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원장은 본래 원말의 군벌이었던 곽자흥의 사위이자 휘하의 장수였음.


그런데 주원장이 너무 많은 공을 세우니 곽자흥이 점차 의심하며 숙청 각을 잡기 시작함.


이대로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주원장은 모든 병력을 곽자흥에게 반납하고, 불과 24명의 친위세력만 데리고 길을 떠남.


그리고 남쪽으로 향하던 중, 한 무리의 도적떼를 만남.


보통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주원장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여겼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此機不可失也)!."


그리 말하며 주원장은 자신이 곽자흥의 장수였다고 권위를 내세우며, 너희가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과감하게 승부를 띄움.


도적들은 일단 생각할 시간을 달라 했지만, 영 찜찜했던지 삼일 후 대뜸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함.


하지만 주원장은 이미 인근 마을의 장정들을 모집해둔 상태였음. 그들을 데리고 도적떼 앞을 가로막으며, 상대 패거리의 우두머리에게 의논할 게 있으니 대화를 해보자고 함.


우두머리는 순진하게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그건 주원장의 계략이었음. 주원장은 곧장 우두머리를 붙잡고 도적떼들을 흡수함.


곽자흥에게서 독립한 주원장에게 마침내 세력이 생긴 것.




2.


이후 승승장구하던 주원장에게도 위기가 닥침.


원나라 승상 탈탈(토크토아)가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남정에 나선 것.

그들은 파죽지세로 장사성을 격파한 후, 주원장이 지키고 있던 육합성에 다다름.


주원장은 병사들을 매복 시키고, 적들을 유인하여 격퇴시킴.


하지만 문제는 후속 병력이었음.


이에 주원장은 몸을 낮추고 탈탈에게 휴전을 제안함.


"우리가 군사를 모아 성을 지킨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오. 어찌하여 큰 도적을 쫒지 않고 우리를 치려 하시오?(守城備他盜耳,奈何舍巨寇戮良民)"


탈탈은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세력이 작고 성가신 주원장은 나중에 격파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다른 홍건적들을 치러 회군함.


승산이 아예 없는 싸움은 아니었지만 굳이 원나라군과 싸워 다른 군벌 좋은 일을 시켜줄 필요가 없으니, 아예 몸을 잠깐 숙이고 싸움을 피한 것.




3.

탈탈은 이후 실각하지만, 원 조정에선 주원장의 기세가 심상찮다고 판단.


지추밀원사(지금으로치면 국방부장관) 독견첩목아, 추밀부사 반주마, 민병원수 진야선에게 10만의 병력을 맡겨 보냄.


이들은 신당, 고망, 계룡산에 주둔하여 보급을 끊어버리고 주원장을 천천히 말려 죽이려고 함.


그러나 주원장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이들을 각개격파해버림.




4.


고아에서 탁발승으로, 그리고 탁발승에서 어엿한 군벌이 된 주원장은 점점 천하에 대한 욕심이 생김.


그래서 은거기인이었던 주승을 찾아가 헌책을 물어보는데, 주승의 답변은 간단했음.


"식량을 많이 모으고, 왕을 칭하는 일을 늦추고, 성벽을 높이 쌓아라(廣積糧, 緩稱王, 高築墻)"


주원장은 그 판단이 옳다고 여겨 다른 군벌들과 달리 몸을 낮추어 행동하기 시작함.

이건 생각보다 대단한 판단이고 결단임.

주원장이라고 왕 행세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병이 돌아 가족이 떼몰살 당하던 시절부터 탁발승으로 빌어먹던 시절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분명 왕 노릇 해보고 싶었을 거임.

그런데 그냥 지랄 말고 체급부터 쌓아올리라는 조언이 얼마나 값진지, 칭호에 얽매이지 않고 부하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는 대세 잡은 거 같다고 천하주인 행세하다가 좆된 놈들 면면만 떠올려봐도 됨(ex. 초나라 원숭이)




5.

이후 주원장은 격전지였던 중원이 아니라 장강을 건너 더욱 남쪽으로 세력을 옮길 계획을 짬.

장수들은 당시 남경이었던 집경을 공략하자고 하지만, 주원장의 생각은 달랐음.

"집경을 취하려면 채석부터 공략해야 한다. 채석은 중요한 진이라 우저부터 먼저 공격해 간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取集慶必自採石始。採石重鎮,守必固,牛渚前臨大江,彼難為備,可必克也。)


당시 주원장은 기존의 근거지를 포기한 상황이라 여유가 없었는데도, 차근차근 공략에 나서는 판단으로 남경을 취할 수 있었음.




