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번역 출처는 파성넷을 참조 하였습니다. http://rexhistoria.net/index.php?&mid=history_sam&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A%B5%AD%EC%97%B0&document_srl=2034 )


적군을 쳐부순 공식 문서에는 하나를 열로 계산하는 구습이 있었으나, 국연은 싸움터에서 베어 노획한 적군의 목을 상주할 때, 그 실제적인 숫자와 똑같게 했다. 태조가 그 까닭을 묻자, 국연이 말했다.


“대체로 경계 밖의 도적을 정벌하고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은 숫자를 실제보다 많게 보고하는 것은 무공(武功)을 크게 하여 백성들의 귀에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하간은 봉토 구역 이내인데도 전은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우리가 크게 이겨 공을 세웠더라도 저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태조는 크게 기뻐하며, 국연을 위군태수(魏郡太守)로 옮겼다.


[위서 국연전]



고대시기 사서에 적힌 병력수는 재구성 되는것이 아니면 1만 이상 대군을 움직이는 것엔 양적 과장을 경계할 필요가 있을듯.


그 병력을 동원하는 쪽도 , 그걸 막는 쪽도 이를 세는 것에 과장이 없었는가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음.


아무래도 병사들도 사람이니 움직이고 싸우는데 밥이 필요한데 만 단위 이상 대군을 유지하기엔 고대 병참 수송 한계선은 매우 뻔하기 때문.


실제로 적벽대전 당시 주유는 조조의 대군이 80만에 가깝다고 "알려져"있지만 몇 가지 이유를 들며 실 병력은 그보다 못한 10-20만 선이라며 전쟁을 할 것을 종용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