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이화운 병장님 이거 비 너무 많이 오는 거 아닙니까?" 

 

나는 손에는 핸드토키를 든 채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더욱  거세져서 머리 위에 대충 꽂아두었던 나뭇가지가 흘러내리며 나뭇잎이 콧잔등에 내려왔다

 

"그러게, 언제 끝나려나.."

 

큰 훈련도 아니고 부대 뒷산에서 중대훈련 정도의 수준인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짜증이 솟구친다.

화창하던 날씨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소나기 수준으로 비가 퍼붓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만큼 병사들이 다칠 위험이 있음으로 훈련은 중지해야 맞다.

 

ㅡ 삐릭, 아 현 시간부로 훈련 끝났고 각 목진지 최고선임은 물건들 잃어버리지 않게 목진지 가방에 잘 챙겨서 내려올 수 있도록 

 

기다리던 말이 나오자 목진지 안에 있던 나나 후임들 모두 다 같이 한숨을 내뱉었다

 

"으으! 찝찝해 죽겠네 명길이 너는 크레모아랑 발광장애물 제거하고 대섭이 너는 발성 장애물....이 아니라 그냥 목진지 정리해라 나 혼자 갔다오지 뭐"

 

"알겠습니다."

 

하늘이 뚫린 듯 비는 계속 쏟아졌다.

나랑 대섭이가 설치한 발성 장애물은 조금 경사진 곳에 설치해서 이등병 혼자 보내는 건 위험했다. 머리에 위장했던 나뭇가지들을 빼면서 내려가려 할 때

 

"이화운 병장님 총기 안 가져가십니까?"

 

대섭이는 내가 총기를 두고 내려가려 하자 물었다.

뒤를 돌아본 나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답했다.

 

"걍 냅둬"

 

"...중대장님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설마 이 날씨에.....올라오겠네"

 

전역을 생각하는 육사 출신 중대장님은 온갖 꼬장을 상병장급 선임들에게 부리기 때문에 꼬투리 하나 잡히면 적어도 다음 주 까지는 피곤하다

 

"크레모아 대충 감지마 나중에 다시 감아야 해"

 

"알겠습니다"

 

거치했던 k-2 소총을 메고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충 가까이 설치해뒀던 발성 장애물을 회수했다. 원래는 그냥 발성 장애물만 냅뒀지만, 이등병 가르친다 해서 낚싯줄까지 쳐버렸다

마지막 장애물을 회수하고 멜빵 주머니에 넣으려 할 때 미끄러져 버렸다.

 

"아 씨.."

 

바로 앞 가파르게 경사진 곳으로 굴러떨어지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스스로 위로하며 나뭇가지를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떨어진 발성 장애물을 주워 멜빵 주머니에 넣고 다시 올라가려 발에 힘을 주었을 때



"?"

 

발이 그래도 쑥 빠졌다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들이 함께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산사태?)



 

 

.

.

.


 



 

"하음.."

 

포근해서 잠이 온다. 일과 시간에 잠을 자면 안 되겠지만 한번 꼬장 듣지 뭐

자장가라도 되듯 새소리와 나뭇잎들이 비벼지는 소리는 깊은 잠에 빠져들게 했다.

 

(그것보다 막사 주변에 나무들은 없었는데)

 

 

 

나무를 생각하고 그다음에야 기억 난 것이 나무가 기울어지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산사태가 일어난 사실을 깨달았다.

 

미친!”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주위를 확인했다. 덜그럭 소리와 함께 아직 어깨에 멜빵끈에 메어있는 총기가 바닥에서 움직였다. 총을 보니 진흙은 그렇게 심하게 묻지는 않았지만, 완전분해 해서 청소는 해야 하는 상태다.

 

뭐야 여긴

 

그제야 들어오는 풍경은 기억에 남아있는 부대 뒷산이 아니었다.

흔히 대한민국 산 하면 언덕으로 되어있는 모양이 대부분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평지로 된 이었다

 

설마 이세계로 넘어가 버린 미친 상황은 아니겠지…?”

 

그것만큼은 아니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뭐가 아쉽다고 넘어가겠는가

말말출도 이틀 뒤면 출발에 찍턴으로 부대 하루만 있다가 다시 휴가 출발해버려서 전역하는 것이 눈앞이었는데 이상한 곳에 와버렸다.

