고 해서, 나는 속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조금 부끄럽네요. 마법진에서 빛무리가 솟아올라 내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엘은 방구석에서 이것저것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것저것에 나도 포함되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죠.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와는 다르게 흐린 하늘 같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애써 회피합니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빛무리가 잦아들고 아니마씨가 수정에서 눈을 떼었습니다. 검사가 끝난 모양입니다. 저는 조금 긴장하여 물었습니다.
“제 몸은 어떻게 된거죠?”
“응? 모르겠는데? 모르니까 재밌는거야.”
아니마씨는 싱글대며 바닥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에 몇가지 기호를 좀 더 추가한 뒤에 다시 수정을 관측하기 시작했습니다. 저걸 보고 있는 나도 아직 믿기지 않지만 아니마씨는 리치입니다. 히키코모리 괴짜라고 불리는 리치들과는 다르게 매우 친절한 축에 속합니다. 감정 표현도 많고요.
왕국이 마에 떨어진지 서너달쯤 되었을까요? 그 당시 저는 자주 마력에 취하는 엘을 위해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었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었습니다. 최대한 음란하지 않은 쪽으로요. 그러던 중, 마도학 학회지에 소개되어있던 아니마라는 리치의 저택 주소가 이 왕국과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지렁이 대장장이의 말에 귀 기울여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야 리치라는 생물은 지식욕의 권화. 리치와 거래를 하려면 단순한 돈으로는 되지 않겠죠.
다음 날, 난 최대한 구색을 갖춰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준비를 해두었기 떄문에 출발은 빨랐습니다. 2~3일간이 걸리는 여정. 하피의 힘을 빌린다 치더라도, 그녀들은 저 설산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는데는 비슷한, 혹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습니다. 최고 최악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대로 설산을 가로지르는 여정이 시작했습니다. 반쯤 얼어 죽는 줄 알았지만 선량한 예티분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난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글라키에스한테 습격당했습니다. 울고 싶었지만 어찌어찌 도망쳤습니다. 고생고생을 해가며 산중턱에 있는 숲에 도착하자 이번엔 웨어울프들에게 덮쳐졌습니다. 다행히도 하나야씨로부터 받은 마킹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세이프로 끝났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하나야씨에게 예쁜 팔찌를 만들어 준 의미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가까스로 리치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젠 어떤 역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긴장했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답장은 없었습니다. 집에 없는걸까요? 아니라면 듣고도 모른채 하는걸까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문을 살짝 밀어보았고, 열려 있었기에 들어왔습니다. 잠겨있지 않다는 건 들어와도 된다는거겠죠.
저택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습니다. 목소리 크게 소리쳐보았지만 대답은 없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은 대체 어떻게 된걸까요? 나는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책상에서 뻗어있는 리치를 보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단순히 자고 있었을 뿐이군요. 몇시간 후, 리치는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이쪽에는 시선도 주지않고 다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은 후, 노크했습니다.
“들어와.”
이게 내가 아니마씨를 만나게 된 이야기입니다. 의외로 그녀는 내 부탁을 간단히 들어주었습니다.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뭔가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후로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여러 가지 연구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니마씨는 내 선생님입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아니마씨는 머리를 벅벅 긁었습니다. 뭔가 잘 되지 않나봅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윽고 날 향해 말했습니다.
“진짜 모르겠어.”
이 예상외의 사태에 내가 입을 뜨악 벌리고 경악하는 사이, 아니마씨는 몇가지 변명을 내놓았습니다.
“자, 설명하지. 마물들은 고유의 마력 파장을 가지고 있어. 이것을 분석하므로 대상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너는 충격적이게도 마력이 너무너무너무 적어서 감지기로 계측이 되지가 않는 것 같아. 아마.”
“그럼 제 마력이 엘한테 해가 될 일은 없는건가요?”
이건 꽤 좋은 소식입니다. 엘에게 마물화에 대한 부담을 더 주고 싶지는 않거든요. 마물 본인에게 상대 여성을 마물로 바꿀 의지가 없더라도 강제적으로 마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특성입니다.
