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 한번 해보겠다고, 한달 전부터 누키게 캐러게 등등을 돌아다니며 온갖 꼴리는 떡씬맛집만 골라먹으며 빌드업 쌓다가 드디어 7월 후반에 시작하게 된 섬머포켓


기다렸고, 기대했고, 길었던 게임이니만큼 내 면생에서 가장 큰 게임중 하나였음

하고나서 바로 딱 드는 생각은 여름의 행복하고 즐거우면서도 그리운, 때로는 쓰라린 추억을 정말 잘 보여준 게임이었다고 생각이 드네


당연하게도 아래는 스포일러 한가득이니 기왕이면 올클리어하고나서 보는걸 추천함


0.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나는 이 게임을 시작하면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우선 키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것이 눈물 줄줄 흘리게 만드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지

클라나드, 리틀버스터즈만 봐도 알수 있듯 키는 사람의 감정을 줘패는데 특화된 회사임

고로 클라나드랑 리틀버스터즈의 언급이 꽤 자주 나올거임


그다음엔 사람들이 은근히 모르는데, 이 회사는 개그랑 일상파트도 나름 잘 뽑는 회사임

그러니 캐러게의 맛도 살짝 난다는건데, 이것도 기대해볼만 했음


그리고 키겜은 게임 설정에 아주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어있음

이걸 미리 감안하고 봤느냐 생각하지않고 봤느냐에 따른 평가가 조금 다를수도 있지


그리고 섬머포켓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름의 추억을 테마로 한 게임임

즉 여름이라는 화사한 배경에 어떤 즐거운 이벤트가 있을까도 약간 기대했었음


우선 내가 게임 시작하기전에 가지고있던 선입견은 저 네가지임. 이게 내 기대점이자 줏대이기때문에 평가를 한다고 하면 이 네가지를 기초로 평가를 하는 일이 많을거임


그러면 본격적으로 개별루트를 하나하나 들어가보자


1.아오 루트

얼굴 보자마자 팍 꽂혀서 얘는 1픽으로 공략한다 했던 캐릭

근데 이제와서 보니까 아오를 제일 먼저하는게 국룰이긴 한가 보더라고


아오루트의 핵심 이야기는 

나비에 대한 떡밥을 뿌리는 것

그리고 핵심 테마는

'추억을 발판삼아 열어가는 미래'라고 생각함


아오루트는 이 게임에서 가장 진지한 루트 중 하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가볍게 진행됨

칠영나비의 설정 자체가 사람의 기억, 즉 추억을 가지고 있는 영혼이나 마찬가지인데

충분히 무겁게 갈 수 있는 스토리를 개그를 섞어가며 가볍게 풀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핵심 테마라고 말한 '미래'라는 단어가 떠올랐음

흔히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과거를 보고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 배운다고들 하는데

아오루트도 이에 빗대어보면 아오가 나비를 모으는 행위 자체는 과거에 묶여있다고 봐도 됨

하지만 아이가 깨어난 이후에 나비를 놓아주고, 하이리가 아오의 나비를 되찾는 과정은 과거에 묶인 것이 아닌 아오와의 미래를 잇기 위해서 되찾는 거라고 생각함

즉 같은 행동이지만 한명은 과거에 묶여있고, 한명은 미래를 보고있다는거지

물론 과거도 미래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음. 실제로 한명은 아이를 한명은 아오를 살려내기도 했고

하지만 미래를 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그 시도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실제로 하이리와 아오는 잠든 아오와 아이를 위해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줌

왜? 깨어난 뒤의 아오와 아이를 위해서

하이리는 다시 내륙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오를 꾸준히 찾아옴

왜? 이것도 깨어난 뒤의 아오를 위해서

여름이 끝난 후에도 매 기념일마다 여러가지 특별한 일을 하면서 추억을 남겼음

왜? 아오가 잠들어있더라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즉 잠든 아오를 위해 하이리가 꾸준히 해준 행동은, 여름이 끝나고 여름의 추억이 묻혀도 또다시 여름은 찾아오고 새로운 추억이 생길것이라는것에 대한 암시라고 나는 생각했음

