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가 넘칠듯 말듯한 수위까지 가득 부어져서 찰랑거리고 있는 잔을 들어 그대로 목으로 넘기며 크. 하는 소리를 흘린다.

아까 처음에 들어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깔끔해진 예탄정의 모습에 왠지 만족감을 느끼며 옆에서 계속해서 술을 따르는

미요이를 힐긋 쳐다본다. 고래 모양의 모자라던지, 등에 있는 고래 꼬리 모양의 리본 같은 것이 축 늘어진 모양이 어째

란이나 첸 같은 케모미미 계열의 이마냥 감정이라도 표현하는것 같아서 만져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물어라도 볼까?


"어이없는 손님이었어! 아니, 손님이 아니라 그런건 완전히 진상이잖아! 애초에 술값도 제대로 치르지도 않을 생각으로

와놓고 희롱에다가 점주님 앞에서 이깟 것도 술과 요리라고 하냐고 으스대면서 바닥에 그릇째로 내던지고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도 한데다가 심지어는 볼 것도 없는 빈약한 근육이랍시고 옷을 벗어던지는 것까지 하는데 정말로 짜증나!"

물어보기도 전에, 지금까지 손님으로 존대하던건 어디에 가져다버린 것인지 빼애액 거리면서 계속 푸념을 늘어놓는

미요이의 모습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아아, 이거 의외로 친해진 상대에게는 말을 놓는 성격이구나. 미요이는.


"뭘 으스대는건지는 모르지만 엄청, 엄청나게 열받았어! 그런 것들이 마을을 활개치고 다니고 자빠지는 것도 싫은데!

평소에는 와서 다른 이들이 마시는 술을 빤히 구경하고 있는 오니는 오지도 않고! 다른 가게의 사람들은 서로 돕지도

않고! 완전히 엉망진창이야! 서로 도와야 한다면서 음흉한 눈으로 쳐다만 봐놓고서 실제론 도망치기 바쁘질 않나!"

그래, 그래. 일단 다른 이들이 나쁘다는걸로 해두자. 고래 모자의 지느러미 부분을 꽉 쥐고서 > < 같은 표정으로

붕쯔붕쯔 거리고 있는 미요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술잔을 다시 채워간다. 그렇지만 이 연어 껍질 구이, 맛있네.




"듣고 있어?! 엄청나게 열받았다니까?! 아무도 돕지도 않고, 평소에는 가게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하면 돕겠다는둥,

간판 아가씨를 다치게 할수는 없다는둥 말하는 이들은 다 구경만 하고 있고 자기들 가게만 신경쓰면서 도망치거나

하고 있었어! 믿겨?! 물론 어느 정도는 겉치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 두 명이라도 말이라도 해줄거라 생각을

했는데 다 끝나고 나서야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오려고 하다니 도대체 양심이란걸 어디 하수구에 처박아놓은..."

꽤나 과격한 단어의 나열을 들으면서 간장을 발라 구워낸 유부의 쫄깃함을 즐긴다. 응, 무척이나 맛있는걸.

◆◆◆◆◆◆ 

한참 동안이나, 씩씩거리면서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찬 술을 벌컥거리며 들이키던 미요이였지만, 취기가 도는것인지

한 말만 계속 웅얼거리며 반복하면서 이마를 쾅쾅 소리가 나도록 카운터 석에서 부딪치고 있다. 중간중간에 고개만

끄덕여주는 것에도 만족하는 것마냥 헤실거리면서 웃다가, 갑자기 푸념을 토로하는 것은 꽤나 보는 재미가 있다.

아, 그래도 이 니코고리 맛있는걸. 가자미인지 뭔지는 몰라도 뜨거운 밥에 얹어서 녹인다면 정말로 좋을것 같다.


그렇지만 주머니가 가볍다고 말을 해두었는데도 이런 식으로 계속 대접을 받아도 되는건지 모르겠는데...아직까지

바닥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법한, 입구 바로 밖에 대충 떡처럼 뭉쳐둔 것들을 생각하며 턱을 긁적이곤,

좋은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두기로 했다. 애초에 한 번 이렇게 대형으로 사고를 쳐버린 이상 예탄정 쪽에 대놓고

헛짓거리를 하려는 이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뭐, 미요이와 깊은 사이니 뭐니 하는 저질스러운 이야기 같은것도

퍼질 수밖에는 없겠지만...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라던지가 보이고, 붕붕마루에 게재된다면 가라앉겠지.