“그건 또 모르지? 애초에 지금 넌 제정신이잖아.”
“미치광이도 본인이 제정신이라 여기지 않을까요?”
“나는 지금 여기서 철학적인 담론을 하고 싶은게 아냐! 너는 보통 마물과는 다르게 24시간 동안 음란한 생각을 하진 않을거 아니야. 그렇지?”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기, 마나, 마력, 챠크라, 넨, 그리고 기타등등.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은 감정이나 의지에 의해서 활성화 돼. 대자연에 존재하는 생명 에너지를 이르는 정기와 마나, 그 생명 에너지를 특수한 방법으로 이용하기 편하게 변형한 챠크라나 넨, 그리고 단연 이질적인 마력. 마력도 생명 에너지의 한 분류지만 성질이 다르며 마왕으로부터 기인하지. 그래서 마력은 순수한 에너지임에도 불구하고 챠크라나 넨처럼 사용자의 의지가 담겨있어.”
엘은 흥미롭다는 듯이 아니마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을 하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쉽겠나, 아니면 맞서는 것이 쉽겠나.”
“당연히 따르는 것이겠죠?”
내가 그렇게 답하자, 아니마씨는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 미소에 불안감 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마왕이 마물들에게 원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지?”
절망. 결국 그거군요. 내가 마물답게 야하지 않으니까, 마물다운 마력 또한 없다. 하지만 마물답게 야해진다면 마물다운 마력을 가진다.
“자네의 표정을 보니 이미 정답을 알아챈 것 같군. 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증명하지 않으면 몰라. 그러니까 실험을 하나 하도록 하지. 조수, 실험을 시작할까?”
아니마씨는 엘의 쪽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조수라니, 무슨 짓을 하려는걸까요.
“걱정할 필요는 없어. 라크로부터 나오는 마력은 아래의 마법진이 죄다 흡수할 테니.”
“저기요? 아니마씨?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겁니까?”
내가 심란한 얼굴로 묻자, 아니마씨는 구석에 있는 엘을 보라는 듯이 눈짓했습니다.
“자네의 그녀는 이미 눈치챈 것 같은데? 것보다 그냥 아니마라 부르라고 내가 말 안했나?”
그녀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아니, 잠깐. 증명에다가 실험이라고 하면 역시 그건가요. 그것보다 엘이 점점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녀는 저렇게나 음흉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건가요. 나는 살짝 움츠러듭니다. 그러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엘?”
“왜?”
“원래 이렇게나 적극적이었어?”
엘은 잠시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봅니다. 그녀는 의자를 축으로 반바퀴 돌아서 내 귀에 속삭입니다.
“라크, 우리 둘 중 어느 쪽이 음란하냐고 묻는다면 다름 아닌 너잖아? 그 몸은 날 위한 선물 아니었어?”
아니 그건 그런게 아닌 것도 아니지만 말이죠… 그녀는 날 양팔로 번쩍 들어올립니다. 그러고는 본인이 의자에 앉고 나를 무릎 위에 앉힙니다. 그녀는 날 뒤에서 꼭 끌어안고 내 목에 얼굴을 묻습니다.
“이런거 꼭 해보고 싶었어.”
“엘… 과연 이건 사랑이 맞는걸까?”
나는 물론 기쁩니다만, 뭔가. 그 전에 있어야 될 여러 단계가 너무나 많이 생략된게 아닐까요? 아직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지 3일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으로 몇마디 전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건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나 하는거잖아. 우린 이미 20년간이나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어.”
“그, 그런 그렇다쳐도 아니마가 보고 있는 앞에서는 조금…”
저는 남에게 보여져서 기뻐하는 취미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제 내면의 알프 또한 공감할겁니다. 아니마도 일 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엄지를 치켜들며 방에서 나갔습니다.
“해결됐네?”
엘은 뒤에서 입술로 내 귀를 앙, 하고 깨물고는 속삭였습니다.