이것은 진엔딩루트와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지


뭐 이리저리 길게 말하긴 했지만 핵심은 메인스토리의 주제를 자연스레 언급하면서 그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으며, 마음속에도 무언가를 남기는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생각함

실제로 나는 개별중에서 아오루트를 탑3중 하나로 뽑음


2.츠무기 루트

그다음에 잡은 것은 츠무기루트였음

사실 시즈쿠눈나가 2픽이었는데, 츠무기를 먼저 해야한다길래 츠무기루트를 두번째로 잡은거였음


츠무기루트의 핵심 이야기는

카미카쿠시에 대한 떡밥 뿌리기와 섬의 과거에 있던 이야기 하나 풀기 정도고

내가 생각하는 츠무기루트의 핵심 테마는

'끝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라고 생각함


섬포의 모든 개별루트중에서 가장 쓰라린 추억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난 이 게임을 하면서 느낀 것이 추억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결국엔 모두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츠무기루트는 사정이 좀 다름. 여름이 끝나면 사라져버릴 츠무기를 위한 추억인데, 아무리 웃으며 즐겁게 보내도 어쨌든 이 여름은 끝나버린다는건 변치 않음

그렇다고 끝나버릴 순간만을 바라보며 계속 후회하고 울상지으며 여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행복한 여름을 보내는것이 좋지 않을까?


70회치의 크리스마스, 70회치의 꽃구경, 70회치의 할로윈, 70회치의 칠석, 70회치의 설날, 70회치의 발렌타인데이

이 대사 자체가 이 루트의 핵심주제라고 난 생각했음

끝이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하며 지내는 것, 그것이 시한부나 마찬가지인 츠무기를 위한 최고의 추억 남기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도

모든 나날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덧씌워도

한없이 최고의 추억을 남겨줘도

결국 끝은 찾아와버린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음

츠무기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하이리를 보고 마지막까지 웃어달라고 부탁을 함

현재를 충분히 즐겁게 살았으니, 그 현재가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더라도 그 추억을 괴로운 추억으로 남기지 말아달라고


아오루트에서는 미래의 이야기를 했지만 츠무기루트에서는 반대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거지


과거는 즐거웠고, 현재는 즐거우며, 미래도 즐거울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야 한다

이것이 츠무기루트를 통해 전하고 싶던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슬픔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려는 이야기

그렇기에 더 가슴속에 파고드는 쓰라린 그리움과 추억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모든 개별루트중 츠무기루트를 가장 높게 평가함


근데....솔직히 삽입곡으로 무규송 나온건 좀 아니었다고 생각함....그거때문에 분위기 다 깨졌어....


3.시즈쿠 루트

캐릭으론 2픽이었지만 츠무기 보고 오느라 3번째로 잡은 츠무기루트

처음으로 잡은 리플렉션블루의 개별루트이기도 하네


이번에는 핵심 스토리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데

핵심 소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추억'이라고 하면 좋을듯


사실 시즈쿠루트는 그냥 달달한 로맨스 위주의 루트일 뿐이었음

엄마의 얘기라던가 신 얘기라던가 이리저리 나오긴 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선 뭔가 크게 인상이 남는건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분노조절장애랍시고 빼애액 거리다가 너무 급하게 세탁기 돌린거같아서 찝찝한 마음도 있음


하지만 로맨스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꽤 인상적인 루트였음

야겜 치트키인 나긋나긋한 빅젖 눈나랑 사귀는 루트? 아 이건 못참지 ㅋㅋㅋ

단순히 캐릭터의 매력이나 달달한 전개도 좋긴 하지만, 시즈쿠루트는 마지막장면이 상당히 인상깊게 남는 루트였음

포옹력이 너무 뛰어난 시즈쿠, 타인을 너무 잘 지지해주는 하이리, 이 둘은 최고의 상성을 지녔지만

섬에서 떠날 때,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하는 서로의 입장에선 이 둘의 관계를 유지하는건 서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내내 암시하고있었음

그래서 하이라와 시즈쿠는 서로의 관계를 청산하고, 하이리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나며, 시즈쿠는 포스트잇을 날려버리며 쓰라리더라도 상처를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한 둘은 다시 섬에서 재회하여 다시 사귀게 되는 상당히 로맨틱한 스토리....


