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Detroit
전세계적으로도 쇠퇴한 도시들 중 가장 인지도 있는 도시가 아닐까... 미국 미시간주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7년 기준 약 67만명. 자동차 산업을 위시로 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다.
별명 중에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수도(The Automotive Capital of the World)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미국 제조업계에서는 그 위상이 자자하다.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 포드, 그리고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모두 이 도시에 몰려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외에도 1920년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어 1933년까지 강 건너편의 캐나다 도시인 윈저와 인접해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한때 주류 밀수입으로도 유명했던 도시였고, 더불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연합국에 차량을 공급해 전쟁특수의 특혜를 입기도 했다.
이러한 탄탄한 산업기반으로 1920년 인구 약 99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 4위를 기록할 만큼 가공할 만한 성장을 했고 1950년 인구 약 185(!)만으로 고점을 찍었으며 이는 당시 144만명이었던 서울보다 훨씬 많은 수치였다.
그러나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이런 활력 넘치는 대도시도 결국 쇠퇴를 피해갈 수 없었다. 1973년과 1979년 터진 오일쇼크의 여파로 인해 소비자들은 값싸고 가성비 좋은 수입차(특히 일제)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미국 자동차 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실상 디트로이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것이었다. 실업자들은 나날이 늘어났고 인구감소는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꾸준한 인구감소를 통해 리즈시절 주 인구의 1/3에 육박하던 비율이 현재는 1/10에도 못미치게 되었으며 그렇게 디트로이트는 멸☆망했다. 미국에서 인구 100만명을 달성했다가 그 이하로 감소한 유일한 도시라는 굴욕적인 타이틀을 보유 중.
더욱이 안습인건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디트로이트는 도시 자체 인구뿐만이 아닌 도시권 인구조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플린트 Flint
미국 미시간주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7년 기준 약 9만 6천명. 거리는 좀 멀지만 바로 위의 디트로이트의 위성도시로써 디트로이트와 함께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으로 성장한 도시다. 2018년 3분기 기준 세계 4위의 자동차 그룹에 빛나는 제너럴 모터스가 1908년 바로 이 도시에서 설립되었고 1920년대 중반까지는 본사가 플린트에 있었다(이후 디트로이트로 이전함). 더불어 미국과 캐나다를 넘나 들며 북미 최대의 자동차 노조인 전미자동차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Workers)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1930년대의 플린트 연좌파업(Flint sit-down strike)도 이 도시에서 발생했으니 미국 제조업 역사에서의 그 유의미한 존재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두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1960년에는 인구 20만으로 디트로이트에 이어 주내 인구 2위의 도시가 되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지역경제를 책임지고 있던 GM이 경기불황으로 투자와 일자리를 줄이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범죄율과 빈곤율은 하늘을 치솟았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인구감소로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2002년에는 도시의 빚이 3천만 달러에 달해 재정에 위기가 왔고, 세금을 올리고 구조조정을 통해 지출을 줄이는 뼈를 깎는 노력 속에 2004년 겨우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11년 다시 재정위기가 찾아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납 수돗물 사태가 터져 대다수의 시민들이 납에 중독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플린트는 멸☆망했다.
뉴올리언스 New Orleans
미국 루이지애나주 남동부의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7년 기준 39만명. 1800년대 한창 노예무역이 성행했을 당시 미국의 노예무역 중심지였으며 이로 인해 많은 흑인인구가 유입되어 세를 불려나갔다. 덕분에 근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1840년에는 뉴욕, 볼티모어에 이은 미국 인구 3위의 대도시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남북전쟁 시기 뉴올리언스 전투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종식되자 뉴올리언스는 노예무역을 관둘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비록 기간산업을 잃었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뉴올리언스는 한동안 항구를 통한 무역과 내륙의 물류를 통해 물류중심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후 교통망의 확충에 따라 인구가 교외로 이동했고 2000년대까지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뉴올리언스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되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대로는 분명 아무 문제없이 평범한 중소도시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허리케인'이 오기 전까지는...
이후에는 모두가 익히 알듯이 2005년 역대급 규모의 허리케인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해버렸고 그렇게 뉴올리언스는 멸☆망했다.
사망자는 대략 1200명에서 1800명(이 중 루이지애나 출신이 1000명에서 1800명)에 달했으며 재산 피해는 1250억 달러에 육박했다.