“잠…”
“시끄럽다.”
그녀는 다리를 벌려 한쪽 허벅지로만 나를 지탱했습니다. 내 왼쪽 다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위치합니다. 내 가랑이 사이에 압력이 닿는게 느껴집니다. 이 상대로 느껴버리기라도 했다가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반면에 내 꼬리는 그녀의 허벅지를 한바퀴 빙글 돌아 감습니다. 마치 빠져나가기 싫다는 듯이.
“내가 나로 남길 원해. 너는 그렇게 말했었지.”
그녀는 나직히 말합니다. 설마 그녀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걸까요? 나는 살짝 두려워졌습니다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정반대의 말이었습니다.
“나도 다른 누군가가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 따윈 싫어. 그러니까 나를 도와줘.”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의 엘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나약한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그녀의 푸념 같은 건 수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까지 약한 그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녀도 나처럼 그저 강한 척을 하고 있었던걸까요? 아니라면 이제는 버틸 수 없었던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물론이지. 난 네… 연인이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금 낯뜨거워졌습니다. 헤헤. 역시 연인이란 말은 울림이 다르네요.
“그러면 가슴 만질게.”
“방금 서로 간의 마음을 확인하는 좋은 분위기 아니었어?”
엘은 내 말따윈 무시한채로 브레지어를 벗겼습니다. 내가 뭐라고 항변할 시간도 없이 그녀는 내 가슴을 밑에서부터 손으로 받혀 올렸습니다. 그녀의 뜨거운 호흡이 내 목덜미에 느껴집니다. 오늘의 엘은 조금 무섭습니다. 그녀는 내 가슴을 조물조물 주무르기 시작합니다. 딱히 기분 좋지는 않습니다. 그저 따듯할 뿐. 하지만 엘은 충분히 만족스러워하는 모양입니다.
“무슨 일 있었어?”
내가 그렇게 묻자 엘은 마지못해 대답합니다.
“아주 큰 일이 하나 있었지. 이 공연음란죄 그 자체인 세계에서는 마력 뿐만이 인간을 타락시키는게 아니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내 유방 위에서 호를 그립니다. 빙글 돌아 봉우리 가까이 갈듯하다가 이윽고 멀어집니다. 나는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상합니다. 내가 만져봤을 때는 전혀 기분좋지 않았는데.
“모두가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세계인데, 어째서 나는 모든 것이 싫어지고 있는걸까?”
나는 뭐라도 말을 해주려했지만, 그녀는 나의 유두를 두 손가락을 모아서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한 쪽은 눌러비비고, 다른 한쪽은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가볍게 비틉니다. 꼬리가 그녀의 허벅지를 꽉 조입니다. 붉은 안개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오직 그녀와 나만이 세상에 남습니다.
“변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 이해해주는 건 너뿐이었어. 그런 네가 그 모습을 하고 나타났을 때,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으읏…”
어느 새 나는 내게 덮쳐오는 쾌락을 피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멈춰있는 것은 계속해서 멈춰있자 하고, 움직이려는 것은 계속해서 움직이려한다는 관성의 법칙 같이 무심코 이 급작스런 상황 변화로부터 도망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녀는 다리를 좁혀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꽉 붙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가랑이 사이로 압박이 가해집니다.
“처음에는 그저 기뻤어. 그 전부터도 네가 인간으로써 너무 좋았지만, 그건 단순한 정이였어. 누나가 사랑스러운 동생정도에게 가지는 애정.”
내 등 뒤의 그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게되면 지금의 나는 너무나 치명적으로 망가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녀도 짐작하고 있는걸까요?
“그러니까 네가 나쁜거야. 이런 모습으로 내게 나타난 네가 나쁜거야. 이뤄지지 않을 욕망이라면 언제까지라도 참을 수 있어… 하지만! 이뤄질 욕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귀엽게 솟아오른 내 유두를 가볍게 비틀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처음으로 이 몸으로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가슴이 징징 울립니다. 몸이 움찔움찔 떨립니다. 마치 번개에 맞은 것처럼 머리가 번쩍번쩍 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쾌락의 격류였다고 인식하는 건 그 뒤였습니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러 그녀의 허벅지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가볍게. 갔네. 귀여워.”
