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투표(自決投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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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홀에서는 식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백이란과 입을 맞추고 자신이 씹던 음식을 넘겨준다.

 

“…….”

 

강문희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예 없던 플레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와 차이가 있다면 입을 겹친 인물이 박선정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고혹적인 눈웃음으로 백이란을 바라보더니 흘끗 시선을 돌려 강문희와 눈을 마주친다.

 

강문희의 시선에서 욕정의 빛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그녀를 망가뜨려버린 데에 있어서 약간 죄책감이 피어오르긴 했으나

얼마나 계속될지 모르는 이 게임 가운데서 강문희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일주일 안에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한 달을 넘도록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 동안 강문희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그녀의 성벽을 약간 왜곡시키는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합리화하고서 예전에 포기했던 남자를 탐하고 있었다.

 

타액과 타액이 섞일 때 솟아나는 감미로운 쾌락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저항하고 싶지가 않았다.

 

폭력 금지의 조항만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입술을 깨물고 배어나오는 혈액을 핥아먹고 싶었다.

 

성란과 박루미는 그 접촉에 약간 불만을 가진 듯 했으나

백은하와의 약속이 있었기에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어차피 곧 투표함을 지켜야하는 아침식사 때는 너무 과격한 플레이를 하지 말자는 탈락자들끼리의 합의도 있었다.

 

그런 약간의 인내를 대가로 밤새도록 독점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욕망에 범벅이 된 식사는 이어졌다.

 

─그리고 이변이 발생한 것은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유히 홀을 장악한 것은 백은하였고,

이시연도 뒤늦게 이전 기억을 떠올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백은하가 황금 고리를 소환하더니 탈락자 두 사람을 의자에 묶어버린 것이었다.

 

“으읍──!”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직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 둘의 입을 천으로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자, 언니들. 오늘은 잠시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계세요.”

 

그제야 백은하의 행동을 이해하고 몸부림치기 시작한 탈락자들이었으나

그녀는 아랑곳 않고 고리의 개수를 늘려갈 뿐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저지를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이시연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박선정 역시 이전에 그녀가 말했던 ‘최소 3일’이라는 기간의 진실을 알아차린다.

무엇이 대가였는지는 몰라도 백은하가 배신하도록 계약이 이뤄졌음을.

 

“…….”

“왜 그래요, 선정이 언니?”

 

키득거리며 백은하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자신의 표정 때문이리라고 박선정은 짐작했다.

 

떨리는 눈동자로 강문희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 음, 그러니까 은하야. 도와준 거지?”

 

그녀는 아직 어안이 벙벙한지 멋쩍은 표정으로 질문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선정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바라본 것은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표정의 백이란이었다.

 

그의 입가는 박선정의 침으로 질척해져있었다.

 

“나, 나는…….”

“응? 선정이 언니. 정말 왜 그런 표정이에요?”

“백은하. 설마 너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탈락자 투표를 개시할 수 있게 협력한 장본인이니

백은하는 분명 오늘이 결행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박선정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비웃었다.

 

“─그래서 문희 언니를 망가뜨린 기분은 어떠세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박선정은 백은하를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저기, 어떠냐고 물었는데 대답 안해주세요?”

 

그러나 그녀의 행동이 강문희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점은 믿고 있었다.

 

아니, 합리화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것은 의식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문희 언니를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마음껏 오빠를 범한 기분은 어떠시냐고요?”

 

끝난다는 기약 없는 게임 속에서 차악이자 차선을 선택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절로 끝날 게임이었다.

 

“그, 그렇지만 나는…”

“애초에 상식적으로 친구를 위해서 네토라레 성벽을 심어준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오로지 강문희를 망가뜨리고 말았다는 결과만이 남아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해주던 면죄부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언니는 그냥 오빠를 범하고 싶었던 거예요. 명분이 생겼으니까 덥석 물어버린 거지.”

“아니야… 나는 그런 게 아니라…….”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보지 그래요? 정말로 아닌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약의 힘까지 빌린 백은하가 교묘하게 속인 결과였다.

 

그러나 몰아세워진 박선정의 이성이 그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릴 리 없었다.

 

정말로 자신의 행동은 강문희를 위했던 것이 맞았던 건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넘겨버린 게 아닌가?

 

아니다. 분명 그렇지 않다.

 

아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말로?

 

박선정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만 방에서 쉬고 있을게.”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것인지 강문희가 무어라 말을 걸어온 기분도 들었지만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저 얼른 방에 돌아가 침대에 몸을 파묻고 싶었다.

 

당장에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1.

 

“아아, 역시 내기를 할 걸 그랬어요.”

“아직 완전히 결정난 것도 아니잖니?”

 

이시연의 방에 찾아온 백은하는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서 보건대 결코 진심은 아니었으리라.