 

(꿈인가…. 아니야)

 

나름 루시드 드림을 알고 있었고 시도도 해보았으며 자각몽도 꿔보았다. 생생한 꿈은 그 자체로 현실과 구별 못 한다곤 말하지만, 느낌상 알 수 있다. 이건 꿈이 아니라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문득 꺼칠꺼칠한 진흙에 다시 손을 내렸다.

 

(만 번은 더 봐줘서 이상한 곳으로 이동했다 치자 그게 지구일 거다 현실적으로 이세계가 말이나 되냐 이 말이야)

 

가끔 서프라이즈나 음모론, 미스터리에 나오는 이상형상을 직접 겪은 것으로 판단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목이 말라서 수통에 물을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복이 진흙으로 얼룩진 걸 대충 털고 하이바에 들어간 진흙 빼기 위에 손으로 팡팡 쳤다.

대충 머리 위에 올리고 전투 끼에 부착된 핸드토키를 작동시키면서 무전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응답은 없었다.

 

(과거로만 돌아간 게 아니면 되는데)

 

머릿속으로 이미 지구 어딘가 순간이동 해버린 것이라 확정 지으며 총을 든 채 걷기 시작했다.

 

ㅡ부스럭


몸이 오싹해지며 바로 조준 할 수 있게 총을 바짝 몸에 붙였다. 훈련한답시고 목진지마다 분대장들에게 공포탄 5발씩 주었기에 곰이라던가 맹수가 나오면 쫓아버리기로 했다.

 

ㅡ철컥

 

방아쇠에 검지를 올리고 주위를 경계했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이런 상황에서 오버한다고 연등 시간에 후임들에게 말했던 자신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 상황이 닥치면서 공포가 엄습해오니 몸이 저절로 반응한 걸 몸소 깨달았다.

 

ㅡ터벅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나자마자 재빠르게 뒤돌면서 총을 겨누었다.

 

?”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마치 일본 옛 의복처럼 보이는 하얀 옷을 입고 알 수 없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에 반사될 것 같은 새하얀 백발 머리카락 무엇보다 동물의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다. 내 고딩 때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참고해보면 저걸 따로 부르는 말이 있다.

 

수인…?”

 

내가 한마디를 하자 가만히 있던 소녀의 하얀 귀가 깔짝대며 움직였다.

 

외부인이 여기까지 들어올 줄이야이거 초계 실패네요.”


지구에 존재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무어라 표현은 못하겠지만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혀 모르는 언어를 알아듣고 있다..)

 

지구에서 순간이동 판단은 없어지고 이세계 차원이동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가냘픈 소녀를 두고 총구를 내릴 수 없었다. 한 손에 쥐어 내리고 있는 도검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그녀는 내가 쥔 총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손에 쥔 이상한 물건 무엇에 쓰는 용도인가요?”

 

“....”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총이다.

라고 당연하게 답을 할 순 없다. 내가 실탄을 가지고 있으면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공포탄이고 상대는 검을 들고 있다.

아무리 이쁘장한 미소녀라 할지라도 내 눈앞에 칼을 들고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잘은 모르겠지만, 직감이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되고 있어요. 맞나요?”

 

“….”

 

젠장! 바보같이 침묵으로 일관해버렸다. 고개를 끄덕였다간 그 위험한 무기로 겨누고 있는 상황이 될 테고 차라리 답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여겨버린 것이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는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만 아니었어도..

답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소녀의 끔벅이던 눈동자가 조금은 가늘어졌다.

 

ㅡ팟!

 

방금 전까지 소녀가 머물던 자리에서 먼지만 일더니 순식간에 붉은 눈망울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미친!)

 

ㅡ탕!

 

 

내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동반자 k-2소총은 공포탄의 외마디와 함께 서걱 잘려 나갔다. 진흙이 묻어 있음에도 주인을 위해 마지막 작동을 해준 놈이다.

모든 순간이 슬로우모션 처럼 보였다. 소녀는 총을 베는 순간까지도 붉은 눈으로 내 눈을 놓치지 않았다.

 

ㅡ퍽!

 

!?”

 

목에 강한 충격이 오더니 찌릿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이세계가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환상향으로 전이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