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NNu7EQ_Z_8?si=9ecChtIlewS_VKwo



이르쿠츠크 시의 전경. 



시장


구세주 예배당

Часовня Спасителя на улице Большой


이르쿠츠크 시립극장

Иркутск Городской театр



로마카톨릭교회 이르쿠츠크 교구 성모승천교회

Костел


카잔 대성당

Казанский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수태고지 교회

Благовещенская церковь.


이슬람교 사원

Соломатинская улица Мечеть.


유대교 회당

Синагога


독일 루터교회와 러시아-아시아 은행

Немецкая кирха и Русско-Азиатский банк


러시아-아시아 은행

Русско-Азиатский банк

이름이 이렇지 실상 러시아 자본 지분은 1/5 남짓이고 대부분은 프랑스 자본이 차지하던 은행이었다.


바이칼 고속도로 인근의 아무르 문과 루터교 묘지

Амурские ворота и лютеранское кладбище на стрелке Байкальского тракта


메드베드니코바 은행

Банк Медведниковой

이르쿠츠크 지방의 거부 메드베드니코바의 미망인인 엘리자베타 미하일로브나 메드베드니코바Елизавета Михайловна Медведникова(1787-1828)가 출자하여 설립된, 이르쿠츠크 최초의 은행.


이르쿠츠크 지방법원 청사

Судебные установления.


이츠쿠르크 박물관

Музей


알렉산데르-마린스키 5년제 학교

Александро-Мариинское Училище


이츠쿠르크 공회당

Первое Общественное собрание 


이르쿠츠크 시청

Городская управа г Иркутск


이르쿠츠크 여자 김나지움

1-я Иркутская женская гимназия Ивана Степановича Хаминова


이르쿠츠크 고아원

Сиропитательный дом Елисаветы Медведниковой.


아동 임상병원

Ивано-Матренинская детская клиническая больница


이르쿠츠크 산업학교

Промышленное училище


러시아 제국 은행 이르쿠츠크 지점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банк Иркутска


니콜라이 1세 여학원

Институт императора Николая I

이상으로 이르쿠츠크에 세워진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은 이르쿠츠크에 파견된 제국군 장교와 고위공무원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지어진 곳들이다.


이르쿠츠크 고아원

Базановский воспитательный дом.


모스크바 게이트

Московские ворота


알렉산데르 3세 기념 동상(가운데)와 지방 총독 관저(우)

Памятник Александру III



황실 정원

Императорский сад


컨트리 가든 '차르 메이든'

Загородный сад. "Царь девица"



니콜라이 2세 방문 기념 개선문

Арка цесаревича в Иркутске

1891년 황태자 신분이었던 훗날의 니콜라이 2세의 이르쿠츠크 방문을 기념하여 지어진 개선문.


바이칼 호에 접한 부두



앙가라 강 제방에서 보는 이르쿠츠크 스카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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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로 본 이르쿠츠크의 위치. 바이칼 호수의 좌측, 몽골의 바로 북쪽에 인접해 있다.


   바이칼Байкал 호 연안에 위치한 동시베리아의 거점 도시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의 러시아 제국 말엽의 모습들.

   1661년 최초의 카자크인 정착지가 생긴 이래 모피 교역 및 중국과의 무역으로 번성해 온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이 도시에 부설되기 전 도시 발전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데, 그것은 데카브리스트 봉기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탓에 벌어진 서유럽의 자유주의 열풍을 진압하러 프랑스까지 원정을 왔던 러시아군 장교들 중 일부는 정작 그 자유주의에 매료되어 버렸고, 번화한 서유럽과 대비되는 러시아의 퇴행적 사회현실의 원인으로 전제군주정을 문제삼아 1825년 경 반란을 일으키나 실패하게 된다. 이후 이들이 주로 유배간 곳이 머나먼 시베리아 동쪽의, 유럽이라기보단 아시아에 가까운 바이칼 호 연안의 개척도시 이르쿠츠크였고, 따라서 이르쿠츠크는 일찍이 유배온 지식인과 귀족들의 영향으로 유달리 비슷한 출발점의 시베리아 개척도시치곤 꽤나 훌륭한 수준의 문화적, 예술적 토양을 쌓은 도시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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