즉 메인스토리로 따지자면 인상깊은 루트는 아니지만 하나의 로맨스 스토리라고 생각하니 꽤 인상깊게 남은 루트였음 나에겐


4.우미루트

섬포의 유일한 서브?히로인이라고 할수 있는 우미루트

사실 서브답게 내용도 짧고 메인스토리랑도 큰 연관성은 없는 루트임


그래 나도 알카 하기 전까진 그리 생각했어


뭐 암튼 얘는 테마도 없고 스토리도 딱히 없다

겸사겸사 하이리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냥 아이팀vs어른팀 대결구도로 한판 벌이는게 상당히 재밌었음

키겜이 이런 중간에 막장요소로 쓸데없는 짓거리 하는게 정말 재밌는데ㅋㅋㅋ이번에는 우미루트가 그부분을 담당한거같애


그래서 그런가 딱히 할말은 별로 없네


5.노미키 루트

사실 캐릭터 자체는 꽤 호감이었는데 이게임 특성상 밀리고 밀려 5번째로 하게된 미키루트....


미키가 사실은 정말 얼굴 자주 비추는 멤버이긴한데, 그에 비해서 상당히 굵직한 성격이다보니 이 아이의 성격에 대해서 파악하는게 상당히 힘들었음

그래서 그런지 노미키 루트에서는 얘의 캐릭터성이랑 심리상태를 묘사하는데 꽤 공을 들였더라고


메인스토리랑도 크게 연관은 없지만, 핵심 테마는 시즈쿠랑 비슷하게 상처를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했음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꾸준히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해가며 마음에 쌓아두던 미키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앞으로 내딛게 되는 그런 스토리....

시즈쿠루트랑 비슷하게 로맨스파트도 꽤나 달달했고, 거기에 가족이라는 소재도 추가해서 이야기 자체도 꽤 재밌었던거같음

사실 개그분량이 많은것도있고ㅋㅋㅋㅋkey식 막장개그라 호불호가 갈릴수있긴한데 내 입맛엔 맞더라


노미키 루트는 혹평도 많던데....난 그래도 마지막에 섬벤저스 어셈블 할때 전율했다....

노미키루트 덕분에 얘가 섬포에서 가장 호감캐 중 하나가 됬음


6.카모메 루트

흔히들 사람들이 재미 하면 가장 높게 쳐주던 카모메루트

나는 6번째로 했는데....공식에서는 가장 먼저하는걸 추천하기도 하더라고?


얘도 사실 메인스토리랑 크게 연관이 있는 캐릭터는 아님

하지만 핵심 테마는, 추억을 남기는 방식은 다양해도 모든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생각함

카모메루트는 사람들이 말하길 섬포에서 가장 이질적인 루트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그 이유가 나옴


카모메루트는 빌드업이 상당히 잘 뽑힌 루트인데, 보물상자부터 생각해서 해적선까지 이어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플레이어를 꾸준히 몰입시키게 만듬

처음엔 어릴적 친구들과 철없이 놀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동굴에선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싶었던 모험에 대한 로망을 떠올리게 하고, 마지막 해적선에 도달해서는 어릴적에는 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능한 로망의 실현을 떠올리게 만듬

이 과정 속에서 꾸준히 플레이어를 몰입시키고, 카모메랑 하이리의 케미로 질리지 않고 재밌는 이야기를 계속 만듬

나중에 카모메의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갑자기 장대한 목표를 내세워 긴장김을 고조시키고 친구들과 함께 이루어가며 마치 어릴적의 로망을 내 손으로 실현시키는 듯한 재미를 줬음