 

“선정이 언니 표정 못 보셨어요? 이제 조금만 더 밀면 무너진다니까요.”

“정말이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저 정도로 몰아세웠나 싶구나.”

“아뇨, 저는 그다지 뭐 한 건 없어요?”

 

백은하는 생글생글 웃으며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이제는 아주 방 주인 허락도 없이 멋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선정이 언니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무의식이라든가 잠재의식이라든가…….

그런 걸 너무 신경쓰면 남이 주입한 생각마저 그대로 자기 거라고 믿어버린단 말이죠.”

 

그 말에 이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정말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선정이 나머지 탈락자를 제압하게 하고 다음 투표를 바로 개시하려 계획했으나

이런 여자가 상대라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했다.

 

과연 박선정이 이쪽에 협력하려고 할까.

아니, 애초에 투표함을 지키는 탈락자들에게 합류할 가능성이 컸다.

 

“후우…….”

 

이쪽의 고민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백은하는 유유히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따랐다.

 

그녀는 별 거리낌 없이 커피믹스 봉투로 물을 휘휘 저어 섞고는 한 모금 들이켰다.

 

“나중에 나가면 사이비 교단이라도 만들어보는 게 어떠니?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네? 선생님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비아냥대는 이시연의 말에도 싱긋 웃으며 답해올 뿐이었다.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요? 여기가 얼마나 편한 곳인데요.”

 

백은하는 손가락을 펼치더니 하나하나 접어가며 말했다.

 

“밥은 맛있고 메뉴도 다양하죠. 게다가 규칙 투표의 부산물로 돈까지 많이 준다고요.”

 

그러다가 엄지를 척 치켜들고는 내민다.

 

“무엇보다 저는 오빠만 있으면 되거든요.”

 

순도 100%의 진심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 속내에 희미한 집착과 광기가 짙게 깔린 게 느껴졌다.

 

“그러니?”

“그런 거예요.”

 

하지만 이시연 역시 그것을 반박할 말을 찾지는 못했다.

 

미쳐있다는 의미에서는 그녀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한 남자를 차지하고자 갖고 있는 모든 걸 끌어다 바칠 심산인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저 가짜 미소를 띠고 서로를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얇은 종이컵에서는 커피의 온기가 스며나왔다.

 

 

2.

 

“이번 투표의 결과 탈락자로 선정된 것은 박선정 씨입니다.”

 

호박은 그렇게 고했다.

 

박선정 세 표, 이시연 한 표.

 

본인을 투표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사실상 만장일치였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꽤나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였던 박선정도

투표를 할 때가 되어서는 마음을 가라앉혔는지 꽤나 차분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가 아침에 그런 반응이었던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문희와 백이란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새삼스레 박선정의 반응을 떠올려보니 백이란에게 했던 행동이

어쩌면 사실 반강제적으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은 했다.

 

거기에 죄책감을 갖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리 생각하자니 왜 하필 오늘 아침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탈락자 투표의 개시가 사실상 확실시된 순간에 박선정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게 맞지 않았는가.

 

오늘 박선정은 탈락자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녀에게도 폭력이 개방된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가해졌던 강제적인 것들의 대부분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이시연은 백은하와 있던 거래를 떠올리면서

박선정이 한동안 탈락자 투표가 없다 여기고 무언가를 저질렀다는 정도는 추측했다.

 

그러나 그녀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그 상세한 내용까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탈락자인 성란과 박루미도 그리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들 입장에서도 이시연과 백은하 사이에 있던 거래를 모르니 당연했다.

 

“…….”

 

그런 의문 가운데서 시작된 식사가 화기애애할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탈락자들이 늘기 시작한 이후 대부분 침묵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특히나 오늘의 분위기는 더욱이 냉랭했다.

 

오로지 박루미가 배신자인 백은하를 노려보며 이를 갈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당장이라도 일을 저지를 기세였으면 같이 배신당한 성란조차 기겁을 하며

통제를 위해 박루미의 머리 위에 불덩이를 소환해뒀을 지경이었다.

 

“으, 피망…….”

 

정작 그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백은하는 여유롭게 싫어하는 채소를 골라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백이란은 오랜만에 누구의 접촉도 없이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만끽할 수가 있었다.

 

평소에는 오전 내내 투표함을 지키느라 그를 만나지 못했던 탈락자들이 점심시간을 노려 마구 덤벼들곤 했다.

 

“선정이 언니. 오빠 방으로 와주세요.”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무렵, 백은하는 속삭이듯 박선정에게 말을 전했다.

 

그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 떨며 반응하는 박선정이었다.

 

이제는 그녀 역시 탈락자였고, 강문희라는 명분도 사라진 이상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짐을 굳혔다.

 

“…….”

 

백은하의 목적은 눈에 선히 보였다.

