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뭐 딱히 특이한 건 없는 날이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졌고 달도 동쪽에서 떠올랐다. 밥도 평소처럼 먹었고, 날씨도 계절에 맞는 날씨였다. 


  딱히 피곤하지도 잠이 안오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누웠고 잠들었었다. 그리고 내 숙면은 그 날 끝났다.


  누가 내 위에 올라타는 꿈을 꿨었는지, 내가 무언가에 눌리는 꿈을 꿨었는지 잘 모르겠다. 몽롱해서 꿈을 꿨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으니까. 똑똑히 기억나는 거 하나는 코끼리가 뽑혀나가는 강렬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잠깐 잃었다는 거다. 

 

——

  “그런데, 그 때 왜 나를 골랐어?”


  “그러게? 왜 너였지? 아래층이랑 착각했었나? 아직도 서툰 거 보면 너 말고 다른 사람을 골랐어야 했어.”


  “흥 실망이야. 그러면 지금이라도 걔를 데려오지 그래? 나 간다?”


  “농담인데 그런 걸로 삐지냐? 그래 잘가~”

 

——

  정신이 돌아왔다. 살짝 눈을 뜨니 어떤 실루엣이 보였다. 하늘이? 아닌데? 하늘이보다 훨씬 큰데? 그러면 사람? 누구? 저 날개는 뭐야?


  눈을 완전히 뜨자 머리엔 뿔이 달려있고 막 같은 날개가 등에 달려있는 여자가 내 발치에 앉아있었다. 


  “다…다… 당신 누구야?”


  소리를 질렀지만 집 안의 누구도 듣지 못했다. 


  “소리 질러봤자 나만 들을 수 있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미리 손을 봐놨거든.”


  “그래서 당신 누군데?”


  “나? 이제부터 당신이 아니라 언니라고 불릴 몽.마.”

 

——

  “나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무섭다니까? 소리를 질렀는데 아무도 못 들어. 소름이 쫙 돋더라.”


  “당연히 무서워야지! 그래도 지금은 그 기술, 너도 잘 써먹고 있잖아?”


  “에이, 아직 언니보단 한참 모자라지.”

 

——

  몽마? 처음 듣는 단언데?


  큰 소리를 질러서 생긴 흥분이 가라앉자 등이 배겼다. 이불이라도 말려있나 싶어서 등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뭔가 났다. 잡아당기니까 아팠다. 뭐야 도대체. 


  아픔 때문에 의식이 더 선명해졌다. 등에 뭔가 생겼다는 걸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등이 답답해서 앉았다. 그랬더니 몸이 평소보다 앞으로 더 쏠린 느낌이었다. 앞으로 숙여진 몸 따라 고개도 숙여졌다. 옷 앞이 찢어질만큼 팽팽했다. 옷 안에 손을 넣어보자 배꼽까지 직선으로 내려가야할 손이 앞을 향했다. 


  가슴? 나 여유증 아닌데?


  꼭지에 손이 닿자 찌르르한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찌르르한 느낌이 사라지자 이번엔 엉덩이 쪽이 쥐난 것처럼 저렸다. 바지 안에 손을 넣어보니 전선 같은 뭔가가 말려있었다. 역시 당기니까 아프다. 


  바지를 살짝 내리고 그걸 빼냈다. 말린 게 펴지면서 엉덩이가 쭉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꼬리?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 보면 꼬리가 맞다. 그런데 그게 왜 생긴 거야?


  그러고 보니 앞에 앉은 저 사람도 꼬리가 달려있다. 그러면 내 머리도?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양쪽 귀 위쪽에 딱딱한 게 만져졌다. 뿔?


  “너 다리 사이는 확인 안해?”


  아까 뽑혀나간 느낌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다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리고 손이 계속 앞으로 갔는데


  히으으으으읏!


  짜릿한 쾌감이 온 몸을 휩쓸었다.


  “너 일어나볼래? 바지도 벗었으니까 윗옷도 벗어보고.”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었으니 일단 옷을 다 벗었다. 

 

——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옷을 벗어보라는데 바로 벗고 있었다니까?”


  “이제야 말해주는데 그것도 내가 너를 홀린 거였어.”


  “그러면 그렇지. 변태.”


  “맞아. 그리고 이젠 너도 변태지.”

  

  “그래 인정. 그런데 언니는 더 변태잖아! 나빴어.”

 

——

  방에 불을 켜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예쁜데 이상한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엔 뿔이 달리고, 가슴은 크고, 등엔 날개가 달리고, 엉덩이는 훨씬 커졌고, 다리 사이엔 코끼리 대신 긴 꼬리가 다리 아래까지 늘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존재는 옆에 서있는 사람이랑 닮았다.


  저 사람이 비친 건가 싶어서 왼손을 들어봤었다. 똑 같은 쪽의 손이 들렸다. 앉아봤다. 거울 속의 그 존재도 앉았다. 옆에 있는 사람은 계속 서 있는 거 보니까 내가 비치는 거였다. 내가 비치는 거라고? 저게 나라고?


  “놀란 거 같네? 어때? 맘에 들어?”


  “맘에 드냐고요? 갑자기 뿔이랑 날개랑 꼬리가 달렸는데 맘에 드냐고 물으면 맘에 든다고 할 수 있겠어요오오… 있어요.”


  마음에 안든다고 말하려 했는데 반대로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 대답대로 내 새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누구든 홀릴 수 있을 거 같은 몸매. 이게 음만지 뭔지의 모습인가보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음마? 그게 이런 거에요?”


  “응. 음마 처음 들어봐? 서큐버스라고 하면 알아들을려나.”


  아, 서큐버스. 맞다. 게임에서 본 서큐버스의 모습 그대로다. 


  “진짜 있었구나…”


  “그럼 가짜로 있겠냐? 자, 이제 언니라고 불러. 지금부터 너랑 함께할 거니까.”


  “어… 언니.”


  어색할 줄 알았던 호칭인데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하게 나왔다.

 

——

  “솔직히 말해서 그 때 소름돋았어. 내가 그렇게 빨리 적응한다는 게.”


  “어땠어? 누나라고 부를 때랑은 다른 느낌이었지?”


  “응, 마음이 더 편해지더라. 도착했네. 오늘은 무슨 맛일까? 벌써부터 아랫입에 침이 고이네.”


  “먹어봐야 알지~. 자 들어가자.”

  

——

  잠은 어떻게 자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 잠은 어떻게 자요? 저 엎드려 못 자는데?”


  “상관없어. 이젠 밤에 잘 필요 없으니까.”


  밤에 간식을 먹고 자서 배가 고플 리가 없는데 갑자기 허기가 느껴진다. 조금 더 몸에 집중해보니 이제껏 느껴본 것과는 다른 종류의 허기였다. 서큐버스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했다. 아. 이 허기는 그렇게 채워야 하는 거야. 남자의 정기로. 그러니까 밤에 잘 필요가 없다는 거였어.


  “언니, 나 배고파요. 야식도 먹고 잤는데. 그런데 그런 배고픔이랑 좀 달라.”


  “그래, 당연히 배고플거야. 하나도 안 채워졌으니까. 자, 그러면 밖으로 나갈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