이것이 보답받듯이 마지막에는 어릴적 동화책을 읽은 사람들이 대거 섬에 방문하게 되고,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있던 카모메가 드디어 병이 치료되어서 하이리와 실제로 만나게 된다는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는 열린결말


한마디로 설계가 진짜 뛰어났다고 생각함. 비중도 적고 메인스토리에서 겉도는 캐릭터인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개별루트만큼은 진짜 재밌었으니 다행이려나


난 이 루트를 하고나서 생각한게, 어릴적 갖고놀던것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만져보면 감회가 새로운데, 어릴땐 못했거나 못 보고 넘어갔던 것들까지도 성장해선 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

하지만 그걸 알게 되더라도 귀찮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것들에게 다시 눈길을 주는 일은 상당히 드문데, 카모메루트에서는 거기에 다시 눈길을 주고 일으켜 세웠다는게 뭔가 마음속에 남더라고

마치 어릴적 추억을 다시 끄집어낸 느낌이랄까....그래서 인상은 상당히 깊게 남은 루트였어


7.시키 루트

이 게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한다고들 말하는 시키랑 시로하루트

시키를 먼저하는사람도 있고 시로하를 먼저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시키를 먼저하는게 맞는거같더라


리플렉션블루에서 추가된 캐릭터라 그런지 본편에서 수습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부 수습한다는 느낌이 드는 루트였음

더불어 키겜 특유의 장점과 단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루트이기도 함


시키루트의 핵심 스토리는 카미카쿠시에 대한 떡밥을 해결하는것, 그리고 시로하루트의 밑밥을 까는것 등등 스토리로 치자면 상당히 중요하고 복잡한 루트였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메인 테마는 추억이 위주였던 이전의 캐릭터와는 다르게 

'이렇게 자신이 모든걸 희생해내도 결국 명예도 목숨도 남지 않는 시키는 과연 좋은 희생을 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임


우선 섬포에서 연출에 있어선 정말 고점이었다고 생각하는 루트인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게 단어를 사용한 묘사가 정말 직관적으로 와닫았던 부분이 많았음


여기서 시키가 섬에서 얻어간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로하네 아재한테서 배운 굳건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선 이것을 받아들인 시키와 받아들이지 못한 하이리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것을 시작으로

본편과는 다른 연출로 시키의 다크히어로 모습을 잘 표현한 과거 파트

부적을 통해서 하이리와 시키가 어느순간이던지 '이어진다'는 것을 잘 표현한 사별 파트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한 시키와 카미카쿠시 세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연출

바로 '술래잡기'라는 단어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다시 곱씹어보면 아 상황에 맞는 연출과 대사를 정말 잘 섞어넣었구나 하는데서 감탄했음


하이리의 독백에서 나오는 '모두들이 무서워하는 해적 오니아가씨'의 모순된 이미지

시키가 좋아하는 요리일 뿐이지만 실제 속뜻은 인연을 뜻하는 음식 '오무스비'

마지막 장면에서 하이리와의 영원한 인연을 뜻하는 '술래잡기'

되게 사소해보일수도 있지만 난 여기서 가장 크게 감탄했음


이전에 썼던 시키루트 후기글에서 조금 인용한 부분이긴 하지만, 시키루트에서 사용된 '단어'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음

이후에 말할 단점 중 가장 큰것이 판타지전개 자체에서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많다는 건데, 이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플레이어의 눈에 들어오는 직관적인'단어'를 위주로 연출을 한 덕분에, 판타지 전개가 이야기 전체를 흐려서 진짜 의도가 묻히도록 하지 않고, 플레이어가 납득 가능한 시선에서 이야기를 깔끔하게 보여준 것이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함


