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윳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결국 마지막까지 즈카의 말은 한 마디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브리핑 시간은 끝이 났다. 워낙 많은 내용을 전달하게 되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몇 시간이나 이어진 브리핑은 점심시간 10분 전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즈카도 "이른 아침부터 수고 많았다. 점심시간을 30분 정도 연장하도록 조치해 둘 테니, 식사 후 남는 시간은 휴식해도 좋다."라며 눈이 뻐근한 듯 인공 눈물을 눈에 넣고 있었다.

"미안, 아사쿠라. 나 대신 설명 좀 해 줘라. 나 지금 반쯤 죽어 있거든......"

"으음. 이즈미 네놈, 아사쿠라에게 그런 번거로운 일을 시킬 셈이냐."

어느새 카레링은 온데간데 없고 유쾌한 싸이코 킬러 카렌짱이 옆에 서 있었다. 윳키의 부탁이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어쩌면 카레링, 기억 못하는 건가?

"카렌짱이었냐고...... 어차피 기억은 공유 되니까 너라도 설명 좀 해 줘라...... 진짜 부탁한다......"

"으으음, 어쩔 수 없지. 이번만이다. 카야모리,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는?"

카렌짱이 '마치 뭔가 꿍꿍이를 꾸미는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주먹을 콱 쥐었다. 뭘 하려는 건가 싶었더니, 앞으로 슉슉 펀치를 날리며 말을 이었다.

"신입에게 한 방 갈기러 간다!!"

"오, 한 방! 어떤 식으로?"

"멍청한 자식!! 당연히 경동맥에 날카로운 것을 콱 갈기는 게 당연하지!!"

"히이익!!"

뒤에 있던 츠카삿치가 겁을 집어먹고 메구밍과 오타마님 뒤로 돌아가 방패막이처럼 세웠다. 음, 상체의 오른쪽 절반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상태로는 경동맥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츠카삿치.

하지만 금세 카렌짱의 폭주가 가라앉았다. 특히 꼬리가 축 내려가서는, 표정에서 웃음기도 다소 사라졌다. 

"......농담이다."

"농담이구나."

"아사쿠라가 '유키 피곤하니까 장난치지 말자' 라고 해서 말이지. 운이 좋군, 이즈미!"

"그래 고맙다. 그러니 빨리 좀 해 줘라. 이러다 도착하겠어."

"좋지. 카야모리, 우리는 지금 오리엔테이션 룸으로 가고 있다."

"그렇구나. 그 이유는?"

"거기에 네놈이 그렇게 좋아하는 나나세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지."

"나나밍이!"

"거기다 우리의 꼬붕으로써 말이다!!"

"나나밍이...... 꼬붕!"

이럴 수가! 나나밍이 꼬붕! 그렇다는 건 앞으로 귀찮은 일은 전부 나나밍한테 맡겨도 된다는 건가!

"꺄하하하하하! 네놈 눈알이 반짝이는 게 확 쥐어 터뜨려버리고 싶을 정도야! 거기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다 보여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군!!"

"이즈미, 이거 결국 니가 설명 안 하면 안 끝날 것 같다 아이가."

"미치겠네 진짜.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그럼, 불초 제가 해보겠습니다!"

"됐어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아."

"단칼에! 단칼에 무시 당했어!"

하지만 윳키는 그 부르짖음도 무시했다. 메구밍이 "아이고 그려그려. 타마는 잘못 없다 아이가. 아닌가?" 하면서 위로해주고 있으니 그거면 되겠지 뭐. 마지막에 아닌가? 가 붙은 게 좀 신경 쓰이긴 하는데.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카렌짱이 말한 게 절반, 아니, 8할은 맞아."

"뭐! 그럼 정말 나나밍이 꼬붕이 된다는......"

"그게 틀려 먹은 2할이거든. 꼬붕이 아니라 32기 부대원으로 취급해서 우리가 교육을 해야 하는 거야. 나나세는 우리 부대의 작전 교육 적합성을 평가할 거고."

"흠흠. 그럼 지금은 뭘 하는 건데?"

"그 나나세를 인솔해서 점심 먹으러 가려고 오리엔테이션 룸으로 가고 있는 거다. 빨리 안 가면 점심시간이 지나간다고."

"헉, 그건 안 되지! 서둘러!!"

"이제야 뭐가 좀 진행이 되는구만......"

"왜 다들 안 뛰는 거야!"

 

"복도에선 뛰면 안되니까요, 선배."

 

딸랑. 자그마한 은방울이 고요하게 흔들리는 듯한, 더할 데 없이 완벽하게 잡은 C 코드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와도 같은, 평탄하고, 그래서 더 예쁜 목소리가. 살며시.