엄청난 피해에 주민들은 도시를 떠났고, 현재의 인구는 허리케인 강타 이전(2000년 48만명)에서 39만명까지 줄어들었다.
허리케인이 발생한지 14년이 지났어도 왠지 모르게 인구감소는 현재진행형. 계속되는 도시권 확장이 주요 이유로 추정된다.
피츠버그 Pittsburgh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서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31만명. 원래부터 조선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는데, 조선업의 뼈대를 이루는 철강으로 노선을 변경해 철강산업으로 성장한 도시다. 미식축구팀 이름이 피츠버그 스틸러스(Steelers)일 정도. 문뜩 포항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북군의 철강공급을 담당함으로써 전쟁특수를 누렸으며 이 당시에 민주주의의 무기창고(Arsenal of Democracy)라는 별명을 거머쥐었다.
1910년에는 인구 약 53만명으로 미국 8위의 대도시로 도약했고(동년 디트로이트는 9위)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공장들을 24시간 가동하면서까지 연합국에 철강을 공급해 또 전쟁특수를 한몫 챙겼다.
이 쯤되면 전쟁의 가호를 받는 수준... 그러나 1970년대 경제불황으로 인해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그렇게 피츠버그는 멸☆망...
하지는 않고 아예 기간산업을 금융, 교육, 관광등의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비록 인구는 여전히 하락세지만 현재는 상황이 여러모로 안정되었다. 본격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더 성장하지 못할 도시.
클리블랜드 Cleveland
미국 오하이오주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38만명. 전체적인 추세가 피츠버그와 상당히 비슷하다. 피츠버그와 더불어 철강산업으로 성장했으며, 경제불황으로 산업구조에 변화를 주어 겨우겨우 다시 살아났다. 다만 기존에 피츠버그보다도 더욱 큰 도시였지만(1920년 80만명으로 미국 5위)
피츠버그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안습.
차이점이라면 클리블랜드는 광업으로도 유명했었다는 것.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록펠러의 위상을 세운 스탠다드 오일이 1870년 클리블랜드에서 설립되었다(1885년 뉴욕으로 이전함). 자동차 산업으로도 유명했는데, 어째 현재까지 남아있는 회사가 없다...
대공황 이후 최초로 채무불이행을 저지른 미국 도시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도슨시티 Dawson City
이 분야의 최종보스. 캐나다 유콘 준주 서부에 위치한 도시(town)로 인구는 2016년 기준 약 1400명.
1896년 도슨 시티가 위치한 클론다이크 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됨에 따라 시작된 광부들의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로 인해 급성장한 도시다. 1898년 유콘 준주 성립부터 1952년 화이트호스로 바뀌기 전까지 오랫동안 유콘의 주도이기도했다. 동쪽에 보이는 내장 비스무리한 지형들이 금광의 잔해. 도시 중심에서 동쪽으로 무려 10km 가까이 뻗어져 있는데, 가히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골드러시가 한창 진행 중일 때인 1898년 추계된 인구는 무려 약 4만명으로 비슷한 시기의 밴쿠버(1891년 기준 13000명)와 캘거리(1891년 기준 약 3900명),
그리고 에드먼턴(1901년 기준 약 2600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캐나다 서부 최대의 도시였다.
광업으로 엄청난 부를 이뤄 북쪽의 파리(Paris of the North)라는 호화로운 타이틀까지 얻게된 도슨시티, 하지만 곧 골드러시가 끝나면서 1년 만에 인구가 1/5토막이 나는 지금까지 유래없는 경이로운 인구감소를 보였다. 이후로도 인구감소는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그렇게 도슨 시티는 멸☆망했다.
사실 지금 인구도 최저점을 찍었던 1911년의 615(!)명에서 많이 회복된 것이며, 1898년부터 1911년까지의 연간감소율을 구해보면 연간 -27.5%라는 괴랄한 수치가 나온다. 상동읍도 울고 갈 정도...
참고로 정식명칭이 어째 겹말같은 Town of the City of Dawson인데, 시 승격된 1902년 기준으로는 city의 지위에 부합한 인구를 보유했었지만 1980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town으로 강등된 사연이 있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역사적으로 큰 도시였기 때문에 특별히 town이면서도 이름에 city 타이틀을 쓸 수 있게 대우받은 것이라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