근데 이야기를 깔끔하게 보여줬다고 했지 이야기가 깔끔했다고 생각하지 않음

이후에도 줄줄히 나올 이야기지만....키겜 특유의 판타지 스토리가 은근히 독이 되기 시작한 루트가 시키루트이기도 함

키겜 중에 가장 유명한 리틀버스터즈와 클라나드만 하더라도 판타지를 사용한 스토리가 꼭 들어가있는데, 리틀버스터즈의 개별루트들이나 클라나드의 가장 마지막부분을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개연성을 꽤나 해치고 다녔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임


실제로 시키루트에서도 하이리가 갑자기 과거로 핑찍고 로밍간거라던가 마지막에 뜬금없이 시간의 틈새에서 시키랑 재회한다거나 하는 부분은 해석을 듣지 않고서 플레이어가 바로 납득하긴 어려운 연출이었다고 생각함

물론 해석을 하면 아예 뜬금없는 정도까지는 아니긴 한데....메인스토리 자체가 '단어'를 사용해 직관적인 스토리를 보여줬는데 판타지부분 스토리가 비직관적인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고 생각함


하지만 섬포의 최고점 중 하나는 맞고 후반부에 시키 추모비 하나 덜그러니 보여주는 장면은 다시 생각해봐도 가슴이 아린 장면이었음. 결국 시키는 다크히어로로 희생한것과는 다르게 마을의 영웅으로 영원히 남기도 했고....그런의미에서도 시키루트는 여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나인4편때도 느낀거지만 난 개연성을 따져서 완벽한 스토리를 만드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플레이어가 재미있게끔 몰입시키는거라고 생각하니까


8.시로하 루트

솔직히 말해서 시로하루트는 알카를 위한 초석밖에 안된다고 생각함

실제로 개별 최고점이라는 말만 듣고 마지막에 했다가 속았다는 생각도 했고....

그냥 너무 평범하게 위기 생기고 사귀고 이런 스토리라서 별 할말이 없음

일단 메인스토리로는 가장 중요한 루트인건 맞는데 시로하루트를 깼을때는 이게 왜 중요한거지?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음

하지만 얘는 알카루트부터가 진짜 시작이더라


9.알카 테일

시작은 첫번째 리스타트, 대충 5회차부터 우미의 말투가 점점 달라지는것부터 시작함

처음엔 조금 어리광쟁이처럼 됐구나~ 약간 어려졌구나~싶을 정도고, 심하면 이상한점을 찾지 못할 정도지만

8회차인 두번째 리스타트부터는 뭔가 위화감이 들기 시작함

얘가 딱봐도 정신연령이 어려진 티가 나기 시작하는거지

거기에 알카 테일로 들어가면 이젠 정상적인 활동이 힘들 정도로 우미의 정신상태는 유아퇴행해버림

이렇게 빌드업을 쌓아감으로서 플레이어에게 의구심을 들게 만드는 것이 알카테일의 시작이었음


그래서 얘가 유아퇴행하는건 알겠는데....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계속하게 됨

루트를 점점 진행하면서 알게되는건 두가지가 생기는데


1.우미의 엄마는 이미 죽은 상태다

2.우미의 아빠는 상당히 쓰레기로 보인다


특히 2번 떡밥이 문제인게, 우미가 중간중간 하이리와 우미의 아빠가 겹쳐보이는 대사를 치면서 어? 뭔가 쎄한데? 싶은 느낌을 줌

개별루트를 8회차나 거치며 온갖 멋있는 모습, 재밌는 모습을 다 보면서 주인공인 하이리에게 호감 빌드업이 쌓일대로 쌓인 플레이어에게는 하이리가 우미의 아빠라는 심증은 있어도 우미의 아빠가 개쓰레기라는 사실 때문에 쉽사리 이를 인정하지 못함

