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요크 슈프림의 잿더미 사이로 비가 내렸다.


일루미닛의 침공이 시작된 지 이틀,


요크슈프림을 지켜내던 슈퍼지구군 제7방위보병사단은 거의 전멸했다.


건물들은 붕괴되고, 거리는 시체로 뒤덮였다.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나는 그녀를 발견했다.


SEAF 군복을 입은 소녀가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배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금발 머리는 피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고, 파란 눈동자는 천천히 흐려져 가고 있었다.


"진짜...헬다이버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릴 정도로 약했다.


나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슈퍼지구의 모든 시민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의 눈은 나를 보자마자 희망의 빛으로 밝아졌다.


꿰뚫린 배에서 피를 한움큼 쏟아내면서도, 마치 헬다이버만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믿듯이.


"걱정하지 마라, 병사. 곧 괜찮아질거다."


나는 허리춤의 의료 키트를 확인했다.
마지막 각성제 하나가 만져졌다. 단 하나.


만능 치료제라 불리는 그것은 어떤 상처든 즉시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물이었고, 그녀의 부상 쯤이야 한순간에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뿐이다.


나 역시 일루미닛의 플라즈마 공격에 직격탄을 맞았고, 내 팔과 다리는 부러진지 오래다.


망토에 가려진 내 갑옷 등은, 이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뚫린지 오래였다.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각성제는 하나. 살릴 수 있는 생명도 하나뿐.


"헬다이버...민주주의의 영웅. 마지막에라도 보니 좋네요."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소피아 {로즈} 안나, 19세, SEAF 제7방위보병사단 소총수.'


그녀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슈퍼지구를 지키기 위해 자원한 수많은 젊은이들 중 하나.


부모님은 지금쯤 대피소에서 딸의 안전을 걱정하며 뉴스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 손목의 스트라타젬 디바이스가 깜박였다.


재보급 쿨타임을 확인해보니 아직 2분이 남아있었다.

2분. 우리 둘 다 버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헬다이버의 의무는 시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고,


SEAF 또한 슈퍼지구의 자랑스러운 C등급 시민이다.


나는 생각을 마친 뒤 각성제를 들어 소녀의 목덜미에 갖다대려고 했고- 소녀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며 각성제를 든 내 손을 밀어냈다.


"아-아뇨! 헬다이버, 저는 괜찮아요! 이건 당신이 쓰셔야-"


"괜찮다, 병사. 난 재보급을 부르면 돼."


손목의 디바이스에 익숙한 동작으로 스트라타젬 코드를 입력하는 시늉을 했다.


아래, 아래, 위, 오른쪽. 재보급 요청.


물론 아직 쿨타임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요? 다시 받으실 수 있어요?"


"물론이지. 그러니까...가만히 있어."


나는 마지막 각성제를 그녀가 채 거부하기도 전에 빠르게 주사했다.


푸른 액체가 그녀의 혈관으로 스며들어 가면서, 창백했던 얼굴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고, 혼탁했던 눈동자가 다시 맑아졌다.


"...어라? 이제 안 아파요!"


소피아가 일어나며 감격에 겨워 외쳤다.


나는 뒤로 기대며 벽에 등을 맡겼다.


갑주 내부에 내 피가 들어차다 못해 밖으로 새는 지경이 되었고, 슬슬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병사, 잘 들어. 여기서 동쪽으로 3킬로미터만 가면 대피소가 있다. 거기서 다른 생존자들과 합류하도록."


"하지만 헬다이버님은요? 재보급이 언제 오는데요?"


나는 손목의 디바이스를 보았다. 여전히 1분 30초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거짓말을 계속했다.


"한 20초 정도면 온다. 난 여기서 좀 더 기다릴테니. 넌 먼저 대피소로 가."


"잠깐- 기다릴게요! 저도 SEAF 병사에요! 저는 당신을 보좌해야-"


"명령이다, 병사."


나는 가능한 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슈퍼지구의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목구멍에 피가 들어찬다. 내 목소리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당장 가. 대피소에서 탈출하는 시민들에게 무권자들의 비민주적인 공격이 닿지 않도록 방어해."


소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헬다이버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녀가 떠나간 후, 나는 혼자 남겨졌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멀리서 일루미닛들의 전투함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손목의 디바이스에서 마침내 신호음이 울렸다. 재보급 쿨타임이 끝났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설령 지금 재보급을 요청한다 해도, 헬포드가 도착하기 전에 나는 이미...


그리고- 나는 저 멀리서, 일루미닛 오버시어 한마리가 무권자 수십명을 이끌고 내 방향을 가리키는걸 보았다.


'적어도 한 명은 구했다.'


소피아는 무사히 대피소에 도달할 것이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재회할 것이다.


그녀는 살아나갈 것이다.


내 의식이 흐려져갔고,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떨리는 손으로 스트라타젬을 입력했다.


위, 오른쪽, 아래-아래-아래.


무권자들이 내게 달려오는걸 보며 힘 없이 스트라타젬을 내 발 밑에 떨어트렸고, 저 멀리서 이글이 내 방향으로 내려꽂히듯 하강하는 것을 보았다.


"달콤한 민주주의여..."


나는 마지막 숨을 들이마셨다.














[헬다이버 전멸 확인, 대체 분대 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