그래서 발을 멈췄다. 금방 멈추긴 어려우니, 팜뮤트를 몇 번,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오리엔테이션 룸의 문 앞. 불과 10보도 떨어져 있지도 않은 거리.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뭔가 있다. 경음악보다는, 취주악이 어울릴 것 같은 사람. 부대보다는, 학교가 어울릴 것 같은 사람. 고등학교보다는, 중학교가 어울릴 것 같은 사람. 체육대회가 오면 어느 순간 학교 뒤편에서 고백 받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그럭저럭 짧지도 길지도 않은, 묶지 않고 풀어 헤친 옅은 금빛 머리칼이, 창문을 통해 부는 산들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하지만 표정은, 없다. 봄빛 같은 옅은 홍조도, 여름바다 같은 시원함도, 가을바람 같은 새침함도, 겨울 거리와 같은 쓸쓸함도.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 자리에는 무엇이 대신하고 있을까?

"나나세, 예쁘다......"

"저런 옷이 있었구나. 우리도 교복이긴 하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이네."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31A와 같은 스타일이 아닌, 세라복. 어두운 곤색의 세라복. 군데군데 하얀 줄이 들어가고, 디플렉터 발생 장치가 박혀 있는, 마치 쇼와의 유산으로 보이는 세라복. 소녀의 하얀 피부, 그리고 옅은 금발과 어우러져,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다. 

"크윽...... 세일러복......! 해군으로써 졌습니다......!"

"안심해. 네가 해군으로써 뭔가를 이긴 기록은 한 손에 꼽으니까."

정신없이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다른 부대원들이 어느새 내 옆에 서 있었다. 소녀는 한 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31A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입술을 움직였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아니, 보통 거기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 나오지 않아?"

"기다린 건 저니까요."

"......그, 그래. 그건 그렇지."

윳키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소녀가 있었다. 매일같이 보아 온 얼굴이었지만,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얼굴을, 매일 봐 온 얼굴로 착각한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32A 나나세 나나미입니다. 부족한 후배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는 이름이지만,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얼굴을, 아는 사람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

나나밍과 동일인물 또는 동명이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큭, 귀여워! 왜 그렇게 날 빤히 쳐다보는 거야.

"......카야모리 씨. 통성명을 해 주세요."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에, 나나밍!? 진짜 나나밍이야!?"

"카야모리 씨. 통성명을 해 주세요."

"아니 그치만, 그 모습...... 나나밍이 아닌 줄 알았단 말이야."

"카야모리 씨. 통성명을 해 주세요."

"루카, 빨리 통성명부터 해. 아까부터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게 무슨 고장 난 라디오 같잖아."

"에~ 그치만 나나밍인데. 나나밍은 우리 알잖아. 그치?"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오늘부로 세라프 부대에 배속된 32A 나나세 나나미입니다."

어라아~? 나나밍이 뭔가 차가운데. 나나밍과 나 사이에 벽이 느껴져. 아주 큰 벽이.

"거 됐으니까 싸게싸게 인사 마치고 가지? 내 배고프거든?"

으음. 어쩔 수 없지. 여기선 나나밍의 설정에 맞춰주자.

"31A 부대장, 카야모리 루카. 잘 부탁해, 나나밍."

"......그, 나나밍, 이라는 건?"

"별명."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전 나나밍인 거군요."

"나나세. 처음으로 인간 사회를 경험하고 이름을 받은 야생에서 자란 아이 같은 소리 하지 마. 머리 아프니까. ......31A 이즈미 유키. 해커야."

"31A 아이카와 메구미. 초능력자데이."

"31A 토죠 츠카사야. 미용에 관한 건 언제든 물어봐 줘."

"31A 아사쿠라 카렌. 이 쪽은 게이머고......"

"이몸은 31A 최고의 싸이코 킬러 카렌짱입니다~!!!! 캬하하하하하!!"

"31A 쿠니미 타마입니다! 전 함장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첫인상 점수를 책정하겠습니다. 31A의 첫인사 점수, 12점."

12점? 이거 점수제야? 몇 점 만 점?

"당연히 100점입니다."

"잠깐잠깐잠깐!! 평가가 리얼타임 방식이었어!? 어째서 12점 밖에 안 되는 거야!? 완전 낙제점 그 자체잖아!!"

윳키가 그렇게 소리치며 나나밍에게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나나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따박따박 대답을 시작했다.

"인솔 시간 지각, 복도에서 달리기, 첫인상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통성명 실패 횟수 3회, 싸이코 킬러에 의한 불안감 형성 가능성 등등 현 상황에서 발생한 다양한 요소를 종합하여 도출된 점수입니다."

"거의 다 루카잖아!! 그리고 하나는 사령부가 배치한 거니까 불가항력이잖아!!"

"아~아. 나나밍 몰~라. 나나밍은 후배인 걸. 그러니 얼른 밥 먹으러 가지 않겠습니까, 선배. 저는 카페테리아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진짜 뻔뻔하네, 얘......"


나나밍 복장은 대충 이런 거로 생각하면 됨

대충 이런 거, 라고 하기 보단, 이게 레퍼런스임

여기에 머리는 풀어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