몇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떠나간 점주에게 똑같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나서, 반쯤 골로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르뤼에어 같은것을 웅얼거리고 있는 미요이를 방에 눕혀두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져서 달이 밝게

떠오른 시간이 되었다. 이래저래 푸념을 들어주다 보니 이쪽의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흘러버렸던 모양이다. 

밖으로 나오자니 아직까지도 이쪽을 힐끗거리면서 웅성거리는 이들이 있지만...이쪽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요괴들을 보는 두려워하는 눈으로 보아오는 것이 정말이지 조금은, 기분이 나빠지는 일인걸지도 모르겠다. 

◆◆◆◆◆◆

연초를 입술에 물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탈칵. 탈칵 거리면서 부싯돌끼리 부딪치는 소리만 나는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기름이 떨어진 모양이다. 나중에 유카리에게 기름이라도 구매해달라고 해봐야겠지. 술집 거리를

벗어나서 명련사로 휘적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편익을 팔락이고 있는 사구메와 눈이 마주쳤다.


"....." 언제나와 달리, 마스크는 쓰고 있지 않지만 입술을 꾹 닫고 있는 그 모습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서

펜과 수첩을 꺼내들어 글을 써내려간다. [ 명련사의 갈대밭을 구경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 ] 란

수첩의 내용을 읽고서는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보는것 같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오는 사구메와 명련사를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바닥에

깔린 약간의 녹지 않은 눈들이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밟히는 것에 나이에 맞지도 않게 괜히 기분이 설렌다.


[ 영원정에 있을 줄 알았는데, 죽림에 찾아갔더니 없어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토요히메 님의 전언이 있고. ]

토요히메의 전언? 토요히메는 달에서 어떤 수준의 지위에 있기에 사구메에게 그런걸 부탁할 수 있던것일까?

[ 달의 바다로 찾아온다면, 용궁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줄테니 찾아오고 싶다면 재주껏 찾아와보라고 하셨어. ]

과연, 그렇지만 우라시마 타로마냥 다른 이들이 전부 없어진 뒤에 혼자서 늙지 않은채 돌아오고 싶진않네.

타마테바코 (세월을 담아둔 상자) 같은 것을 열지 않을 자신도 없고 말이야. 제피로스의 자루 같은 걸까?


[ 제피로스의 자루? 미안, 그 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달의 도시에 가보고 싶다면 언제라도 말하면. ]

달의 도시인가. ...꿈의 세계란 곳에도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달의 도시는 먼발치에서 본적이 있으니. ]

[ 달의 도시는 먼발치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른 곳이야. 모든 이가 지상인을 더럽다고

말하거나 배척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까, 토요히메 님이 초대를 해주신만큼 따로 문제가 되진 않을거야. ]

◆◆◆◆◆◆ 

멀지 않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몇 장의 수첩을 넘길 정도로 필담을 나누며 걷다보니, 거진 한 시간 가까이가 걸려서

명련사의 갈대밭이 보이는 자리에 적당히 걸터앉을수 있었다. 오전에 생각했던대로, 시린 달빛이 내려 반짝거리는

갈대밭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물론, 다른 이와 함께 보는 달빛 아래의 갈대밭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갈대를 스칠 때마다 무언가 스산하면서도 구슬픈 연주와 같이 울리는 소리들은 귓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어왔고, 달빛 아래에서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들은 보리밭이 아님에도 '늑대가 달린다' 라던 어떤 책의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차갑고 시리다고 해야 할것만 같은 달빛의 아래에서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꺾이면서도 휘어져가는

갈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옆구리 쪽에서 무언가 쿡쿡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자니

사구메가 천천히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러오면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혼자서 갈대밭 구경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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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도시와는 다르게, 더러움이란 것으로 가득 차있는 지상이기는 하지만...그렇다고 해도, 지상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네. 누군가의 바로 옆에 앉아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달에서는 있을 수 없으니까. ]

그래? 사구메라면 따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려 깊은 상대라고 생각해서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이라고 여겨질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그게 아니었던 거라면 달의 주민들은 제대로 사구메를 보지 못한 모양이야. 사려깊은 상대인데.