 

그녀는 박선정을 회유하려 하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즐겨온 것처럼 욕망으로 점철된 생활을 보내자고.

아니, 더욱 격렬한 정욕의 연회를 벌이자고 말이다.

 

상상만 해도 몸이 달아오르고 만다.

사랑했던,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겹치는 게 싫을 리 없었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그것은 이른바 체험판에 불과했다.

 

이제는 정말로 규칙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욱 나아갈 수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오늘 아침 잠시 의지를 잃고 꺾일 뻔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백이란과 강문희. 두 사람의 소꿉친구를 떠올리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자신이 한동안 해온 일은 분명 잘못이었다.

스스로의 욕망에 휩쓸려 친구의 마음을 배신하기 직전까지 갔다.

 

강문희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아니, 절이라도 하며 사과를 해야겠지.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진심이 담겨있어야 했다.

 

테이블을 떠나면서도 박선정은 강문희에게 아무 말 없이 그저 씁쓸한 미소만을 지어주었다.

 

강문희는 남을 쉽사리 미워하지 못할 정도로 착했다.

분명 당장 미안하다고 말하면 웃으며 용서해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사과할 때는 마음을 완전히 정리한 뒤여야 했다.

 

그녀의 심성을 이용해서 잘못을 그냥 쉽게 넘기는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박선정은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문에는 백이란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백은하가 협력의 대가로 내어주려는 당근을 마주하고서,

그것을 온전히 거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죄의 자격이 생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패널에 손을 가져다대자 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한 걸음 내딛자마자 음란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몇 날 며칠을 탈락자들의 연회장으로 쓰인 백이란의 개인실은

더 이상 빠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욕정의 냄새로 차있었다.

 

그것을 맡는 것만으로도 척추가 부르르 떨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박선정은 주먹을 쥐고 안으로 더욱 나아갔다.

 

안쪽의 침대에는 백이란과 백은하가 걸터앉아 있었다.

 

백이란은 그녀가 들어온 것을 잠시 보고는 시선을 피했으나

백은하는 환히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언니는 와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희에게 협력하지 않겠다 말하려고 온 거야.”

 

박선정은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렇게라도 적의를 표하지 않으면 의지가 꺾여버릴 것만 같았다.

 

“네, 선정이 언니라면 그럴 것 같았어요.

분명 제대로 거절하고 오지 않으면 문희 언니한테 사과할 자격도 없다거나 뭐 그런 거겠죠.”

 

박선정은 억지로 평정을 가장해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 언니의 의지를 보여주세요. 이제는 욕망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말이에요.”

 

그리 말하면서 백은하는 손끝으로 박선정 근처의 바닥을 가리켰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한 그녀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동안 백은하는 백이란을 일으켜 박선정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

 

“…….”

 

그제야 박선정은 백이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 이거요? 오빠한테 잠시 제 걸 빌려줬어요.”

 

웬일로 백이란은 멀쩡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고간이 도려내지지 않았음에도 그의 물건은 바지 위로 그 강직을 뽐내고 있었다.

 

어느새 코끝에 그의 사타구니가 닿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다.

 

풍겨오는 냄새가 비강을 간질이며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배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부풀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됐어?”

“에이, 설마 여기서 끝낼 거였으면 굳이 이렇게 안 입혔죠.”

 

이를 꽉 깨물고서 어떻게든 무표정을 짓는 박선정이었다.

 

솔직히 기대도 하지 않았으나 역시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선정은 다시금 의지를 굳혔다.

다시는 스스로의 욕망에 패하지 않으리라고.

 

“언니가 직접 벗겨주세요.”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명령이 돌아와서 박선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란아, 조금만 참아줘.”

“선정이 누나…….”

 

이내 박선정은 백이란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녀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서 그의 바지를 속옷과 함께 내렸다.

 

“…윽!”

 

그 순간 바지 안쪽에서 팽팽하게 부풀어있던 페니스가 튀어나오며 박선정의 코를 후렸다.

 

질척한 액체로 젖어있던 페니스가 훑고 지나가며 남긴 점액이 비강을 간질였다.

옷감 안에 파묻혀있던 남자의 냄새가 단숨에 해방되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분명 평소에 쓰던 미약의 냄새도 어느 정도 섞여있으리라 박선정은 생각했다.

 

이것만으로도 의식이 몽롱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박선정은 겨우 정신을 되찾았다.

아슬아슬하지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백이란을 올려다보았다.

 

“…누나.”

 

그는 실망과 체념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박선정은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

 

사실상 그와 강문희를 배신하는 수준의 행동을 저질러버린 그녀였다.

어쩌면 지금도 얼굴이 조금은 헤실헤실 풀어졌을지도 모른다.

 

백이란은 그녀에게 그다지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보여주고 싶었다.