그녀는 내 볼을 가볍게 쓰다듬습니다.
가볍게…? 나는 공포심을 느낍니다. 이게 가벼운거라면 무거운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머리가 망가져 완전히 바보가 되어버리는게 아닐까요? 나는 이제 실험은 끝났으니 그만하자고 그녀에게 제안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녀가 이어 말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아마 절정에 달한 것도 처음이겠지? 너는 약간 결벽증 비슷한게 있으니까, 전부 나에게 주려고 아껴놨을거야.”
전부 그녀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어딘가 소년의 모습을 잃지 못한 나와는 다른, 정말로 음란하고 행복해보이는 장발의 소녀. 내 가장 깊은 곳에 사는 알프. 소녀는 내게 속삭였습니다.
‘전부… 엘을 위해…’
그녀는 아직 왼손을 내 가슴 위에 올려놓은 채로, 내 허벅지에 그녀의 오른손을 내려놓았습니다. 내 팬티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서 그녀의 허벅지까지 짙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오른손은 천천히 올라와 내 하복부에 머물렀습니다. 그녀의 열기가 전해져오는 것만으로도 난 이상한 기분이 됩니다. 그녀의 손가락은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네 처음을 이대로 받아가는 것도 아쉬우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끝낼까?”
“여기까지만이란 게… 대체 무슨 의미야?”
어느덧 그녀의 손가락은 내 음부 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 위를 한번 쓰다듬었습니다. 그러고는 검지를 이용해 내 굳게 닿힌 균열 위를 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윽고 가슴 위에 올려져있던 왼손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까와는 다르게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것을 애타게만 할 뿐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유두를 괴롭혀 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나 차마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야 부끄럽잖아요. 난 건장한 남성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타락하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아까의 그것… 절정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엘…?”
“왜?”
그녀의 목소리엔 살짝 웃음기가 섞여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그녀의 애무를 받아들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몸이, 몸이 너무나 뜨겁습니다. 정신은 한없이 고양되고 있는데에 반해 얻어지는 쾌락은 너무나 미약할 다름입니다. 그녀는 대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을 어디서 배워온걸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봅니다만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내 신체를 괴롭하는데 열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거야?”
“딱히 배우고 싶지 않았어. 보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보여주는 걸?”
아, 그렇죠. 여기가 마물들의 도시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물들이 좀 잠잠할 시간대에나 외출을 나가 그런 낯뜨거운 광경을 잘 목격하지 않는 편이지만 왕국의 치안유지대장인 그녀는 평소에 대체 무슨 꼴을 보고 있는걸까요? 그런 환경에 방치된 그녀라면 이 정도의 기예를 얻어내는 건 쉬운 일이겠죠. 그게 그녀의 재능이니만큼.
계속해서 그녀에게 괴롭힘 받던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래쪽은 미약한 감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기만 하고, 위쪽은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난 그나마 한번이라도 경험해본적 있는 위쪽을 택했습니다.
“엘…?”
“왜, 라크?”
그녀는 나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걸까요? 나는 그것을 전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입니다.
“그… 위쪽… 만져줬으면 좋겠어.”
“자세히 말하지않으면 몰라.”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는 마지못해 말했습니다.
“내 유두… 괴롭혀 주세요.”
“평소에도 그렇게 솔직하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안. 돼.”
내 음부는 질척질척한 액체가 넘쳐 팬티의 겉까지 끈적해져 있었습니다. 내 음란한 계곡을 계속 타고오르던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스윽 내려갑니다. 그리고 다시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의 손가락은 항상 멈추던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대로 올라와서 [ ]를 밀 듯이 튕깁니다.
