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슈타우펜 왕조의 프리드리히 1세랑 프리드리히 2세가 이탈리아와 로마, 시칠리아와 같은 곳을 향한 대외정책의 치중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음.


 사실 선제후라는 게 특별히 생겨난 것은 아니었고, 동프랑크 왕 작센 공 하인리히 1세가 선거로 뽑힌 사실에서 보듯, 원래 유력한 제후들의 선거를 통해 왕을 선출하던 게 카롤링 왕조 이후 동프랑크의 거진 공식적인 제도였음.


 일종의 구심점 격으로 왕을 선출한 거였던 건데, 그걸 아들인 오토 대제가 나서서 부순 거고, 이 오토 대제가 로마로 가서 황제관까지 받아 권위를 높이고 황제가 세습하든 말든 간섭 못하게 제후들을 눌러놨기에 작센 왕조에서부터 살리 왕조까지 거진 중앙집권적 왕국이자 제국으로 이어나간 거임.


근데 교황과 황제끼리 서임권 놓고 다투고 분쟁했고, 거기서 왕권이 좀 꺾이게 되니까, 제후들이 고개 들기 시작했고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프리드리히 1세(첫번째 사진)가 왕권 약해지는 거 막으려고 작센 왕조 오토 대제 따라 로마 황제관 얻으려 이탈리아에 집중함. 문제는 오토 대제는 이탈리아를 확실하게 먹었는데, 얘는 못 먹었단 거임. 근데도 이탈리아 포기 못하는 게 호엔슈타우펜의 주된 정치적 기조가 되버렸고, 그거는 프리드리히 2세(두번째 사진)까지 이어졌음.


프리드리히 2세는 아예 그냥 제후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이것저것 퍼줬고, 나중에 시칠리아 왕국에서 왕 하던 장남 하인리히가 독일 왕 되서 독일 쪽 갔는데, 왕이 그냥 허수아비처럼 되버린 거 보고 불만 품음. 그래서 좀 바꾸려고 했다가 아버지가 반대했고, 거기에 반기 들었다가 눈 뽑히고 감옥에서 죽게 됨. 이 정도면 거의 이탈리아, 로마 빠돌이 ㅇㅈ?


그렇다고 오토 대제처럼 이탈리아랑 로마 확실하게 먹지도 못한 범부 샛기라 그런지 전쟁 계속 하다가 1250년에 뒤지고, 아들인 콘라트(Conrad)가 독일 왕 됐다가 재위 4년 만에 뒤짐.


그렇게 독일 왕 자리가 걍 공석이 되었고, 1254년부터 1273년까지 독일 왕 자리가 비게 되는 대공위 시대가 열림. 결과적으로 왕권 강화를 위해 이탈리아 등 대외로 눈을 돌리고 치중한 것이 도리어 독일을 비롯한 여러 영방들의 권력을 신장시켰고, 이게 나중에 금인칙서로까지 이어져서 신성로마가 개걸레짝처럼 찢어지게 된 거임.


그렇다고 이탈리아랑 로마를 확실하게 먹은 것도 아니고 교황도 적으로 돌리니까 답이 없게 됨.


자세한 건 오늘 중에 칼럼 비스무리한 걸로 올릴테니 기다려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