 

뒤이어 박선정은 시선을 돌려 백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키득거리며 박선정과 눈을 맞추었다.

 

하지만 저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도, 그녀의 노림수도 대충 짐작이 갔다.

 

백은하의 팔찌에 작은 방울이 하나 걸려있었다.

 

그녀는 박선정이 백이란을 희롱할 때면 귓가에서 저 방울을 흔들곤 했다.

 

이전에 최면이 잘 걸리는 타입이니 뭐니 말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마도 파블로프의 개와 비슷한 것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사실 정말 그런 걸로 박선정의 성욕을 폭주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애초에 이론상으로만 생각해도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갔다.

 

하지만 박선정은 확신했다.

 

여기서 더욱 그녀의 정욕을 불러온다 해도 굴복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버텨내고서 소꿉친구들의 당당한 누나이자 언니로 남고야 말겠다.

 

그런 의지를 담아 어디 한 번 해보라며 백은하에게 외쳤다.

 

“아으아아…”

 

무언가 이상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정확히는 발음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입 안에서 쓰고 비린 맛이 마구 뒤섞여 혀를 찔러왔다.

백이란의 냄새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스스로가 백이란의 페니스를 가득 삼키고 있음을 깨달은 건 조금 더 지나서였다.

 

…대체 언제부터?

 

“웃어서 미안해요 언니. 근데 진짜 그 정도로 빠를 줄은 저도 몰랐단 말이에요.”

 

그제야 박선정은 백이란의 표정에 깃든 실망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과연 정말로 그가 박선정이 예전에도 못 참았으니 지금도 그럴 거라 단정지을 성격이었던가?


결코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정욕의 맛을 알아버린 혀는 멈추질 않았다.

 

“에이, 너무 간만 보는 거 아니에요?”

 

그런 그녀 옆에 백은하는 쪼그려 앉았다.

 

이어서 귓바퀴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머리를 내민다.

 

백은하가 하려는 것을 알아차린 박선정은 떨리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 없이 애원했다.

 

“어디 진심을 다해 빨아보세요?”

 

그러나 찾아드는 장난기 가득한 비웃음.

몇 번이고 명령을 들어온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가슴이 술렁였다.

 

안 그래도 이미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는 상태에서

욕망을 충족시켜줄 명령까지 들어오자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흐윽, 누나… 멈춰엇…….”

 

그녀의 머리를 붙잡으며 흐느끼듯 부탁하는 백이란이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박선정을 밀어낼 수 없었다.

 

애무가 아니라 포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격함이었다.

 

박선정은 단순한 흡입에서 그치지 않고 온힘을 다해 머리를 앞뒤로 흔들어대었다.

 

일부러 입 안을 그 냄새로 범벅이 되도록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뺨 너머로 육봉의 실루엣이 드러나고 구강의 점막이 귀두를 훑으며 쾌감을 전해왔다.

 

“선정이 누나앗, 흐으, 누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 윽.”

 

이제 백이란이 외쳐대는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허리에 팔을 휘감아 고정하고서 게걸스럽게 욕망을 탐하는 짐승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힘싸움에서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물론 백이란의 인내였다.

 

박선정의 입 안에 정액이 잔뜩 쏟아졌다.

 

자극받은 것은 입 한 군데뿐이었는데도 전신을 감싸는 황홀감과 함께

머릿속에서부터 무언가 끊어지는 감각이 스쳤다.

 

“후아, 하… 우우…….”

 

입에 문 것을 빼내고서 박선정은 고개를 위로 치들었다.

 

조금 더 맛보고 싶다며 날름거리는 혀와 당장 뱃속에 집어넣어달라며 날뛰는 목구멍이 서로 싸워댔다.

 

“아…….”

 

마침내 입을 완전히 떠나버린 정액에 박선정은 무심코 안타까운 탄식을 뱉었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잇몸 근처를 핥으며 남아있는 꿀을 찾았다.

 

텅 비어버린 입과 반대로 속옷은 더할 나위 없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선정이 언니.”

 

백은하의 목소리를 알아차린 것은 그 무렵이었다.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자 그녀가 백이란을 침대에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만족했으면 이제 가도 되는데요?”

 

그러나 박선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네 발로 기듯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뒤이어 느긋하게 침대로 올라가선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그녀였다.

 

박선정은 금세 자세를 잡았고 비부가 서로 맞닿았다.

 

그녀의 투명한 꿀이 장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은하는 다시금 키득키득 웃었다.

 

딸랑. 방울소리가 울린 것과 끈적끈적한 주름이 먹잇감을 짐어삼킨 것은 동시였다.




네 번째 탈락자 투표도 이걸로 끝나고 남은 건 최종 투표.

오늘도 문희는 털렸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언제는 안 그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