6.


진우량이 수륙 양면으로 주원장을 공략하러 나섬.


엄청난 격차에 장수들이 거짓으로라도 항복하자고 하지만 주원장은 거절함.


일부 장수가 함락된 태평을 구해야 한다고 하자 주원장은 다시 거절.
주원장 : "불가하다(不可). 저들은 상류에 있는 데다, 수군이 우리보다 10배나 되니, 신속하게 회복하기는 어렵다."

일부 장수가 그럼 군대를 내어 회전으로 결판을 내자고 말하지만 이 역시 거절.
주원장 : "불가하다(不可). 저들은 편사(偏師 : 예비대, 별동대)로 우리를 막고 있어서, 전군이 금릉(金陵)으로 재촉하여 가도, (수군은)흐름을 타고 반나절만에 도달할 수 있지만, 우리의 보병과 기병이 급히 돌아가기는 힘들다. 백리를 급히 가서 싸우는 것은 병법에서도 꺼리는 바이니, 계책이 못된다."

호대해에게 신주(信州)를 쳐서 적의 후방을 견제토록 하고, 강무재에게는 진우량에게 서한을 보내 그를 속이게 한 뒤, 속히 오도록 영을 내렸다. 진우량은 과연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이에 상우춘이 석회산(石灰山)에 매복하였고, 서달은 성 남문 밖에 진을 치고, 양경(楊璟)은 대승항(大勝港)에 주둔하고, 장덕승(張德勝) 등은 수군으로 용강관(龍江關)을 나오고, 태조는 친히 노룡산(盧龍山)에서 군을 독전하였다.

멀리 떨어진 장수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려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거짓 항복으로 진우량을 끌어들인 것.

그리고 마침내 수군끼리 격돌하자, 배들이 뒤엉킨 차에 주원장의 군세가 육지에서 합공을 가하여 격퇴함.


7.


마침내 남중국의 1인자로 우뚝 선 주원장은 장수들과 북벌을 논의함.


서달을 비롯한 장수들은 곧장 대도로 나아가자는 헌책을 올림.


하지만 주원장의 생각은 달랐음.


"대군을 깊숙한 곳에 보내면 군량이 부족해지고, 천하에서 모인 구원병들이 속속 도착하면 퇴로 마저 갇혀 끝장나게 된다."


그리고 주원장은 아예 다른 방책을 내놓음.


"먼저 산동을 쳐 원 나라의 방어막을 거두어버리고, 다시 군대를 이동시켜 동관을 함락시킨다. 이렇게 한다면 적의 앞을 끊어버리게 되고, 이후 천하의 병력을 동원하여 원의 수도를 타격하면 구원병은 당도할 수 없으니 승리할 수 밖에 없다. 이윽고 크게 북을 치며 서쪽으로 나아간다면 모조리 석권할 수 있다."


동서 양쪽으로 군을 움직여 화북을 고립시키는 판을 설계한 것.


이후 북벌에 나서는데, 주원장은 자신이 나서지 않고 남경에 남아 보급을 맡았음.


친정의 영광보다는 오직 원나라를 가장 효율적으로 고꾸라트리는 일에만 신경 쓴 것.




8.


"여러 장수들은 성을 함락해도, 제멋대로 방화, 약탈하거나 망령되게 살인하지 말라. 원의 종실 친척들은 (죽이지 말고) 모두 보전시켜라. 바라건대, 위로는 천심(天心)에 답하고 아래로는 인망(人望)을 위로하여 짐이 죄를 벌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려는 뜻을 도우라. 이 명에 공손히 따르지 않는 자는 벌하여 사면하지 않을 것이다"毋肆焚掠妄殺人,元之宗戚,咸俾保全。庶幾上答天心,下慰人望,以副朕伐罪安民之意。不恭命者,罰無赦。


마침내 북벌에 나설 무렵, 주원장은 장수들에게 원나라의 신민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함.


그뿐만이 아니라, 승전 후에도 원나라에 대해 적대감을 불태우던 이전과 사뭇 달라진 태도를 보임.


신하들이 원나라 황족들을 내세워 개선식에 쓰자고 하자, 주원장은 대뜸 이렇게 말함.


"원이 중국에서 1백년동안 주인이 되어서, 짐과 경 등의 부모들은 모두 원나라의 생양(生養)에 힘입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들뜨고 경박한 말을 하는가, 빨리 고치라"


군벌 시기만 하더라도 그는 반원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원나라 출신 장수와 관료들을 쓰기 위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 것.



출처: https://m.dcinside.com/board/alternative_history/988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