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사이다 등과 함께 우리가 많이 즐기고 있는 탄산음료중 하나인 환타, 오늘 한번 환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원래 독일은 산업화 시대 이전까지 밤낮 상관없이 맥주를 마시며 일하는게 특징이었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이게 불가능해졌는데 그래서 마시기 시작한게 바로 코카콜라였고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군은 수입한 콜라를 마시며 전투를 치루기도 했다.

이후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고 히틀러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중 하나로 미국의 코카콜라 공장을 독일에 대거 건설하기 시작했고 독일에서도 다시 콜라는 곧 대중적인 음료가 되어 히틀러 또한 종종 마시며 좋아했다고 하며 독일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콜라 소비국이됨.

하지만 1939년 독일의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국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경제를 제재하며 독일의 코카콜라 공장은 모두 중지되는데 당시 독일 코카콜라 지사장이던 막스 카이트는 스위스를 통해 시럽을 밀수해오고자 했지만 얼마못가 이것도 막히게 되고 막스 카이트는 결국 새로운 탄산음료를 만들기로 결정하게 된다.

(막스 카이트, Max Keith, 1903 - 1987)

환타라는 이름이 지어질때 나름의 일화가 존재하는데 음료를 만들기전 카이트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직원들과 회의를 개최하는데 시원찮은 답들만 나오자 카이트는 "상상력(Fantasie,판타지)을 좀 발휘하란 말이야!" 라고 직원들을 윽박질렀고 그러자 한 직원이 재빨리 판타(Fanta)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얼마뒤 환타라는 이름으로 채택됨.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환타는 치즈랑 버터를 만들고 남은 우유 찌꺼기인 유장(乳漿)과 사과주를 만들고 남은 섬유질,단맛을 극대화 하기위한 사카린을 원료로 만들었는데

유장과 섬유질 모두 단맛(오랜지맛)이 나서 문제될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막스 카이트는 '미국 코카콜라 독일 법인'을 바탕으로 환타를 제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던것일까? 그것은 바로 법인이 철수하기도 전에 미독관계가 단절되며 카이트 혼자서 법인을 운영할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미국은 종전때까지 이를 몰랐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1940년 최초의 환타가 출시되고 독일 가정과 군에 빠르게 공급되며 코카콜라의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덕분에 가정에서도 막혀버린 설탕의 수입을 대신해 음식에서 단맛을 낼수 있게되었고 군대는 사기를 진작시킬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환타도 문제점이 많았는데 음식물 찌꺼기를 바탕으로 만든거다 보니 포도같은 다른 과일들도 사용하여 맛이 다 제각각이었고 탄산의 양이 코카콜라에 비해 적었지만 이건 가정에서 조리에 사용하는걸로 커버칠수 있었음. 거기에 화학물질인 사카린을 사용해 단맛을 내자 건강 우려가 생겼고 이는 1943년부터 이탈리아랑 스페인을 통해 설탕을 수입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함 그럼에도 독일의 몇없는 탄산음료 였기에 국민음료로 떠올랐고 연간 수백만병 이상 팔리며 큰 매출을 올림

이후 연합군이 독일의 코카콜라 생산 시설을 점거했을때 미군은 반파된 베를린의 한 공장에서 홀로 환타를 만들고 있는 막스 카이트를 발견했고 소식을 들은 코카콜라 CEO 로버트 우드러프는

로버트 W. 우드러프

전쟁속에서도 홀로 생산 시설을 지켜낸 그를 높게 평가하며 코카콜라 유럽 책임자로 승진시키지만 환타 브랜드 자체는 나치가 만든 음료, 저질 원료 때문에 얼마뒤 단종됨.

하지만 1950년대 경쟁사던 펩시가 빠르게 치고 올라왔고 위험을 느낀 코카콜라는 막스 카이트한테서 환타 제조법을 넘겨받고 1955년 환타 브랜드를 부활 시키며 이탈리아 지사에서 나폴리산 오렌지로 다시 제대로된 환타를 제조하기 시작함. 이후 이탈리아에서 만든 환타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1960년 정식으로 코카콜라에 인수되며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 나름 성공한 음료가 됨.

그렇게 해서 부활한 환타는 전세계에서 90종이 넘는 맛으로 출시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됨.