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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영웅들의 시대


37) 장사의 노익장


조운이 계양으로 갈 무렵, 제갈량과 관우는 장사를 향해 움직였다.


얼굴을 자주 볼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이였지만 두 사람만이 독대하는 상황은 없었는데 지난날의 일들 때문에 이런저런 회포를 풀기엔 또 어 색했다.


그나마 제갈량이 이런 분위기를 깨고자 먼저 말문을 열었다.


"관장군, 장사의 황충이라는 자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나도 들어는 봤소. 환갑이 거의 다된 노장치고도 강함이 항우와 염파를 연상시킨다고 했지. 그래서 조조가 그의 명성을 듣고 일단 비장군의 지위를 하사했다는것도 알고 있소.


그래서 그를 상대하기 위해 날 데려온것 아니요?"


"맞습니다. 이번 적은 안량과 문추와는 다른 적일테니 각별히 유의해주셨으면...."


적토마를 천천히 몰던 관우는 갑자기 말을 멈춰세우고 똑같이 말을 타던 제갈량이 뒤돌아보자 그는 이제껏 본적 없는 관우의 큰 웃음을 보 았다.


"허허허허! 군사! 아무리 내가 지난날 과오를 범했어도, 작은 장사의 늙은이 하나에게 쩔쩔맬까봐 그런것이오?"


"또 한가지, 황충은 천하 제일의 활 솜씨를 가졌다고 하니 다른건 몰라도 그것만은 유의해주셨으면 합니다."


호기심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 관우는 제갈량에게 한가지 청을 말했다.


"군사, 내 직속 부대 3천을 맡겨주시오. 먼저 장사로 가서 황충 그 노인네와 결판을 내겠소."


제갈량도 황충의 실력이 걱정스럽긴했지만, 그도 속으로는 관우에게 미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제가 맡을 본대는 지금처럼 천천히 움직이죠, 가서 실력을 보여주십쇼!"


허락을 받은 관우는 말 고삐를 우직끈 세게 붙들어 잡았다.


"관평, 조루! 나를 따르라! 먼저 장사로 가자!"


장사 태수 한현은 그 와룡과 투신이라 불리는 자가 넘어오니 불안한 마음에 얼굴이 무척 수척해졌다.


"이...이보게 황충..어쩔 셈인가? 그 관우와 와룡이 같이 온다는데 이를 어찌해야..."

-장사 태수 한현-


성벽 위에서 고요히 궁술을 연마하던 황충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 다.


"걱정하지 마십쇼. 이 황충이 전부 무찌를것입니다."


다음날 장사성 앞에 도착한 관우군은 생각보다 적이 준비를 탄탄히 해 놓아 오히려 감탄을 하고 있었다.


마침 조루가 부하들과 함께 직접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다.


"장군! 역시나 빈틈이 없습니다. 이정도면 군사의 본대가 돌아와도 적어도 함락시키까진 한달이 넘게 걸릴것 같습니다!"


"적이 일개 지방 관리라고 너무 방심한 모양이다. 아니지, 이것도 그 황충이란 노인네의 작품 같군."


마땅한 묘수가 생각나지 않던 관우는 고심한뒤, 한가지 수를 생각해냈다.


"조루, 군을 맡고 있어라, 평과 난 10명만을 데리고 가 놈과 사생결단을 내겠다!"


"네? 하지만 아버지..."


"평아, 이 아비에게도 다 생각이 있단다. 금적금왕, 결국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황충만을 잡으면 모든것이 끝난다."


관우는 그렇게 장사성을 자처해 찾아가, 성벽위의 모두가 들리게끔 소 리쳤다.


"비장군 황층은 들으시오! 나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관우, 관운장이오! 내 긴히 전할말이 있어서 왔소!"


안에서 결사항전을 준비하던 황충은 그 목소리를 듣고 성벽 위로 올라가려 했다.


"관우?"


올라가니 정말로 청룡언월도를 든 거구의 장수가 거의 홀로 나와있었다.


"황충! 내가 데려온 병사들은 우리 군에서도 최정예로 이름난 자들 뿐이오! 이들이 사력을 다해 공격하면 장사성은 피바다가 되고 시체가 즐비할텐데 정말로 그것을 원하시오?!


차라리, 병사들끼리 피해를 보게 하지 말고 대장끼리 자웅을 겨뤄 결판을 냅시다!"


황충은 그걸 듣고 웃곤 다시 내려가 무장을 갖추고 성문쪽으로 다가갔다.


"비켜라! 관우의 말대로 그와 결판을 내겠다!"


"하지만 황충 장군, 상대는 관우 아닙니까?"


성문을 지키던 병사 위연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그러자 황충이 손에 들고 있던 활을 등으로 넘기고 창을 들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나서겠다는거 아니냐, 관우를 쓰러트린다면 제갈량이라 해도 장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겠지! 어서 길을 비켜라!"


그도 관우의 도전을 받아 성문을 열고 당당히 나섰다.


"관우야! 다른 이라면 몰라도, 너라면 내 관뚜껑에 못을 박아줘도 되겠구나! 여기 황충, 황한승이 있다!"


그러나 관우는 황충을 보곤 오히려 말을 돌려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아버님? 황충이 나왔잖습니까, 어째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양 관우는 뒤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황충이 나이가 많은 장수임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저런 칠순을 앞둔 노인이라고는 들어본적이 없다!


저런 노인을 죽인다면 이 관운장의 명성에도.."


순간 바람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함께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지나간 무언가가 그대로 언월도에 달린 술 부분을 끊어놓았다.