어떻게보면 기가막힌 서술트릭인데, 점점 이 가정은 시로하와 엮이면서 사실로 확정이 되어감

알카테일에서 가장 충격적인 서술트릭 장면

개쓰레기처럼 보이는 우미의 아빠, 갓남캐처럼 여겨지던 하이리가 동일인물이라는 서술트릭의 빌드업과

이 게임의 배경이 2010년대 후반처럼 보일수 있도록 온갖 가전제품들을 시골이라는 배경하에 배제해놓고, 사실은 우미만이 2018년 시점의 인물, 즉 미래인물이라는것이 드러나는 서술트릭

마지막으로 시로하루트에서 시로하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로하는 죽을일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미의 어머니인 시로하는 죽었다는것을 확정짓는 서술트릭


이 세가지 서술트릭이 겹쳐져 뒤통수를 존나 쎄게 후려치고, 국면은 아예 반전되어버림

이 뒤로는 하이리, 시로하, 우미가 진짜 가족처럼 생활하게되는데 제작진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음

개그 후 기억소실, 행복한 장면 후 기억소실, 즐거운 가족이야기 뒤에 기억소실, 꾸준한 단짠단짠 전개

가족이 된 우미와의 이야기는 분명 즐겁지만, 이 뒤에는 꾸준히 기억을 지워버리면서 플레이어의 마음을 후벼파기 시작함

나인시리즈에서도 사용되었던 연출인데, 즐거운 장면 뒤에 충격적인 장면을 꾸준히 보여줌으로서 플레이어가 뒷 이야기를 쉽사리 예상하지 못하게 방해함

그리고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줌으로서 플레이어를 탈진시키기 시작


이 시점부터 섬머포켓의 메인테마인 '즐겁지만 그리운' 추억은 '행복하지만 괴로운'추억으로 변질되기 시작함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음

타임루프의 패널티인줄 알았던 유아퇴행은 사실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패널티였고

점점 시로하와 하이리마저 우미를 잊어가게 됨

우미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시로하와 하이리가 '가족'을 잊어버리고 이에 절망하는 전개는 플레이어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함

과연 우미가 완전히 사라질 때 우미는 무슨 추억을 가지고 떠나게 될까

그리고 그걸 과연 즐겁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될까?

꾸준히 의문을 던짐과 동시에 우미의 아빠인 하이리의 비극적인 행보와 덧대어 추억을 비극으로 비춰 보이도록 함

이러한 완급조절의 끝에 다다르면 결국 하이리와 시로하는 우미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지만.....



아....

이 장면은 진짜 할 말이 없다....

시로하가 진정한 부모로서 거듭나고, 가족애를 이해하게 되면서 동시에 우미도 모든 소원을 이룬, 개인적으로 섬머포켓의 최고점이라 생각함


아오, 츠무기, 시즈쿠, 시키루트에서 들었던 핵심 테마들을 한번에 끄집어내는 장면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함


이렇게 우미는 모든 소원을 이루고 사라질수 있었지만

아직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음


10.포켓 루트

새로운 등장인물인 나나미를 필두로 섬머포켓의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막


알카까지만 하더라도 판타지요소를 많이 사용하진 않았지만, 여기서는 모든 빌드업을 전부 활용하겠다는듯이 판타지요소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함

핵심 스토리는 능력의 원인이 시로하의 과거 상처로부터 이어진다는걸 알게 된 우미가, 나나미로 환생해서 다시 엄마를 구원하는 내용


알카에서 엄마한테 최고의 추억을 받았지만, 엄마가 능력을 사용하지 않게 하려면 엄마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게끔 해야 했고

우미는 결국 자기가 얻은 최고의 보물인 추억을, 엄마를 위해서 사용하기로 마음먹음

우미와의 추억을 남겨놓고싶어서 자신이 죽더라도 우미를 살려낸 시로하

그리고 자신이 희생되더라도 엄마와 아빠를 위하여 모든걸 바친 우미의 구도가 인상적인 포켓루트의 마지막 장면


여기서 우미의 희생으로 결국 과거로부터 이어진 가문의 족쇄를 모두 끊어낼수 있었고, 하이리도 시로하도 죽지 않은 세계에서 우미는 다시 환생하여 가족이 되는 것으로 이 게임은 해피엔딩이 됨


포켓루트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좀 있었던게....지금까지 나온 떡밥을 전부 사용해서 완벽한 결말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선 꽤 마음에 들었음

리틀버스터즈때도 그랬듯 이런 빌드업이 쌓여서 최고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는게 뽕이 안찰수가 없는데....

