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연재하기 전에 충분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시작할 것. 플러스 달고 전업으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러겠지만 이건 특히나 취미 연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하고싶은 말이야. 대다수에겐 통용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으니 참고하라는거지.


자기가 상상해오던 소재로 글을 쓰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건 분명히 즐거운 일이야. 내가 생각해낸 소재를 독자들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올리기 전엔 내글구려 내글구려 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걱정하지만 의외로 돌아오는 반응이 좋으면 또 기쁘니까. 그것이 소재가 정말 좋아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것이든, 필력이 좋아서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것이든 상관 없이 말이야.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좋은 반응을 보내주면 당연히 기쁘지.


그렇기에 나는 충분한 준비를 하라는거야.


정말 그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는건 말리지 않아. 당장이라도 번뜩인 영감을 글로 옮겨적고 싶겠지. 당장 글을 써서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을거야. 그런데 나는 그건 말리고 싶어. 글을 쓰는 건 좋지만, 올리진 말라는거야.


당장 준비된 것 하나 없이 대략적인 플롯만 짠 채로 라이브 연재를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독자들은 그 글에 만족했고, 꽤나 좋은 추천비와 선작,알림수, 심지어는 리뷰까지 받았다고 치자고.


기쁠거야. 정말 기쁘겠지.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 주는구나. 어찌 안 기쁘겠어.


그런데 그 후 너를 짓누르는 것은 압박감일거야. 작가타락한 틋붕이들이 내글구려 내글구려 하는 이유가 뭘 것 같아? 그건 이유없는 자기파멸적 행위가 아니야. 압박감에 짓눌린 작가들이 최대한 자기합리화를 하는 과정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부여받은 과제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될 때,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 어쩌면 합리화한다고 해야할까. 스스로를 낮추는 이유는 그래서야. 


내가 독자들의 니즈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내 글이 구려서, 내 능력이 부족해서야. 


그 과제는 나한테 너무 벅찼어. 내 글이 모자랐으니 독자님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그 사고에 이르기까지의 계기는 분명히 긍정적일거야. 독자들이 내게 관심을 주니까, 나는 그만큼의 보답을 해주고 싶은거지.


그런데 그 생각이 스스로를 망칠 때가 있다는거지.


취미로 시작한 글이 관심을 받게되니 내가 책임져야할 의무가 되고, 그 의무가 스스로를 짓누르게 되는거야.


그걸 이겨내면 성장하는 것이고, 그걸 이겨내지 못하면 연중런을 치는거지.


글을 열심히 쓰는데 성적이 안나와서 내글구려를 외치고 연중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나는 잘 성장하다가 도망쳐버리는 나작소의 이야기를 하고싶네.


아무튼 어느샌가 의무가 된 글은 취미로 이어가기엔 벅차. 독자님들은 매 화 올라오는 글들을 기다리기 시작할테고, 늘어나는 선작과 조회수는 더한 압박감을 주겠지.


이렇게 말해선 글을 쓰기만 하고 올리지 말라는 소리가 무슨 소린가 싶을거야.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누군가가 글을 쓰자고 마음 먹을땐, 정말로 쓰고 싶은 소재와 장면이 있을거야. 그 장면이 목표가 되는거지. 나는 소꿉친구끼리 순애 야스하는 모습을 꼭 쓰고 말거야. 나는 꼭 TS백합 총수 주인공이 하렘에 둘러싸여서 보빔당하는 모습을 쓰고 말거야.


자신이 목표로 한 그 장면을 쓰기 위해서 빌드업을 쌓아가겠지.  그런데 그걸 비축분도 없이 라이브 연재로 시작해버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거야.


독자님들의 관심은 커져만 가는데, 내 목표는 아직도 멀기만 한거야. 내가 정말 쓰고싶은 저 장면까지 가기엔 한참 남았는데, 독자님들의 관심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결승선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등 위에 올려진 짐은 점점 무거워져만 가.


이건 글을 쓰는 내내 따라오는 문제일거야. 분명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지만, 너무 벅차니까 조금 다른 방법을 쓰자는거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한계다 싶을때까지 혼자 글을 써봐. 정말 지쳐서 다른 누군가 내 글을 봐줬으면 할 때가 올때까지 혼자서 글을 써봐, 그리고 한계가 오면 천천히 보따리를 푸는거지. 그럼 적어도, 영감을 휘갈겨 써서 1화부터 시작하는 사람보단 더 앞선 출발선에서 출발할 수 있잖아. 자기가 목표로 한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더 가까운 곳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취미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올리는 글일지라도, 봐주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부턴 책임감이 생길수밖에 없어.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연중런을 치는거지. 나는 소재 좋은 하꼬 소설이 어느날 연중을 때리는 이유도, 필력 좋던 하꼬 소설이 어느날 연중을 때리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라고 생각해. 글을 쓰는 즐거움보다 좋은 글로 보답해야한다는 압박이 늘어버리면 그 순간부턴 글이 안써지거든.


되게 횡설수설했지만 일단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래. 어디다 연재를 시작하고 싶으면, 최대한 혼자서 쓸 수 있는데까진 써라. 그냥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앞선 예시들이 모두에게 통용되지는 않겠지. 근데 일단 나에겐 해당되는 이야기여서 해봤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