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1snEYPg8TXs?si=gTq15fu2i-zu8bKR


스웨덴의 메탈 밴드 사바톤(Sabaton)의 2019년 앨범, The Great War에 수록된 곡 가운데 하나인 'The Red Baron'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에이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을 다루는 곡이다. 제목인 The Red Baron은 리히트호펜의 별명이었던 붉은 남작을 영어로 표기한 것인데 실제로 그가 자신의 전투기를 빨갛게 칠하고 다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러나 이는 영국 조종사들이 주로 사용하던 별명으로 독일에서는 붉은 전투조종사라는 뜻의 Der Rote Kampfflieger로 더 많이 불렸다고 한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1892.05.22.~1918.04.21.)


"성공은 오직 인내, 끊임없는 인내로 번창한다."

"마지막 한 방울의 피, 한 방울의 기름까지 쥐어짜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날아올라 싸워라."


리히트호펜은 1918년 4월 21일 사망할 때까지 공식 80기의 격추 기록을 세운 독일 제국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다. 원래는 기병장교였는데 기관총이라는 신무기 앞에 기병이 도태되는 것을 보고는 전출을 신청, 조종사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위 노래에서 'Born a soldier from the horseback to the skies'라는 가사가 있는 것이다.


여하튼 리히트호펜의 80기 격추라는 기록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에이스 파일럿들이 세운 세 자릿수대의 기록과 비교하자면 다소 초라한 전적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그 어떤 기술의 도움도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감각만으로 공중전을 치뤄야 했기에 이는 결코 범상한 기록이 아니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모든 파일럿을 통틀어 리히트호펜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운 파일럿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영국의 전문가들이 양차 대전의 전투기 교환비, 전투 구도, 기술 발전 정도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하여 계산한 결과 리히트호펜의 격추 수 80기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457기의 격추 수를 올린 것과 동급의 기록이라는 결론을 얻은 바 있다.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의 1위 에이스 파일럿 에리히 하르트만의 기록이 352기다. 즉, 리히트호펜이 제2차 세계 대전의 파일럿이었다면 하르트만의 기록을 100기 이상의 격차로 뛰어넘었을 수도 있는 것.


그러나 그 역시 독일의 패전을 막지는 못했으며 그 자신도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1918년 4월 21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격한 그는 전투 도중 당시에는 초짜 파일럿이었던 사촌동생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을 노리고 달려드는 협상국 전투기를 막아섰고 혼전 속에서 피탄, 지상에 불시착했다. 총탄에 상처를 입은 리히트호펜은 착륙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25세였다.


리히트호펜의 전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당시 현장에 있던 협상국 파일럿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격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전투 자체가 워낙 혼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캐나다 출신의 '로이 브라운'이라는 파일럿이 격추했다고 발표했으나 한참 나중에 다시 분석한 결과, 리히트호펜은 지상에서 발사한 대공 기관총에 맞아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놈은 죽어서 전설이 됐지만 날 살아서 잊힌지 오래다."

-로이 브라운


리히트호펜의 죽음에 독일에서는 전국에 조기가 계양되었고 엄청난 인파가 그의 장례 행렬을 뒤따랐다. 동맹국 뿐만 아니라 협상국에서도 리히트호펜의 명성은 대단했고 이 때문에 세간은 붉은 남작의 죽음 그 자체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붉은 남작이 죽은 전투에 참가한 협상국 군인들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로이 브라운도 붉은 남작만 찾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위와 같이 한탄했을 정도. 


그리고 그 한탄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불태우고 끝내 전설로 거듭난 붉은 남작은 오늘날까지도 세상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스 파일럿, 독일 제국의 영웅, 그리고 전설... 이 모든 단어가 붉은 남작을 수식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