고요하다, 방금 전까지 갈대밭을 휩쓸고 지나가던 바람은 한순간 잦아들어서 볼을 스쳐가는 정도로 줄어들어버렸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간헐적으로 울리는 작은 풀벌레의 소리와 펜이 종이에 무언가를 써가는 사각거리는 소리들은

명련사의 툇마루에서 기묘한 화음을 빚어가고 있다. '목소리' 로서 들리지는 않지만 또 다른 소리를 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 순간을 사구메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스스로에 대해서 눈을 감고서 관조한다.


사구메와 서로 마주보지도 아니하고, 서로 몸을 맞닿게 하는것도 아닌. 고요함 속에서 작게 울리고 있는 이 화음만이

서로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척이나 가슴 안쪽에서부터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이 순간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낄수 있다.

자신만 이런 간질대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구메 또한 이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버린 탓에 펜에서 과하게 새어나온 잉크는 수첩의 종이로 번져나간다.

급히 지워내려 하여도, 그럴수록 오히려 더 번져나가는 잉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페이지를 울게 만들어버리고,

지금껏 주고받았던 '대화'의 흔적을 얼룩으로 덧씌워간다. ...단순히 힘조절의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사실 사구메와 자신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의 친밀의 선을 넘어서 감정을 조절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자신이라는 잉크는 사구메에게 번져나간 끝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녀와 스스로를 물들여버리는 독과 다를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관계 말이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들어서 서로 시선을 마주한다. 사구메, 국진신이자 달의 주민인 그녀를 눈에 담는다. 

그녀가 이쪽의 얼굴로 말없이 향해오는 시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여성에는 익숙하다고 생각을 했음에도

괜히 귓불까지 붉어지는 기분에 고개를 숙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몸이 젊어진 탓일까, 혈기를 견디기가 어렵다.


황급히 고개를 숙여버린 사구메는 아주 천천히 망설이는 기색으로 한글자, 한글자씩 펜에 힘을 주어서 수첩에 하나의 

문장을 써나간다. 너무 꽉꽉 누른 탓에 울어버리고, 번져버린 글씨로 가득한 문장. [ 당신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

천천히 소리를 내어 그것을 읽어나가려 하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잉크로 계속해서, 계속해서 문장을 지워나간다.

답을 듣지 않고 싶다며, 답을 듣는 것이 무섭다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버린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문장을 지우기 위해서 꾹꾹 누르고, 누른 끝에 한계까지 울어버린 종이는 찢어져 그 잉크를 사구메의 손에

물들여나간다.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펜과 수첩을 내려놓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해나간다.

바람이 실어온 소리라고 흘려들어도 좋고, 갈대와 풀벌레가 속삭여주는 소리라 생각해도 좋다면서 전하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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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미요이와 사구메가 주역이었습니다. 미요이는 이젠 손님을 맞는 간판아가씨보단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네요.

미요이의 투정과 푸념은 상상만으로 무척이나 귀여운 기분이 듭니다. 사구메는 처음 구상했을때는 정말로 감성적인

기분이 들었는데 문장력이 부족해서인지 다시 읽어보면 괜스레 아쉬운 기분이 들어버립니다. 어울리는 음악이라도

찾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에요. 사구메의 이야기, 마지막에 사구메에게 전한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원래 다음 화에는 꿈의 세계로 가보려 했지만, 아무래도 도레미 이벤트는 몇번은 더 꿈 속에서 만나야 하겠네요.


이번 화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력과 감상의 댓글, 추천은 언제나 감사히 받고 있으며 입력의 댓글을 전부 사용은

못하더라도 각색하거나, 나중에 가능한 부분이 나온다면 사용하려 하고 있으니 부담없이 입력을 해주시면 좋습니다.

그러면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