문제는 그 빌드업을 하느라 판타지요소를 너무 많이 썼다는점이 아닐까 싶다


뭐랄까 내가 너무 리틀버스터즈에 얽매여있는것도 있긴 한데, 리틀버스터즈처럼 설정을 깔끔하게 활용해서 완벽한 결말을 낸 것에 비하면 섬포의 트루엔딩은 곳곳에 빈칸이 많은 느낌이라 아쉬웠다는 소리임


좋은 의미로 말하자면 클라나드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지만

나쁜 의미로 말하자면 클라나드의 의아함도 다시 느낄 수 있었음


결국에 키겜 특유의 판타지 전개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설정풀이나 이런게 미흡했고...뭐 전개가 납득이 안가고....등등 여러가지 불만은 있긴 한데

결과적으론 그래도 우미의 노력과 희생으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는거에 대해선 나도 정말 좋았다고 생각하긴함



이렇게 이 게임을 다 깨고나서 느낀점은 정말 좋은의미로 복잡한 심정임

게임 분량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중간에 말했듯 전부 행복한 추억이기는 하지만 추억을 남기는 방법도 제각각에, 알카루트와 포켓루트를 거치면서 풀어나간 이야기도 본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음


그래도 한마디로 요약해보자고 한다면....좋은의미로도 key 나쁜의미로도 key라고 할수있으려나


딱 하나 그놈의 판타지전개만 남발하지 않았으면 좀 이야기가 깔끔했을텐데...싶었던 부분도 있고

그래도 문체나 연출로 플레이어를 몰입시키고 감성을 터트려버리는 키 특유의 스타일도 정말 좋았고

단 하나로 마무리지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훌륭한 게임이었다는거엔 동의함

리틀버스터즈처럼 너무 트루엔딩 몰빵으로 간 것도 아니고 개별도 충분히 훌륭하게 잘 만들었고

클라나드때 느낀 가족애, 리틀버스터즈때 느낀 우정 등등을 전부 잘 소화해낸 느낌도 컸고

뭣보다 재미있는 부분이 꽤 많았음. 노미키 아오 텐젠 료이치 조합은 레전드다....


뭔가 이리저리 더 말을 하고싶긴 한데 아무래도 나인때랑은 다르게 꽤 설정이 복잡한 게임이다보니 내 문장력의 한계를 좀 크게 느끼는 중임

좀더 길고 재밌게 썰을 풀고 싶었는데....약간 아쉽네

그래도 이런 좋은 작품을 즐기고 머릿속에서 잊게되는것보다는, 이렇게 글을 써서 '추억'으로 남기게 되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함

몇년이 지나면 이 게임도 게임속 스토리처럼 즐겁지만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수 있겠지.....


총평

알카테일>츠무기루트>시키루트=아오루트>포켓루트>카모메루트>노미키루트>우미루트>시즈쿠루트>시로하루트


슬슬 마무리로 점수콘 달고 끝내자. 밤새서 싸지른 글이 벌써 1만1천자라 더 쓰면 죽어버릴거같애


특히 츠무기루트와 알카테일. 펑펑 울면서 했고


우미뿐만 아니라 히로인들이 하나하나 빼놓을수 없을 정도로 좋았고


음악, 연출, 일러스트 등에서 역시 key라는걸 느낄수있었고


알카테일에서는 플레이어를 조금씩 좀먹는 완급조절에 정말 놀랐음


결론은 정말 재밌었다

100점을 주기엔 아쉬운 부분이 좀 있어서 모자란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에겐 클라나드랑 동급일 정도로 좋은 게임이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