“앗…”
쾌감이 찌르르 몸에 달렸습니다. 일순간 눈 앞에 번개가 치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초점이 풀리고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집니다. 엘이 나를 끌어안아 억지로 자세를 유지시킵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을 때, 이미 내 아래쪽엔 나를 보호해주던 마지막 방벽 따윈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방금 그건?”
나는 아직도 깜빡이는 정신으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거야. 내게 사랑 받을 생각만 했지. 정작 어떻게 사랑 받게 될지는 상상도 안해봤겠지.”
내가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그녀의 손가락 위에는 내 새빨갛게 달아오른 육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액에 푹 젖어서 의외의 광택을 내고 있었습니다. 음핵, 다른 이름으로는 클리토리스라고 했던가요? 내겐 단순한 여성의 성기의 일부라는 정보 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은 콩 안에 남자의 페니스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쾌감이 있데. 정말 굉장하지? 이번엔 여기로 절정에 달해볼거야.”
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를 향한 끝없는 악의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악이나 한다면 소악마적이겠지만 악은 악입니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그녀의 팔은 마치 철근이라도 된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 그럼 시작한다.”
“잠깐, 진짜 정말 안 돼. 정말 미쳐버릴지도 몰라, 망가져 버린다고!”
나는 반울음으로 그녀에게 항의하려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왕국의 밤하늘과 같이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학적으로 웃었습니다.
“그럼 망가져버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모아 나의 클리토리스를 짓이겼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튀어 날아갔습니다.
“응옷”
엘. 엘. 엘의 나. 기분 좋아. 내 자그마한 육아는 엘의 손가락 위에서 놀고 있습니다. 비틀리거나, 눌리거나, 찌그러졌습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정말 좋아서 울부짖었습니다. 몸이 벌써부터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하복부 어딘가에 열이 쌓여서 폭발할 것 같습니다.
“아… 하으… 간다…, 간다!”
“아직 안돼.”
내가 아까와 같은 절정에 달하려는 찰나, 엘이 음부와 배꼽 사이의 어딘가를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습니다. 그와 함께 바깥으로 해방되려던 열기 또한 갈 길을 잃고 막혀버렸습니다. 나는 당장 그녀의 손가락을 떼어내려 했습니다.
“라크.”
그녀가 나직히 말했습니다. 그건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슬프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내 의지보다 너의 쾌락이 중요한거야?”
그 말은 나의 숨통을 틀어막았습니다. 나는 반광란 상태였지만 그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너라면 그렇게 답해줄 줄 알았어. 그럼 라크, 날 위해서 열심히 견뎌줘.”
그녀를 위해서.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몇분이 흘렀을까요? 그 짧은 몇분이 나는 몇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어느 새 한도를 넘은 쾌락 속에서 더 쾌락을 얻고자 허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육체는 필사적으로 절정을 원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아니… 정신도… 그, 그야, 그녀의 행복이 내 기쁨입니다. 어느 순간, 엘은 붉게 피어오른 육아에서 손을 떼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착하다… 착하네… 그럼 이제 가도 좋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꾹 누르고 있던 하복부에서 손을 땠습니다. 그 순간, 마치 무너진 댐과 같이 그곳에서부터 쾌락이 끝없이 쏟아져나옵니다.
“응긋 아 하아 아힛!”
온몸의 근육은 경직되고 입은 열려서 의미없는 단어만이 흘러내립니다. 시선이 향하는 끝은 없습니다. 무엇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영혼은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곧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온몸의 근육 몇 개가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아마 아직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쾌락의 잔재 때문일 것입니다. 일련의 절정들이 끝나고, 나는 그녀쪽으로 툭 몸을 기댑니다. 그녀의 허벅지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매달려 있던 꼬리도 축 늘어집니다.
“우흐흐…”
그녀는 그렇게 음흉하게 웃으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나를 꼭 껴안았습니다. 내겐 이제 뭐라 한마디할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졸릴 뿐이었습니다.
“나만의 것.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나는 그렇게 그녀가 조용히 속삭이는 것을 들으며…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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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써본 건 처음이라서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이 뭐냐고요? 야한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