"아버님!"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하던 찰나, 관우만큼은 유일하게 다시 흥미를 느끼고 뒤를 돌았다.


"오호라..."


뒤돌아본 그가 본것은 활을 들고 화살을 이미 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황충이였다.


그 거리의 언월도, 그것도 술을 맞추는것보다 관우의 머리를 맞추는게 더 편할것이라는건 누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됐다.


"과연! 활솜씨만큼은 내 인정하지!"


다시 관우는 말을 돌려 적토마의 머리가 황충을 향하게 했다.


황충도 활을 집어넣고 바닥에 떨어트린 활을 주으면서 말했다.


"언월도를 제대로 들게 젊은이, 이 노장이 그대에게 겸손함을 깨우쳐주지!"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적토마 덕분에 단숨에 황충 앞에 온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그를 공격했다.


황충도 이에 밀리지 않고 똑같이 창을 사용해 관우의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는 방어책을 보여주었다.


'궁술뿐만 아니라 창술도 겸비했구나! 내 이자를 너무 과소평가했군!


서로가 밀리지 않고 비등한 실력을 계속해서 보여주자 자연스레 관객이 된 병사들은 좀처럼 볼 수 없는 이 일기토를 즐길 뿐이였다.


"잘한다. 잘한다!"


"장군! 저런 노인따위 베어버리세요!"


20합 넘게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지자 먼저 이상이 생긴쪽은 황충쪽이였다.


"히히히힝!"


"음...!"


황충의 말이 갑자기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균형을 단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는 속절없이 낙마해버렸다.


"으아!"


더 볼것도 없는, 황충의 절명의 순간.


"와아아아아!!!!"


"흠..."


관우의 병사들이 환호하는데 반해 정작 관우는 아무말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대! 가서 말을 바꿔타고 와라."


"뭐...뭐라?"


여차하면 활을 쏠 마음까지 먹었던 황충은 당황했다.


"그대같은 무예가 훌륭한 장수를...운이 좋아 이겼다는 말 따윈 듣고 싶지 않다. 잠깐의 시간뿐이다. 가서 갈아타라!"


당연히 여기서 죽을 수는 없기에 황충은 등을 돌아 성문 안으로 저벅 저벅 들어갔다.


'아까 화살의 답변이라는것이군...역시 관우로구나!'


하지만 태수 한현은 그를 굉장히 탐탁치 못해하는것 같았다.


"여봐라! 당장 저 늙은이를 체포해라!"


한현의 말 한마디에 병졸 십여명이 황충의 팔을 붙잡아 그를 제압하려했다.


"무슨 짓이냐! 이거 놔라!"


황충도 힘을 쓰려했지만 오랏줄까지 쓰려는 그들을 지칠대로 지친몸으로는 이겨낼 순 없었다.


"태수 나리, 이게 무슨일입니까!"


억울하다는듯 말하는 황층에게 한현은 노발대발했다.


"무슨일이냐니, 네 이놈! 그건 네놈이 제일 잘 알지 않더냐! 명사수로서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부러 관우를 맞추지 않은것, 관우가 일부러 네놈을 살려보내주는것!


이것들이 전부 관우와 내통하고 있다는 산 증거들이 아니더냐!"


"으으윽..."


황충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변명이 없다 생각해 곧 죽을 고비에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결국 이게 끝인가...


그러나...


"멈춰라!"


황충을 붙잡은 10여명의 병사들을 뛰어넘는 수백의 병사들이 달려들어 역으로 한현을 포위했다.


그리고 앞장서서 행동하는 자로 보아 그가 이 일을 벌였으리라곤 당연히 짐작할만했다.


"한현! 네놈이 어찌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도 황충 장군을 의심하느냐!"


동료 병사들로부터 황충이 위기에 빠졌음을 알자, 어서 병영으로 가서 수백의 병사들을 선동하고 그를 구하려 한것이다.


"옳소! 황장군님은 우리 장사의 기둥이십니다!"


"무관의 명예도 모르는 자는 태수의 자격이 없다!"


"내 니놈을 베고, 이제 관장군을 따를테다!"


"하..한날.. 병졸 주제에...!"


위연은 아예 칼을 뽑아 한현에게 휘둘러 그를 말 그대로 단칼에 처단했다.


"위연! 아무리 그래도 한태수를 처단하다니, 그래서는...!"


"장군! 이제 다 괜찮아질껍니다, 유황숙과 관우 장군은 덕이 있으시니 장사는 전보다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한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를 중시했기에, 다른 다친이도 없이 장사성은 관우에게 넘어가고 그들은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4군중 가장 까다롭다고 예상된 장사가 이렇게 아버님 손에 넘어가다니, 이거라면 화용도에서의 죄도 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관우도 이번엔 무언가 깨달은것이 있었는지 승리를 축하하는 말보다 다른 지령을 내렸다.


"평아, 지금 성의 주민들이 우릴 위해 환호해주고 있지만 이들도 전란에 의해 보기보다 많은 피해와 불안감에 휩쓸려 살아갔을것이다.


병사들의 약탈이나 갈취등의 행위는 철저히 금하도록 하고, 집이 무너진 자는 수리를 해주거나, 다쳤는데도 치료를 못받는자는 군의를 파견토록해라.


또한 경우에 따라 우리 식량을 풀어 노약자들에게 나눠주거라."


"아...아버님.."


저 멀리 쓰러진 싸늘한 한현의 주검을 보고 관우는 말했다.


"세상 일은 모두 의에서 비롯되고 의로 끝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