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양전함 자이틀리츠, 컬러로 복원한 사진이다.



제1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세계 2위의 해군력을 갖추고 있었던 독일은 적지 않은 수의 전함과 순양전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도 그런 독일 제국 해군의 군함 중 하나였다. 이 배는 얼핏 보기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함들처럼 대각선 포탑 배치 등등 영 투박한 생김새의 그저 그런 순양전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이틀리츠는 '불침함'이라는 군함으로서 대단히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린 군함이었다. 웅장한 거함거포의 시대에 어떤 족적을 남겼기에 불침함이라고까지 불렸던 것일까? 



독일 제국 해군의 불침함

간단하게 말해서 SMS 자이틀리츠는 그 함생 내내 몇 차례의 침몰 위기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두 번은 탄약고 유폭이라는 군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실제로 여러 군함이 이 탄약고 폭발로 산산조각났는데 이런 경우는 탈출할 시간도 없는 게 대부분이라 생존자도 매우 적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 예로 영국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는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와의 교전에서 탄약고가 유폭, 불과 3분만에 침몰했으며 1,418명의 승조원 중 단 3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다.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 전함 비스마르크의 공격으로 단 3분만에 굉침했다.


하지만 자이틀리츠는 이런 탄약고 유폭을 두 번이나 당했음에도 살아서 항구로 귀환한 위엄 넘치는 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첫 번째 유폭은 1915년의 도거 뱅크 해전에서 벌어졌다. 당시 독일 해군의 전력은 명실상부한 세계 2위였으나 1위였던 영국 해군이 너무 압도적이라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기 보다는 도발을 통해 영국 해군의 전력을 조금씩 유인하고 이를 격파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는데 도거 뱅크 해전 역시 이러한 가운데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자이틀리츠는 영국 함대의 기함, HMS 라이온의 공격에 탄약고가 유폭되는 대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자이틀리츠의 승조원들은 폭발이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포탑 한복판으로 들어가 바닷물을 들이부어 더 이상의 폭발을 막아내는 위엄을 보여줬다. 그 난리 속에서 라이온에 포탄을 먹여주며 추격을 뿌리친 것은 덤이다.


라이온급 순양전함


그러나 자이틀리츠의 정신 나간(...) 대미지 컨트롤은 드레드노트급 전함간의 함대 결전, 유틀란트 해전에서 그 진가를 드러냈다. 유틀란트 해전은 크게 양측의 순양전함들이 맞붙은 전초전과 양측의 본대가 맞붙은 본게임으로 나눠서 보는 편인데 자이틀리츠는 당시 프란츠 폰 히퍼 제독이 지휘하는 정찰 함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이 정찰 함대에는 자이틀리츠외에도 데어플링어급 데어플링어와 뤼초, 몰트케급 몰트케, 폰 데어 탄급 폰 데어 탄이 함께 편성되어 있었다.


유틀란트 해전의 자이틀리츠를 묘사한 상상화


정찰 함대는 곧 영국 해군의 순양전함 6척과 조우, 교전했는데 이때 영국 순양전함들을 지휘하던 데이비드 비티 제독은 라이온급 라이온과 프린세스 로열이 선두의 뤼초를, 퀸 메리급 퀸 메리가 데어플링어를, 타이거급 타이거가 자이틀리츠를, 인디페티거블급 뉴질랜드와 인디페티거블이 각각 몰트케와 폰 데어 탄을 공격하도록 했다. 그러나 퀸 메리의 트롤링으로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틀란트 해전 전초전의 트롤러 퀸 메리


비티 제독의 명령에 의하면 영국 순양전함 전대의 3번 함이었던 퀸 메리가 독일 정찰 함대의 2번 함 데어플링어를 공격해야 했으나 퀸 메리는 명령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3번 함 자이틀리츠에 냅다 포격을 가했다. 이 때문에 데어플링어는 그 어떤 공격도 받지 않는 상태로 영국 해군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난장판에 영국 순양전함 전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독일이 반격을 시작했고 퀸 메리의 트롤링으로 인한 대가는 너무나도 뼈아팠다. 뤼초에 의해 라이온이 대파당하고 폰 데어 탄에 의해 인디페티거블이 유폭, 굉침당했으며 라이온이 이탈하자 자이틀리츠가 데어플링어와 협공하여 퀸 메리를 침몰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우리 망할 배들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비티 제독은 이 난장판에 위와 같이 탄식했고 제1순양전함전대가 고전하는 가운데 영국의 제5전함전대가 지원을 위해 도착했다. 이 제5전함전대는 최초의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들로 구성된 강력한 전대였으며 여기에는 영국 최고의 수훈함인 HMS 워스파이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HMS 워스파이트. 1930년대 2차 대개장 이후의 모습이다.


이때 자이틀리츠는 퀸 엘리자베스급 2번 함 워스파이트, 3번 함 밸리언트, 4번 함 버럼이 발사한 15인치 포탄에 6발이나 얻어맞았다. 자이틀리츠의 주포 구경은 280mm였으며 대응방어를 포기한 순양전함이었기에 이 15인치 포탄에 대한 내성은 없다시피 했다. 결국 치열한 전투 도중 '또' 탄약고 유폭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이틀리츠 승조원들은 도거 뱅크 해전 이후로 엄청난 훈련을 해왔고 다시 폭발이 진행 중인 탄약고로 뛰어들어가 바닷물을 들이부어 폭발을 저지해냈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이틀리츠는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는데 이때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는 다음 사진들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15인치 포탄에 맞은 포탑


어뢰에 맞아서 손상된 선체


순양전함 2척, 고속전함 3척에 다굴당한 선체


침수로 인해 반쯤 침몰한 상태로 항해 중인 모습


다른 구도로 찍힌 사진


그러니까 저 꼴이 되었음에도 대미지 컨트롤에 성공해 살아서 귀환했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침수가 너무 심해서 입항이 불가능하자 크레인을 가져와 포탑을 하나 들어내 조금 떠오른 상태로 간신히 입항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여하튼 이처럼 불침함이라는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자이틀리츠였으나 안타깝게도 유틀란트 해전 이후 독일은 두 번 다시 영국의 제해권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역시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허망한 최후와 그 이후

자이틀리츠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한때 독일의 자랑이었던 주력함들은 협상국에 전리품으로 넘어갈 처지가 되었다. 이 주력함에 특히 눈독을 들인 것은 프랑스였는데 프랑스는 청년학파의 영향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도 대형함 전력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로서는 독일의 주력함들을 인수하면 단번에 해군력의 증강을 이룰 수 있었기에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은 이 배들을 그냥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1919년 6월 21일, 영국의 스캐퍼플로로 이동한 독일 대양함대의 함선들이 일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독일은 함대를 협상국에 넘기느니 차라리 자침시킨다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때 자이틀리츠도 다른 전우들과 마찬가지로 자침했는데, 독일 제국 해군의 상징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이틀리츠가 가장 먼저 자침했다고 한다. 그렇게 불침함의 전설도, 한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대했던 함대도, 영국에 도전한다는 빌헬름 2세의 야망도 모두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스캐퍼플로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인해 단단히 화가 난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의 내용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었고 독일은 그간 쌓아올린 함선 건조 노하우도, 숙련된 설계자와 기술자들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리고 가혹해진 베르사유 조약, 전간기의 혼란과 대공황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드리운 어둠은 결국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마들을 탄생시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