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임신했어."


그녀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되는 말이 나왔다.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듯, 아찔해진다.


'왜,왜, 왜!'


그녀랑 할때는 항상 콘돔을 끼고 하고, 콘돔이 없을때는 분위기가 달아올라도 참았다. 언제나 피임은 확실히 했다고 생각 했는데 어째서?


"책임.... 져 줄거지?"


결혼은 아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끈지끈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열심히 생각을 해본다.

내가 까먹고 콘돔을 안끼고 한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그럼. 뭐라는 거야?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떠오른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생각.


내가 끝까지 부정하던 그 생각은 요즘 그녀의 행동과 맞물려

현실처럼 다가온다.


수시로 내 핸드폰을 검사하는일.

전화를 자주 받지 않는일.

그리고....

연락도 하지않고 어딘가로 가는일.


그럴...그럴리 없어.....



결국 나는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고, 증거를 잡기위해

그녀를 미행했다.


그녀를 쫓아 가다 그녀가 어떤 남자와 살갑게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둘이서 모텔에 들어간다.


바람.. 피웠었구나....


믿었는데....


분노, 상실감, 무력감, 배신감.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채우는게 느껴진다.


"방금 들어온 여자랑 남자 어느 호실로 갔죠?"


"네? 그건 말해드릴수..."


"어디로 갔냐고!!!!!!!"


"ㄴ ... 305호실이요....."


씨발 씨발 씨발!




"다 걸렸어, 니가 그렇게 하고도 뻔뻔하게 책임 져달라해? 미친ㄴ...."




어?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선 나는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했다.


아까 그녀와 같이 들어간 남자가 침대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다.


우- 우- 우-


신음을 흐느끼며 팔다리를 미약하게 휘젓고 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았다.


그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중학교때 나를 괴롭혔던 녀석이었다.



"아.... 들켜버렸네.... 몰래 처리할 생각 이었는데....."


"들켰으면 어쩔수없지."


"기억나? 니가 전에 나한테 해줬던 말."


"중학교 때 괴롭힘 당했다고 말해줬던거. 나 그거 듣고 얼마나 속상했는줄 몰라.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괴롭히다니, 그 녀석들은 모두 머리가 잘못된 애들이 아닐까?."


"그래서 나 생각 했어. 그 녀석들을 혼내주자고. 원래 다끝나면 말할 생각 이었는데.... 어때, 나 잘했지?"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해. 뭐 잘못 먹었어?"


"너무 감동 받아서 굳은건가? 아이 좋아라."


"하지만, 몰래 남을 미행한 나쁜아이는 벌을 받아야 겠지?"


"괜찮아 . 힘조절은 할테니까."


나는 나에게 짖혀드는 망치를 보고만 있다가 의식을 잃었다.





ㅡㅡㅡㅡㅡ 윽!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니 지하 방이었다.


방에는 나혼자만있다.



뭐가 어덯게 된거지?


일단 문을 열려고 해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중, 책상과 서랍이 눈에 띄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충격적인 물건으로 가득했다.


다 쓴 휴지, 빈 콜라캔, 손톱조각, 남자팬티, 머리카락.........




.......그리고 구멍뚫린콘돔.


그 콘돔을 보자 머리속에서 모든것이 맞춰진다.


콘돔을 했는데 임신했다고 하는 그녀.


그러고보니 나는 한번도 내가 콘돔을 끼운적이 없었다.


항상 그녀가 씌워줬었지.


모든것이 그녀의 계략이었음을 깨닫고는, 눈물을 흘렸다.


철컥


"어라라, 그걸 봐버렸네."


"왜... 왜 이런짓을 한거야....."


"그야 네가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


"돈을 모을 필요도, 직장을 가질 필요도 전혀없는데.

결혼을 하기에 걸림돌이 되는게 하나도 없는데 ."


"직장따위 가지려 하지말고 그냥 내집에서 살면될텐데.

니가 그 하찮은 자존심을 내세우려고 하니까......."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없어."


"직장을 가질필요도, 집을 사려고 돈을 모을필요도, 뭘하기위해 움직일 필요도 없어."



"그냥 여기서 쭉~ 살면되는거야."


"아참, 애 이름은 뭘로 할래?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뭘로 할래, 여 보?"





이런삶도 괜찮지 않을까.


밖에 못나가도


사람을 만나지 못해도


무엇하나 불편한건 없으니까......


무엇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